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어릴 적 어린이 대법제자였고, 청년 대법제자로 성장했으며, 지금은 중년 대법제자가 됐습니다. 저는 A 수련생과 동갑으로, 어릴 때부터 모두 가족을 따라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했습니다. 우리는 일하는 도시에서 함께 아는 한 수련생이 있었고, 이 수련생의 소개로 서로 알게 됐으며, 나중에 한 팀에서 함께 법공부를 했습니다. 교류하는 과정에서 서로 마음이 꽤 잘 맞는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 당시 우리는 각각 속인과 함께 방을 임대해 살고 있었습니다. 더 나은 수련 환경을 위해 방을 함께 임대해 살기로 의논했습니다.
방을 임대하기 전, 우리는 함께 창춘(長春)에 다녀오기도 했는데, 파룬따파가 인간 세상에 처음 전해진 곳을 둘러보고 싶었습니다. ‘사부님 은혜를 회상하며(憶師恩)’에서 많은 수련생이 언급했던 성리(勝利) 공원을 한 바퀴 돌며, 20여 년 전 우주 대법이 이곳에서 널리 전해지기 시작했던 광경을 상상해 보았고, 다른 수련생들이 언급했던 여러 장소도 가보았습니다.
가정 자료점을 세우는 것부터 시작하다
저와 A의 직장은 모두 주 5일제라서 일이 그리 바쁘지 않았습니다. 함께 방을 빌린 후, 일과 외의 시간을 잘 활용하고 싶었는데, 그때는 이미 진상 전화 걸기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둘이서 ‘작은 꽃’(가정 진상자료 제작소) 한 송이를 피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수련생의 도움을 받아 기계와 소모품을 구매했고, 진상 지폐와 진상 자료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일들을 마치고도 시간이 남는다는 것을 알게 되자 다시 다른 진상 알리기 항목에도 참여했습니다. 이렇게 되자 시간을 온전히 다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방을 빌릴 때, 출퇴근 거리를 고려해 중간 지점을 고른 것 외에도 거실이 하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습니다. 필요할 때 수련생들에게 법공부 환경을 제공하고 싶은 소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많은 수련생이 우리가 사는 곳에서 함께 법공부한다고 생각하니 우리의 영광이라고 여겼습니다.
수련생들이 법공부하러 올 때면, 미리 대법 음악 ‘보도(普度)’, ‘제세(濟世)’를 틀어 놓았습니다. 처음에는 수련생들이 올 때 자주 문을 두드리지 않게 하려고 문을 살짝 열어두었는데, 계단 한 층 너머에서도 음악 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다소 긴장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두려움도 모른 채 그저 즐겁기만 했습니다! 나중에 서서히 인식을 높였고, 이렇게 하는 것이 확실히 타당하지 않으며 팀과 수련생을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해서 안전에 주의하기 시작했고, 더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방을 구한 첫해에 비교적 인상 깊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간혹 주말에 세 가지 일을 하느라 바쁘게 보내고 나면 이미 일요일 저녁 무렵이 됐습니다. 긴장을 좀 풀고 싶었고 그때는 백화점만 문을 열고 있어서 근처 백화점을 구경하러 가곤 했습니다.
때로는 가방에 션윈 공연 CD를 넣고, 백화점을 오가는 길에 행인에게 나눠줬습니다. 한번은 어떤 남자에게 나눠주고 나자 다가와 우리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처음에는 조금 조심스러웠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형이 대법제자였고, 예전에 션윈 공연 CD를 본 적이 있지만 오랫동안 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때 다른 분들에게 정념을 발할 수 있는 환경도 제공했습니다. 당시 한 수련생 아주머니가 우리집에 머물고 있었는데, 우리가 출근한 후 정념을 발하는 수련생들이 연이어 찾아오면 수련생 아주머니가 문을 열어줬습니다. 보통 우리가 퇴근할 때쯤이면 사람들은 모두 떠났습니다. 시간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왔는데 구체적으로 얼마나 많은 수련생이 왔는지, 누가 왔는지는 몰랐습니다. 우리가 쉬는 날과 겹치면 온종일 다 함께 정념을 발했습니다.
장쩌민 고소
장쩌민 고소가 시작된 후, 큰 팀 수련생들은 모두 이 일을 논의했고 어떤 수련생들은 이미 고소장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모두의 생각을 들으며 저 스스로도 생각에 잠겼습니다. 제가 A에게 물었는지 그녀가 제게 물었는지 확실히 기억나지 않지만 “장쩌민을 고소할 건가요?”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침묵이었습니다. 이 일에 대해 계속 논의하지 않았지만 둘 다 생각에 잠겼습니다.
이어서 휴가가 찾아왔고 A는 집으로 돌아갔지만 저는 가지 않았습니다. 그 휴가 기간에 큰 팀 법공부에 갔다가 수련생의 도움을 받아 택배로 제 고소장을 부쳤습니다.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A는 “저도 고소장을 다 준비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A도 이곳에서 순조롭게 고소장을 부쳤습니다.
이 일 이후 저와 A는 교류하며 대법이 박해받고 중국의 전체 수련 환경이 마두 장쩌민과 중국공산당(중공) 악당에 의해 파괴돼 우리에게 정상적인 수련 환경이 없으며, 또 많은 사람이 제멋대로 대법을 비방하고 모함하며 색안경을 끼고 수련인을 바라본다고 여겼습니다. 인간 세상은 법률을 중시하므로 법률적 차원에서 파룬궁을 수련하는 것이 위법이 아니며, 모두 마두 장쩌민이 저지른 나쁜 짓임을 보여줄 수 있다면 마땅히 당당하게 마두 장쩌민을 고소해야 했습니다.
장쩌민 고소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었고, 다만 그 과정에서 걱정되고 두려운 생각들을 하나하나 나열해 본 뒤 저 자신과 대조해 보며 어떤 마음에 동요했는지 살펴보고, 다시 최대한 이런 집착을 내려놓고 용감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장쩌민을 고소한 후 어느 날, 대지 위에서 허름한 건물들이 흙먼지를 날리며 무너져 내리는 꿈을 꿨습니다. 하지만 도로와 가까운 맨 앞줄에는 새롭고 깨끗한 건물들이 가지런히 우뚝 서 있었습니다.
장쩌민 고소 이후 어떤 수련생들은 관할 파출소 경찰의 괴롭힘을 받았습니다. 수련생들은 상의 끝에 저와 A가 파출소에 가서 벽에 붙은 파출소 직원들의 정보를 알아낸 뒤, 이 파출소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진상을 알려주기를 바랐습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그 파출소에 갔는데 당시 파출소 안에는 몇 사람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경찰들의 정보가 담긴 게시판을 향해 서서 미리 준비한 질문을 하며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 등을 물었습니다. 그들은 등을 돌리거나 게시판 쪽을 옆으로 한 채 질문에 대답했고, A는 옆에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놀다가 그들이 부주의한 틈을 타 게시판 사진을 찍었습니다. 사진을 찍은 후 A가 신호를 보냈고 저는 대답해 준 경찰에게 감사를 표했습니다. 문밖으로 나온 후 다시 각자 출근했습니다. 그 파출소에 가기 전과 나온 후 줄곧 정념을 발하며 우리가 이 파출소 안의 중생을 구하러 왔다는 신념을 품었습니다.
진상 전화 걸기
그 당시 1주일에 2~3일은 퇴근 후에 수련생의 차를 타고 진상 전화를 걸었습니다. 처음에는 진상 원고를 외우고 거기에 자신의 이해를 더해 상대방에게 진상을 알렸습니다. 다 알린 후 가끔 간단히 교류하며 어떤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는 것이 더 좋을지, 어떤 상황에서는 어떻게 말하는 것이 더 적합할지 살펴보았습니다. 진상 전화를 거는 중에 대답할 수 없는 질문과 부딪히면 차 안에서 전화를 걸지 않고 있는 다른 수련생에게 도움을 청해 설명하도록 했습니다. 다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기본 진상을 똑똑히 알리는 것에 따랐기에, 누군가 질문이나 의문이 많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기본 진상만 알린 후에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권했습니다.
그때 번호 대역을 나누었는데, A는 외곽 지역 사투리를 조금 알아들을 수 있어서 원활한 소통이 가능했기에 다른 지역으로 전화를 걸 때 다른 수련생들보다 효과가 더 좋았습니다. 보통 전화가 연결되면 먼저 예의 바르게 인사를 건넨 후 상대방에게 물었습니다. “삼퇴를 아시나요?” “파룬궁은 사람에게 선(善)을 향하도록 가르치며 ‘천안문 분신자살’은 가짜라는 것을 아시나요?”
나중에 저 자신이 매번 사람들에게 “삼퇴에 대해 들어보셨나요?”라고 물을 때마다 마음이 그리 평온하지 않고, 마치 자신감이 부족한 것처럼 상대가 전화를 끊을까 봐 조금 두려워하며, 우리가 정치한다고 생각하거나 반감을 가질까 봐 두려워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한참을 생각한 후 사상과 마음가짐에 문제가 있고 잡념과 걱정이 너무 많아서 문제를 정념으로 보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진상 전화를 거는 것은 무엇을 위해서인가?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다. 그럼 사람을 구하는 것은 대법 진상을 알리는 것 외에도 상대방이 중공 붉은 마귀를 멀리하고 삼퇴를 하도록 하는 것인데, 나는 무엇을 걱정하고 두려워하는가? 우리가 하는 일은 바른 일이고, 사부님께서 제자들을 가지해 주시고 계신다. 게다가 이것은 반드시 해야 할 일이고, 잘 해내야 하는 일이다. 내 쪽에서 생각이 흔들리는데, 전화를 받는 중생이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겠는가?’ 이런 사고의 오류를 정리하고 나자 정념이 생겼습니다. 그 후로 언제나 정념이 충만한 상태로 반드시 삼퇴를 권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전화를 받는 대부분의 중생이 예전보다 진상을 더 쉽게 받아들인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어느 날은 목이 아프고 쉬었으며 몸도 편치 않았는데 밤에는 또 진상 전화를 걸러 가야 했습니다. ‘내 목소리가 이런데 어떻게 말을 하지? 하룻밤 쉴까?’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갔고 중생들에게 이런 목소리를 듣게 해 마음에 약간의 미안함이 있었습니다. 그날 밤 쉰 목소리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진상을 알렸습니다. 나중에는 목이 너무 아파서 농담조로 “이런 목소리로 전화를 거니 저 자신마저 감동할 지경입니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날 밤의 효과는 아주 좋아서 총 10명을 삼퇴시켰습니다.
전화 카드
어느 달 말, 한 수련생이 오라고 불렀습니다. 가보니 자동 발신용 전화 카드를 몇 장 주면서, 월말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 다 쓰지 못했으니 가져가서 마저 쓰라고 했습니다. 제가 가져온 후에도 다 쓰지 못해서 남은 많은 통화 시간이 낭비됐고, 이에 대해 A에게 조금 속상하다고 말했습니다.
A가 제게 물었습니다. “왜 그 카드를 받았어요?” “어느 수련생이 저를 불러서 줬으니까요. 그녀는 다 못 쓰잖아요!” A가 말했습니다. “당신도 다 못 쓰면서 왜 그녀가 준다고 그냥 받았어요?” “별다른 생각도 없이 그냥 주길래 받았죠.” A가 말했습니다. “그럼 그 수련생은 다 쓰지도 못하면서 왜 카드를 그렇게 많이 쌓아뒀을까요? 당신에게 준다고 덥석 받았다가 다음에 또 다 못 쓰면 어떡하려고요?”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이 일에서 거절할 생각을 전혀 해보지 않았고, 사실 아무 생각 없이 주면 받았으며, 그럴 능력이 있는지 고민하지 않은 채 간접적으로 그 수련생을 방임한 셈이었습니다. 또한 이런 상황이 어찌 된 일인지 교류해 보지도 않았고, 앞으로 이런 손실을 줄일 수 있을지도 살펴보지 않았습니다. 전체적인 일을 그저 흐리멍덩하게 끌려가듯 처리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며 다행히 A의 일깨움 덕분에 다시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A는 이런 면에서 사고가 아주 명확해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생각한 뒤 결정했으며, 남의 말에 부화뇌동하지 않았습니다. 그녀와 함께 거주한 몇 년간 불합리한 일을 거절하는 법을 배웠고, 체면을 중시하는 마음을 내려놓는 법을 배웠으며, “안 됩니다”라고 말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이후 몇 년간 더 많은 수련생이 차를 사서 모두가 전화를 거는 데 무상으로 협조했습니다. 저와 A는 주말에 법공부 팀에 참여하고 진상 알리는 일 하는 것 외에, 주말에 진상 전화 거는 일도 늘렸습니다. 이렇게 되자 주말 내내 바쁘고 피곤해서 월요일에 출근할 때면 안도의 한숨을 쉬곤 했는데, 직장에 가면 좀 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와 A가 피운 이 작은 꽃은 진상 자료의 다운로드, 인쇄, 제본, 배포 등 전 과정을 자체적으로 해결했습니다. 몇 년간 직장 변동 때문에 네 군데로 거처를 옮겼는데, 이 네 곳은 서로 거리가 꽤 멀었습니다. 새로운 곳에 갈 때마다 자신이 사는 곳을 원점으로 삼아 원을 그리는 방식으로 주변에 진상 자료를 배포했으며, 이는 다음번 이사를 할 때까지 계속됐습니다.
임대한 집 주변에 진상 자료를 배포하다
제가 어떤 곳에 살 수 있는 것은 바로 그곳 중생과 인연 있는 것이고, 대법의 복을 그곳 중생에게 전해 중생이 파룬따파의 제도를 받게 하고 싶었습니다. 진상 자료를 배포할 때 우리 둘은 각자 한 동의 출입구를 맡았습니다. 계단을 한 칸씩 오를 때마다 가끔 속으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염했습니다.
우리가 빌린 두 번째 집 주변에서 진상 자료를 배포할 때였습니다. 한번은 제가 어느 집 문 앞에서 진상 전단을 어디에 붙일까 막 생각하고 있는데, 문에 달린 스피커에서 아주 큰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뭐 하는 짓이오? 내 문 앞에 있지 말고 빨리 가시오!” 저는 깜짝 놀라 몸을 돌려 나갔습니다. 저는 나와서 A에게 이 일을 말했고 우리는 다시 다른 동으로 갔습니다. 나중에 그곳을 다시 지나갈 때 A는 진상 자료를 들고 방금 그 집으로 가더니 몸을 비스듬히 하고 진상 자료를 붙였습니다. A처럼 정념이 충만한 수련생과 함께 협조하며 모든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것에 깊이 감동했습니다.
여기까지 쓰다 보니, 머릿속에는 저와 A가 춘하추동, 비바람이 불거나 눈이 오거나 낮이나 밤이나, 각기 다른 옷을 입고 다른 가방을 멘 채 여러 아파트 단지를 누비며 중생을 구하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진상 자료를 배포하러 가기 전에 정념을 발했고 오가는 길에도 정념을 발했습니다. 가끔 돌아오는 길에 무슨 말을 하려고 하면 A는 정념을 발하라고 일깨워줬습니다.
가끔 진상 자료를 갖고 출근하기도 했는데, 출근 전이나 점심시간에 직장 근처 아파트 단지에 배포했습니다. 이 점에서는 A가 저보다 더 잘했는데, 안정적으로 꾸준히 해냈고 고생도 잘 견뎌서 훨씬 많은 진상 자료를 배포했습니다.
감정적인 흔들림이나 갈등이 생겼는데 또 당장 진상 자료를 배포하러 가야 할 때면, 다른 감정을 제쳐두고 먼저 정념으로 협조해야 하며 한눈팔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고, 감정과 갈등 등은 다녀온 뒤에 다시 해결하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하자 줄곧 매우 평온했습니다.
우리가 빌린 세 번째 집은 어느 대학교의 교직원 사택 단지였습니다. 그 당시 CCTV는 지금처럼 스마트하거나 촘촘하지 않았습니다. 5월 12일 밤, 우리 둘은 ‘파룬따파는 전 세계에 널리 전해졌다’는 A4 크기 2단 진상 스티커를 들고 주변 아파트 단지, 사택 단지, 교사 기숙사 건물에 밤 11시 넘어서까지 붙였습니다. 13일 새벽 되기 전, 캠퍼스 주요 도로의 전봇대마다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스티커를 전부 붙인 후, 달빛을 밟으며 정념을 발하는 가운데 집으로 돌아와 5월 13일을 맞이했습니다.
성격이 다른 룸메이트
A는 예쁘고 독립적이며 냉철하고 자율적이며 말수가 적은 사람으로, 감정이 안정적이고 오성이 좋으며 남의 시비를 논하기 좋아하지 않고 일을 할 때 자신의 주관이 뚜렷했습니다. 저는 누구를 만나든 웃는 얼굴로 대하고, 말을 할 때도 늘 미소를 띠는 편입니다. 성격이 꽤 달랐는데, 방을 빌려 함께 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사이의 분위기가 전처럼 그리 화기애애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특별히 구체적인 사건이 일어난 것도 아니어서 표면적으로는 여전히 서로를 깍듯하게 대했습니다.
법공부를 하다가 사부님의 이런 말씀을 보았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 모두 다른 사람을 경계하며, 말을 하는 것도 매우 두루뭉술하게 하거나 에둘러서 하는데 사람들에게 도둑처럼 두리번거리는 느낌을 준다. 어떤 일이든 피해 가려하고 어떤 일이든 물어보기를 좋아한다. 어떻게 당신과 교류하겠는가? 어떻게 당신과 접촉하고 협력하겠는가?”(각지 설법13-2014년 샌프란시스코법회 설법)
우리 둘의 상황이 바로 이렇다고 여겼습니다. 저는 그녀가 아무 말도 안 한다고 생각했고, 그녀는 제가 이것저것 다 캐묻는다고 생각해서 분위기가 미묘해졌던 것입니다. 또 사부님께서 질의응답 시 제자의 질문에 대답하신 내용을 보았습니다. “사실 이 몇 해 동안 모두 이렇게 걸어지나오지 않았는가? 서로 간에 많이 돕고 협력하며, 많이 이해하고 장점을 많이 보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각지 설법13-2014년 샌프란시스코법회설법) 이 단락의 법을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사부님의 말씀을 들어야 했고 서로 더 많이 이해하며 장점을 많이 보고 서로 도와야 했습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의 정념은 대법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함께 사부님의 새 경문을 공부하자 사상과 마음가짐이 모두 변했습니다. 서서히 협조가 잘되기 시작했고 점차 융화됐습니다.
저와 A는 모두 어릴 때부터 대법 수련을 시작했다가 중간에 한동안 지체한 후 다시 대법 안으로 돌아왔습니다. 우리에게는 수련 원만이라는 공동의 목표가 있었습니다. 또한 법을 가장 크게 여겨 법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이라면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한다는 똑같이 명확한 인식도 있었습니다. 평소 속인의 관혼상제 같은 큰일을 제외하고 시간 안배는 항상 세 가지 일을 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았고, 그다음이 속인 중의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주파수가 맞아 법을 우선으로 삼으며 고생과 피로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우려하는 마음도 비교적 적게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무척 호흡이 잘 맞았지만 이 모든 것의 대전제는 반드시 법공부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었으며, 법의 힘이 있어야만 견지할 수 있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갈등을 겪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부분 갈등이 발생한 후에는 먼저 태도가 깍듯해지고 말수가 줄었는데, 매일 같이 밥은 먹어야 했기에 공기 중에는 어색함이 감돌았습니다. 갈등이 발생하면 처음에는 서로를 좀 원망했을지도 모르지만, 수련인은 자신의 문제를 안으로 찾아야 하기에 묵묵히 법공부를 더 많이 하곤 했습니다.
대략 1주일 정도 지나면, 기억 속에는 다소 흐린 날씨거나 불을 켜지 않은 밤 무렵이었는데, 어떤 계기가 생기면 그동안 느꼈던 감정이나 반성, 그리고 법에서 깨달은 점을 이야기했습니다. 가끔은 갈등이 생겼던 그 일을 전혀 언급할 필요조차 없었고, 때로는 선의로 당시 어떤 마음가짐이었고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한 차례 또 한 차례의 갈등 속에서 심성을 높였고 법리에 대한 이해를 깊게 했습니다. 이렇게 자신을 잘 수련해 중생을 구하겠다는 마음을 품은 바탕 위에서 여러 번 교류를 나눴고, 그것은 모두 심령을 울리는 감동과 법에 대해 더 많이 인식하게 되는 과정이었으며, 가끔은 정말이지 뼛속까지 시원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서로 비학비수(比學比修)하기도 했습니다. 법공부 수련 외에도, A를 통해 불합리한 일을 용감하게 거절하고 말을 분명하게 해 불필요한 번거로움에 빠지지 않는 법을 배웠습니다. A는 사람을 대하고 사물을 처리하는 면에서 제게 많은 것을 배웠다고 했지만, 저는 이런 면이 별 쓸모가 없어 제게 준 도움만큼 크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A가 타지로 전근 간 후
그 후 A의 직장이 타지로 발령 났습니다. 우리는 각자 집을 샀고 작은 꽃 한 송이는 두 송이가 됐습니다. 이전에 다져놓은 기초 덕분에 헤어진 후에도 서로를 격려하며 모두 일을 잘해 나갔습니다. 가끔 만나면 그동안의 법공부 심득과 진상 알리기 진도를 교류했습니다. 때때로 이렇게나 노력하고 이렇게나 많은 일을 했으며 이렇게나 많은 법리를 깨달았다는 것에 속으로 깜짝 놀라곤 했고, 나중에는 묵묵히 따라잡았습니다. 다음번 교류 때 지난번 마음가짐을 이야기하다 보면 둘 다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됐고, 이는 좋은 방향의 비학비수로 이어졌습니다.
헤어진 후 꿈을 하나 꿨습니다. 커다란 수면 위를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는데 주변에 사람들이 아주 많은 것 같았습니다. 저와 A는 각자 킥보드를 한 대씩 밀며 손으로 손잡이를 꽉 쥐고 한 발은 발판을 밟고 다른 한 발은 수면을 짚고 있었습니다. 계속 앞으로 나아갔고, 가다가 고개를 숙여 보니 이것이 어찌 평범한 물이겠습니까? 물 아래에는 온갖 악어와 이름 모를 크고 작은 동물들이 있어 공포스럽고 무서웠습니다. 물속에는 오물이 많았고 물도 붉은색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킥보드를 밟으며 아슬아슬하면서도 평안하게 반대편에 도착한 뒤 뭍으로 올라왔습니다.
이것이 아마 지난 몇 년간 함께 걸어온 인연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한번은 진상 자료를 배포하러 걸어가면서 예전에는 늘 A와 함께했는데 이제는 나 혼자 간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즉각 사부님께서 제 오른쪽 뒤편 위에서 “사부가 너와 함께 있단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순간 무척 기뻤고 사부님이 계셔서 정말 좋았습니다! 또한 훗날 기쁘게 다시 만나기를 바랍니다.
첫해에 함께 방을 구했을 때 A가 말했습니다. “나는 내 자아(自我)가 좀 강한 것 같아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습니다. “자아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아마 이기심이 좀 더 많을 거예요.”
겨울 무렵, 수련생 아주머니가 우리집에 와서 ‘자아’라는 문제에 대해 교류하게 됐을 때 제가 말했습니다. “저는 자아가 무엇인지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자아에 대한 개념도 없어요.” 아주머니는 소파에 앉아 자신이 겪은 한 가지 일을 30분 동안 이야기했는데, 앞의 20분 동안은 그냥 이야기 듣듯 들으며 ‘이게 자아와 무슨 상관이람, 그저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긴 것뿐이잖아’ 하고 생각했습니다. 말을 거의 다 마치고 꼼꼼하게 분석해 줬을 때 갑자기 자아를 인식하게 됐고 깜짝 놀랐습니다. ‘알고 보니 이것이 바로 ‘자아’였구나.’ 그것은 처음으로 뚜렷하게 자아를 인식한 순간이었습니다.
어떤 수련생은 저와 A가 모두 아주 드세다고 말했는데, 이것도 ‘자아’의 한 가지 표현이었습니다. 아마 모두 이 문제가 존재했고, 특히 아직도 이 문제를 너무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했으며, 둘 다 이 문제에 대해 그다지 잘 수련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잠시 머물렀던 어린 수련생
올해, 저보다 열 살 넘게 어린 수련생이 우리집에 잠시 머물렀습니다. 나이 차이 때문에 생활 환경과 방식 등이 달랐고 젊은 사람 특유의 자유분방함까지 더해져, 화장실 불은 항상 끄지 않고 머리를 빗을 때는 방 안을 돌아다니며 빗는 등 모든 것이 눈에 거슬렸습니다. 처음에는 저 자신에게 잘못이 없다고 생각했고 ‘이 일을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지? 저 물건은 왜 저렇게 두는 거야?’라며 마음이 몹시 불편했습니다. 불편해하는 것이 진정한 저 자신이 아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저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불편하다는 것은 마음이 있다는 뜻이니 안으로 찾아야 해. 그럼 내게 무슨 마음이 있는 걸까?’ 이리저리 찾아봐도 어떤 마음인지 딱히 정확하게 맞아떨어지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그게 뭐지?’
수천수백 년 동안 윤회 환생하면서 부딪힌 모든 일이 자신의 관념을 형성해, 일은 이렇게 해야 좋고 저렇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심지어 생명이 탄생한 위치에서 아래로 내려올 때부터 층층이 관념이 더해지고 그것이 오늘날까지 누적됐으며, 또 공산당 당문화(黨文化) 아래에서 수십 년을 푹 잠겨 지내며 각종 관념에 저 자신은 이미 아주 익숙해졌을 것입니다.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사람은 선천적인 순진(純真)을 제외하고 일체 관념은 모두 후천적으로 형성된 것이지 자신이 아니다.”(정진요지-누구를 위하여 존재하는가)
후천적인 관념은 버려야 하기에 명혜망에서 자아에 관한 교류 문장들을 찾아서 읽으며 조목조목 자신과 대조해 봤습니다. 비록 아직 다 고치지는 못했지만, 지금은 그 어린 수련생을 보아도 더 이상 마음이 동요하지 않으며, 제게 마음을 수련할 기회를 준 그녀에게 몹시 감사합니다.
예전에 A, 그리고 다른 수련생들과 협조하며 걸어온 그 세월을 떠올려 보니 정말 감개무량합니다. 사부님께서 제자를 보살피시고 이끌어 주셨기에 인생에서 가장 좋은 나이에 가장 바른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수련생들과 동행하며 서로 독려하고 교류했던 그 시간들은 참으로 반짝이는 나날들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지금 자신이 예전만큼 정진하지 못함을 발견했고, 다시 저에게 반짝반짝 빛나도록 노력하라고 채찍질해 준 명혜망 중국법회 원고모집 기회에 감사드립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2026년 명혜망 중국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6년 11월 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11/7/515996.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11/7/515996.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