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1999년 ‘7·20’ 이전에 법을 얻은 대법제자입니다. 수련하는 도중에 미망에 빠진 적이 있는데, 그때는 법공부가 깊지 못하고 심성을 지키지 못해 늘 남편과 다투었으며 대법에 먹칠할까 봐 두려워 수련을 그만두었습니다. 하지만 사부님께서는 못난 제자를 줄곧 포기하지 않고 이끌어주셨기에 저는 마침내 다시 사부님을 도와 사람을 구원하는 정법수련의 길로 돌아왔습니다. 아래에 제가 도시에 와서 가정부로 일하며 겪은 몇 가지 일을 사부님께 보고드리고 수련생들과 교류하고자 합니다.
다시 수련하다
제가 대법 수련을 떠난 후 여러 사람이 저를 찾아와 다시 수련하기를 권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때가 무르익지 않았는지 저는 줄곧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한번은 저와 함께 파룬궁을 수련했던 수련생 두 명이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1999년 ‘7·20’ 당시 중국공산당(중공)과 장쩌민(江澤民)이라는 대악마가 파룬궁을 미친 듯이 탄압하자 두려움 때문에 기독교로 개종했습니다. 그들은 저를 찾아와 예수님을 믿으라고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예전에 아주 정진하던 파룬궁수련생이었고 집을 법공부 장소로 제공하기도 했으면서 어떻게 사부님의 설법을 다 잊으셨나요? 예수님은 2천여 년 전의 신이라 오늘날의 사람을 관할할 수 없습니다. 사부님께서 ‘전법륜(轉法輪)’에서 ‘내가 만약 당신을 제도하지 못한다면, 누구도 당신을 제도하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제가 잠시 파룬궁 수련을 중단했지만 앞으로 꼭 다시 연마할 것입니다.”
그 기간에 저는 연공은 하지 않았지만 누군가 파룬궁을 모함하는 말을 하면 그들에게 해명하거나 진상을 알렸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줄곧 파룬궁이 가장 좋고 가장 바르다고 생각했으며, 조만간 다시 파룬궁을 수련할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제가 다시 수련으로 돌아오고 싶어 하는 마음을 보시고 한 노년 수련생을 찾도록 안배해주셨습니다.
저는 2019년에 도시에 와서 가정부 일을 하게 됐습니다. 하루는 홀로 사시는 노년 수련생 댁에 갔는데, 문을 들어서자 그분이 막 연공을 마쳤다고 하셨습니다. 무슨 공법을 연마하시냐고 여쭈니 파룬궁이라고 하셨습니다. 당시 저는 무척 감격스러워 “저도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인데 오랫동안 연마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곳에 오기 전에 저는 여러 집을 다녔습니다. 날씨가 무척 더운 2019년 8월, 우리 집에서 75km 떨어진 도시에 매일 차를 타고 와서 캐리어를 끌고 동서남북을 헤매며 일자리를 찾았습니다. 상대방이 저를 쓰지 않거나 제가 그 집에서 일하기 싫어 10여 일을 오가며 뛰어다녔습니다. 그러나 이 집에 와서 그분이 파룬궁을 연마한다는 말을 듣고는 즉시 여기서 일하겠다고 답했습니다.
사부님과 대법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다시 천고에 만나기 어려운 우주 대법 속에 녹아들어 정법시기 대법제자가 됐습니다. 그 순간 저는 더할 나위 없는 영광과 행복을 느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이번에 정성껏 안배해 주신 수련의 기회를 소중히 여기고 법공부와 수련을 착실하게 하며 세 가지 일을 잘하고 사람을 많이 구원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시시각각 대법의 표준에 따르다
그렇게 자리를 잡은 후 저는 각 방과 앞뒤 베란다, 화장실을 둘러봤습니다. 방마다 매우 더러웠고 앞 베란다는 옷을 널어본 적이 없는 듯 빨래 건조대에 먼지가 두껍게 쌓여 있었습니다. 그 위에 옷을 걸기 위해 매달아 놓은 고리 줄은 떨어질 듯하거나 비뚤배뚤했고 줄도 아주 더러웠으며 가전제품을 샀던 큰 상자들이 많이 놓여 있었습니다. 뒤 베란다는 아예 사용한 적이 없는 것처럼 창틀에 먼지가 두껍고 바닥에는 잡동사니가 어지럽게 쌓여 있었습니다. 주방 바닥과 벽은 기름투성이였고 환풍기 홈에는 기름이 가득 차 흘러넘치고 있었습니다. 화장실 바닥은 거의 노란색이었는데, 바닥 타일이 원래 어떤 모양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소변 얼룩이 껴 있었습니다. 저는 자신을 연공인으로 여기며 더러움과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루 내내 청소했습니다. 삼복더위라 매일 땀이 비 오듯 흘렀고 온통 먼지투성이 됐습니다.
며칠 연이어 청소하여 모든 방과 주방, 앞뒤 베란다와 화장실을 깨끗이 치웠습니다. 침실 세 곳의 이불과 침대에 깐 요도 모두 뜯어서 빨았습니다. 노년 수련생에게는 아들이 둘 있는데 자주 오지 않았고 며느리도 오지 않았기에 가정부를 고용하지 않으면 평소에 집을 청소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겨울이 되자 노년 수련생이 덮는 이불이 얇아 춥다고 하셔서 3.5kg짜리 두꺼운 솜이불을 만들어 드렸습니다. 그래도 춥다고 하셔서 인터넷으로 오리털 이불을 사고 시장에 가서 천을 끊어다가 이불 커버를 만들어 씌워 드렸습니다. 이곳에서 매일 집안일과 노년 수련생의 식사를 챙기는 것 외에 노년 수련생과 함께 연공을 했습니다. 평소에 저는 집에 거의 가지 않았고 특히 설 명절이나 공휴일에는 노년 수련생을 돌볼 사람을 구하기 힘들어 집에 가지 않았습니다.
제가 돌보는 이 노년 수련생은 현재 91세입니다. 노년 수련생은 1994년에 법을 얻어 수련했는데, 두 아들이 같은 도시에 살지만 각자 사업이 있어 자주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곳에 온 후 노년 수련생을 제 친부모처럼 모시고 이곳을 제집처럼 여겼습니다. 집안의 탁자나 의자가 망가지면 제가 공구를 찾아 직접 수리했습니다. 화장실 유리를 노년 수련생이 부주의로 깨뜨려 제가 노년 수련생을 모시고 나가 사려고 했으나 노년 수련생은 너무 비싸다며 사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한번은 노년 수련생을 모시고 나가 진상 자료를 배포할 때 거리에서 가게 인테리어를 위해 뜯어내고 버린 합판을 보고 주워 와서 톱으로 치수에 맞게 잘라 설치해 드렸습니다.
이웃 사이도 아주 좋게 지냈습니다. 매년 겨울 눈이 오면 제가 자발적으로 우리 동 현관 앞의 눈을 깨끗이 쓸었고 이웃들의 스쿠터 주변 눈도 다 쓸었습니다. 예전에 노년 수련생이 1층, 3층 이웃과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는데, 제가 그 사실을 알고 먼저 인사를 건넸습니다. 3층에는 80대 노부부가 사시는데, 물건을 많이 사 오시는 것을 볼 때마다 저는 위층까지 들어다 드렸습니다. 날씨가 좋지 않을 때는 그분들의 자전거에 비닐을 덮어드렸습니다. 지금은 3층 이웃과 관계가 아주 좋고 다른 층 이웃들과도 편하게 지냅니다.
진상을 알리며 노년 수련생을 잘 이끌다
2020년 10월, 수련생의 도움으로 이곳에 ‘작은 꽃(자료점)’을 피우게 되어, 그때부터 제가 직접 진상 자료를 출력하고 매일 노년 수련생을 모시고 나가 배포했습니다. 그때 저는 오전에 출력하고 오후에는 전기 삼륜차에 노년 수련생을 태우고 나가 대면해 진상을 알리고 자료를 드렸습니다.
노년 수련생은 수련 상태가 아주 좋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처음 왔을 때는 법공부와 연공에 적극적이었으나 나이가 들면서 점차 게을러졌고 아들과의 관계도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도 이곳에 있으면서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습니다. 한번은 노년 수련생의 아들이 오면서 제게 전화를 걸었는데, 마침 제가 아래층에 여주를 말리러 가느라 듣지 못했습니다. 제가 방에 들어오자마자 노년 수련생의 아들이 올라와서 화를 내며 물었습니다. “왜 전화를 안 받아요?” 제가 “방금 아래층에 다녀왔기에 휴대폰을 안 가져갔어요”라고 답했습니다. 그는 휴대폰을 안 가져갔다는 말에 크게 화를 내며 “또 휴대폰을 안 가져갔나요? 당신은 욕을 먹어도 싸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화내지 않았고 “저를 욕해서 마음이 좀 편해진다면 욕하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수련생이므로 반드시 사부님의 말씀에 따라야 합니다. 저는 매일 노년 수련생을 모시고 나가 진상을 알리거나 자료를 배포할 때나 혹은 장을 보러 갈 때 언제든 인연 있는 사람을 만나면 진상을 알려야 하기에 휴대폰을 가져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외출할 때 휴대폰을 챙긴 적이 없습니다. 그들이 저의 이런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고 설명해줘도 듣지 않았지만 저는 제 원칙을 고수했습니다.
또 한번은 그 댁의 하수관이 고장 났는데, 1층부터 6층까지의 하수관이 그 집 지하실 창고에 있었습니다. 지하실 바닥이 온통 물바다였습니다. 노년 수련생의 아들에게 전화하니 관리실에 연락하라고 했고 관리실에서는 수리해 줄 수 없다며 관련 입주자들을 찾아가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집마다 문을 두드렸습니다. 평소에는 사이가 좋아도 돈 문제와 관련되니 아무도 돈을 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저는 매일 지하실에 가서 물을 퍼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방법이 아니었고 누군가는 고쳐야 했습니다. 다시 노년 수련생의 큰아들에게 전화했더니 그는 시장(市長) 핫라인에 전화하고는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노년 수련생의 둘째 아들이 개인 회사를 운영하는데 사람 둘을 보냈지만, 그들은 지하실을 한참 보더니 손쓸 방법을 모르겠다며 가버렸습니다. 제가 다시 관리실을 찾아가니 “왜 자꾸 찾아오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어르신은 90세라 거동도 못 하시고 두 아들은 다 바쁜데, 제가 안 오면 어떻게 합니까?”라고 말했습니다. 관리실 직원은 “동 대표를 찾아가세요. 그 사람이 봉급을 받으니 그 사람이 처리해야죠”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동 대표를 찾아가니 관리실 소관이라고 했고 서로 미루기만 하고 아무도 고쳐주지 않았습니다. 관리실장이 전화를 걸어와 “그 정도 작은 일은 알아서 처리하세요. 돈은 꼭 필요한 곳에 써야 해요. 기금을 쓰면 돈이 많이 들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듣고 보니 원래 관리실 책임이 맞았습니다. 저는 시골 단독주택에 살아서 이런 일을 겪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제가 노년 수련생에게 “관련 사람은 다 찾았는데 아무도 관여하지 않네요. 어르신 돈으로 수리하세요”라고 말했더니 노년 수련생은 매우 화를 내며 돈을 내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그럼 제가 낼게요. 매일 지하실 가서 물을 퍼낼 수도 없고 그게 해결책은 아니잖아요? 시간이 지나서 물이 더 새면 지하실 전체가 잠기지 않겠어요?” 저는 다시 관리실에 가서 “돈은 제가 낼 테니 수리할 사람을 찾아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관리실에서 한 사람을 찾아줬는데, 200위안을 달라고 해서 제가 줬습니다.
그가 수도관을 고치는 동안 저는 그에게 진상을 알렸습니다.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는 정법(正法)이고 불가(佛家)의 수련 대법이며 사람에게 마음을 닦고 선을 행하도록 가르치는 고덕(高德) 대법입니다. 파룬궁은 중국에서 합법이고, ‘천안문 분신자살’ 사건은 장쩌민 악마가 파룬궁을 탄압하고 없애버리기 위해 조작한 거짓말이며 파룬궁을 모함하고 비방하는 것이니 사람들을 우롱하는 그들의 말을 듣지 마세요. 또한 중공 악당이 역대 운동에서 8천만 중국 사람을 해쳤고 지금은 우주 대법을 수련하는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며 심지어 파룬궁수련생을 생체 장기적출해 폭리를 취하고 있습니다. 중공이라는 악마는 하늘과 사람의 분노를 샀기에 하늘이 그것을 소멸할 것입니다. 구이저우성의 ‘장자석(藏字石)’에 나타난 ‘중국공산당망(中國共産黨亡)’이라는 글자는 하늘이 세상 사람들에게 경고하는 것으로, 중공이라는 악마를 멀리하고 예전에 가입했던 당·단·대 조직을 탈퇴하면 하늘의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늘 염하면 전화위복이 돼 재앙을 피할 수 있습니다.” 제가 공산당원이냐고 물으니 그는 아니고 공청단과 소선대 조직에 가입했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그에게 가입했던 공청단과 소선대 조직을 탈퇴하라고 말하자 그는 모두 탈퇴하겠다고 동의했습니다. 이때 수도관 수리도 끝나서 그는 기분 좋게 돌아갔습니다. 제가 위층으로 올라와 이 일을 말하자 노년 수련생은 매우 기뻐했습니다. 제가 낸 200위안은 정말 가치 있었는데, 사람을 구했을 뿐만 아니라 대법을 실증했습니다. 나중에 노년 수련생은 제가 돈을 낸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월급을 줄 때 그 돈을 저에게 줬습니다.
그전에 저는 관리실에서 수도 요금과 관리비를 받는 여성 두 명도 삼퇴(중공의 3가지 조직 탈퇴)를 시켰습니다. 또한 정수기를 수리하러 온 사람, 현관 도어록을 수리하러 온 사람, 그리고 그의 아들 회사의 기사와 수리공에게도 모두 진상을 알려 삼퇴하게 했습니다.
2020년 12월 중순 2차 전염병이 돌 때였습니다. 저는 처음에 좀 졸리고 온몸에 힘이 없더니 나중에는 계속 재채기가 나고 머리도 좀 어지러웠습니다. 저는 ‘나는 수련생이니 아무 일 없을 거야’라고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그것을 배제하고 감염이 아니라고 부정했습니다. 며칠 후 노년 수련생에게도 증상이 나타났는데 저보다 심해서 열이 좀 났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감염됐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수련생은 전염되지 않아요. 다 가상입니다.” 아마 노년 수련생의 정념(正念)이 그리 족하지 않았는지 자리에 눕게 됐습니다. 노년 수련생이 낮에도 누워 있길래 제가 일으켜 법공부를 하자고 했지만, 그는 힘이 없고 괴롭다며 일어나지 않았고 대법으로 가늠하며 교류해도 잘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한 달 넘게 누워 있었습니다. 처음에 저도 많이 힘들었지만, 이런 박해를 인정하지 않고 법공부를 했으며 노년 수련생을 돌봐야 할 때는 잘 돌보며 가상을 부정했더니 어느새 좋아졌습니다.
당시 노년 수련생은 미열이 있어 계속 37도 조금 넘는 상태였는데, 자리에 눕더니 일어나려 하지 않았고 식사량도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가끔 한밤중에 방에 가서 보면 배가 고프다고 해서 주방에서 먹을 것을 좀 만들어 드렸고 아들들도 오지 않았습니다. 며칠 후부터는 저는 자기 전에 국수를 좀 삶아 놓았다가 배고파하시면 전자레인지에 데워 드렸습니다. 밤에 제가 화장실 갈 때 그분 방에 가서 물을 좀 떠먹여 드렸는데 매일 밤 두세 번씩 그랬습니다. 계속 누워만 계셔서 병색이 완연해 보였고 설태가 하얗고 두껍게 끼었습니다. 때로는 하루에 말 한마디 안 하셨습니다. 저는 격려해 드렸습니다. “다 가상입니다. 인정하지 말고 더구나 두려워하지 마세요.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진정한 대법제자는 모두 에너지가 있는 것으로, 자체가 곧 업을 제거하고 균을 제거하는 자이다’(이성), 정념만 족하면 금방 좋아질 겁니다.” 노년 수련생이 조금 정신이 들어 보이면 부축해 일으켜 잠시 앉아 있게 하고 ‘전법륜’을 읽어드렸습니다. 노년 수련생이 그 기간에 자꾸 요실금 증세가 있어 혼자 서서 소변을 보려 해도 요강에 제대로 못 보고 바닥에 흘리기 일쑤였습니다. 제가 노년 수련생의 큰아들에게 방수포를 사 오게 해서 침대에 깔고 성인용 기저귀도 샀지만, 큰아들은 입혀드릴 줄 몰라 매번 제가 입혀드렸습니다. 저는 한 달 넘게 매일 정성을 다해 돌보았습니다. 가끔 노년 수련생이 침대 안쪽으로 주무셔서 손이 닿지 않으면 제가 침대 위에 무릎을 꿇고 컵에 빨대를 꽂아 물을 마시게 했습니다. 이것 역시 제가 마음을 닦고 제고할 기회라 여겨 더럽거나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둘째 아들은 결벽증이 있어 더더욱 오지 않다가 노년 수련생이 완전히 건강을 회복한 후에야 한번 보러 왔습니다. 그 후로 노년 수련생의 몸은 예전 같지 않아 보행 보조기를 밀고 다녔고 자주 바지에 소변을 지렸으며 때로는 찬 것을 먹으면 화장실에 가기 전에 바지에 대변을 한가득 보기도 했습니다. 저는 더러워하지 않고 매번 정성껏 씻겨 드렸습니다. 저는 시시각각 노년 수련생을 제 부모처럼 돌보았고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바느질도 할 줄 알아서 이곳에 온 후 노년 수련생의 옷과 이불은 다 제가 만들었습니다. 노년 수련생의 둘째 아들은 겨울이면 대부분 싼야(三亞)에 갔다가 날씨가 따뜻해지면 돌아왔고, 큰아들은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아 금전적으로 아버지를 도운 적이 없고, 설에도 아버지를 자기 집으로 모셔 식사 한번 한 적 없이 설날 당일에 와서 세배만 하고 끝냈습니다. 그래서 제가 노년 수련생을 친부모처럼 모셔야만 했습니다. 저는 긴급한 일이 없으면 집에 가지도 않았고 성실하게 노년 수련생을 돌봤습니다.
법공부 팀을 만들고 착실하게 사람을 구하다
노년 수련생이 법공부에 그리 적극적이지 않아 저는 이곳에 법공부 팀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제가 아는 수련생이 적어서 아주 오랫동안 찾았습니다. 2024년 2월 17일 드디어 여성 노년 수련생 한 분이 오게 되어 이곳에 법공부 팀이 만들어졌고 매주 두 번씩 법공부를 했습니다. 노년 수련생도 자연스럽게 함께 법공부를 하게 됐습니다. 나중에 두세 분의 수련생이 더 늘어 지금은 대여섯 명의 법공부 팀이 됐습니다. 매주 한 번 오시는 분이 있고 두 번 오시는 분도 있습니다. 법공부 팀이 만들어진 후 모두가 이곳의 에너지장이 아주 좋다고 느끼며 법공부 전 발정념을 할 때 아주 고요함을 느꼈습니다. 노년 수련생도 법공부와 발정념에 적극적으로 참석하게 됐습니다.
2020년 10월 저는 수련생의 도움으로 진상 자료 출력법을 배워 ‘작은 꽃’은 그때부터 이곳에서 지금까지 피어 있습니다. 그때 저는 매일 오전 출력하고 오후에는 전기 삼륜차에 노년 수련생을 태우고 나가 대면하여 손에서 손으로 진상 자료를 전했습니다. 지금은 법공부 팀이 생겨 법공부하는 날을 제외하고 매일 오후 노년 수련생을 모시고 주변 아파트 단지로 갑니다. 노년 수련생이 삼륜차에 앉아 발정념을 하고 저는 계단을 오르내리며 집마다 문고리에 진상 자료를 걸었습니다. 고층 아파트 단지에 갈 때는 먼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서 한 층씩 걸어 내려오며 배포하는데, 이때는 필요한 양이 훨씬 많아서 매번 큰 가방 하나 가득했고 많을 때는 수십 부에 달했습니다. 제가 비록 일흔이 다 된 할머니이지만 고생을 두려워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또한 우리 법공부 팀 노년 수련생의 명혜주간과 정견주간 출력 업무를 맡고 있고 한 수련생의 진상 스티커 출력도 돕고 있으며 두 노년 수련생의 삼퇴 명단을 인터넷에 등록하는 일도 맡고 있습니다.
때로는 저 혼자 장 보는 시간을 이용해 인연 있는 사람에게 대면해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했습니다. 날씨가 아무리 나빠도 폭우가 쏟아지지 않는 한 노년 수련생을 모시고 나가 진상 자료를 배포했습니다. 눈이 올 때나 설 명절에는 저 혼자 우리 단지 내에서 진상 자료를 배포했습니다. 지금은 제 돈으로 수련생에게 부탁해 진상 USB를 제작하고, 또 수련생의 도움으로 QR코드 카드를 제작하여 진상을 알릴 때 젊은이를 만나면 카드나 USB를 줍니다. 노년 수련생의 둘째 아들은 효성이 없는 건 아닌데 결벽증이 좀 있어서 집에 있을 때 종종 차를 보내 아버지를 모시고 나가 식사하고 때로는 저도 함께 식당에 가자고 합니다. 식사 전에는 늘 찻집에 가서 차를 마시는데 그곳엔 젊은이들이 많아 제가 젊은 층과 접촉할 기회가 더 많아졌습니다. 기회가 될 때마다 그들에게 카드와 USB를 줍니다. 최근에는 오르골을 몇 개 사서 진상 내용이 담긴 메모리 카드를 넣어 우리 단지의 인연 있는 사람에게 선물했습니다(이것은 막 시작해서 아직 피드백은 없습니다). 만약 효과가 좋으면 더 많이 만들 생각입니다.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 보호해주셔 저는 줄곧 평온하게 사람 구원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수련을 잘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기에 앞으로 법공부를 많이 하고 잘하며 법에 동화돼 사람을 많이 구원해서 사명을 욕되게 하지 않으며 서약을 실행하면서 반본귀진(返本歸眞, 진정한 자신의 본원으로 돌아감)하겠습니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원문발표: 2025년 12월 1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12/13/503060.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5/12/13/503060.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