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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린(吉林) 꼬마제자: 수련중에서 성장하고 정법중에서 승화하다

글 / 지린(吉林) 꼬마 대법제자

【명혜망 2004년 7월 15일】

사존님 안녕하세요! 동수들 안녕하세요!

저는 올해 13살 난 지린(吉林) 대법꼬마제자입니다. 대법을 수련한 지는 이미 7년이 되었으며, 대법 중에서 많은 이익을 얻었습니다. 수련 전에는 늘 잘 놀랐고 열이 자주 났었지만, 수련 이후에는 더이상 놀라지 않게 되었으며, 가끔 열이 날 때도 있지만 이것은 사부님께서 제 몸을 정화(淨化)시켜 주시는 것임을 알기에 조금만 참으면 괜찮아집니다.

어느 한 번, 학우들이 유행병에 걸려 온몸에 두드러기가 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제게도 병이 옮아서, 선생님은 저에게 학교를 못 나오게 하셨고, 저를 집으로 보냈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엄마는 저를 데리고 법공부와 연공을 하였습니다. 이튿날 두드러기는 모두 사라졌습니다. 선생님과 학우들은 매우 놀라워했으나, 당시 저는 법공부와 연공을 해서 나았다는 말을 감히 꺼내지 못했습니다. 저는 대법은 초상적이며 사부님께서 저를 보살펴 주심을 알고 있었습니다.

99년 7월 20일 이후, 저는 할머니, 엄마, 큰엄마, 고모, 오빠와 같이 북경으로 청원하러 갔었습니다. 당시 경찰차에 잡혀 갔으며 민원실은 전혀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어른들은 구속되었고 저와 오빠는 할아버지가 집으로 데려 갔습니다. 며칠 후, 큰엄마와 엄마는 불법노동교양 1년 처분을 받고 창춘시 헤이주이쯔(黑嘴子)여자구치소로 보내졌습니다.

당시 저는 오직 8살이었고 오빠는 12살이었습니다. 우리는 마땅히 받아야 할 엄마의 보호를 잃어버렸습니다. 당시 고모 딸도 겨우 8살이었습니다. 할아버지, 아빠, 고모는 법을 실증하러 지린시 강변에서 연공을 하시다 불법으로 구속되었습니다. 집에는 86세 되는 증조 할머니, 그리고 큰오빠, 여동생, 나와 할머니만 남았습니다. 큰아빠는 일을 다니시니 할머니 혼자서 우리를 학교를 보내주고, 생활하며, 또 아프신 증조 할머니를 보살펴드려야 했습니다. (큰엄마와 엄마가 너무 보고 싶기에) 증조 할머니가 위독해지시자, 할머니는 사람을 풀어달라고 하였지만, 경찰은 할아버지, 아빠, 고모를 집으로 돌려 보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구속 만기되었는데도 또 세뇌반으로 보냈습니다.

경찰은 집에 와서 소란을 피우는 것을 밥 먹듯이 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할머니는 여전히 우리를 데리고 법공부, 연공, 심성수련을 하였습니다. 증조 할머니는 매일 매일 보고 싶은 시달림 끝에, 끝내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증조 할머니는 마음 깊이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일가족 4대 12식구는 한 마당에서 살고 있어서 수련 전에는 늘 모순이 생겼었지만 수련을 한 후 모순은 없어졌습니다. 온 가족은 대법의 은덕 하에 정말로 그 기쁨은 말로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정법 노정이 나아감에 따라 동수들은 각종 방식으로 세인에게 대법 진상을 알리고 있습니다. 한 번은 큰엄마, 엄마와 전단지를 나눠주러 가는 도중에, 뜻밖에 큰엄마에게 업히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시장에 가서 전단지를 나눠주기도 합니다. 나와 어른들은 보행으로 2~30리 정도 되는 거리를 걸어서 농민들에게 진상자료를 드리고, 현수막을 걸고, 스티커를 붙였습니다.

대법은 정말로 신기합니다. 한번은 어른들도 걸지 못하는 현수막을 오히려 제가 걸었습니다.(약 10미터 되는 전선 위에) 당시 저는 사부님께서 도와주시면 꼭 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저는 늘 동수들을 위하여 경문과 명혜망 문장을 전달합니다. 동수들은 저를 보고 꼬마 통신원이라고 부릅니다. 매번 사부님의 짧은 경문이 있으면 우리 일가족은 누가 먼저 외우는지 비겨봅니다. 우리는 법공부, 연공, 발정념을 같이 합니다. 저는 마음 깊이 사부님께서 시시각각 저를 보살펴주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학우들에게도 진상을 알립니다. 한번은 학교에서 보내온 편지 중에 제 4항목에서 파룬궁을 모욕하였을 뿐만 아니라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서명을 하라고 하였는데, 저는 그것을 찢어버렸습니다. 결국 선생님은 저를 교장실로 데리고 갔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제게 편지를 찢은 사유를 쓰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이 기회를 이용해 교장 선생님에게 진상을 알렸습니다. 엄마가 수련 전에는 병이 매우 심했으며, 여러 곳을 찾아 치료를 받아봤지만 효과가 없었는데, 파룬궁을 수련하여, 병은 정말로 신기하게 사라졌다고 하였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저에게 파룬궁 교육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학교 교육을 택할 것인가를 물었습니다. 저는 두 가지를 다 택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하나만 택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전혀 망설이지 않고 파룬궁을 택할 것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결국 교장 선생님은 부모님을 모시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엄마는 이 사실을 알고 속으로 이것은 때마침 진상을 할 기회가 아닌가? 라고 생각하셨습니다. 아빠, 엄마는 같이 교장실로 갔습니다. 부모님은 교장선생님에게 병을 낫게 하고 몸을 건강히 하는 대법의 신기함을 알려 주셨고, 대법이 모욕 받고, 대법제자가 박해 받고 있는 정황과, 선악에는 보응이 있다는 도리를 알려 주셨습니다. 최후에 아빠는 제 4항목을 긁어버리는 것을 잊고 서명을 하셨고, 저도 서명을 하였습니다. 집으로 돌아간 후 교류를 통해 엄마는 우리는 결국 낡은 세력의 배치를 인정하였다고 하셨습니다. 엄마는 자모회에서 제4항목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다고 발표하였습니다.

대법이 박해를 받는 5년 동안 엄마는 두 번이나 불법으로 노동교양을 받았고,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큰엄마, 고모는 부동한 정도로 노동교양, 구속, 세뇌반의 박해를 받았습니다. 매번 민감한 날에는 경찰들이 와서 소란을 피웠습니다. 2002년 10월 국경절 전후, 불법인원들은 뜻밖에 엄마와 큰엄마를 세뇌반으로 보냈습니다. 사부님 자비의 보호 하에서 악마의 손안에서 벗어났지만 사방으로 떠돌아 다니게 되셨습니다. 엄마가 집에 없는 날이면, 저는 매일 매일 엄마께서 하루 빨리 돌아오시길 바라고 있습니다. 이런 정황에서도 저는 수련을 포기하는 마음이 전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우리 같이 정진하길 바라며, 이후의 수련중에서 사부님의 말씀대로 열심히 하고 하루 빨리 중생을 구도하는 사명을 완성합시다! 최후 사존님의 《가로막지 못하리》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가로막지 못하리

수련의 길은 같지 않으나
모두 대법 중에 있거늘
만사에 집착이 없으면
발아래 길은 스스로 열리노라

無 阻
修煉路不同
都在大法中
萬事無執著
脚下路自通

문장완성 : 2004년 7월 14일
문장발표 : 2004년 7월 15일
문장갱신 : 2004년 7월 17일 00:37:24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minghui.ca/mh/articles/2004/7/15/7944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