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장쑤성 대법제자
[명혜망] 먼저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제게 수련의 기회와 인연을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뒤처진 대법제자로 비록 오성이 떨어지지만 사부님께서는 한 번도 저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늘 다양한 방식으로 저를 일깨우고 격려해주셨습니다. 지난 십여 년 동안 저는 사람의 마음속에서 줄곧 멍하게 지내며 착실한 수련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2023년 3월이 돼서야 제 마음가짐은 비로소 진정으로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때 저는 전법륜(轉法輪)을 외우며 법공부하고 있었는데 ‘일거사득’을 외울 때 반복해서 읽고 외우는 과정에서 갑자기 마음속 깊은 곳에서 활짝 깨달은 웃음이 터져 나왔고 얼굴 전체에 즐거움과 가벼움이 넘쳐흘렀습니다. 저는 갑자기 확 트인 것처럼 이전에 겪었던 그런 갈등과 번거로움 억울함의 원인을 알게 됐고 진정으로 알게 됐습니다(제가 있는 층차에서). 그때부터 제 마음가짐은 평온하고 온화하게 변했고 어려움에 부딪혀도 두려워하는 마음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이러한 마음가짐은 우리집의 이 작은 꽃이 다시 피어나 홀로 만개할 수 있게 했습니다. 아래에 우리집 이 작은 꽃의 우여곡절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꽃봉오리가 맺히자 사악에게 짓밟히다
1999년 7월 대법이 박해받은 이후 대법제자들은 모두 자신을 잊고 진상을 알리며 중생구도의 거대한 흐름 속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때 중국 진상 자료는 정말 온 하늘과 땅을 덮을 듯이 배포됐습니다. 대법제자가 가는 곳마다 마을마다 단비를 뿌렸고 집집마다 진상을 전했습니다.
대략 2008년 무렵 한 번 진상 자료를 배포하는 과정에서 저는 자료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수련생에게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정말로 기술 수련생이 제게 컴퓨터를 배워 자료를 만들 생각이 없는지 물었습니다. 저는 뜻밖에 기뻐서 ‘정말 컴퓨터를 배울 수 있다니 너무 좋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돈이 없어 컴퓨터를 못 산다고 하자 기술 수련생은 “돈은 먼저 걱정하지 마세요. 중고 컴퓨터는 얼마 안 하니 우선 쓰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기술 수련생이 중고 데스크톱 컴퓨터를 사다 주었고 저는 먼저 켜고 끄는 법과 마우스 클릭, 복사, 붙여넣기를 배웠으며 마우스를 안정적으로 누를 수 있게 됐습니다. 이어서 기술 수련생이 다시 프린터를 사다 주었고 저는 서서히 자료 만드는 법을 배웠습니다. 진상 자료를 만들 수 있게 되니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그날 오후 저는 낱장 몇 장을 인쇄해 잘 접어서 가방에 넣고는 기쁜 마음으로 두 수련생을 만나러 갔는데 우리는 오후에 나가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거리에서 우리는 매우 순조롭게 알렸고 듣기 싫어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다른 거리로 갔을 때 갑자기 경찰차 한 대가 우리 앞에 다가왔고 경찰차에서 경찰 몇 명이 아주 빠르게 내려 저와 수련생을 경찰차 안으로 끌어당겼습니다. 알고 보니 우리가 악의적인 신고를 당한 것이었습니다. 두 노년 수련생은 차 안으로 끌려 들어갔습니다. 저는 결사적으로 저항하면서 그때 ‘만약 수련생이 지나가다 보면 좋겠다. 그러면 내가 붙잡힌 걸 알고 우리집에 가서 프린터를 가져갈 텐데’라고 생각했습니다. 풀려난 이후 저는 그날 정말로 제가 붙잡히는 걸 본 수련생이 있었고 정말로 수련생에게 연락해 우리집에 가서 프린터를 가져갔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사존께 감사드립니다.
우리집의 이 작은 꽃은 막 꽃봉오리가 맺히자마자 사악에게 짓밟혔습니다. 여러 해가 지난 이후 수련생과 이 일을 교류하고 나서야 제 환희심이 사악에게 틈을 보였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스스로 자료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에 자료를 갖고 사람을 구하는 게 너무 기뻤고 과시심까지 섞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부터 저는 7~8년을 뒤처졌고 다시 돌아와서도 법공부를 중시하지 않았으며 형식적으로 법공부를 하면서 마치 임무를 완수하는 것처럼 했고 더욱이 안으로 찾아 자신을 착실히 수련할 줄 몰랐습니다.
공동으로 협력해 곳곳에 꽃을 피우다
박해받고 나온 이후 저는 줄곧 A 수련생과 협력해 자료를 만들었습니다. 그때 A는 밖에서 집을 빌려 자료를 만들었고 B 수련생과 C 수련생도 참여했습니다. 그러나 협력하는 과정에서 몇 가지 문제가 나타났습니다. A는 한가한 시간이 많고 일을 처리하는 능력이 매우 강해 혼자서 여러 명 몫을 해냈고 여러 대의 프린터를 동시에 켜놓아도 모두 감당할 수 있어 일을 더 많이 했습니다. 이렇게 되니 B와 C는 들어가서 할 일이 적어지거나 거의 없어져서 기분이 나빴습니다. 당시 저는 할 일이 있으면 하고 없으면 돌아가는 식으로 행동했습니다. 저는 그 환경도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작은 차고 안이었기 때문입니다. 차고는 방음도 되지 않았고 옆집에서 늘 차고를 드나드는 주민이 있어 차를 밀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면 긴장했으며 프린터 소리도 작지 않았습니다. 저는 줄곧 이런 두려운 마음을 품고 억지로 버텼을 뿐 이를 부정하거나 발정념으로 배제할 줄도 몰랐고 여전히 마음을 수련할 줄 몰랐습니다.
B와 C의 의견이 A에게 전달되자 A는 “당신들은 진상을 잘 알리니 진상을 많이 알리세요”라고 말했습니다. B와 C는 화가 나서 그만두었고 A의 일하는 마음이 강해 마치 그녀들의 수련을 배치하는 것 같다고 느껴 임대 주택 열쇠를 반납하고 이 작은 정체에서 물러났습니다. 과정 중에 이 갈등을 조율하고 교류하러 온 수련생도 있었지만 역시 잘 조율되지 않았고 B와 C는 돌아가 각자 자료점을 세웠습니다. 우리 각자의 집착은 모두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이 맞다’는 것으로 덮여버렸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자료점은 집주인에게 발각됐고 더는 임대하지 못했습니다.
일이 있은 지 여러 해가 지나서야 저는 이 자료점이 B가 기획해 임대하자고 제안한 것이고 그녀가 C를 찾아 공동으로 참여하게 했으며 A가 구체적으로 처리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어쩐지 그녀들이 A에 대해 그런 생각을 품었던 것입니다. 이후 A는 다른 곳을 임대해 자료를 만들었습니다. 저 외에도 다른 F 수련생을 불러 참여하게 했습니다. 우리 세 사람은 협력이 아주 잘 됐습니다. A가 주로 하고 도움이 필요할 때는 우리집에 와서 한마디 알려주었으며 도움이 필요 없을 때는 제가 다른 수련생들과 나가서 진상을 알렸습니다. 나중에 F가 자녀의 학업을 돌보면서 친척 집을 빌렸습니다. 우리의 자료점은 F의 임대 주택으로 옮겨갔고 줄곧 F의 딸이 대학에 합격할 때까지 있다가 이사 나왔습니다.
사실 A가 세운 자료점은 우리 지역에서 주요 역할을 했는데 인력, 물력, 재력에서 A가 바친 것이 가장 많았으며 특히 재력과 물력에서 기본적으로 모두 A가 부담했습니다. 그때 밖에서 진상을 알리는 수련생이 많아 필요한 자료도 많았습니다. 만약 A가 온 힘을 다해 헌신하지 않았다면 외부 수련생들의 수요를 정말 만족시킬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다만 그때 우리는 모두 착실히 수련할 줄을 잘 몰라서 일을 하는 것을 수련으로 여겼습니다.
필요에 따라 이뤄져 작은 꽃이 다시 피어나다
생계를 위해 수련생 아주머니가 제게 일자리 하나를 소개해 주셨는데 아주 작은 규모의 교육 기관(기능 교육)이었고 저를 포함해 직원이 두 명뿐이었습니다. 나중에는 저 혼자 남았습니다. 사장이 수련을 하는 둥 마는 둥 하는 대법 수련생 L이었기 때문에 제 나이가 많다고(당시 40대였음)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L 수련생에게 매우 감사했는데 제 생활 문제를 해결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사무 기능까지 배우게 해 나중에 피어날 작은 꽃을 위해 약간의 기초를 닦아주었습니다. 과정 중에 사부님께서 제게 많은 지혜를 주셨기에 저는 이 업무를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기본 기능은 그래도 연습해야 했고 키보드를 보지 않고 치는 것만 일주일을 연습했지만 여전히 능숙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오후 조로 출근해 오후 1시 30분부터 밤 9시까지 일했기에 시간상으로 제 스스로 세 가지 일을 할 시간도 있었습니다.
어느 날 수련생 언니가 우리집에 와서 작은 꽃을 피울 수 있는지 물었는데 모두 한 자료점에서 자료를 가져가는 게 그다지 안전하지 않고 특히 탁상달력은 때때로 받지 못하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언니는 “기계와 소모품을 살 돈은 우리 법공부 팀 수련생들이 모두 내려고 하는데 단지 할 사람이 없어 걱정이에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승낙했습니다. 언니는 웃으며 “올해 우리 팀에 필요한 탁상달력은 당신만 믿을게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저도 처음 하는 거라 또 배워야 해요”라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저는 천지행 포럼에 들어가 탁상달력을 만들려면 어떤 기종을 사야 하는지 찾아보았고 탁상달력 제작 매뉴얼을 다운로드했습니다. 매뉴얼은 아주 상세하게 편집돼 있었고 기술 수련생이 생각한 것도 매우 치밀했습니다. 탁상달력을 만드는 기계, 설비, 몇 그램짜리 종이를 살지, 인쇄할 때 기종별로 어떻게 설정하는지, 다 인쇄한 후 어떻게 구멍을 뚫고 링을 끼우며 링을 누르는지 모두 알아볼 수 있었고 간단하고 알기 쉬웠습니다.
사야 할 것을 모두 사서 제가 출근하는 곳에 두었습니다. 저는 이 물건들을 어떻게 집에 가져갈지 걱정됐는데 저는 자전거를 탈 줄 몰랐기 때문입니다. 밤에 꿈을 꾸었는데 L이 제 앞에 나타나 자료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알았습니다. 사부님께서 L을 안배해 저를 돕게 하셨다는 것을요. 다음 날 정말 꿈에서처럼 똑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저는 기뻐하며 L에게 “얼른 이것들을 저한테 실어다 주세요, 우리 둘이 같이 해요”라고 말했습니다. 이후 저와 L은 동시에 사무실을 비우거나 전화를 안 받을 수 없게 됐는데 누군가 기능 교육 관련 사항을 상담해야 했고 자료를 만들 때는 휴대폰을 곁에 둘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상의 끝에 역시 저 혼자 하는 게 적합하다고 정했습니다.
탁상달력을 다 만든 후 이어서 진상 대련이 필요했습니다. 당시 대련을 쓰던 수련생이 박해받아 쓸 사람이 없었습니다. 저는 또 천지행에서 대련을 인쇄하는 매뉴얼을 찾았는데 이것은 포토샵 소프트웨어를 결합해 잘 편집해야 인쇄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금박이 있는 새빨간 종이를 사서 제 스스로 필요한 크기에 맞게 잘라야 기계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비록 양은 많지 않았지만 당시의 급한 불은 껐습니다.
여기서 천지행 포럼 기술 수련생이 편집한 매뉴얼에 대단히 감사드리는데 우리 같은 자료점 초보들이 사람을 구하는 많은 항목을 배울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우리집의 이 작은 꽃은 사존의 보살핌 아래 줄곧 평온하게 5년을 지나왔습니다. 사존의 일깨움 아래 가정 원인으로(당시 가족이 모두 외지에 있었음) 저는 본 지역을 떠나야 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저를 다른 환경에 안배해 심성을 수련하게 하셨다는 것을 알았는데 저에게는 아주 깊이 숨겨진 많은 집착심이 있었고 그런 환경이 아니면 드러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려움에 맞서 제때 꽃을 피우다
3년 뒤 섣달에 저는 고향으로 돌아왔고 우리 온 가족이 모두 외지에서 돌아왔습니다. 집에 온 지 한 달도 안 돼 이 지역의 한 자료점, 그것도 자료 종류가 비교적 온전한 한 자료점이 사악에게 파괴돼 A를 포함한 두 수련생이 납치돼 가택수색을 당하며 손실이 참혹했습니다. 한동안 자료가 부족했습니다. 제가 알고 나서 마음이 너무 괴로웠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사부님, 제자가 이 부분을 메우고 싶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어서 수련생이 저를 찾아와 물었습니다. “진상 지폐를 인쇄할 수 있나요?” 제가 원래 있던 법공부 팀 조율 수련생은 “당신이 돌아왔으니 이 주간지를 좀 도와서 해결해 줄 수 있는지 봐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가능해요, 시간을 좀 주세요, 설비를 사야 해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수련생의 필요가 바로 제가 해야 할 일이고 또한 사부님의 안배라고 깨달았습니다.
원래 있던 그 기종은 이미 너무 느려져서 수리점에 가져가도 고치지 못해 도태시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천지행에 들어가 진상 지폐 인쇄에 적합한 기종이 있는지 찾아보았습니다.(신권 지폐가 나온 후 기존 캐논 프린터는 맞지 않았음) 정말 찾았습니다. 서둘러 중고로 하나 샀습니다. 사 오고 나서 재빨리 안료 잉크로 바꿔야 했는데 어떻게 잉크를 바꿀까요? 천지행에 들어가 찾아보니 잉크를 교체하는 매뉴얼을 찾았습니다. 보니 기계 껍데기도 뜯어야 했는데 어떡하죠? 뜯을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안 돼, 안 돼도 되게 해야 해.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저는 드라이버를 찾아 드라이버를 쥔 손을 약간 떨면서 긴장했는데 기계를 망가뜨릴까 봐 두려웠습니다. 무리해서 억지로 조심조심 나사를 풀고 한 걸음 한 걸음 매뉴얼대로 따라 했습니다. 마침내 잉크를 다 교체했습니다. 잉크를 다 바꾸고 기계를 켰는데 안 됐고 기계의 두 등에 불이 깜빡였습니다. 어찌 된 일일까요? 어쩔 수 없이 저는 그곳에 앉아 전체 과정을 회상해 보았지만 아무 문제도 발견하지 못했고 영문도 몰랐습니다. 제가 사부님의 법상을 바라보니 사부님께서 저를 바라보시며 얼굴에 상서로움이 가득하고 미소를 지으시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제게 조급해하지 말라며 큰 문제가 아니라고 격려해 주심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수리점에 가져가 검사해 보니 알고 보니 제가 기계를 뜯는 과정에서 손길이 좀 세서 기계 왼쪽의 케이블 하나를 건드려 떨어뜨린 것이었고 수리공이 케이블을 제자리에 옮겨놓자 다 됐습니다. 드디어 진상 지폐를 인쇄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어서 진상 호신부도 제가 배워서 만들었습니다. 진상 탁상달력도 철에 맞춰 만들었습니다. 서서히 기계 설비가 추가된 것도 많아졌습니다. 인쇄량이 늘어남에 따라 프린터 급지 롤러의 마모도 심해져 마지막에는 종이가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죠? 수리점에 가져갈까요? 아니요, 역시 천지행에 들어가자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스스로 간단한 보수 기술을 좀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매뉴얼을 찾아 먼저 매뉴얼을 분명히 보고 이해한 뒤 제가 다시 손을 댔습니다. 처음에는 매뉴얼에 따라 급지 롤러와 분리 롤러를 모두 뜯어내 전부 갈아 끼웠고 내친김에 폐잉크통도 뜯어내 폐잉크 패드를 꺼내 깨끗이 씻어 말린 뒤 다시 집어넣었는데 부품을 사는 데 겨우 20위안 남짓 들었습니다. 나중에 포럼 수련생이 급지 롤러를 뜯지 않고 직접 급지 롤러 고무만 갈면 된다고 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대로 따라 하니 아주 좋고 간단했으며 돈도 아끼고 힘도 아꼈습니다.
또 돌아온 이후 저는 줄곧 노트북 컴퓨터 시스템을 다시 깔고 싶었습니다. 데스크톱 컴퓨터도 한 대도 있었는데 모두 윈도우7 시스템이었습니다. 저는 노트북 컴퓨터를 기술 수련생에게 부탁해 ‘깨끗한 시스템’을 깔려 했습니다. 여러 번 컴퓨터를 들고 수련생 집에 갔지만 모두 문전박대를 당했습니다. 마음속으로 그만두고 돌아가 스스로 배우자고 생각했습니다. 스스로 배우면 수련생에게 깔아줄 수도 있으니까요. 지금 생각하면 사실 이 ‘문전박대’도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나중에 그 기술 수련생이 깔아주는 게 ‘깨끗한 시스템’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고 이것이 제가 ‘깨끗한 시스템’ 설치를 배우고 싶은 마음을 더욱 자극했습니다. 기술을 배우려 하면 저는 천지행 포럼이 떠올랐는데 거기는 정말 기술의 바다여서 배우고 싶은 것은 당신이 배우고자 하기만 하면 다 있었습니다.
그때 외지에서 돌아와 제 마음가짐을 조정해야 했고 대량으로 법공부도 했으며 사부님께서도 저를 도와주셨기에 무엇을 배우든 저는 매우 순조롭다고 느꼈습니다. 천지행 포럼에서 ‘깨끗한 시스템’ 설치와 관련된 매뉴얼을 다운로드한 후 어떤 것은 인쇄해서 천천히 봐야 했습니다. 열흘 남짓한 자투리 시간을 들여 마침내 시범 설치에 성공하니 마음속으로 무척 기뻤습니다. 또 제때 수련생 언니의 컴퓨터에 ‘깨끗한 시스템’을 다시 깔아주었는데 역시 시범 설치에 성공했습니다. 기술 포럼 수련생의 헌신에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이어서 저는 또 제 설비의 특징에 따라 진상 TF 카드 제작을 선택해 배웠는데 그것도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고 성공했습니다. 당연히 말하기는 쉬워도 진정으로 배울 때는 역시 문제 하나하나를 해결해 나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사부님의 안배 속에서, 도움 속에서 지혜를 주셨기에 비로소 배워 이룰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저는 자료점에 대한 제 요구를 말하고 싶습니다. 안전 제일로 절대 휴대폰을 가지고 자료점 수련생 집에 가면 안 되고 차를 수련생 집 문 앞에 세워두면 안 되며 단선 연락을 해야 합니다. 아울러 자료를 만드는 수련생은 법공부를 많이 하고 수시로 심성을 수련하며 자기가 하는 항목을 엄숙하게 대해야 합니다.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에게 달렸으므로 당신은 이런 소원만 있으면 된다.’(전법륜) 확실히 이렇습니다. 저는 그저 자료를 만들고 싶다는 소원이 있었을 뿐인데 사부님께서는 제 소원을 이루어주셨습니다. 저는 그저 자료점이 사악의 박해 때문에 멈춰서 중생구도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에 어려움을 무릅쓰고 나아가려 했고 사부님께서는 이 사람 구하는 항목을 제게 맡겨주셨습니다. 저는 그저 각 항목의 기술을 배우고 싶은 마음만 있었는데 사부님께서는 제가 배워 이루게 하셨습니다. 모든 것은 모두 사부님께서 하신 것이고 저는 단지 손을 좀 움직이고 시간을 조금 들였을 뿐이며 사부님께서 제게 지혜를 내려주신 것입니다. 사부님께서 저를 “끌어올려서 더 앞으로 보내”(전법륜) 주셔서 정법 노정을 따라잡게 하신 것입니다.
저는 늘 제가 이제 막 착실한 수련을 배웠다고 느끼는데 정법 노정은 이미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제가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속에 더욱 법공부를 많이 하고 법공부를 잘하며 사람을 많이 구해 제 사명을 완수하기를 얼마나 바라는지 모릅니다. 한 송이 작은 꽃은 평범하고 담담한 중에도 우여곡절이 있었고 동시에 제 수련 과정을 투영해 주었으며 그것은 단지 제 수련의 한 축소판일 뿐입니다. 제자는 사존께 머리 조아려 감사드립니다! 사존의 자비로운 제도에 감사드립니다!
층차가 제한적이니 적절하지 못한 부분은 자비롭게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허스(合十)
원문발표: 2026년 4월 1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4/11/508354.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4/11/508354.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