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한국 수련생
[명혜망]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올해로 만 40세이며, 고등학교 1학년 때인 2001년 법을 얻어 수련을 시작한 후, 대학교 2학년 때인 2005년 말에 수련을 중도 포기했고, 이후 무려 17년의 허송세월을 보내고 2023년 다시 수련의 길로 돌아온 젊은 대법제자입니다.
다시 수련할 수 있게 기회를 주신 자비로우신 사부님께 감사드리며 저의 수련 과정을 보고드리고자 합니다.
1. 법을 얻다
중학교 때 저는 공부를 멀리하면서 운동과 게임에만 몰두했고, 특히 당시에 유행했던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에 중독되어 잠자기 전 게임을 하지 않으면 아쉬워 잠을 못 잘 정도였습니다. 당시 부모님께 늘 듣던 잔소리가 “책 좀 봐라, 공부 좀 해라”였습니다.
이후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원래부터 해왔던 태권도로 진로를 정하고 야간 자율학습이 없는 실업계 고등학교로 진학을 했는데, 진학한 학교의 특별활동 수업 중에 파룬궁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저도 모르게 이끌려 수많은 특별활동 수업 중 파룬궁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책과는 담을 쌓았지만 이상하게도 대법 서적은 읽고 싶어 당시 수련생이었던 학교 선생님이 법공부하라는 말을 하기도 전에 자발적으로 근처 서점에 가서 전법륜과 사부님의 각지 설법집을 구매해 고등학교 3년 간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법학습을 최대한 많이 하기 위해 여가시간의 대법 책 읽기 외에도 왕복 2시간인 등하교 시간에 사부님의 9일 광저우 설법을 들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수련이란 집착심을 제거하는 과정이며, 수련인은 어디에서든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제가 학생이니 마땅히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게임을 끊고 마땅히 해야 할 학업을 열심히 하면서 매번 반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았고 자연스레 모범 학생이 되었습니다.
두 살 많은 형과는 항상 컴퓨터를 누가 더 많이 사용할 것인지를 놓고 다투었지만, 수련 이후로는 모두 양보해 이전과 같은 다툼이 없어졌고 우애 좋게 지내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충남에 있는 대학교로 진학한 후에는 그 지역에서 수련하시는 분들을 찾아가 함께 수련을 했고, 주말이면 전단지 나눠주기, 중국 동포 구명 운동과 혹형전 등 진상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짧았던 순간들이었지만 제게는 너무나도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좁은 식견과 흑백 논리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큰 우주 대법을 소법소도(小法小道)처럼 수련했던 것 같습니다.
생활 속에서 TV 드라마 한편을 보기라도 하면 당연히 갖춰야 할 수련인의 모습에서 벗어난 것 같아 정념이 약해지고 죄를 짓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2002년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월드컵에서 한국이 4강에 진출했는데, 저는 TV를 보는 것과 기뻐하는 환희심을 집착으로 여기며 월드컵도 보지 않았습니다.
아직 그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는데도 법학습을 통해 얻은 지식만으로 마치 제가 그 경지에 도달한 것처럼 착각하며 우쭐했던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2. 속인으로 떨어지다
대학생 시절에는 수련을 하면서 넘지 못한 고비가 있었는데, 그것은 자신을 느슨히 함에 따른 공허함, 적막감과 군입대 문제였습니다.
대학교 수업은 시간 조절이 가능해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이 남았지만, 저는 기회를 잘 활용하지 못했고, 온종일 법에 있는 상태에 도달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고민했습니다.
느슨해진 자신을 발견하면 커다란 공허함과 적막감이 밀려 왔고, 이어서 의기소침해져 점점 소극적으로 변하면서 저에게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나는 자격이 없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같이 수련하던 분에게도 자주 했던 기억이 납니다.
2005년 말 공터에 앉아 석양을 바라보는데, 수련이 너무나 어렵고 주변 친구들처럼 별 생각 없이 편하게 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받아들였던 그 순간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구세력의 배치가 너무나 명확했지만 당시에는 법학습을 느슨히 한 결과 정념이 부족해 그것을 부정하지 못했습니다.
때마침 군 입대를 위해 휴학하면서 자연스럽게 수련의 정체(整體)에서 멀어졌고, 서서히 속인의 염색 항아리에 빠져들었습니다.
수련이 흐지부지되어 자신을 단속하며 엄격히 요구하는 상태가 없어지니 오히려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갈수록 이기적인 마음, 손해 보지 않으려는 심리도 커졌습니다. 정말 수련해서 올라가는 것은 어렵지만 떨어지는 것은 금방이었습니다.
군 입대 몇 개월을 앞두고 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려는데, 당시 나와 있는 일자리는 6개월 이상 근무할 사람만 가능한 자리였습니다. 저는 6개월을 할 수 있다는 거짓말을 하며 일을 시작했고, 3개월째 월급을 받던 그날 사장님께 말도 하지 않고 일을 그만두어 큰 죄업을 지었습니다.
그 일이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응보가 뒤따랐습니다. 어느 날 초저녁부터 배가 아프기 시작해 3초에 한 번씩 콕콕 찌르는 통증이 다음 날 새벽까지 이어졌습니다. 통증이 너무 심해 사부님께 도움을 청하고 싶었지만 스스로 생각하기에 그건 너무나 염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새벽에 응급실로 갔다가 급성맹장염 진단을 받고 바로 수술을 했고 처음으로 병원에 입원을 했습니다.
3. 투기에 중독되다
군대를 제대한 후에는 사람의 인(人)마저도 지키지 못하는 현 조류에 휩쓸려 명리정(名利情-명예, 이익, 정)을 추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부터는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이 갈수록 커져 월급만으로 성에 차지 않아 주식 투자를 시작했습니다.
이후 주식은 제 삶에서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됐고, 저는 주식을 한순간도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주식을 매매하는 족족 손실을 보았고, ‘원금만 찾자’는 생각이 간절해지면서 차츰차츰 더 깊은 늪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시간이 길어지자 ‘이렇게 오랜 시간 손실을 보고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왔으니 이걸로는 안 된다’는 보상 심리가 점점 더 커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더 큰 수익을 기대하며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할 수 있는 종목에 눈독을 들이게 되었고, 급기야 가진 전 재산과 신용 한도 끝까지 담보대출을 받아 당뇨병 임상실험 3상이 곧 승인될 거라는 투기성 짙은 바이오 종목에 올인했습니다.
하지만 임상실험 실패라는 참담한 소식과 함께 주가는 이틀 연속 하한가를 기록했고, 결국 담보비율이 부족해 반대 매매로 파산 직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아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리고 싶다는 극단적인 생각이 들 정도였지만, 부모님께 무릎 꿇고 울며불며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려달라고 부탁해 겨우 파산을 면하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 저는 잠을 자려고 누워서 눈을 감을 때마다 제 빚과 부모님 집 담보의 빚이 제 가슴을 짓누르는 압박감에 오랫동안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러다 주식보다 더 무서운 것을 접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비트코인 가상화폐였습니다.
주식은 장이 열리고 닫히는 시간이라도 있는데, 이 무서운 것은 24시간 쉬지도 않고 돌아가며 상하한 제한이 없어 급등락 폭이 너무도 심했습니다.
저는 주식 잔고에 얼마 남지 않은 전 재산을 가상화폐로 옮겼고, 처음에는 운 좋게 30배의 수익을 거두어 부모님의 빚을 바로 상환했습니다.
큰 수익을 얻고 보니 사람의 간사한 마음이 올라와 ‘부채만 갚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탐욕이 끝까지 치솟았습니다.
10억에 가까운 돈을 쥐었지만 ‘여기서 한 번만 더 따블을 먹으면 20억이니 이후에 휴직하고 놀러나 다니자’는 탐욕스런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고, ‘그만하면 됐으니 나오라’는 주변 사람들의 조언도 귀에 들리지 않았습니다.
전법륜에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꼭 같았습니다. “그가 더욱 이기적일수록, 더 많이 점유하려고 생각하는데, 그는 우주의 특성과 더욱 어긋나며, 그는 곧 멸망을 향해 나아간다.”(전법륜)
결국 저는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하락 사이클에 올라타 모든 돈을 잃었으며, 어리석게 또다시 마이너스 통장에까지 손을 대면서 부채의 삶으로 되돌아가게 되었습니다.
4. 다시 수련의 길로 돌아오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목 디스크에 걸려 병원에 입원까지 하게 되니 ‘평생 이렇게 거동도 불편하게 살아야 하냐’는 절망감과 함께 인생의 허무함이 뼈저리게 다가왔고, 이 모든 것이 탐욕에 따른 인과응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밑바닥까지 곤두박질을 하고 나서야 과거에 수련했던 파룬궁이 간절히 생각났고 수련이야말로 진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2010년에도 다시 수련으로 돌아오려고 시도를 했지만 당시에는 도무지 정념이 생기지 않아 한 달을 지속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겪은 일들이 크다 보니 인생의 덧없음이 깊이 각인되었고, 대법의 가르침이 절실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마침 명혜망에 접속해 사부님께서 23년 9월에 발표하신 ‘대법수련은 엄숙한 것이다’ 경문을 보게 되었습니다.
“당초 당신이 걸어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미 생명으로 서약했기 때문이다. 나이가 많든 적든, 지나간 시일이 짧든 길든, 서약은 엄숙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신이 수련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 대법을 떠난 것이 초기이든 최근이든, 수련하든 수련하지 않든, 모두 서약을 실현해야 한다.”
“이런 사람에 대해, 慈悲(츠뻬이)로 사부는 다시 한번 또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법을 당신에게 말해주겠다. 어떻게 할 것인지 스스로 알아서 잘하도록 하라!”(대법수련은 엄숙한 것이다)
사부님의 말씀 중 “스스로 알아서 잘하도록 하라”는 말씀은 제게 너무나도 크게 와 닿았습니다.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는 이 못난 제자에게 아직도 기회가 있음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그래서 즉시 결심을 단단히 내리고 혼자서 9일 강의와 신경문 학습과 연공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한 달 동안 혼자만의 수련을 견지한 후, 근처 연공장을 찾아 다시 대법의 정체 속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수련을 하지 않았을 때도 제가 그릇이 안 되고 못나서 수련을 중도 포기했지만, 사부님과 대법은 가장 바르다는 생각과 공경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법 서적과 수련에 관련된 자료들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책장에 고이 보관해 두었기에 마지막 한차례 다시 들어올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수련으로 돌아온 후, 저는 법학습과 연공을 통해 스트레스 없는 평온하고 건강한 삶을 되찾았습니다.
10대 시절의 수련에서는 몸에 아픈 곳이 없어 수련의 초범적인 힘을 느끼지 못했지만, 업으로 가득 찬 성인이 되고 보니 목 디스크, 주기적인 편도염 등 좋지 않았던 부분이 자신도 모르게 사라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5. 가상화폐, 주식 중독을 끊다
수련을 다시 시작했지만 가상화폐와 주식에 대한 집착은 바로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사회 초년생 때부터 단 한순간도 놓지 않고 추구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투기에서 손을 씻는다는 것이 당시의 저에게는 마치 생사의 고비를 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최대한 움직이지 않고 이전처럼 수시로 사고팔지 않으면 되지 않나, 단번에 내려놓을 수 있다면 부처가 아닌가’라고 스스로 합리화를 하며 엄격히 요구하지 못했습니다.
예전보다 1/10 또는 그 이하의 수준으로 접속하는 빈도를 현저히 줄였지만, 완전히 끊어버리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던 사이 보유하고 있던 것이 어느 정도 회복되어 빚을 청산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빚을 갚고 나면 아무것도 남는 게 없고, 집을 마련해 정상적인 속인 사회의 형태에 부합해야 하니 더 복구될 때까지 기다려 보자’라며 교활한 마음을 놓지 않았습니다.
저는 수련으로 다시 돌아온 지 8개월이 지나도록 속인 사회에 부합한다는 핑계로 완전히 내려놓는 그 한 발을 내딛지 못한 채 곤혹스러워하며 지냈습니다. 어느 날, 단체 법학습 후 집에 돌아와 명혜망을 열었는데, ‘디지털 화폐에 관한 통지’라는 글이 보였습니다.
제목을 보자마자 마치 도둑이 제발 저린 것처럼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이 통지 글이 2018년 7월 5일에 작성된 글인데, 똑같은 글이 2024년 6월 9일에 다시 한 차례 올라온 것은 저에게 정말 마지막 기회를 주면서 진정한 수련인이 될 것인지 검증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통지글 내용 중 “대법제자는 참여해서는 안 된다”, “위반한 자는 난법이다”라는 부분을 읽으니 수련이 엄숙하며, 난법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순간 수련이 엄숙하며 법리에 어긋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진정으로 내려놓으려고 마음먹었을 때 온몸에서 열이 나는 것이 마치 그 집착된 물질이 죽기 싫어 마지막 발악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날 잠들기 직전까지 많은 고심을 한 끝에 모든 것을 정리하고 가상화폐 거래와 결별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디지털 화폐에 참여하면 난법이라는 명혜망의 경고 통지를 보고 내려놓은 것이지. 제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을 착실히 수련해낸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반도체 관련 업황과 기업 동향을 조사하는 일을 하고 있어 기업들의 실적과 주가 추이를 살피는 것도 업무의 일부이기에 주식을 자주 접하게 되었습니다. 약 2달 후, 디지털 화폐를 내려놓은 결심이 느슨해지고 주식이 자주 보이자 사람의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대기업에서 10년 넘게 근무했고 나이가 곧 40인데, 모은 재산도 거의 없이 6평 원룸에서 월세로 생활하는 건 맞지 않다’는 속인 식의 생각이 계속 올라왔습니다.
뒤이어 ‘속인 사회에 부합해야 다른 사람들도 수련인을 오해하지 않을 테니 돈을 미리 모아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좋은 기업에 투자를 하는 것이 나쁜 건 아니다’라는 자기합리화가 이어졌습니다.
‘빚 없이 욕심 부리지 않고 제가 가진 돈으로 사회에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좋은 기업에 투자해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다시 주식에 손을 대었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마음 한편이 뭔가 불편했고, 법학습과 연공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었습니다.
안 본다고 했지만 가끔 시세가 궁금해 ‘이건 아닌데’ 하면서도 시세창을 보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이건 수련인답지 않다, 이건 아니야, 나는 왜 이렇게 한심할까’ 하며 자책했고 그럴수록 정념이 약해졌습니다.
그 뒤 어느 날 꿈을 꾸게 되었는데, 꿈속에 시세가 폭등을 하고 있었습니다. 꿈에서 ‘어어~ 저거 타야 되는데? 왜 안 탔지?’하는 염두가 나오자마자 어느 샌가 그걸 산 제 자신이 보였습니다. 이후 주가가 치솟자 ‘옳지, 잘 샀구나’ 하며 주체 못할 흥분감을 느꼈지만, 기뻐하던 찰나에 모든 것이 터지면서 하나도 남김없이 영(0)으로 되어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 꿈을 통해 못난 제자를 한 차례 더 일깨워주신 것이었습니다.
이후 단체 법학습 교류 시간에 “법리상에서 명백해야 된다”는 한 수련생의 말이 제게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모든 것이 저의 진귀한 덕으로 바꿔온다는 것을 법리상에서 한 층 더 깊이 인식하게 되었고, 제가 비싸게 팔고 나온 주식을 다른 누군가가 사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선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마침내 주식을 모두 처분하고 나왔습니다.
며칠 뒤 호재가 터지면서 보유했던 주식이 상한가를 기록했지만, 그때 첫 일념은 “아, 정말 잘 정리하고 나왔다. 하마터면 나의 진귀한 덕을 돈으로 바꿀 뻔했구나”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스스로 법리상에서 깨닫고 실천 속에서 단련을 거치고 나서야 주식과 가상화폐, 재물과 이익에 대한 집착을 닦아낼 수 있었습니다.
6. 단체 수련 환경을 소중히 여기다
사부님께서는 정진요지 중에서 “사람은 마치 하나의 용기(容器)와도 같아 무엇을 담으면 곧 무엇이다”(정진요지-법 중에 용해되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평소 회사 일을 마치고 나면 하루 종일 온갖 속인의 것을 접했기에 정념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단체 법학습 장과 단체 연공장이 제게는 너무나 소중했습니다. 특히 평일 두 차례 단체 법학습은 정념을 확고히 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퇴근 후 쉬고 싶어하고 가기 싫어하는 갖가지 염두가 수시로 올라왔지만, 그럴 때마다 “나를 때려죽여도 나는 법학습 장에 꼭 가겠다”라는 일념을 확고히 하니 더는 사상 교란이 없었습니다. 가기 전까지 배가 아프다가 법학습 장에 도착하면 증상이 사라지는 경험도 몇 차례 했습니다.
현재는 주말과 휴가를 오롯이 홍법과 진상에 할애하며 미력하나마 정체에 도움이 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저의 이런 마음을 보시고 짧은 시간이지만 크루즈 진상, ‘마싼자에서 온 편지’ 영화 상영회 사회, 션윈 공연 버스 경호 및 스탭, 7·20 행사 인터뷰 등 다양한 항목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런 항목 하나하나에는 모두 내키지 않아 하거나 두려워하는 등의 각종 마음을 닦아내고 인내심을 키우는 요소들이 녹아 있었습니다. 매 순간이 수련의 과정이었고, 이는 모두 단체 법학습, 단체 연공 등으로 정체에 참여했기에 얻을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맺음말
이제 수련으로 다시 돌아온 지 3년 차이고, 아직 닦지 못한 과시심, 안일심, 색욕심, 환희심, 원망심 등 각양각색의 마음이 많고 수련이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많은 수련생 앞에서 저의 부끄러운 과거를 폭로하는 심득 체험을 발표하는 것은 저의 교류 문장을 통해 주식과 가상화폐, 부동산 등 재물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지 못하거나, 수련을 떠나 계신 분들이 다시 대법 수련으로 돌아오는 데 미약하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저는 현재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가는 데 대해 조급함을 느끼고 있고, 지난날의 과오를 자책하는 마음, 허비한 시간에 대한 아쉬움 등을 가지고 있지만, 이 또한 집착으로서 내려놓아야 할 부분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사부님께서 “정법 이 일이 아직 결속되지 않았는바 여러분을 놓고 말하면 모두 아직 다시 잘 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 박해가 하루 끝나지 않으면 그 하루가 바로 기회이다”(북미순회설법)라고 하신 법을 마음에 간직하고 매 하루를 감사히 여기며 남은 길을 잘 걸어가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수련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경청해 주신 수련생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2025년 한국 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5년 11월 2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11/24/502905.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5/11/24/502905.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