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과 도용에 관하여
글/ 선과(善果)
[명혜망] 최근 창작에 관한 교류를 보며 매우 일리가 있다고 생각돼 수련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표절이란 다른 사람의 사상이나 문구를 도용하는 것, 다른 사람이 창작한 산물을 출처를 밝히지 않고 채택하는 것을 말한다. 도용은 허가 없이 혹은 부적절하게 타인의 작품, 사상, 표현 방식을 인용하는 것이다. 여러 나라 저작권국의 정의에 따르면 도용은 곧 표절이며, 타인의 작품이나 그 일부를 자기 것으로 삼는 행위를 뜻한다.
대법제자의 수련 교류와 진상 알리기에서도 창작과 표절의 구분을 명확히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법수련이라는 큰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하는 것과 같지 않겠는가? 부정행위든 표절이든 도용이든 그 성질은 모두가 잘 알고 있다. 글자 그대로 보면 도용[抄襲]의 ‘초(抄)’는 원작을 그대로 옮기는 초사(抄寫)를 말한다. ‘습(襲)’은 습격한다는 뜻이 있어 남이 대비하지 못한 틈을 타 빼앗거나 공격하는 것을 의미한다. 표절(剽竊)의 ‘표(剽)’의 본뜻은 강도질이나 사람을 납치하는 것이다. 타인의 작품을 강제로 자기 것으로 만드는 행위는 타인의 작품을 빼앗는 것일 뿐만 아니라, 타인에게 자신을 위해 무상으로 일하도록 강요하는 것임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진선인(眞善忍-진실·선량·인내)을 수련한다. 얕은 층차에서 말하자면 ‘진’은 참된 말을 하고 실질적인 일을 하는 것이며, ‘선’은 타인을 선하게 대하는 것으로 원작자와 다른 간행물을 선하게 대하는 것을 포함하며, ‘선’ 안에도 ‘진’이 들어 있다. ‘인’은 고생을 겪고 심성을 지키는 것이며, ‘인’ 안에도 역시 ‘진’과 ‘선’이 들어 있다. 도용, 표절, 강탈 등의 수단은 모두 진선인에 위배된다. 정직하게 타인을 존중하며 고생을 겪어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좋은 사람의 상식적인 표현이다.
현대 관념은 도용이나 부정행위에 이미 익숙해져 있다. 압박감과 긴박함 앞에서 독창적인 창작은 느리고 힘들게 느껴지지만, ‘복사해서 붙여넣기’는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이득이기 때문이다. 본문은 그런 가식적인 예의나 현대의 변이된 관념에서 벗어나 표절과 도용이라는 행위의 본질에 대해 더 깊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1. 행위의 진상: 보이지 않는 ‘약탈’
우리는 도용이 본질적으로 소리 없는 ‘도둑질’임을 직시해야 한다. 글 한 줄, 아이디어 하나하나가 모두 원작자와 편집자 등 모든 참여자가 밤을 새우고 책을 뒤지며 수많은 자기 부정과 반복적인 단련을 거쳐 만들어낸 결정체다. 그것을 손쉽게 자기 것으로 삼을 때, 당신은 단순히 글자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사고와 노동 성과를 폭력적으로 약탈하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원작자가 당연히 받아야 할 존중을 박탈하고 타인의 신용을 훔치는 것이며,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할 근면함을 짓밟는 것이다.
2. 논리의 오류: 단기적인 ‘달콤함’ 뒤에 숨겨진 맹독
많은 이가 능력의 제고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당장의 안락함, 명성, 점수, 조회수, 광고 등을 얻을 수만 있다면, 즉 자신에게 ‘실속’이 있다면 도용의 길을 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행위는 당신을 ‘능력 자해’라는 악순환에 빠뜨린다. 타인의 두뇌를 ‘약탈’하는 데 익숙해지면 당신 자신의 독립적인 사고 능력은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근육처럼 완전히 위축될 것이다. 옛사람은 “행실에 믿음이 없는 자는 명성이 반드시 소모된다”라고 했다. 도둑질로 쌓은 명예는 금이 간 거울과 같아서 진실한 재능을 비추지 못하고 내면의 허위와 나태함만을 비출 뿐이다. 현대인들은 ‘사람이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천벌을 받는다’라는 말을 좌우명으로 삼지만, 무엇이 진정으로 자신을 위하는 것인가? 우리 수련인은 진선인을 표준으로 좋고 나쁨을 가늠할 뿐만 아니라, 왜 진선인을 표준으로 삼아야 하는지도 알고 있다.
3. 법률의 레드라인: 도덕적 구속 그 이상
인격의 품위와 심성의 표준 외에도 우리는 속인 사회의 현실적인 규범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법률적 측면에서 도용은 저작권에 대한 공공연한 침해다. 글자 하나, 그림 하나에도 모두 저작권자가 있으며 허가 없는 무단 사용은 위법 행위다. 오늘날 정보 추적 기술이 발달해 ‘훔친’ 물건은 흔적이 남고 기소될 위험이 있다. 지금 택한 지름길은 흔히 미래의 무너짐을 예고하는 복선이 된다.
4. 사부님께서는 이미 올바른 방법을 명시하셨다
어떤 수련자는 우리가 주로 ‘퍼오기’(도용의 현대적 별칭)에 의존하고 있어 도용하지 않으면 내용이 없다고 말한다. 타인의 작품을 채택하면서 업계 규범에 따라 눈에 띄는 위치에 출처를 밝히면 우리 자신의 작품이 없는 것처럼 보일 텐데 어떡하느냐고 묻기도 한다. 어떤 일을 하고 싶으면서도 고생하며 대가를 지불하고 싶지 않은데, 이런 사고방식이 맞겠는가?
‘퍼오기’에 대해서 사부님께서는 이미 명시하셨다. “그러므로 구체적인 보도내용에서 자신의 특징을 갖고 있어야 하며 유럽의 상황을 많이 보도해야 한다. 동시에 매일 명혜망(明慧網)의 보도와 중요한 몇몇 뉴스를 전재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이것은 국내 대법제자들의 실제상황이기 때문이다.” “문장의 수량에서 유럽이 위주이고 명혜망이 보도한 중국대륙 대법제자의 중요한 상황을 사이사이에 끼워 넣어야 한다.”(정진요지2-유럽 원명망(圓明網)에 보냄)
즉, 명혜망의 매일 보도와 중요 뉴스 몇 건을 전재하되 업계 규범에 따라 ‘명혜망 몇 월 며칠 보도’와 같이 출처를 명확히 밝히고, 나머지는 모두 자기 웹사이트의 독창적인 작품이어야 비로소 바른길이라는 뜻이다.
5. 창작이 어렵다고 해서 도용해야 하는가?
도용하는 습관이 있는 수련자들에게 말하고 싶다. 비록 당신의 초고가 완벽하지 않고 문장이 서툴지라도 그것은 당신 자신의 목소리이고 당신의 수련 심득이며 당신의 아이디어이자 노동 성과다. 빌려온 빛은 눈앞의 길을 비출 수는 있어도 결국 외적인 것이며 당신의 내면과 능력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영원히 독립적으로 걷지 못하는 ‘도둑’이 되기보다 자신만의 진실한 역할을 되찾고 자신의 도덕 경지를 높여야 한다. 일시적인 달콤함을 위해 정직하고 힘 있는 자신을 잃어버리지 말길 바란다.
진정한 콘텐츠 창작자라면 효율을 추구하는 이 시대에 독창성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장기간 유지하는 것은 더 어렵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누구나 창작 과정에서 난관에 부딪히거나 아이디어가 고갈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고 고생하며 전문 소양과 창의력을 높이는 것이 바른길이다. ‘한도를 초과해 인출’하는 기만적인 방법은 자신과 남을 해치며 특히 장기적으로 볼 때 더욱 그러하다. 그러므로 극소수의 천재를 제외하고 대다수 창작자는 매일 창작의 고통에 직면해 있으며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6. 진상 알리기를 잘하는 수련자는 어떻게 하는가?
일부 수련자는 ‘글을 잘 못 쓸까 봐’ 혹은 ‘진도를 따라가지 못할까 봐’ 의존하는 심리가 생기거나, 타인의 작품을 흠모하고 감상해 전파를 돕고 싶어 할 수도 있다. 독창적인 창작의 과정은 비록 힘들지만 그것은 공(功)이 자라나고 지혜가 닦여 나오는 과정이다. 전파할 때는 독창성과 원작자를 존중해야 한다. 일부 중국 수련자들은 사전에 허가도 받지 않고 마음대로 각색한 뒤 원본 웹사이트의 명칭을 자신의 채널에 끼워 넣는데, 이는 권리 침해일 뿐만 아니라 원저작권자의 신용을 훼손하는 행위다. 당신이 진정으로 훌륭한 창작자나 홍보자가 되고 싶다면 협력을 구하거나 팀에 합류할 수 있다.
옛사람의 말 중에 “오직 천하의 지극히 서툰 것이 천하의 지극히 교묘한 것을 이긴다”라는 말이 있다. 이를 더 인용하자면 ‘정성’이 극치에 이르면 어떤 허위도 그것을 흔들 수 없고, ‘서투름’이 극치에 이르면 어떤 기교도 그것을 이길 수 없다. 우리 대법제자 중에는 진상을 매우 효과적으로 알리는 이들이 많다. 그들 중에는 소통 기술이 뛰어난 이들도 있지만, 많은 사람은 말재주나 도용이 아니라 지극한 성실함과 선량함, 그리고 세상 사람들에 대한 자비에 의지한다. 자비가 이르는 곳에 우주의 지혜가 당신의 손끝으로 흐르고 뇌로 들어올 것인데, 그것이 바로 속인들이 말하는 ‘영감’이다. 진상 알리기를 잘하는 수련자는 남을 따라 하거나 그대로 옮기고 도용해서 된 것이 아니라, 한 방울 한 방울의 노력을 통해 닦아낸 것이다. 우주 속의 지혜는 모래 한 알 속의 아주 작은 일부분만 당신에게 주어도 충분히 쓸 수 있는데, 관건은 스스로 닦아야 한다는 점이다.
7. ‘진선인’ 표준에서 본 저작권 존중과 일고다투
덧붙여 일고다투(一稿多投, 한 원고를 여러 매체에 보내는 것)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일부 중국 대법제자와 해외 수련자들이 일고다투를 고집하는 목적은 자신의 원고가 채택될 확률과 노출 범위를 넓히기 위해서이거나 자신의 원고가 중요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행위는 속인 사회에서 비도덕적인 행위로 널리 간주될 뿐만 아니라 공적 자원을 낭비하고 매체의 신용을 떨어뜨린다. 이로 인해 초래되는 많은 부정적인 결과에는 저자가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것, 간행물의 명예 훼손, 대법제자 전체의 명예 실추, 그리고 법률적·경제적 처벌이 포함되므로 수련자로서 매우 지양해야 할 일이다.
맺음말
현대 사회라는 큰 염색통 속에서 부지불식간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하나의 완전한 생존 논리로 변모했다. 수련자일지라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사고방식을 창작이나 법을 실증하는 항목에 가져오기 쉬우며, 심지어 이것을 ‘지름길’이나 ‘높은 효율’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 결과가 과정을 말살함: 결과(돈, 명성, 지위)만 얻으면 과정에서의 기만과 약탈은 ‘영리함’과 ‘전략’으로 간주된다.
• 정직이 오명을 뒤집어씀: 신용을 지키고 독창적이며 정직한 사람은 흔히 ‘고리타분하다’, ‘능력이 없다’, ‘융통성이 없다’라는 낙인이 찍힌다.
• 도덕적 비용의 역전: 진실한 창작과 헌신을 견지하고 창작 원칙을 준수하는 것이 오히려 비용이 많이 드는 행위가 되고, 조작과 도용이 오히려 저비용 고수익의 ‘지름길’이 된다.
이 교류 글로 보잘것없는 의견이나마 내놓아 지혜를 모으고자 한다. 관련 수련자들이 여기에서 바른 영감을 얻어 실제 행동으로 자신을 바로잡고, 언행에서 진선인을 지도 원칙으로 삼는 대법제자들의 더 나은 모습을 함께 세워나가길 희망한다.
[수련인들 간의 이성적인 교류는 일반적으로 개인의 당시 수련 상태에 대한 인식일 뿐이며, 선의적인 교류를 통해 함께 제고하려는 것이다.]
원문발표: 2026년 3월 1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3/13/50773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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