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나는 1996년 3월부터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으며 올해 69세다. 대법 수련에 들어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수련하기 전에 앓았던 여러 가지 질병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예를 들면 산후조리를 잘못해 생긴 병과 부인병 등이 모두 나아 병 없이 몸이 가벼워진 것을 느꼈고, 가정도 화목해져 매우 행복했다. 여기에서 정법 수련 중 정념(正念)으로 박해를 해체하고 맺힌 원한을 선해하며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한 일부 경험을 교류하려 한다.
1. 불법 강제노동 해체
1999년 7월, 악의 우두머리 장쩌민(江澤民)은 자신의 권세를 이용해 파룬궁을 탄압하고 박해하기 시작했다. 나는 두 번이나 불법적으로 감금됐고 경찰이 가택수색을 했으며 여러 차례 집에 찾아와 괴롭히고 협박하고 미행했지만, 사부님을 굳게 믿고 대법을 굳게 수련하려는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2005년 나는 구치소로 납치됐고 한 달 후 불법으로 노동교양(강제노동) 처분을 받았다. 신체검사를 받을 때 나는 생각했다. ‘나는 법을 어기지 않았다.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다.’ 나는 마음속으로 구세력에게 엄숙히 경고했다. ‘대법제자는 잘못이 없다. 법을 어긴 것은 너희들이다.’ 나는 한편으로 발정념(發正念)을 하면서 한편으로 사존께 제자를 위해 주관해 주십사 청했다. 혈압을 측정할 때 내 혈압은 180이었고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않았으며 심장은 뛰다 멈추다 했다. 의사가 말했다. “이 사람은 생명이 위험해. 나도 수십 년간 의사로 일했지만 이런 심장은 본 적이 없어. 감히 받을 수 없네.” 경찰은 단념하지 않고 30분 후 다시 의사를 바꿔 새로 검사하려 했다. 이때 한 경찰이 다가와 나에게 말했다. “방금까지 멀쩡했는데 어떻게 갑자기 안 좋아졌어? 당신 발정념하고 있는 거 아니야? 너희 대법제자가 발정념을 하면 일시적인 쇼크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던데 발정념하지 마!” 나는 그를 상대하지 않았다. 나는 사부님께서 나를 구해주고 계신다는 것을 알았다. 이때 의사가 왔고 검사 결과는 전과 같았다.
나는 발정념을 하면서 노동수용소 경찰의 명백한 일면을 향해 말했다. ‘당신이 여기에서 내 수련생을 얼마나 많이 해쳤는지 모르겠다. 이번에 당신에게 속죄할 기회를 주는 것이니 나를 여기에 남겨 두어서는 안 된다. 당신이 다시 악행을 저지르면 죄에 죄를 더하는 것이고 당신의 결말은 더욱 가련해질 것이다.’ 그의 배후 사악이 해체됐다. 그는 나를 꼬박 30초 동안 바라본 후 “거부”라고 두 글자를 썼고 610 직원에게 말했다. “얼른 병원으로 보내세요. 우리는 받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해서 딸이 나를 집으로 데려왔다. 나는 자비로운 사부님께서 제자를 위해 감당하시고 이 시련을 해소시켜 주셨다는 것을 알았다.
2. 사부님께서 나를 구해주시지 않았다면 어찌 우리집이 있겠는가
수련하기 전 우리는 부부싸움을 자주 했고 남편은 입을 열기만 하면 손찌검을 해서 집에서 며칠 편하게 지내는 날이 없었다. 아이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저 참고 지낼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는 점점 자랐다. 나는 진작부터 이런 생활을 하고 싶지 않았고 마음속으로 그를 업신여겨 이혼하려 했다. 이혼합의서까지 작성했고 부모님과 아이의 의견도 물었는데 그들도 동의해 남편의 서명만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이때 나는 법을 얻었고 가족 사이에는 모두 인연 관계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나는 ‘진선인(眞·善·忍)’으로 자신을 요구하고 자신을 바꾸기 시작했으며 그를 배려했다. 내가 변하자 그도 변했고 우리는 거의 다투지 않았다. 우리 가정은 화목해졌고 그도 내가 대법을 수련하는 것을 지지했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중공) 박해가 발생한 후 그는 두려워하며 나에게 수련을 포기하라고 권했고 계란으로 바위를 칠 수 없다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사부님께서 나를 구해주시지 않았다면 어찌 우리집이 있었겠어요?! 진작 흩어졌을 거예요.” 나는 그가 두려워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박해를 받던 나날 동안 그는 수많은 파룬궁수련생의 가족들과 마찬가지로 온종일 마음을 졸이며 지냈고 상상하기 어려운 고통을 감당했다.
한번은 경찰이 가택수색을 하고 나를 납치했을 때 그는 서둘러 ‘전법륜(轉法輪)’을 품속에 넣어 보호했다. 내가 돌아오자 그가 나에게 건네주어 나는 매우 감동했다. 장쩌민을 고소하는 대세 속에서 우리 온 가족이 참여했다. 나는 실명으로 장쩌민을 고소했고 그와 아이들은 익명으로 장쩌민을 고발했다. 그는 또 매일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쳤고 때로는 사부님께 향을 올렸으며 시간이 되면 나에게 발정념하라고 일깨워주었다.
사존의 자비로운 제도에 감사드린다. 나와 남편에게 건강한 신체를 주셨고 우리에게 온전한 가정도 주셨다. 우리 가족은 드넓은 불은(佛恩) 속에 목욕하며 생활이 매우 행복하고 마음도 무척 즐겁다.
3. 내 뼈는 벽돌, 쇠망치보다 단단해
2000년 7월 나는 천안문에 가서 대법을 실증하다가 현(縣) 구류소에 감금됐다. 그날 밤 위(余)씨 경찰은 죄수들이 나를 심문하며 괴롭히는 것을 묵인했다. 내가 수련을 착실하게 하지 못해 사람 마음이 많고 두려운 마음이 무거웠기 때문에 오늘 밤 여기서 죽겠구나 싶어 당시 너무 무서워 계속 떨었다.
그들은 벽돌과 쇠망치를 가져왔다(옆방이 바로 남자 감방이었고 창밖에서 남자 감방 우두머리가 지휘했다). 먼저 한 사람이 침대 머리맡 이불 위에 앉아 내 양손을 꽉 잡고 하이힐을 신은 발로 내 가슴을 수십 차례 맹렬히 걷어찼다. 그런 다음 또 나를 짓눌러 넘어뜨려 바닥에 엎드리게 하고는 사람을 바꿔 거꾸로 목마를 타듯 내 뒷목에 올라타게 했으며, 다른 한 사람은 벽돌로 나를 내리쳤다(그녀는 자기 손이 다칠까 봐 벽돌 한쪽 끝을 수건으로 감쌌다). 나는 창밖에서 남자 감방 우두머리가 말하는 것을 들었다. “잘 겨냥해서 힘껏 쳐. 벽돌로 한 번 내리쳐서 요추를 끊어버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벽돌이 내 요추를 내리쳤는데 벽돌이 부러졌다. 남자 감방 우두머리가 말했다. “어떻게 된 거야? 사람도 벽돌도 바꿔!” 그들은 또 다른 사람으로 바꿨다. 남자 감방 우두머리가 또 말했다. “이번에는 빗나가면 안 돼. 한 번에 끝내!” 또 “쾅” 하는 소리가 났고 벽돌은 가운데에서 반듯하게 부러졌다. 이때 남자 죄수가 여자 죄수들에게 너무 멍청하다고 욕하며 또 사람을 바꾸라고 했다. 이번에 바꾼 사람은 마약 중독자였는데 뚱뚱하고 키가 컸다. 남자 죄수가 말했다. “이번엔 실수하면 안 돼. 신장을 겨냥해서 힘껏 쳐. 벽돌 한 번 내리쳐서 신장을 날려버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벽돌이 내려쳐졌고 벽돌은 또 가운데에서 반듯하게 부러졌다. 이때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창밖의 남자 죄수가 말했다. “이상하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됐다. 망치로 바꿔!” 그들은 다시 쇠망치로 바꿔 내 다리에서 요추와 등까지 한 차례 내리쳤다.
여기까지 쓰자 눈물이 내 두 눈을 흐리게 했다. 다행히 사존께서 보호해주셨다! 생각해보라. 사람의 뼈가 얼마나 단단할 수 있겠는가? 벽돌과 쇠망치의 타격을 견뎌낼 수 있겠는가? 위대하고 자비로운 사존의 보호가 아니었다면 나는 죽지 않았어도 불구가 됐을 것이다!
4. 자비심이 나오자 시련이 사라지다
어느 해인가 남편이 농장에 수십 무(畝, 1무는 약 200평)의 땅을 도급받아 해바라기를 심으려 하면서 나에게 와서 도와달라고 했다. 일을 시작한 지 닷새째 되던 날 내 오른팔이 아프고 저렸다. 나는 무심코 팔에게 말했다. “계속 아프면 너를 잘라버리겠다!”
결과적으로 사흘째 저녁 식사 후 나는 온몸에 경련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나는 남편이 나를 병원에 데려갈까 봐 그를 서둘러 다른 곳으로 보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 씨 집에 가서 빌린 물건을 갖다주고 와요.” 남편이 말했다. “너무 늦었어. 내일 돌려주지.” 내가 말했다. “지금 갖다 줘요. 내일 그 집에서 써야 해요. 가서 좀 더 이야기를 나누다 와요. 낮에는 시간이 없잖아요.”
남편이 나간 후 나는 침대에서 기어 나와 제1장 공법을 연마했다. 그러나 양손을 펼 수 없었고 경련이 일수록 점점 더 조여 왔는데 양다리는 꼬여서 마치 꽈배기처럼 됐고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나는 서둘러 입으로 서랍을 물어 당겨 열고 구급 심장약 병뚜껑을 깨물어 열어 두 알을 입에 넣었다. 갑자기 정신이 들었고 나는 사악이 목숨을 빼앗으러 왔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약을 뱉어내고 외쳤다. “사부님 저를 구해주세요!”
나는 몸을 옮겨 침대에 누워서 생각했다. ‘가고 남는 것은 사부님께서 결정하신다. 사부님께서 결정하시는 것이다!’ 나는 발정념을 하면서 안으로 찾았다. ‘계속 아프면 너를 잘라버리겠다!’ 이게 무슨 말인가! 선한 생각이 없으니 이건 수련인의 사유가 아니다. 나는 원하지 않는다. 나는 ‘진선인’을 수련하는 사람이므로 내 언행은 반드시 ‘진선인’에 부합해야만 한다.
내가 제대로 찾았기 때문에 이때 양손과 양다리에 감각이 돌아왔고 서서히 곧게 펼 수 있게 됐다. 나는 단번에 일어나 앉았다. 이때 남편도 돌아왔고 옆집 이웃도 놀러 왔다. 나는 그들에게 방금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전후로 20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내 변화는 너무나 컸다. 그들은 대법이 너무나 신기하다고 말했다!
5. 해바라기를 가득 실은 차 지붕에서 떨어진 이후 무사하다
가을이 되어 해바라기씨가 익었다. 남편은 30명 가까운 사람과 차량 네 대를 고용해 해바라기를 수확했다. 정오가 되자 남편은 내가 제대로 신경 쓰지 않아 해바라기를 깨끗하게 수확하지 못했다고 여기고 많은 사람 앞에서 나를 한바탕 욕했다. 나는 입으로는 참았지만 마음은 불편했다. ‘당신을 위해 일하지 않겠어! 집에 가서 쉴 거야.’
이때 마침 씨를 차에 가득 실었고 나는 해바라기 꽃판을 가득 실은 차 지붕으로 올라갔다. 차가 밭머리를 빠져나와 도로에서 방향을 틀 때 나는 갑자기 차 지붕에서 머리가 아래를 향한 채 떨어졌다. 나는 빠르게 돌아가는 바퀴를 보고 생각했다. ‘머리가 바퀴에 깔리면 안 돼.’ 내 머리는 도로에 무겁게 떨어졌고 바퀴와의 거리는 약 30cm 정도였다.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구해달라고 청했다. 나는 천천히 기어 일어났는데 내 머리가 마치 가슴속으로 박혀 들어간 것 같았고 세상이 빙빙 돌면서 도저히 똑바로 서 있을 수 없었다. 운전기사가 말했다. “큰형님(내 남편)에게 빨리 병원에 데려다주라고 부를게요.” 나는 손을 저어 나를 차에 부축해 태워서 집에 데려다 달라는 뜻을 전했다. 운전기사는 나를 침대까지 부축해 주었고 다시 남편을 불러왔다.
남편이 나에게 물었다. “병원에 갈래?” 내가 말했다. “필요 없어요. 당신은 밭에 가서 사람들을 챙기세요. 아무 일도 없어요!” 남편이 나간 후 나는 즉시 현의 수련생에게 전화를 걸어 나를 위해 발정념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나도 결가부좌를 하고 앉아 발정념을 했다. 다른 사람에게 지적받기 싫어하는 마음 때문에 이렇게 큰 번거로움을 불러왔으니 정말 아찔했다. 사부님의 보호가 아니었다면 결과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웠을 것이다.
저녁 식사 시간이 가까워졌을 때 나는 거의 다 나았다. 남편이 돌아왔을 때 나는 이미 저녁 식사를 차려 놓았다. 밤에 여러 사람이 나를 보러 와서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으라고 권했다. 운전기사 부부는 자신의 친척도 이와 같아서 허리를 다쳐 결국 하반신이 마비됐다고 했고, 또 누구누구의 언니도 그랬는데 결국 어떻게 됐다고 했다. 나는 대법제자이고 사부님께서 관여하시니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 날 나는 아무 일도 없었고 평소처럼 밭에 나가 일했다. 그들은 모두 대법이 너무나 신기하다고 말했다!
6. 나는 중생을 선하게 대하려 한다
남편의 부모님은 일찍 돌아가셨고 형제 둘만 있었다. 동서는 매우 억세고 남의 이익을 탐내며 사소한 것까지 따졌다. 내가 남편과 결혼한 후 동서는 우리에게 매우 가혹했고 나는 그녀에게 적지 않게 화를 당했다. 내가 첫아이를 임신했을 때 그녀는 남편의 코앞을 가리키며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퍼부었다. “다시는 식구 하나를 더 데려오지 마. 어떻게 처리할지는 네 마음대로 해! 네 형한테도 절대 알리지 말고!” 당시 나는 호적도 없었고 임시공으로 일하며 하루에 1위안 1자오를 벌었는데 동서는 우리집이 가난한 것을 싫어하며 자기 집에 폐를 끼칠까 봐 두려워했다.
그 후의 나날 동안 동서는 매일 찾아와 소란을 피웠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낙태를 했고 이 첫아이는 우리가 갖지 못했다. 일주일도 되지 않아 그녀는 또 나에게 출근하라고 재촉했다. 내가 출근하러 갔지만 사람들은 나를 받아주지 않았고 사람이 많아 감원했다고 했다. 이렇게 되자 나는 더욱 비참해졌다. 동서는 매일 와서 욕했고 뒤에서는 아주버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둘째 며느리는 너무 게을러. 집에서 아픈 척하면서 출근하지 않고 우리가 돈을 보내서 먹여 살려 주기를 기다리고 있어!” 동서는 아주버니를 부추겨 와서 나를 욕하게 했다. 아주버니가 와서 묻자 남편은 실정을 말하지 못하고 부부가 싸울까 봐 두려워서 (내가) 부주의해 유산했다고 말했다.
동서는 또 자주 우리 부부를 이간질해 싸우게 했고 나에 대한 헛소문을 내며 내 나쁜 말을 했다. 나는 동서와 다투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그녀를 미워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시어머니라면 그렇다고 쳐도 동서라는 사람이 왜 이럴까?’ 이후에 우리는 타지 농장으로 갔다. 10년 후 우리는 돌아왔고 나에게는 이미 두 딸이 있었다.
내가 법을 얻은 이후부터 나는 생각했다. ‘이것은 모두 인연 관계가 있는 것이며 이유 없이 생긴 일이 아니다.’ 대법은 내 선한 마음을 일깨워 주었고 심성도 승화되고 있었다.
나는 알게 됐다. 생생세세 윤회하고 전생하는 가운데 어쩌면 어느 생에서 우리는 많은 은혜와 원한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천천히 동서에 대한 원망심을 내려놓고 더 이상 따지지 않았으며 마음속으로부터 그녀에게 잘해주기 시작해, 명절 때마다 좋은 선물을 사서 아이들 편으로 보내주었다.
어느 해 설, 나는 물건을 사서 남편과 딸들에게 동서를 보러 가라고 했다. 남편이 말했다. “그 여자가 죽지 않는 한 평생 그 집에 안 가! 형이 보고 싶으면 직장으로 찾아갈 거야.” 나는 그에게 말했다. “보통 사람들도 원수는 맺기보다 푸는 것이 좋다고 하잖아요. 나는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이고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이타적이고 사심이 없어야 하며 일을 할 때 먼저 다른 사람을 생각하라고 하셨어요. 사실 형님도 쉽지 않으니 우리는 형님의 좋은 점을 생각해요.” 그는 무슨 말을 해도 가지 않았고 딸들도 가지 못하게 했다. 나는 억지로 두 딸을 달래 나와 함께 물건을 들고 동서 아파트 아래까지 데려다주고는 두 딸에게 위층으로 올라가게 했다.
결과적으로 딸들이 돌아와서 이렇게 말했다. “큰아버지는 아주 좋아하셨는데 큰어머니는 얼굴을 굳힌 채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앞으로 다시는 안 갈 거예요.” 큰딸은 또 말했다. “엄마, 알고 있어요? 내가 세 살 때 그 집에 한 번 갔었는데 큰어머니가 우리를 쫓아내던 그 장면, 큰어머니가 우리를 어떻게 괴롭혔는지 제가 떠올릴 수 있어요. 그 딸이 결혼할 때 우리가 준 돈이 적다고 어떻게 우리를 욕했는지도 기억나요. 큰어머니가 큰아버지를 부추겨 아빠를 어떻게 때리게 했는지도 기억나고요. 엄마, 다시는 이런 일을 만들지 마세요. 그 집에 아무리 많이 보내도 적다고 할 거고 만족시키지 못해요!” 부녀 셋은 아무도 다시 가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내가 대법을 수련하게 됐으니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선하게 대해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한번은 길에서 동서를 만났는데 나는 웃으며 다가가 한마디 불렀다. “형님!” 동서는 즉시 큰 소리로 외쳤다. “너 이 반당분자야!” 내가 말했다. “형님도 모임에 나가잖아요?”(그녀는 기독교를 믿는다) 말을 마치고 나는 떠났다.
집에 돌아온 후 나는 생각했다. ‘내가 아직도 그녀를 원망하는 마음이 있는 건 아닐까? 선연이든 악연이든 나와 그녀가 동서지간이 된 것도 인연이다. 그녀 역시 법을 위해 온 생명인데 다만 너무 깊이 미혹돼 명예와 이익을 중시할 뿐이다. 그녀가 매우 억센 것처럼 보여도 마음속으로는 괴롭다. 병든 몸을 이끌고 경을 외우고 신에게 절하는 것도 해탈을 구하려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 생각이 들자 나는 마음이 매우 아팠다. ‘나는 그녀를 구해야 한다. 반드시 구해야 한다!’
이틀 후 나는 동서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는 아주버니가 받았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아주버니와 형님을 모시고 와서 식사하고 싶어요. 형님께 오실 건지 물어봐 주세요.” 나는 전화기 너머에서 그녀가 흔쾌히 대답하는 것을 들었고 내일 오겠다고 했다.
다음 날 그들이 왔고 나는 동서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었다.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면서 천안문 분신자살 조작 사건부터 대법이 전 세계 100여 개 국가와 지역에 널리 전해진 것까지 이야기했고, 장자석(藏字石: 중국공산당이 멸망한다고 기록된 고대의 예언석)부터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 대세까지 이야기했다. 대법제자가 박해받는 것과 예수 및 그의 제자들이 고난을 겪은 것의 유사한 점을 이야기했고, 살아있는 대법제자 장기적출과 박해자에게 업보가 나타난 사례를 이야기하자 그들은 매우 진지하게 들었다.
우리는 오후 내내 이야기를 나눴고 동서는 매우 기뻐했다. 마지막에 두 사람 모두 ‘삼퇴’를 하고 밝은 미래를 선택했다. 나는 처음으로 동서가 웃는 얼굴로 나와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다. 사부님께서 자비로우셔서 그들을 구해주셨고 우리의 원한도 맺혔던 것을 선해(善解)해주셨다.
한번은 채소 시장에 가서 양배추와 당근을 조금 사려 했다. 내가 양배추를 골라 놓자 여주인이 저울에 올려 무게를 쟀다. 옆 가게는 내가 아는 곳으로 그곳에서도 양배추와 당근을 팔고 있었기에 나는 또 그 집 당근을 골랐다. 양배추를 파는 여주인은 내가 다른 집 당근을 고르는 것을 보고 매우 화가 나서 소리쳤다. “저울 보러 와요!” 나는 당근을 고르면서 말했다. “안 볼게요.” 그녀가 가져오면 된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사납게 달려와 쪼그리고 앉아 있던 나를 발로 걷어차 넘어뜨려 바닥에 엎어졌다. 내가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그녀가 또 발로 차려 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막았다. 내가 당근을 고르던 이 가게 주인은 나무 막대기를 들고 그녀를 때리려 했지만 역시 다른 사람들이 막아섰다. 내리던 눈이 녹고 있었기 때문에 내 양손과 온몸이 진흙투성이가 되어 매우 난처해졌다.
나는 심성을 지키며 평온하게 그녀에게 물었다. “왜 저를 걷어찼어요?” 여자 주인은 그곳에 앉아 두 눈을 부릅뜨고 나를 바라보며 거칠게 숨만 몰아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옆에 있던 사람이 나에게 알려주었다. “당신이 저울을 보지 않으니까 그녀는 당신이 안 사고 (당근을 파는) 저 집 것만 사려는 줄 알았나 봐요. 며칠 전에 두 집이 손님을 놓고 막 한바탕 싸웠거든요. 앙심을 품고 있었는데 오늘 당신이 또 딱 걸린 거예요.”
아, 지금 경제가 이렇게 나쁜 상황에서 사장이 장사하기가 얼마나 쉽지 않겠는가! 도덕이 미끄러져 내려가는 오늘날 어떤 상인들은 저울을 지켜보고 있어도 근수를 속이는데 하물며 내가 저울을 안 보니까 그녀가 이상하게 여긴 것이다. 대법이 나를 변화시켰고 대법의 법리를 깨달으면서 사상 경지가 승화됐다. 마음의 용량이 확대됐으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 더욱 깊은 이해를 갖게 됐다. 중생이 명예, 이익, 정에 미혹돼 무지 속에서 업을 짓고 남을 해치고 자신을 해치는 것을 보니 얼마나 가련한가! 나는 중생을 선하게 대하고 파룬따파의 아름다움을 그들에게 전파하려 한다!
7. 정념정행으로 중생을 구하다
파룬따파는 중국에서 가장 잔혹한 탄압을 당했다. 사부님께서는 대법제자들에게 진상을 똑똑히 알려 거짓말에 속은 세인을 구하라고 하셨다. 나와 수련생은 협력해 도시 주변과 외진 지역에 대법 진상 자료를 배포하고 대법 현수막을 걸고 진상 스티커를 붙여 중생들이 파룬따파는 좋다는 것을 알게 했다.
한번은 수련생이 나와 상의하며 아주 먼 곳에 가서 사람을 구하고 싶다고 했다. 그곳에는 대법제자가 적었고 나는 가기로 동의했다. 수련생들은 우리 둘을 위해 자료와 현수막, 스티커를 준비해주었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아침 6시에 출발해 오후 5시에 목적지에 도착했고 간단히 저녁 식사를 마친 후 행동을 시작했다.
나는 두 자루의 큰 자료 꾸러미(1천여 부의 자료, 200여 장의 현수막과 스티커)를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묵묵히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사존께서 제자를 가지(加持)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오늘 밤 제자의 발이 땅에 닿지 않게(빠르다는 뜻) 해주셔서 날이 밝기 전에 반드시 다 마치게 해주세요. 내일 이 일대는 장날이니 이곳의 더 많은 중생이 진상을 보고 구원받게 해주세요.’
그날 밤 우리 둘은 도로 양쪽을 따라 3개 향(鄕), 학교 및 민가에 배포했고 새벽 5시가 되어서야 마침 딱 끝냈다. 발이 정말 땅에 닿지 않은 것처럼 떠서 걸었으며 꼬박 11시간을 달렸다. 비록 북방의 1월은 매우 춥지만 우리 머리에서는 열기가 피어오르고 마음은 따뜻했다. 달빛을 빌려 앙상한 나뭇가지에 노란 바탕에 붉은 글씨로 된 진상 현수막이 펄럭이는 것을 보니 매우 흐뭇했다(나중에 들으니 그때 사악에게 준 충격이 매우 커서 사악이 온 현의 경찰력을 동원해 불심검문을 했다고 한다).
한번은 나와 수련생이 외진 산간 지역에 가서 사람을 구했다. 우리는 오후 4시에 출발했는데 겨울에는 날이 일찍 어두워져 저녁 7시가 됐는데도 마을을 찾지 못하고 길을 잃었다. 산속에 갈림길이 많고 곳곳에 트랙터 길과 무덤이 있어 어디가 어디인지 분간할 수 없었으며 계속 산속을 빙빙 돌았다.
엄동설한의 추위에 나는 얼어서 몸이 떨렸고 입김이 눈썹에 닿아 고드름으로 얼어붙었다. 이때 내 사람 마음이 나와서 수련생에게 말했다. “우리 돌아가요. 낮에 미리 와서 잘 살펴보고 밤에 다시 와요.” 수련생이 말했다. “조금만 더 찾아봐요. 기왕 왔으니 헛걸음할 수는 없잖아요. 사부님께 청해봐요.”
말이 끝나자마자 수련생이 말했다. “들어봐요. 트랙터 소리 같아요!” 다시 들어보니 점점 가까워졌고 잠시 후 트랙터 불빛이 보였다. 산속 사람이 도시에 들어가 물건을 팔고 돌아오는 것이었다. 수련생이 말했다. “사부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신 거예요. 트랙터를 따라가면 반드시 마을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우리는 트랙터를 따라 산 하나를 넘었고 과연 큰 마을이 나타났다. 우리는 매우 감격했고 사존께서 제자에게 길을 안내해주신 것에 감사드렸다. 일을 마친 후 우리는 새벽에 순조롭게 집에 돌아왔다.
또 한번은 수련생이 자전거를 타고 우리 둘이 주변에 가서 사람을 구했다. 나는 자료를 배포하고 수련생은 현수막을 걸었다. 우리가 절반 이상 했을 때 경찰이 나무에 걸린 현수막을 발견했다. 그들은 강한 불빛의 손전등을 들고 나무를 비추며 찾으며 우리 쪽으로 왔다. 나는 수련생에게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수련생이 말했다. “더 이상 앞으로 갈 수 없어요. 되돌아가요. 제 자전거에 타요. 제가 자전거를 태우고 경찰을 향해 돌진할게요. 우리는 사부님이 계시니 두렵지 않아요.”
우리는 경찰 곁을 당당하게 지나갔다. 경찰은 손전등의 강한 불빛으로 우리 자전거가 멀어지는 것을 계속 비추었다. 우리는 다른 도로로 방향을 틀어 다 마친 후 안전하게 돌아왔다. 나는 모두 사부님께서 우리를 보호해주고 계셨음을 알았다.
8. 가정 시련에서 벗어나 다시 정진하다
2021년 남편이 세상을 떠났고 딸이 이혼하면서 나를 한동안 침체되게 했다. 가족을 잃은 슬픔에 빠져 온종일 눈물을 흘렸다. 책도 보고 연공도 했지만 그저 정(情)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고 자신이 대법제자라는 것을 완전히 잊었다. 사부님의 법이 나를 일깨워 주어 나는 기운을 내서 이 정을 철저히 닦아 없애려 한다.
남편은 생전에 다른 사람에게 풍수를 봐주고 부적을 그리며 귀신을 쫓고 병을 치료해주었다. 그는 ‘전법륜’ 및 다른 대법서적을 두 번 읽었다. 그가 대법을 수련하기로 결정하자 그 물건들을 모두 부수고 태워버렸다. 그러나 연공 동작을 아직 다 배우지도 전에 병원 검사에서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그도 별로 아파하지 않았고 반년 후 평온하게 세상을 떠났다. 나는 생각했다. ‘그도 법을 얻었다고 할 수 있으니 사부님의 안배가 있을 것이며 내가 신경 쓸 일이 아니다. 딸의 이혼도 인연이 다해 흩어진 것이며 역시 내가 생각할 일이 아니다.’
정법은 이미 막바지에 이르렀는데 나에게는 아직 제거하지 못한 집착심이 많다. 나는 법공부를 많이 하고 발정념을 많이 하며 수련생들과 비학비수(比學比修)하여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사존께 절을 올립니다!
적절하지 못한 부분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로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6년 8월 1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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