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헤이룽장성 대법제자
[명혜망]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올해 60세로 1998년에 대법을 얻었습니다. 1999년 박해가 발생한 후, 단체 수련 환경을 잃었고 수련을 게을리하며 명예와 이익 속에서 남보다 앞서려 다투고 심성을 지키지 못해 점차 몸이 망가졌습니다. 특히 경추 신경이 압박돼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고, 매일 의기소침해 고통이 말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저처럼 못난 제자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2006년 어느 날, 현지 노수련생이 우리집에 와서 정법의 형세를 알려주었고, 저는 다시 대법과 성스러운 인연을 잇게 됐습니다. 20여 년간 저는 약 한 알 먹지 않고 무병한 몸으로 사부님께서 하라고 하신 세 가지 일을 굳건히 하고 있습니다.
악당이 일을 벌이자 나는 진상을 알리다
한번은 중공 악당의 ‘민감한 날’ 며칠 전, 제가 집에서 일하고 있는데 갑자기 경찰 4명이 들이닥쳤습니다. 첫 번째는 현(縣)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대장인데, 몇 걸음 만에 제 옆으로 다가와 물었습니다. “당신이 ○○입니까?”
제가 그렇다고 하자 그는 아직도 연공하냐고 물었고 저는 연공한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제 한쪽 팔을 맹렬히 움켜쥐자 다른 경찰 한 명도 나머지 팔을 붙잡았고, 다른 두 경찰은 동쪽 방으로 직행해 제가 사부님의 법상(法像)을 모셔둔 장을 뒤져 우리집의 법상, 파룬도형, 대법서적 몇 권과 경문 등 물품을 불법적으로 압수해 갔습니다. 저는 몸부림치며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내 물건에 손대지 마세요!” 그들은 듣지 않고 강제로 저를 경찰차에 태워 현 공안국으로 끌고 갔습니다. 차 안에서 저는 끊임없이 그들에게 진상을 이야기했고 그들은 잠자코 듣기만 했습니다. 운전기사만 저에게 입을 다물라고 했지만 제가 어찌 그의 말을 듣겠습니까?
공안국에 도착하자 그들은 우리집에서 압수한 모든 물건을 하나하나 사진 찍었습니다. 국보 대장이 저에게 경문은 어디서 났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말해줄 수 없어요. 말해줬다가 당신들이 또 그들을 박해하면 당신들은 큰 죄를 짓게 돼요. 나는 당신들이 범죄를 저지르게 할 수 없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이 말을 듣고 더 이상 묻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저에게 서명하라고 했지만 저는 서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들 몇 명이 제 손을 눌러 강제로 시키려다 제 팔을 꼬집어 멍이 들게 했습니다. 저는 수련과 진상 알리는 것을 죄라고 인정하지 않으며, 절대로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밤새 우리를 시(市) 구류소로 보냈습니다. 구류소에서 인계받을 때 저는 저를 호송한 그 경찰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우리 같은 좋은 사람들을 이곳에 보내다니, 마음이 편합니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그 역시 매우 난처해 보였습니다. 구류소에 들어가 보니 침대에는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고 바닥에는 당직자 3명이 서 있었습니다. 당직자가 누울 자리를 찾아보라고 했습니다. 제가 보니 자리가 어디 있겠습니까. 저는 그냥 앉아 있겠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안 된다며 감시 카메라가 있다고 했습니다. 한 사람이 몸을 비집어 저에게 작은 자리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저는 몸을 웅크리고 엎드렸습니다. 고개를 들어보니 사람이 빽빽했습니다. 저는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어떻게 수련하다가 여기까지 왔지? 이 사회에서 착한 사람이 되기가 왜 이렇게 어렵지?’
다음날, 반장이 저에게 당직을 서라고 했습니다. 침대에 누워 있는 갖가지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온몸에 문신이 울긋불긋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저는 옆에 있던 당직 서는 여자에게 그 문신한 사람을 가리키며 “요즘 사람들을 좀 봐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사람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해선 안 돼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즉시 이것이 사부님께서 그녀의 입을 빌려 저를 일깨워주시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사람을 관념으로 보지 말고 차별심을 갖지 말아야 하며, 모두 법을 위해 왔으니 다 구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오후에 감옥경찰이 와서 점호하며 새로 들어온 사람들에게 무슨 일로 들어왔는지 물었습니다. 청원한 사람, 싸움, 마약, 매춘 등이었는데 매춘으로 들어온 사람이 연달아 몇 명이나 됐습니다. 그녀들은 이런 행위를 아주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습니다. 마지막에 저와 제가 모르는 다른 수련생에게 물었고, 우리는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이라고 답했습니다.
감옥경찰이 떠난 후, 모두들 편안하게 모여 수다를 떨었는데 ‘가오(高) 반장’이라는 사람이 자기는 창춘(長春) 사람이라 파룬궁이 어떤 것인지 안다며, 파룬궁은 좋은 것이고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는 것인데 장쩌민(江澤民)이 파룬궁을 연공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을 보고 이 박해를 일으킨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는 모두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그녀는 자기 집이 이 시에서 식당을 하는데 남편은 조직폭력배고 자신도 온갖 일을 다 했으며 감옥, 구류소도 단골이라 감옥경찰과도 친해서 감옥경찰이 자주 그녀를 불러내 담배를 피우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관리 능력이 꽤 있고 말도 거침없었지만 대법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가오 반장이 대법을 인정하는 몇 마디를 마치자, 20세의 마약 중독 아가씨(온몸에 문신이 있는 그 여성)가 제 곁으로 오더니 저를 ‘법 언니’라고 부르며 파룬궁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 이야기해 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파룬궁이 무엇인지, 대법이 널리 전파되던 성황, 병이 낫고 몸이 건강해지는 신기함, 박해 진상과 삼퇴해야 평안을 지킬 수 있다는 진상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녀는 매우 공감하며 삼퇴도 했고, 그녀에게 늘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염하면 복을 받을 거라고 알려줬습니다.
저와 다른 한 수련생은 서로 만난 것에 매우 기뻐하며 우리 둘은 정념을 많이 발하고 사람을 구하자고 교류했습니다.
고도 근시인 한 처녀가 있었는데 다들 그녀를 ‘1200도’라고 불렀습니다. 구류소에 들어오면 안경을 못 쓰게 해서 행동이 매우 불편했습니다. 우리 둘은 그녀를 위해 밥을 타주고 화장실에 가서 씻는 것을 도와주었습니다. 그녀는 매우 고마워했고 우리가 진상을 말해주자 잘 받아들였습니다.
7월 날씨는 무척 더웠고 구류실에는 사람이 많았는데 매일 잡혀 들어와서 새로운 구류실을 하나 더 열었습니다. 감옥경찰은 가오 반장을 불러 몇 명을 뽑아 같이 가라고 했습니다. 가오 반장이 돌아와 저에게 “큰언니, 저랑 같이 가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가고 싶지 않다며 여기에 수련생이 있어서 우리 둘이 의지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다음날 오후 감옥경찰이 와서 첫 번째로 제 이름을 불렀고 다른 몇 명과 함께 짐을 챙기라고 했습니다. 저는 가오 반장이 제 이름을 댄 것을 알았습니다. 새로운 구류실에 가보니 더럽고 어수선했으며 감옥경찰이 가져온 큰 흰 통 2개도 기름투성이였습니다. 저는 그것을 화장실로 가져가 안팎을 깨끗하게 닦았고 화장실도 깨끗이 청소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일을 만났을 때 남을 배려하고 어디서든 좋은 사람이 돼야 하며 고생을 낙으로 삼으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가오 반장도 사람 보는 눈이 있어 선발된 몇 명은 일을 아주 잘해서 구류실을 깨끗하게 청소했고, 이어서 또 한 무리 사람들이 들어왔습니다.
밤에 잠자리에 들기 전, 가오 반장은 저에게 자기 옆에서 자라고 하며 불침번은 서지 말라고 했습니다. 저는 ‘나는 연공인이다. 좋은 사람이 돼야 한다. 저 나이 많고 약한 사람들이 2시간을 서는 것은 견디기 힘들 테니 내가 그들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구류실에는 19명이 있었고 저는 사람을 구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끊임없이 정념을 발했습니다. 다른 공간을 향해 발하고, 구류실의 감시 카메라 4대를 향해 발하고, 구류소의 모든 감옥경찰을 향해 발하고, 구류실의 모든 사람을 향해 발했습니다.
오전 좌판(坐板-구류소 등에서 판자 위에 앉아 있는 것) 시간에 그들은 수칙을 외웠고 저는 정법 구결을 외웠습니다.
오전 청소가 끝나면 자유 활동 시간인데 저는 진상을 알렸습니다. 제 옆에는 36세의 마약 중독 여성 샤오첸(小倩, 가명)이 있었는데, 그녀는 제 옆에서 자는 것을 매우 좋아했고 진상 듣는 것도 좋아했습니다. 생활면에서도 제가 그녀를 보살펴 주었습니다. 그녀는 양말조차 빨 줄 몰라 남에게 빨아 달라고 하려 했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 제가 직접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녀는 집에서는 엄마가 다 빨아주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이렇게 나이가 들었으니 자기 일은 자기가 해야죠. 당신 엄마는 예순이 다 됐는데 평생 당신과 함께할 수 있겠어요? 부모님도 늙으면 당신에게 의지해야 해요”라고 말했습니다. 점차 그녀도 옷을 빨 수 있게 됐습니다.
그녀는 휴대폰을 보면 몇 시간이고 앉아 있고 심지어 하루 종일 움직이지 않아 허리가 망가져 일어서면 몸이 비틀거린다고 했습니다. 제가 집에 돌아갈 때가 되자 그녀는 저에게 엄마에게 전화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녀가 전화번호를 한 번 말해주자 저는 바로 외웠습니다. 전화로 그녀의 상황을 이야기했더니 그녀의 엄마는 울면서 자기가 아이 교육에 실패했고 아무 일도 못 하게 해서 지금 이렇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두 명은 이혼녀로 낮에는 식당에서 일하고 밤에는 성매매를 했습니다. 자주 좋지 않은 행동을 하고 듣기 거북한 말을 했습니다. 제가 몇 번이나 그녀들에게 진상을 알려주었지만 그녀들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그중 샤오추이(小萃)라는 여성이 가오 반장과 갈등이 생겨 서로 한마디씩 하며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가오 반장이 더 기세등등하게 감옥경찰에게 고발하려 했습니다. 오전 좌판 시간이 됐습니다. 좌판 시간에는 감옥경찰이 오기 때문에 저는 가오 반장에게 작은 목소리로 “일을 크게 만들지 말고 덮어두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가오 반장은 저에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제 앞에 앉아 있던 여자가 제가 가오 반장에게 귓속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감옥경찰이 떠난 후 그녀는 제가 가오 반장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물었습니다. 저는 일을 크게 만들지 말고 덮어두라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샤오추이 일행에게 제가 한 말을 전했고, 그녀들은 저에게 매우 고마워하며 이후에 제가 다시 진상을 알려주자 받아들였습니다.
가오 반장은 말을 참 잘해서 끊임없이 자신의 예전 일들을 이야기했습니다. 때때로 그녀는 제가 침대에 앉아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면 “큰언니, 수다 떨자, 수다 떨자”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저에게 빨리 진상을 알리라는 뜻이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그녀의 입을 빌려 저에게 사람을 빨리 구하라고 재촉하시는 것임을 알았기에 게을리하지 않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야기했고, 단 한 사람도 빠뜨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샤오원(小文)이라는 매춘부에게 제가 진상을 알려주었더니, 그녀는 두 번 이혼했고 아들이 셋이라고 했습니다. 첫 번째 시어머니는 파룬궁수련생이었는데 사람이 아주 좋았으며 자신도 대법서적을 본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첫날 일하러 나왔다가 여기에 잡혀왔고 돈도 벌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저는 “당신은 대법과 인연이 있어요. 어쩌면 신불(神佛)께서 당신이 이런 일을 하는 것을 원치 않으시는지도 몰라요. 돌아가서 정당한 직업을 구하고 아이들을 잘 돌보세요”라고 말했고 그녀는 매우 공감했습니다.
구류실에는 매일 오후, 의사가 약을 갖다 주고 혈압을 쟀습니다. 의사가 문 앞에 앉으면 구류실 사람들은 작은 창문을 통해 줄을 서서 약을 받고 이리저리 물어보았는데, 저 혼자 침대에 가부좌하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녀들의 갖가지 모습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만약 악당이 이 박해를 일으키지 않았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대법을 수련했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좋은 사람이 됐을까! 이 사회가 이 정도로 썩지는 않았을 텐데.’ 그녀들은 제 몸이 이렇게 건강한 것을 보고 모두 부러워하며 스스로 진상을 들으러 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녀들에게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기억하면 보답을 얻을 거라고 모두에게 알려주었습니다.
15일간의 억울한 구류가 끝나고 저는 머릿속에 17명의 삼퇴 명단을 담고 구류소를 걸어 나왔습니다. 그날 아들은 그가 사는 도시에서 돌아왔습니다. 친척이 차를 몰고 저와 아들을 태우러 왔습니다. 오는 길에 우리 모자는 몇 마디 말도 하지 않고 각자 창밖만 바라보았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친척, 이웃들이 방에 가득했고 상다리가 휘어지게 음식을 차려 놓았습니다. 식사할 때 모두들 한마디씩 하며 저를 비난했고 남편은 눈물범벅이 됐습니다. 지난 몇 년간 제가 대법을 수련하는 것을 남편은 한 번도 반대하지 않았지만 제가 경찰에게 맞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는 제가 잡혀갈 때 경찰의 오만함을 보았고 10여 일 동안 남편은 많이 수척해졌습니다. 남편은 “다시 연공하면 당신을 친정으로 돌려보내겠소”라고 말했습니다. 이혼하겠다는 뜻이었습니다. 이웃도 “형수님, 형수님이 가신 동안 우리 형님은 매일 문을 닫고 밖에 나오지 않았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표정은 소리 없는 말과 같았으니, 정말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백 가지 고생 한꺼번에 내리거니”(홍음-마음고생)와 같았습니다.
저녁에 아들이 저에게 “며느리가 엄마에게 무릎 꿇고 빌어서라도 제발 연공하지 말게 해달라고 부탁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들이 연루되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대법 수련은 잘못이 없다. 우리 사부님은 우리에게 좋은 사람, 더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시는데 무슨 잘못이 있겠니? 너도 내 몸이 예전에 어땠는지 알지 않니? 내가 파룬궁을 연공한 지 20년 동안 약 한 알 먹지 않고 무병 상태인데, 그동안 우리집 경제 수입이 다 나에게서 나오지 않았니? 나는 대법을 수련하기로 굳게 정했다. 누구도 나를 바꿀 수 없다. 너희들이 두렵다면 우리 모자 관계를 끊자.”
아들은 “관계를 끊는다고 해도 엄마는 내 엄마예요. 나도 엄마가 한번 옳다고 인정하신 일은 누구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아요. 그러니 안전에 유의하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아들 집에서 심성을 제고하다
며느리가 아이를 낳아 아들이 저에게 아이를 돌보러 와 달라고 했습니다. 아들은 전화로 “엄마, 말을 아끼세요. 요즘 젊은이들 이혼하는 사람도 많고 우울증 앓는 사람도 적지 않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수련인이니 고부 관계를 잘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며느리가 아직 산후조리 기간이 끝나기 전에 제가 산후조리센터에 그녀를 보러 갔습니다. 만나자 며느리는 쌀쌀맞게 대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며느리가 산후조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 저는 모든 집안일을 도맡았습니다. 말을 아끼고 일을 많이 했지만 며느리는 여전히 쌀쌀맞았습니다. 그녀가 친정엄마와 전화로 웃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니 제 마음은 편치 않았습니다.
며느리의 5개월 출산 휴가가 끝났고 다음날 출근해야 했습니다. 아침에 제가 연공을 마치고 화장실에 갔다가 돌아왔을 때 무심코 TV 옆에 있는 감시 카메라가 켜져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평소에는 전원이 연결돼 있지 않았습니다. 제 마음속에서 화가 확 치밀어 올랐습니다. ‘집에는 나와 아이밖에 없는데 이건 날 감시하는 것이 아닌가?’ 당장이라도 그들에게 가서 따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그들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방으로 돌아와 6시 발정념을 했고 마음도 가라앉았습니다.
억울함과 불공평함이 치밀어 올랐습니다. 매일 아침 6시 발정념을 마친 후 저는 잠시 법을 외우는데, 문득 이것이 사부님께서 저를 일깨워주시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말해서는 안 된다. 조용히 생각하자. 만약 내가 물어본다면 속인들은 수많은 이유를 댈 것이고, 이것이 틈을 만들지 않겠는가?’ 저는 사부님께서 시시각각 보호해주시는 것에 매우 감사드리며 안으로 찾았습니다. ‘방 안에 감시 카메라가 있는데 왜 기분이 좋지 않은가? 혹시 내가 일을 성실하게 하지 않고 겉과 속이 다르며 항상 자신을 이 집의 이방인으로 여기고 이 가정에 녹아들지 못한 것은 아닌가? 사부님께서는 우리가 어디에 있든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시지 않았는가?’ 제가 매일매일의 모든 일을 착실하게 잘 해나가자 더 이상 그렇게 괴롭지 않았습니다.
다시 집착을 제거하다
늦가을이라 실내에 아직 난방이 들어오지 않아 반소매 옷을 입으니 좀 서늘했습니다. 아들과 며느리는 각각 한 벌씩 긴소매 순면 잠옷을 샀는데 디자인과 만듦새가 모두 좋았습니다. 저는 아들에게 “너희들이 새로 산 잠옷이 질이 참 좋구나. 긴소매고 순면이네. 아빠와 나도 한 벌씩 사다오”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은 알겠다고 했습니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택배가 며칠 후 도착했습니다. 두 벌이었는데 모두 여성용이었습니다. 며느리가 “싸서요. 아버님 것은 아직 안 왔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열어보니 제가 원했던 종류도 아니었고 면도 아니었으며 싼 물건이었습니다. 마음이 다시 올라왔습니다.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 있지? 내가 너희들을 위해 이렇게 일하고 돈 한 푼 받지 않는데, 먹는 것도 남은 음식인데 너희들은 고급 빵을 먹고 등등, 나는 이 집에서 2등 시민이구나.’
마음속으로 너무 억울해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지만 남에게 보여줄 수 없었습니다. 그 옷은 오랫동안 입지 않았습니다. 며느리가 이렇게 처신을 못 하는 것을 보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사돈은 왜 아무 말도 안 하지? 내 딸이라면 어른을 잘 대하는 법을 가르쳤을 텐데.’
저는 안으로 찾았습니다. ‘며느리가 몇 년간 진상을 듣지 않은 주요 원인은 바로 중국공산당(중공)이 일으킨 이 박해, 주입된 무신론적 거짓말과 중공의 연좌 정책, 그리고 우리가 역사 속에서 맺은 원한 때문이다.’ 저는 우리 사이에 어떤 인연 관계가 있든 제가 이번 생에 대법을 수련했으니 사부님께서 “대법은 연원(淵源)을 모조리 풀어 가누나”(홍음2-대겁을 풀다)라고 하신 것을 생각했습니다. ‘왜 나는 그들이 입고 싶은 대로 사 입고, 먹고 싶은 대로 사 먹는 것을 보며 마음이 흔들려야 하는가? 이것은 질투심, 불공평한 마음, 억울함, 탐욕, 밖으로 찾는 마음이 아닌가? 이 마음들이 나인가? 아니다, 나는 원하지 않는다! 멸하자. 정념을 발해 철저히 멸하자.’
저는 법공부 중에 깨달았습니다. ‘인간 세상의 모든 것은 쓰레기인데 또 무엇이 좋고 나쁘다고 나누며 다툴 것이 무엇인가.’ 제 관념이 바뀌자 마음도 그렇게 괴롭지 않았습니다.
위챗 삭제
저는 휴대폰 안전에 매우 주의를 기울입니다. 평소 법공부 모임이나 수련생의 집에 갈 때 휴대폰을 가져가지 않습니다. 저는 예전에는 구형 휴대폰(2G폰)을 사용했는데, 사부님께서 휴대폰이 도청기라고 말씀하신 후로 휴대폰 안전에 더욱 주의했습니다. 수련생이 우리집에 올 때 저는 즉시 휴대폰을 안전한 곳에 두었습니다.
아들 집에 와서 아이를 돌보면서 아들이 새 스마트폰을 사주면서 아이의 이유식을 만들 때 필요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위챗도 깔아주고 ‘샤추팡(下厨房: 요리 앱)’도 다운로드해 주었습니다. 저는 종종 가정 요리를 배우고 싶어 했고 시간이 날 때마다 보고 싶어 하며 시간을 많이 낭비했습니다. 어린 손녀도 안에 있는 짧은 동영상을 보려고 다투었고 못 보게 하면 울고 소란을 피웠습니다. 제 위챗은 가족과 언니와 연락하는 데만 사용했습니다. 언니는 몇 년간 몸이 좋지 않아서 제가 자주 전화했는데 언니는 “왜 위챗으로 안 하니? 돈도 안 들고 사람 얼굴도 볼 수 있는데”라고 말했습니다.
명혜망에는 위챗 삭제에 대한 수련생들의 글이 자주 올라옵니다. 저도 삭제하고 싶었지만 아들과 며느리가 이해하지 못할까 봐, 또 언니가 걱정되어 계속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며칠 전 명혜망의 또 다른 글을 보았습니다. 한 지역의 수련생들이 위챗으로 연락하다가 40여 명이 납치됐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수련은 너무나 엄숙하다. 정법이 이미 최후의 최후에 이르렀는데 사람의 것은 내려놓아야 한다. 명(名)·리(利)·정(情)이 아닌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즉시 위챗을 삭제했고 안에 있는 불필요한 것들을 모두 삭제하고 인터넷도 껐습니다.
이틀 후 아들이 아빠와 영상 통화를 하려 하자 제가 위챗을 삭제했다고 말했습니다. 아들은 왜 삭제했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이 앱은 좋지 않아. 수련생들에게 문제가 생겼어”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은 “그럼 큰이모와는 어떻게 연락하실 거예요?”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일이 있으면 전화하면 돼”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은 제가 위챗을 삭제한 일을 언니에게 말했고 조카딸이 언니 휴대폰에 아들의 위챗을 추가했습니다. 며칠 후 아들은 자신의 휴대폰을 들고 “큰이모와 며칠 연락을 못 했으니 영상 통화하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언니와 잠시 이야기한 후 어린 손녀가 동영상을 보려 하자 제가 “할머니 휴대폰에는 아무것도 없어”라고 말했습니다. 손녀는 “못 보겠네. 할머니 휴대폰에 아무것도 없네”라고 말했습니다.
내려놓지 못할 때는 매우 어렵게 느껴지지만 진정으로 내려놓았을 때는 매우 가볍습니다. 정법은 정말로 최후의 최후에 이르렀습니다. 우리 모두 손을 맞잡고 사부님의 말씀을 듣고 세 가지 일을 잘하며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갑시다.
(제22회 명혜망 중국법회)
원문발표: 2025년 12월 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12/2/503154.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5/12/2/503154.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