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법회] 사존께서 저를 구해주셨으니 저는 중생을 구하려 합니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1996년 저는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에 들어섰습니다. 수련 전, 30대였던 저는 불치병을 앓고 있었고 의사는 기껏해야 5년밖에 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존께서 제 생명을 재창조해주셨고 제가 새로운 삶을 얻게 해주셨으니, 제자는 사존의 자비로운 제도에 감사드립니다! 아래에 제 수련 과정을 적어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존께 보고드립니다.

1. 사존께서 내게 두 번째 생명을 주시다

1995년, 저는 겨우 36세였습니다. 어느 날 발에 붉은 반점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서서히 그 붉은 반점이 커지고 점점 더 커지더니, 이어서 열이 나고 온몸에 힘이 없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후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졌는데, 다른 사람은 병이 깊어질 대로 깊어져야 이렇게 머리카락이 많이 빠진다고 알려주었습니다. 버스를 탈 때는 두 손으로 차 문을 잡고 온몸의 힘을 다 써야만 간신히 오를 수 있었고, 차에 있던 아이들이 저를 보고 “할머니 안녕하세요”라고 불렀습니다. 그때 저는 정말 하루하루가 1년 같았고 폐인과도 같았습니다. 남몰래 숨어서 울었고 마음이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이후 입원 치료를 시작했고 병리 검사를 거쳐 전신성 다발성 결절성 동맥염이라는 진단 결과가 나왔습니다. 당시 우리는 이 병명을 전혀 알아듣지 못했고 들어본 적도 없었습니다. 의사는 이 병은 고칠 수 있는 약이 없고 스테로이드로 유지할 수밖에 없으며, 간 보호제와 뇌 보호제, 심장 보호제도 복용해야 하는데 스테로이드는 늘릴 수만 있고 줄일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병세가 악화되면 장기 허혈을 일으켜 기능이 손상되고 심지어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의사는 기껏해야 5년밖에 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스테로이드를 많이 복용하다 보니 서서히 얼굴이 부어올라 아주 크게 부었고, 몸은 쇠가죽처럼 딱딱해졌습니다. 머리카락은 계속 빠져 거의 다 빠질 정도였으며, 어린아이가 저를 보면 놀라서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저는 살고 싶지 않을 만큼 고통스러웠고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 싶어 극단적인 생각까지 들었으며 정말로 죽고 싶었습니다.

모든 희망을 잃고 어찌할 바를 모르던 상황에서, 저는 다행히 사존의 파룬따파를 만났습니다. 저는 보서(寶書) ‘전법륜(轉法輪)’을 모셔 와 매일 갈증을 해소하듯 읽었고, 매일 아침 다섯 세트의 공법을 꾸준히 연공했습니다.

정공을 연공하기가 비교적 어려웠는데, 스테로이드를 먹어 몸과 발, 다리가 모두 뻣뻣했기 때문에 가부좌를 할 때 다리를 아예 올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리를 올린 후에도 1초도 안 돼서 쿵 하고 떨어졌는데, 마치 나무토막이 시멘트 바닥에 떨어지는 것 같았고 무척 아팠습니다. 하지만 저는 낙담하지 않고 다리를 다시 올렸습니다. 서서히 5분, 10분, 15분 동안 결가부좌를 할 수 있었고 그렇게 서서히 버텨냈습니다. 30분 동안 결가부좌를 할 수 있게 됐을 때, 제게는 거대한 승리였습니다. 이렇게 매일 고비를 넘겼습니다.

매일 가부좌를 마치고 나면 바닥에 물이 흥건했습니다. 겨울에는 방석이 흠뻑 젖을 정도였고, 배출된 물은 악취가 났으며 한약 냄새가 났습니다. 방 안 가득 한약 냄새가 진동해서 어떻게 한약 냄새가 날까 생각했습니다. 저는 문득 깨달았습니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제자의 몸을 청리해주시고 신체를 정화해주시는 것이구나!’ 저는 목메어 울었고 사존께서 제자를 위해 또 얼마나 많이 감당하셨는지, 제 업력을 얼마나 많이 제거해주셨는지 몰랐습니다.

수련 반년 후, 머리카락이 까맣고 윤기 나게 자랐습니다. 안색은 희고 붉은빛이 돌았으며 젊었을 때보다 몸이 더 건강해졌습니다. 사존의 자비로운 제도가 있었기에 제게 오늘이 있는 것입니다! 사존께서 제게 두 번째 생명을 주셨습니다. 공장 동료들은 제 상태를 보고 모두 신기해했고 많은 사람이 대법 수련에 들어섰으며, 가족 몇 명도 대법 수련에 들어섰습니다.

저는 매일 제비처럼 즐거웠고 날마다 나가서 홍법하며 대법의 복음을 전했으며, 만나는 사람마다 진상을 알렸습니다. 파룬따파는 크지 않은 우리 지역에서 아주 빠르게 퍼졌고, 서서히 수십 명, 수백 명, 수천 명이 와서 수련했습니다. 어느 날 우리는 광장에서 연공했는데, 각 시(市)와 현(縣) 지역에서 많은 사람이 와서 장면이 매우 장관이었습니다. 하늘에는 파룬이 나타났고 어떤 수련생은 빛기둥에 휩싸이는 등 많은 신기한 광경이 나타났습니다.

한번은 시골에 홍법하러 가려 했습니다. 아침 식사 후 몇몇 법공부 팀이 모여 수련생들과 자신의 수련 심득 체험을 교류했고, 사람마다 앞다투어 자신이 득법한 후의 신기함을 이야기했습니다. 시골에서 홍법할 때 그 자리에서 수련하겠다고 밝힌 사람이 있어서 우리는 그들에게 공법교육을 해주고 ‘전법륜’ 보서를 선물했으며, 많은 사람이 득법하고 수련했습니다.

남편 집안은 형제 둘뿐이었고, 고향에는 집이나 돌아가신 어르신들이 남긴 돈 같은 것들이 약간 있었습니다. 당시 저도 조금 나누어 받아 손해 보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이후 법공부를 통해 심성을 제고하면서 자신에게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과 질투심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수련인은 법으로 자신을 가늠해야 하고 법의 기준에 따라 잘해야 하며 이익 면에서 속인과 따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다투지도 요구하지도 않았습니다. 내려놓고 나니 마음이 무척 밝아졌습니다.

수련하기 전에는 시어머니와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수련 이후, 저는 원망심을 내려놓고 이전의 앙금을 마음에 두지 않았으며, 남편이 외출한 기간에 자주 물건을 사 들고 시어머니를 찾아뵈었습니다. 시어머니가 제게 “네가 진심으로 나한테 잘해주는 거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시어머니에게 “우리 사부님께서 저에게 모든 사람을 선하게 대하라고 하셨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2. 핑계를 대야만 외출할 수 있던 것에서 당당하게 진상 알리기로

1999년 7월 중국공산당(중공)이 파룬따파를 박해한 이후, 파룬궁수련생들을 불법적으로 납치했습니다. 어느 날 7~8명의 사람이 우리집에 찾아와 국가에서 파룬궁 수련을 허락하지 않는다며 우리에게 수련을 포기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저는 제 경험을 직접 들어 그들에게 홍법했고, 어머니도 제가 수련하기 전 몸 상태가 어땠는지와 수련 후의 변화를 모두 이야기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이때 의사가 당시 제가 5년밖에 살지 못한다고 했다는 사실을 말씀하셨습니다. 온 7~8명은 본래 우리를 ‘전향’시키러 왔다가 제 정신과 신체 상태가 이렇게 좋은 것을 보고 문을 나설 때 “우리도 하마터면 당신들에게 ‘전향’될 뻔했네!”라고 말했습니다.

갑작스러운 변고에 직면해 저는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사부님께서 새 경문 ‘심자명(心自明)’을 발표하셨고 모두 정념이 생겼습니다. 우리는 잇따라 나와 진상 자료를 배포하고 중공의 거짓말을 폭로하며 세상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렸습니다. 그때 우리 지역에는 아직 자료점이 없어서 사부님의 경문, 진상 자료는 모두 외지에서 보내왔고 우리는 그것을 복사해 다시 밖으로 가져가 배포했습니다.

2006년은 의사에게 5년 시한부 선고를 받은 지 이미 9년이 지난 때였습니다. 이해와 2011년을 합쳐, 저는 전후로 중공에 불법으로 갇혀 총 3년 넘게 박해당했습니다. 제가 돌아온 이후 남편은 제가 자꾸 납치당한다며 저를 때리고 머리를 바닥에 짓눌렀습니다. 이후 남편이 자신의 머리를 만져보니 혹이 나 있었는데, 그는 의아해하며 제 머리를 보더니 “왜 당신 머리에는 혹이 없고 내 머리에 혹이 났지?”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응보를 받은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처음에 나가서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할 때마다 항상 핑계를 대야만 외출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수련인은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며 당당하게 중생을 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수련생을 찾아 우리집에 NTD TV를 설치했고, 남편은 매일 NTD TV 프로그램을 보며 많은 진상을 알게 됐습니다. 그는 갈수록 대법을 믿고 대법을 인정하게 됐으며, 그 이후로 제가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하러 나가는 것을 다시는 가로막지 않았습니다.

3. 사부님 말씀을 듣고 사명을 이행하다

우리는 사부님의 말씀을 듣고 매일 거리에 나타나 진상 자료를 배포했습니다. 몇 번은 아주 큰 보따리의 자료를 들고 군중 속에서 배포했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한 부씩 나눠주었고 아무도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큰 보따리 몇 개의 진상 자료를 다 배포했습니다. 우리는 또 주민 아파트 복도로 가서 진상 자료를 집집마다 문에 걸어두었습니다. 우리가 거주하는 구역의 모든 아파트 단지, 심지어 조금 더 먼 곳까지 진상 자료를 여러 번 배포했습니다.

우리는 주변의 중생들이 진상을 안 경우가 많아졌다고 느껴 근처 시골로 가서 진상 자료를 배포하려 했습니다. A 수련생이 저를 찾아와 시골에 가서 진상을 알리자고 상의했고 저는 즉시 동의했습니다. 우리는 진상 CD, 스티커, 소책자 등 진상 자료를 미리 준비했습니다.

A의 남편은 우리가 시골에 자료를 배포하러 간다는 말을 듣고 “거긴 차에서 내려서도 1시간을 걸어야 하고, 마을 끝이 호수라서 퇴로가 전혀 없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아주 위험하니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당시 저도 마음속으로 조금 두려워서 ‘갈까 말까?’ 하고 갈등했습니다. 저는 두려움은 수련의 생사 고비이며, 두려움이 바로 이기심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저는 즉시 자신을 바로잡았고 사부님 말씀을 듣고 사람을 구하러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념이 나오자 우리는 진상 자료가 준비되는 대로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그날 저는 걷기 편하게 천으로 된 신발 한 켤레를 샀습니다. 저와 수련생은 진상 스티커, 션윈 공연 CD, 대법 진상 호신부(護身符), 진상 소책자 등을 과자 상자와 우유 상자에 담아 겉보기에 친척 집에 가는 것처럼 꾸몄습니다. 우리는 이 물건들을 짊어지고 길을 나섰고 먼저 시외버스를 탄 뒤 중간에 차를 한 번 갈아탔으며, 차에서 내려 1시간 남짓 걸어서야 마을 어귀에 도착했습니다. A가 지름길로 가려 했지만 수년 동안 이곳에 오지 않은 탓에 결국 우리 두 사람은 막힌 길로 접어들었고, 다시 1시간을 돌아가서야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오후 2시가 되어서야 A의 친척 집에 도착했습니다. 우리는 간단히 요기를 했습니다. 우리 둘은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진상 자료를 인근 농민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시골 사람들은 비교적 순박해서 모두 앞다투어 진상 자료, CD, 대법 진상 호신부 등을 가져갔습니다. 시골에는 글을 배운 적 없는 사람이 비교적 많았기 때문에 일부 사람들만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했습니다.

우리는 시간을 내어 밤에 또 집집마다 진상 자료를 돌렸습니다. 제가 진상 소책자를 가지고 배포하러 갔는데, 어느 집 문 앞에 막 다다랐을 때 커다란 검은 개 한 마리가 튀어나와 마구 짖어대어 온 마을 개들이 다 같이 짖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손발이 차가워지고 바들바들 떨릴 정도로 놀랐는데, 이런 상황은 처음 겪어봤습니다. 예전에 개에게 물린 적이 있어서 개를 무척 무서워했습니다.

정신을 차렸을 때 문득 명혜망에서 수련생의 교류 문장에 개에게 진상을 알려주면 된다고 했던 것이 떠올라 단번에 정념이 솟아올랐습니다. 저는 즉시 개를 향해 말했습니다. “개야 짖지 마, 우리는 네 주인을 구하러 온 거야. 너도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기억하고 구원받는 생명이 되어 대법에 동화해야지!” 그 개는 제 말을 듣더니 즉시 짖기를 멈추고 꼬리를 흔들며 앞장서서 길을 안내했습니다. 마을의 개들도 짖지 않았고 밤의 고요함을 되찾았습니다.

또 한 번 시골에 갔을 때, 저와 수련생은 션윈 공연 CD, ‘풍우천지행(風雨天地行)’, ‘위화(僞火)’ 등 진상 CD와 대법 진상 호신부, 그리고 많은 진상 소책자와 진상 스티커를 챙겼습니다. 우리는 낮에는 길을 따라 자료를 배포하고 진상을 알렸습니다. 밤에는 나가서 진상 자료를 배포하면서 진상 스티커를 붙였고 돌아와서는 수련생 친척에게 공법교육을 했습니다.

다음 날 돌아올 때, 길을 따라 진상 스티커를 붙였습니다. 아이들을 만나면 붉은 눈의 돌사자 이야기를 들려주고 삼퇴하면 평안을 지킬 수 있다고 알려주어 많은 아이가 소년선봉대에서 탈퇴했습니다. 한번은 12살짜리 아이를 만나 탈퇴하라고 권했습니다. 그 아이는 뛰어가서 더 많은 아이를 불러와 진상을 듣게 했고, 저는 아이들에게 말했습니다. “붉은 스카프는 열사의 피로 물들여진 거라 불길하니 너희들은 탈퇴하렴. 그리고 너희들은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기억해야 해.” 그날 9명의 아이를 탈퇴시켰고 그들은 길에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치며 깡충깡충 뛰어갔습니다.

몇 번은 진상 자료를 막 배포하자마자 경찰차가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앞뒤 몇 초 만에 해야 할 일을 끝냈고 위험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또 한 번은 우리가 진상 스티커를 붙일 때 사복 경찰에게 발각됐는데, 그가 경찰 여러 명을 불러 우리를 뒤쫓았습니다. 우리는 정념을 발해 사부님께서 제자를 가지(加持)해주시길 구했고, 순조롭게 집에 돌아왔습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에 감사드립니다!

중생을 구하는 일을 점점 더 많이 할수록 우리의 두려운 마음도 갈수록 줄어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다들 중생에게 감히 대면해 진상을 알리거나 삼퇴를 권하지 못했습니다. 정법이 앞으로 나아감에 따라 중생들도 갈수록 똑똑해졌고, 우리는 대면해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는 아주 단정하게 차려입은 50대 여성을 만나 “정말 미인이시네요”라고 칭찬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의사라고 했습니다. 제가 “의사시군요, 그럼 제가 한 가지 여쭤볼게요. 기관지를 절개하고도 노래를 부를 수 있나요?”라고 묻자 그녀가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요? 그건 의학 상식에 어긋나잖아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천안문 분신자살’ 사건이 바로 그렇게 주장하고 있답니다.” 제가 “당, 단, 대에 가입하신 적이 있나요?”라고 물으며 그녀에게 왜 삼퇴를 해야 하는지, 어떻게 평안을 지킬 수 있는지 알려주었고 중공이 이익을 챙기기 위해 파룬궁수련생 생체 장기적출을 한 것, 장자석(藏字石: 중국공산당이 멸망한다고 기록된 고대의 예언석) 등의 진상을 알려주자 그녀는 중공의 당, 단, 대 조직에서 탈퇴하겠다고 승낙했습니다.

한번은 손자를 안고 있는 할아버지를 만나 제가 말했습니다. “어르신, 안녕하세요. 남자가 아이를 돌보기가 쉽지 않은데요.” 그가 “쉽지 않지요!”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참 선량하시네요, 아이 돌보는 것도 도와주시고”라고 하며 진상을 알렸더니 그가 듣고는 “내가 무슨 일 하는 사람인지 아시오? 나 공안인데, 당신 저 맞은편에 가서 얘기하시오(맞은편에 파출소가 있었음)”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공안 일을 하시는 분일수록 더욱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아셔야 해요, 생명은 모두 구원받아야 하니까요!” 그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공원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고 서민과 은퇴자들이 많았는데 탐관오리들이 툭하면 수억 위안을 횡령하고, 강제로 백신을 맞게 해 사람들에게 뇌졸중이나 심근경색이 오게 하며, 식품과 과일에 독이 있다는 이야기를 꺼내기만 하면 다들 공감해서 중공 조직을 탈퇴해 평안을 지키는 사람들이 비교적 많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당신들은 공산당의 것을 먹고 마시면서 공산당을 반대하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공산당은 농사도 짓지 않고 일도 하지 않으며 과학 연구도 하지 않는데 어디서 돈이 나겠습니까? 비누 하나를 사도 그 안에 세금이 포함돼 있어요, 우리가 공산당을 먹여 살리는 것이니 여러분 헷갈리지 마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우리가 하는 말에 수긍했습니다.

우리 지역에는 현재 1일 여행, 2일 여행, 3일 여행이 비교적 많습니다. 이곳에는 옛 건물 모형, 사찰, 누각, 탑, 광장 등이 있어 매일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으며 휴일에는 사람이 더욱 많습니다. 많은 사람이 가족 단위로 여행을 오거나 무리를 지어 놀러 옵니다. 우리는 매일 군중 속을 누비며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합니다. 과거에는 우리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진상을 알렸지만 지금은 사람이 많아서 한 무리 한 무리씩 진상을 알려야 합니다.

한번은 한 대가족이 여행을 왔는데, 아들 둘, 딸 둘에 사위, 외조카 등이 있었습니다. 한 남자가 휠체어를 밀고 있었고 그 위에는 노인이 타고 있었습니다. 제가 다가가서 말을 걸어보니 사위가 장모를 모시고 온 것이어서 “이 가족은 참 행복하시겠어요. 사위가 아들보다 낫네요. 가족이 이렇게 좋으시니 말이에요. 요즘 재난이 빈번하게 발생하는데 평안을 지키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에게 삼퇴가 무엇인지, 왜 삼퇴를 해야 하는지 알려주었고 일가족 8명이 모두 삼퇴를 했습니다.

어느 날 정류장에서 노인 4명이 걸어왔는데 피리를 부는 사람, 경극을 하는 사람, 춤을 추는 사람이 있었고 옷을 아주 아름답게 차려입었습니다. 제가 바로 다가가 “다들 무척 아름다우시고 아주 즐겁게 노시네요! 혹시 당, 단, 대에 가입하신 적이 있나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가입한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예전에 제 몸이 얼마나 안 좋았는지, 파룬궁을 연공해서 어떻게 좋아졌는지 이야기해 주었고, 그들은 모두 아주 신기해하며 삼퇴에 동의했습니다.

하루는 대략 한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를 안은 할머니가 육교에서 내려와 마침 제 곁을 지나가는 것을 마주쳤습니다. 이 아이는 덩실덩실 춤을 추며 무척 기뻐하더니 계속 제 몸에 뛰어오르며 안아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얼른 아이를 안고 토닥이며 “아가야, 아가야,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기억하면 평안하고 건강하며 길할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흐름을 타서 할머니에게 진상을 알렸고, 그녀는 대법을 몹시 수긍하며 중공의 단, 대 조직에서 탈퇴했습니다.

몸을 돌려보니 주변에 어머니 4명이 아이를 안고 있었고, 이 아이들 모두 제게 달려와 안아달라고 했으며 결국 이 4명의 어머니도 모두 삼퇴를 했습니다.

한번은 놀러 나온 여자아이 5명과 마주쳤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이곳은 참 좋죠, 산도 좋고, 물도 좋고, 먹을 것도 좋고, 마실 것도 좋고, 풍경도 좋아요. 그리고 또 하나 좋은 게 있는데 바로 삼퇴가 좋다는 거예요. 우리 이곳에서는 삼퇴하고 구원받은 사람이 아주 많아요, 며칠 전에는 후난, 충칭의 많은 사람이 다 삼퇴를 했어요. 당신들 다섯 명은 마침 다섯 송이 금화 같으니, 이 이름으로 단과 대에서 탈퇴하세요.” 그녀들은 모두 동의했고 무척 기뻐했습니다.

우리는 또한 놀러 나온 대학생 무리와 자주 마주치는데, 어떤 학생들은 사진을 찍고 있고 어떤 학생들은 줄을 서서 훠궈나 꼬치구이를 먹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가가 말을 걸고 대화를 나눕니다. 때로는 그들에게 길을 안내해주거나 길을 알려주고, 때로는 가이드 역할을 해주면서 그들에게 삼퇴를 권하면 매우 순조롭게 이뤄집니다.

저는 반드시 사부님의 가르침에 따라 행하며 서약을 실천하고 사부님을 도와 정법(正法)하며 더 많은 중생을 구도해 저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려 합니다.

사존께 감사드립니다!

(2026년 명혜망 중국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6년 11월 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11/6/51599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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