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아래는 제가 대법을 수련한 후 겪은 몇 가지 이야기와 심득체험입니다. 솔직히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수련 과정의 일은 수련하지 않는 분들이 그 심경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고, 제가 수련을 아주 잘했다는 의미도 아니기 때문입니다(제게는 실제로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오히려 저보다 훨씬 잘하면서도 묵묵히 정진하는 수련생들에 비하면 이런 일들은 내세울 만한 것이 못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는 너무나 훌륭하며, 사람에게 선(善)을 가르치고 마음의 때와 먼지를 씻어줍니다. 저는 더 많은 선량한 세상 사람들이 이 점을 깨닫고 세상을 속이는 거짓말을 믿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더 많은 분이 파룬따파의 아름다움과 비범함을 알도록 이 글을 씁니다.
1. 대법을 수련하니 가정이 화목해져
저는 파룬따파를 수련하지만 남편은 수련하지 않습니다. 맞선 볼 때 저는 그에게 제가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사실과, 이로 인해 저와 가족이 박해받았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털어놨습니다. “나이가 적지 않으시니 만족스러운 인생의 동반자를 찾으실 텐데, 그래서 당신께 제 신앙에 대해 책임감 있게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이 신앙 때문에 불확실한 상황에 놓일 수도 있습니다. 집에 돌아가셔서 부모님께 꼭 말씀드리고, 만약 부모님께서 반대하시면 저희 관계는 더는 진행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사실 저처럼 그도 막 출장에서 돌아와 체면상 맞선에 나온 터라 무척 지쳐 보였는데, 제 말을 듣자 갑자기 길가의 가로등에 불이 켜진 듯 얼굴이 환해졌습니다. 그는 “직장에서 파룬궁수련생을 만나본 적이 있는데 아주 좋은 분들이었어요. 특히 이익을 놓고 다투지 않더군요. 그건 개인의 신앙일 뿐이니 저는 아무렇지 않습니다. 집에 가서 가족에게 말씀드릴게요”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인연이 있는 사람이라 생각해 저는 그에게 파룬궁의 진상을 많이 알려주었습니다. 뜻밖에도 그가 집에 가서 제 상황을 이야기하자 시부모님 두 분 모두 적극적으로 지지해주셨습니다. 본래 겁이 많으신 시어머니께서는 파룬궁이 아주 좋다며, 예전 동료도 연공했는데 아팠던 몸이 다 나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박해가 무섭지만 않았다면 동료의 권유를 듣고 함께 연공했을지도 모른다고 덧붙이셨습니다. 과거에 박해받은 경험이 있으신 시아버님은 문제를 비교적 명확히 보셨고, “그건 개인 신앙이니 괜찮다”라고 바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인연이 닿아 저와 남편은 결혼하게 됐습니다.
결혼 후 저는 늘 대법의 요구에 따라 자신에게 엄격했습니다. 시어머니에게는 형제자매가 네 분인데, 아주 가깝게 지내며 자주 왕래했습니다. 어른들께서는 까다롭게 배우자를 고르던 남편이 늦은 나이에 대체 어떤 며느리를 얻었는지 몹시 궁금해하셨기에, 자주 모임을 가지며 은근히 저를 살피셨습니다. 저는 특별히 의식하지 않고 ‘어디를 가든 나는 대법제자이니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행동하고 모든 친지에게 선하게 대하며, 무슨 일이든 다른 사람의 편의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시간이 흐르자 시어머니는 저에 대한 칭찬을 자주 들으셨습니다. 모두들 시어머니는 복이 많다며, 교양 있고 부지런하며 마음씨 착한 며느리를 얻었다고, 일도 잘하고 인품도 좋으며 가정도 잘 돌본다고 칭찬했습니다. 시어머니도 기뻐하시며 시누이에게 늘 “너도 올케를 보고 배워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결혼하고 몇 년간 저는 시댁과 어떤 갈등도 없었습니다. 무슨 일이든 항상 시부모님, 시누이와 그 남편, 그리고 어린 조카의 편의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이익 앞에서는 언제나 양보했고, 항상 예의 바르고 공손했으며, 짜증 내는 일 없이 늘 웃는 얼굴로 대했습니다. 시댁 식구들도 모두 인의가 깊어 서로 즐겁게 지냈고, 모두 대법을 아주 좋게 인정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아이가 태어난 후 저는 남편에게 “부모님 연세도 많으시고 어머님은 뇌수술까지 받으셨는데, 우리 아이는 우리가 직접 키우는 게 어떨까요?”라고 제안했습니다. 효심 깊은 남편은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월급으로 산후도우미와 보모를 고용했습니다. 산후조리 기간에는 산후도우미가, 그 후에는 낮에는 보모가, 밤에는 저와 남편이 아이를 돌봤습니다. 힘들기는 했지만 부모님께서 고생하실 필요가 없었고, 직접 아이를 키우니 아이의 심리 변화를 더 잘 이해하고 소통도 원활했습니다. 또한 양육의 어려움을 겪어보니 어른들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됐습니다. 당시만 해도 저희 지역에서는 아이를 노인이 돌봐주는 것이 당연한 풍습이었습니다. 특히 외할머니나 친할머니가 손주를 돌보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고, 심지어 돈을 보태주면서까지 돌봐주다가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원망을 듣기도 했습니다. 저는 ‘나는 대법제자이므로 변이된 세속 관념을 따라서는 안 되며, 진정으로 노인을 공경하고 배려해야 한다. 고생이 두려워 아이를 직접 키우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의 이런 행동에 시어머니는 무척 감동하셨고, 시어머니의 형제자매들도 시어머니를 아주 부러워했습니다. 사실 수련인에게 고생은 좋은 일입니다. 아이를 직접 키우는 과정에서 저는 많은 사람 마음을 없앴고 더 너그럽고 침착해졌습니다. 그리고 아이도 어린 수련생으로서 아주 어릴 때부터 저와 함께 사람을 구하는 길에 나섰습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덕분에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2. 일터에서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고 자신을 제고하다
저는 1999년 초부터 직장 생활을 시작했는데, 그해 7월 중국공산당(중공) 악당이 국가기구를 동원해 파룬따파를 박해하기 시작하면서 저는 직장에서 모든 이의 주목을 받는 신입사원이 됐습니다. 입사 후 반년 동안, 저는 내성적이고 말주변이 없었지만 사부님께서 ‘전법륜(轉法輪)’에서 가르치신 대로 이익 문제로 다투지 않았고, 제 책임 범위가 아닌 업무라도 맡은 일은 성실히 수행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제 단점을 지적하면 신중히 바로잡았고, 저를 싫어하는 동료를 포함한 모든 이를 선하게 대했습니다. 그 덕분에 7월 이후, 용기 있는 많은 동료가 저를 찾아와 격려하며 “당신을 보니 파룬궁이 좋다는 걸 알겠네요. 몸조심하세요”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군에서 제대하고 발령을 기다리며 저희 부서에서 임시 주임으로 일했던 한 동료는 나중에 시 공안국 형사대 소속이 됐습니다. 한번은 그가 동료들을 보러 왔다가 제게 특별히 말했습니다. “저도 파룬궁수련생들을 노동수용소로 보내라는 지시를 받은 적이 있는데, 당신을 생각하며 그분들에게 잘 대해주었습니다.” 저는 “감사합니다. 대법제자를 선하게 대하면 복을 받으실 거예요. 하지만 그런 일에 가담하지 않으시면 당신께 더 좋을 겁니다”라고 답했습니다.
해고된 후 회사와 소송하게 돼 증거 수집차 저를 찾아온 직원도 있었습니다. 저는 사실을 그대로 이야기해주었습니다. 당시 저도 담당자 중 한 명이었기에 사실은 그 직원에게 유리했지만, 저 역시 책임을 져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가 “어쩌죠? 당신도 책임을 져야 할지 모르는데요”라고 걱정했습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잘못은 잘못한 것이고, 사람은 자신의 잘못에 대해 응당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세요. 저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당신에게 이로운 일이면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잠시 후 “됐습니다. 큰 손실도 없는데, 당신이 연루되는 걸 차마 볼 수가 없네요. 당신은 너무 착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의 진심 어린 말을 기억합니다. 사실 저와 그는 업무상 인수인계 외에는 거의 대화를 나눈 적이 없는 사이였습니다. 그 후 저는 회사에 관련 업무의 문제점과 직원에게 불공평했던 상황을 선의로 알리고 정보의 출처를 보호해주었으며, 회사는 그 부분을 개선했습니다. 만약 대법이 제게 당당하게 좋은 사람이 되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았다면, 내성적이고 신중하며 실수하기를 꺼렸던 당시의 신입사원이었던 제가 일을 이처럼 원만히 처리하지도, 책임져야 할 상황에서 이토록 떳떳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어느덧 정년을 앞둔 나이가 됐습니다. 지난 직장 생활을 돌이켜보면 보수나 직위 때문에 상사와 갈등을 겪은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늘 묵묵히 노력하고 부족한 점을 채웠습니다. 회사에 좋은 업무 조건이 생기면 동료들이 먼저 쓰도록 양보했고, 제가 급히 필요한 것은 직접 마련했습니다. 업무에 필요한 장비, 데이터, 기술 등을 회사가 구매할 여건이 안 되거나 예산이 부족하면, 제 능력껏 사거나 무료 자원을 찾고 독학으로 해결했습니다. 다른 부서 동료들(심지어 잘 모르는 동료들까지)이 저를 안타까워하며 바보 같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회사 돈으로 해야 할 걸 왜 당신 돈으로 해요? 없으면 안 하면 그만이지! 다른 사람들은 다 그렇게 하는데, 당신은 돈까지 써가며 일을 사서 하네요.” 하지만 저는 늘 ‘나는 수련인이자 대법제자이므로 개인의 이해득실을 따져서는 안 된다. 일을 더 잘하기 위해 내 선에서 감당하는 것이 뭐 그리 대수로운 일이겠는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게는 일을 잘 해내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주무 부서에 보고 자료를 제출하러 갔는데, 평소 우리 부서 동료들이 무서워하던 상사가 마침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녀는 몹시 바빠 보였고, 저는 옆에서 조용히 기다렸습니다. 한참 뒤에야 고개를 들어 저를 본 그녀는 갑자기 무척 반가워하며 친절하게 업무를 처리해주었고, 다정하게 안부를 묻기도 했습니다. 저희 회사 상사도 제게 “그 사람 성질이 워낙 고약해서 나도 상대하기 싫어하는데, 한번은 내게 전화해서 자네를 칭찬하더군. 대체 뭘 어떻게 한 건가?”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미소만 지었지만, 마음속으로는 사부님께서 제게 어떤 일을 만나든 참고, 갈등을 만나면 먼저 안으로 찾으라고 가르쳐주셨기 때문임을 알았습니다. 예전에 그 상사와 고객 사이에 끼어 기술 방안을 여러 차례 수정해야 했을 때, 저는 늘 이 원칙에 따라 마음을 가라앉히고 제 자신에게서 부족한 점을 찾았습니다. 짜증 내지 않고 평온한 태도를 유지하며 양측의 어려움을 헤아리려 노력했는데, 아마 그런 저의 업무 태도가 결국 그녀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 같습니다.
또 한번은 어떤 회사에 지원했는데, 그곳에서 경력 조회를 한다고 해 이전 직장 사무실 전화번호를 인사팀에 알려주었습니다. 조회 후 인사팀 직원이 제게 말했습니다. “이전 직장 사무실 주임께서 당신에 대해 좋은 말씀을 아주 많이 해주셨어요. 계속 칭찬하시면서 이 언니를 정말 잘 대해달라고 신신당부하셨습니다.” 사실 저는 새로 부임한 그 주임과 전혀 친분이 없었고, 아마 전임자에게서 제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녀의 전임자와도 그다지 친하지는 않았지만, 제가 퇴사할 때 그분은 무척 아쉬워하며 “정말 아깝다, 계속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비록 서로 잘 알지 못하는 사이라도 대법제자가 대법의 요구에 따라 자신을 단속하는 행동이 가져오는 아름다움을 선량한 사람들은 모두 보고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원문발표: 2025년 10월 1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10/10/50041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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