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서적 |

만고의 기회를 소중히 여기며 정진하여 착실히 수련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어려서 부모님이 이혼하셔서 가정의 따뜻함을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었습니다. 성인이 된 뒤에는 따뜻한 시댁을 만나 따뜻한 가정을 이루고 싶다는 생각만 했습니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니 생각과는 달리 잘 풀리지 않았습니다. 시어머니는 저희 부부에게 따로 살라고 하셨고 남편에게 이혼을 강요하기까지 했습니다. 저는 절대로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아들이 저의 길을 그대로 걷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들이라도 온전한 가정에서 자라나길 바라는 마음에 자신을 억누르고 참고 또 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1. 원망심을 없애다

아들은 특히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서 밥을 먹고 싶어 했지만, 할아버지, 할머니는 아이에게 한 번도 밥을 먹여주신 적이 없고 대부분 “너희 집에 가서 먹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제 마음은 정말 쓰리고 괴로웠습니다. 어느 집 할아버지, 할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실까 싶어 도무지 믿기지 않았습니다. 저희 관계는 한동안 아주 긴장되었습니다. 제 마음은 너무 힘들고 고단해서 점점 의욕을 잃고 하늘을 원망하고 땅을 원망하며 ‘왜 내 팔자는 이렇게 고생스럽기만 하지’라는 생각으로 가득했습니다. 저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짐을 싸서 나와버렸습니다. ‘평생 다시는 시댁 식구들 얼굴은 안 볼 거야, 내가 못 당하겠으면 피하면 되지.’ 이렇게 원망이 제 공간장(空間場)을 가득 메웠습니다. 결국 시댁의 세 시누이가 시집을 갈 때도 저는 얼굴 한 번 비추지 않았고, 시댁 식구들과는 물과 불처럼 완전히 원수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대법을 수련한 후 저는 생각했습니다. ‘나는 수련생이니 반드시 사부님 말씀을 따라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분명히 부모님께 효도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시어머니도 부모님이시니 잘 모셔야 하고, 저는 진선인(眞·善·忍)으로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하며 시부모님께 효도해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저는 먼저 시댁에 가서 시부모님께 직접 사과드리고 안부도 살폈습니다. 시부모님께서 저를 외면하셔도 저는 안으로 찾았습니다. ‘내가 선한 마음이 아직 부족해서 시부모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는구나.’ ‘이것은 전생의 업력(業力)으로 인한 것은 아닐까? 이런 방식으로 빚을 갚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어찌 됐든 시댁 식구들은 저에게 인연이 있는 분들이니 저는 두 배로 더 잘해드려야 한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우리집 땅에 새집을 지은 뒤 시부모님을 모시고 함께 살게 되니 훨씬 편해졌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하면 먼저 시부모님께 가져다드리거나 함께 드시라고 권해드렸습니다. 시누이들이 부모님을 뵈러 오면 저는 정성껏 맞이해 도와주었습니다. 이렇게 계속 노력하다 보니 시댁 식구들과의 관계가 예전처럼 회복되었습니다. 시아버지께서 다른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맏며느리는 파룬궁(法輪功)을 수련한 뒤부터 딸들보다도 나에게 더 잘한다네.”

저는 시아버지께 ‘전법륜(轉法輪)’을 읽어보시라고 권해드렸습니다. 그러자 시아버지께서는 꿈에서 사부님께서 거실에 오셔서 저와 말씀하시는 모습을 보셨다고 하셨습니다. 시아버지께서는 “사부님은 키가 크고 매우 잘생기셨으며 인자하고 자애로우셨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이렇게도 말씀하셨습니다. “참 이상하다. 내가 반달 동안 설사를 했는데도 아무 이상이 없었고, 먹고 마시고 놀아도 괜찮고 몸이 아주 가벼워졌어.” 저는 시아버지께 말씀드렸습니다. “그건 시아버지께서 ‘전법륜’을 보셨기 때문에 사부님께서 몸을 조절해주신 것입니다. 일반적으로라면 벌써 탈수가 되었을 겁니다. 사부님께 감사드리셔야 합니다!” 시아버지께서는 “사부님, 제 몸을 정화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족들은 제가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한 뒤 완전히 새사람으로 변한 것을 보고 감동했습니다. 시어머니와 세 시누이, 그리고 시누이의 남편 까지 차례로 대법 수련의 길에 들어왔습니다. 나중에는 제 남편도 대법을 얻어 수련하게 되었습니다.

2. 수련생이 난관을 넘도록 돕다

2003년, 다른 지역의 한 젊은 수련생(보도원)이 베이징에 가서 대법을 수호하러 갔다가 천안문에서 악질 경찰에게 갈비뼈 세 개가 부러지는 박해를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는 좋은 직장까지 잃게 되었고 그의 부모님은 병원을 찾아다니며 치료비로 수십만 위안을 썼지만, 매달 여전히 약값으로 800~900위안이 들어갔습니다. 이 수련생은 고통으로 거동할 수도, 자신을 돌볼 수도 없었고, 밥을 먹어도 토해내기 일쑤였으며, 당연히 연공도 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우리 지역의 협조인 수련생이 그를 이쪽으로 데려와 도와주자고 하며 방을 얻어주려 했는데, 그 수련생은 경제적 수입이 전혀 없으니 생활은 어떻게 할까 하는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저는 시어머니와 남편과 상의해 그 수련생을 우리집으로 데려와 제가 돌보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매일 시장에 가서 신선한 재료를 사와서 최대한 맛있는 음식을 해줬고, 사부님 설법 녹화 영상을 틀어 함께 보았습니다. 시어머니, 남편, 그리고 저희 법공부팀의 수련생들이 함께 그 수련생과 법을 공부하고 교류하며 도와줬습니다. 그러자 그 수련생은 점차 법리에 대해 머리가 맑아졌고 몸도 빠르게 회복되어 저희와 함께 연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28일이 지난 후 그 수련생은 건강을 회복하여 스스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3. 두려움을 없애다

저는 원래 아주 겁이 많고 무슨 일이든 두려워하는 사람이었습니다. 1999년 7.20 이후 중공(중국공산당)의 박해가 시작되자, 저는 대법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구류, 판결, 강제노동 등 박해를 겪었습니다. 처음으로 수련생과 함께 홍법과 진상을 알리러 나갔다가 진상을 모르는 사람에게 신고당해 파출소에 끌려갔던 일이 기억납니다. 그때 저는 몸이 저절로 덜덜 떨려 도무지 멈출 수 없었습니다. 함께 간 수련생은 경찰에게 진상을 알렸지만, 저는 한마디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그 파출소 소장은 제 친척이었는데도 조금의 정조차 보이지 않고 사람들을 데리고 우리집을 수색해 모든 대법 서적과 자료를 모조리 빼앗아 갔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소장은 인과응보를 받았습니다. 외동딸이 스물다섯 살에 수영장에서 불행히 익사해 버린 것입니다. 또 저희를 신고한 그 사람도 마흔이 조금 넘은 나이에 갑자기 병으로 죽었습니다. 고작 몇백 위안의 신고비 때문에 자기 목숨까지 내놓은 셈이었습니다.

이후 구류소에서 심문을 받을 때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경찰이 저를 매달아 수갑을 채웠는데, 두 손을 창밖의 스테인리스 난간에 수갑으로 묶어 놓아 발끝으로만 겨우 버틸 수 있었습니다. 여경이 “너 말 안 할 거야? 소장실에서 산 전기봉이 있는데 맛 좀 볼래?”라고 협박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갖고 와도 안 통할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정말로 전기봉을 가져왔지만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수갑도 풀렸습니다. 구류소에 있는 동안 사부님께서 줄곧 저를 격려해주셨고 신기한 일도 많이 일어났습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보호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13년 저는 검은 소굴 같은 노동수용소에서 집으로 돌아왔지만 두려움의 물질은 여전히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습니다. 2015년 장쩌민(江澤民)을 고소할 때 또다시 두려움의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두려운 것은 내가 아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지막에는 수련생들의 도움 덕분에 저는 두려움의 마음을 이겨내고 장쩌민 고소 대열에 동참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반드시 두려운 마음을 없애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양의 법을 배우고 법을 베끼며, 법을 외우고 통독을 병행하며 정진했습니다. 늘 ‘홍음2-두려울 것 뭐냐’의 구절을 외웠습니다. “당신이 두려워하면 그놈은 붙잡을 것이요 생각이 바르면 사악은 무너지리라 수련하는 사람은 법을 간직하고 있다네 정념을 발하면 썩은 귀신 터져버릴지니 신이 세상에서 법을 실증하고 있음이로다”. 정각이 될 때마다 발정념을 하며 두려움을 뚫고 나갔습니다. 결국 2018년 이후에는 사부님께서 저의 두려움이란 물질을 없애주셨습니다.

이후 파출소 경찰이 다시 집으로 찾아와도 저는 담대하게 맞설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 경찰에게 진상을 알렸습니다. 경찰은 저에게 파룬궁을 수련하지 않겠다고 서명하라고 했지만 저는 “서명할 수 없습니다. 서명하면 당신에게 좋지 않습니다. 저는 좋은 사람이 되고 건강을 위해 수련하는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그냥 돌아갔습니다. 저는 그 경찰에게 진상을 알리는 편지를 써 줘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며칠 뒤 그 경찰이 다시 우리집에 왔을 때 저는 진상 편지를 건넸습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읽어보고는 “좋습니다. 집에서 수련하세요”라고 말했습니다. 편지를 집에 가져가서 다시 읽으라고 했더니 그는 “이미 다 읽었으니 안 가져가도 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의 가슴에는 사악한 당의 뱃지가 달려 있었기에 저는 그에게 탈당하라고 권했지만, 그는 동의하지 않고 돌아갔습니다.

2024년에 또 새로 배정된 파출소 담당 경찰이 왔는데, 이번에는 사진 찍는 사람까지 데리고 우리집에 찾아왔습니다. 제가 방에서 막 나오자, 손녀가 “할머니, 휴대폰 가져오세요”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저는 휴대폰을 들고 바로 그들을 향해 사진을 찍었고, “여러분은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이름이 무엇인가요? 신분증을 보여주세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들에게 대법이 전 세계로 널리 전해지고 있다는 사실과 ‘천안문 분신자살 사건’이 조작된 거짓 사건이라는 등의 기본 진상을 알렸습니다. 그들이 돌아가려고 할 때 저는 이름과 휴대폰 번호를 적어달라고 했습니다. 손녀는 뒤따라가며 “앞으로 다시는 오지 마세요. 당신들을 환영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뒤로 지금까지도 그들은 다시 오지 않았습니다.

4. 사람을 구한 작은 이야기들

1) 우리 동네 버스정류장 옆에 작은 매점이 하나 있습니다. 저는 밤에 종종 그 매점 안에 진상 자료를 놓아두곤 했습니다. ‘9평 공산당’(공산당에 대한 9가지 평론)이 막 나왔을 때도 저는 그 책 한 권을 매점에 가져다 놓았습니다. 어느 날 가게 주인이 출근하면서 문을 열자마자 책을 발견하고 바로 들고 진지하게 읽기 시작했습니다. 아침 출근길에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한 청년이 가게 주인이 아침부터 책을 그렇게 진지하게 읽는 모습을 보고 물었습니다. “사장님, 무슨 책 보세요? 버스가 아직 안 왔으니 저도 잠깐 볼 수 있을까요?” 청년은 막 책을 받아 든 순간 버스가 도착했고, 그 책을 들고 그대로 버스를 타 버렸습니다. 가게 주인은 큰 소리로 “책! 책!”하고 불렀지만, 버스는 이미 떠나버렸고 주인은 아쉬운 듯 버스가 멀어지는 걸 바라봤습니다. 제가 출근길에 이 매점을 지나며 가게 주인에게 진상을 알리고 중공 탈당을 권유했습니다. 그는 흔쾌히 중공에서 탈퇴하겠다고 하시며 제게 “혹시 ‘9평’ 책이 더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다음 날 바로 책 한 권과 진상 자료를 다시 갖다 드리고 “자주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우세요. 재난이 닥쳐도 목숨을 지킬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가게 주인은 “고맙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2) 저는 수련생과 짝을 지어 직접 대면해 진상을 알리곤 합니다. 어느 날 저희 둘이 함께 버스를 탔습니다. 수련생이 옆자리에 앉은 분께 진상을 전하고 난 뒤 제게 자료가 있냐고 물어보셔서 저는 한 부를 줬습니다. 그때 제 옆에 있던 다른 한 분이 말했습니다. “저도 한 부 주세요.” 저는 자료를 건네며 여쭈었습니다. “선생님, 혹시 중공 당·단·대 조직은 탈퇴하셨습니까? 무신론을 믿는 당·단·대 조직에서 탈퇴하시는 겁니다.” 그러자 그분께서 “네, 탈퇴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다시 여쭈었습니다. “어떻게 탈퇴하셨습니까?” 그분은 “돈으로 했습니다. 글자가 적힌 돈을 자주 받아서 그걸로 탈퇴했고 몇 장은 따로 모아두었어요”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진상을 잘 아셔서 복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자주 외우세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장을 볼 때 진상 지폐를 사용합니다. 제 어린 손녀도 진상 지폐를 따로 모으고 있습니다. 진상 지폐는 정말 신통합니다. 다리가 없어도 수많은 집으로 전해질 수 있으니 말입니다.

3) 어느 날 시장에 갔다가 수련생 한 분이 그곳에서 아동복을 팔고 계셔서 잠시 가게에 들러 앉아 있었습니다. 그 수련생은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시아버님이 오래된 공산당원이셔서 진상을 자주 알려드리고 탈당을 권유했지만 좀처럼 동의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주 고집이 세신 분이라 늘 걱정이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마침, 그 시아버님이 가게에 오셨는데, 알고 보니 제가 아는 국장님이셨습니다. 저는 반갑게 “국장님, 안녕하십니까! 탈퇴하셨나요?”라고 여쭈었습니다. 그러자 국장님은 “나 진작에 퇴직했지”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퇴직이 아니라 탈당 말이에요!”라고 다시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아직 안 했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곧바로 “국장님은 이제 퇴직하셨는데 그 당을 계속 가지고 계셔서 뭐 하시겠어요? 그건 해롭기만 합니다! 제가 가명으로 탈당 처리해 드릴까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국장님은 “아니, 가명 말고 내 진짜 이름으로 하겠네!”라고 했습니다. 저는 “정말 잘하셨습니다! 행복하고 평안해지시길 바랍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국장님은 “그래, 고맙네”라고 했고, 저는 “저희 사부님께 감사드려야 합니다. 부디 아홉 글자 진언을 자주 외우셔서 재난을 멀리하시길 바랍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간단하게 탈당이 성사되었습니다. 사실 이 일은 며느리인 수련생이 오랫동안 진상을 알린 덕분이었습니다. 많은 대법 수련생 가정이 이런 식으로 서로 돕고 도와 가족들을 구해내며 각자 마음속의 소원을 이루어 왔습니다.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는 저 같은 소심하고 매사에 두려움이 많고 이기적이었던 사람을 마음이 평화롭고 남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무슨 일이든 먼저 남을 생각하는 사람으로 바꿔주셨습니다. 저는 이 만고의 기회를 소중히 여기고 사부님께서 거대한 감당으로 연장해 주신 이 소중한 시간을 헛되이 하지 않겠습니다. 더욱 정진하여 착실히 수련하고 처음 수련할 때의 상태를 반드시 되찾겠습니다.

 

원문발표: 2025년 7월 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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