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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념으로 동수 사이의 모순을 대하고 다그쳐 중생을 구도하자

글/대륙대법제자

【명혜망 2007년 12월 8일】 우리 지역 두 명의 협조인 사이에는 모순이 존재한다. 그녀들도 안을 향해 찾아 자신의 부족함을 알기에 모순을 해소하고 서로 협력하길 갈망하며 또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그럼에도 몇 차례 시도가 모두 실패로 끝났고 좀 좋아졌다가도 며칠 못가 다시 불거지곤 했다. 모순이 갈수록 쌓이고 깊어지자 단지 가급적 회피하기만 했다.

나를 포함해 이 일을 알고 있는 동수들이 아주 많았지만 처음에는 자아(自我)에서 출발해 자신과는 관련이 없는 일이라고 여겼고 자신을 보전하며 이 일에 관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땅히 그녀들이 자신의 부족을 인식하고 모순을 풀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그녀들을 찾아가 대화를 했다. 그 결과 단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나 역시 여기에 휘말려들었다. 당시 사상의 동기가 밖을 향해 찾았고 다른 사람의 잘못을 찾았기 때문에 마음속으로 원망이 생겼다.

나중에 이 일은 단지 그녀들 두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며 또 나와 상관없는 일도 아니며 나도 안을 향해 찾아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과정 중에서 정말로 자신의 아주 많은 부족함을 발견했고 적지 않은 사람마음을 닦아냈다. 이 과정 중에서 모두들 모순의 발생은 자신을 수련하고 자신을 제고하는 기회임을 체험했다. 당사자뿐만 아니라 제삼자도 모두 마땅히 자신을 수련인으로 여기고 안을 향해 찾아 심성이 모두 제고되기만 하면 모순도 자연히 해결된다.

법리상으로 잘못이 없고 우리가 한 것도 잘못은 없다. 그러나 5년이나 지속했다면 그녀들의 모순이 왜 해결되지 못했는가? 매우 많은 사람들(두 협조인을 포함)이 모두 이 문제를 물었다. 나는 나의 사상 속에서부터 내가 이 문제를 아주 중시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협조인 사이의 모순을 아주 중시했고 그녀들 사이의 모순이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도하는데 영향을 준다고 여겼으며 그녀들의 모순을 먼저 해결해야만 비로소 보다 많은 중생을 잘 구도할 수 있다고 여겼다. 주위 동수들 역시 이랬다. 심지어 어떤 수련생은 그녀들 두 사람으로부터 전체 지역의 상태를 알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실은 이렇지 않다. 매 대법제자는 모두 법을 배우고 있고 모두 자신의 길을 걷고 있으며 모두 묵묵히 3가지 일을 하고 있다. 그녀들의 모순은 중생 구도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게다가 이 일을 모르는 동수들도 많이 있고 그들이 한 것도 아주 좋다. 단지 이 일을 아는 동수들이 이 일을 너무 중하게 본 것에 불과하다.

사실 이런 견해는 우리의 사람마음을 반영한 것이다. 우리가 협조인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고 그녀들을 ‘지도자’로 여기며 그녀들에게 의지하는 마음이 있어 인위적으로 그녀들에 대한 요구를 높인 것이다. 이로 인해 그녀들의 모순을 지나치게 심각하게 본 것이다. 우리 자신도 모순에 부닥칠 때가 있지 않은가? 그 때의 심태는 왜 같지 않은가? 우리는 마땅히 이지적이고 이성적이며 정상적으로 협조인 사이의 모순을 대해야 하며 협조인을 자비로 대해야 한다. 사상은 물질이며 대법제자의 일념은 에너지가 있는 것이다. 바르지 못한 심태와 사상염두는 단지 동수 사이의 모순을 강화하고 확대할 뿐이며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 뿐이다. 동수 사이의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가는 이를 아는 매 하나의 대법제자들이 정념으로 대할 수 있는가 하는 것과 일정한 관계가 있다. 이 일은 사정을 아는 우리 매 한 사람의 책임이다.

이외에 우리 역시 마땅히 법리상에서 인식해야 하는데 동수 사이에 모순이 있는 것은 정상적이며 그것은 심성을 제고하는 기회이다. 현재 대법제자에 대해 말하자면 가장 중요한 것은 중생구도이며 모순의 해결이 아니다. 모순은 심성을 제고해야 하며 그러면 자연히 해결된다. 억지로 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며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모순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방법을 채용해도 역시 안 되는데 우리는 수련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 관계를 바로잡지 못한다면 구세력이 곧 틈을 타게 해 모순을 크게 만드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그것을 너무 중시했기 때문에 그것의 올가미에 걸려든 것으로 정말로 중생 구도에 영향을 끼친다. 그 근본을 살펴보면 여전히 ‘위사(爲私)’와 ‘위아(爲我)’의 문제이며, 중생을 구도하는 것은 위타(爲他)적인 것으로 우리더러 철저히 자아를 내려놓고 완전히 중생을 위해 생각할 것을 요구한다. 마음속에 자비가 충만한 상태로 중생에 대해 이와 같다면 그럼 우리 동수들 사이에 해결하지 못할 무슨 모순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문장발표 : 2007년 12월 8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7/12/8/167962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