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서적 |

어떤 관점에서 문제를 보는지가 아주 중요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수련생의 글 ‘사부님과 대법의 편에 서다’를 읽고 매우 공감했습니다. 사실 수련인의 전반 과정 역시 신사신법(信師信法)의 과정입니다. 우리는 모두 신사신법한다고 말하지만 진정으로 해내거나 고비를 돌파할 때, 신사신법에 에누리가 생깁니다.

최근에 되도록 빨리 수련을 끝내고 싶어 하는 생각이 드러난 수련생 두 명을 접촉했습니다. 이 수련생들은 스스로 좀 견지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비록 바른 면에서 교류했지만 아래의 몇 가지 관점으로 자신의 얕은 깨달음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첫 번째 관점: 수련함이 어떠한지 자신에게 묻는다면?

주변 수련생들에게 수련함이 어떠한지 물어보면 대부분 대답은 “안 돼요, 한참 부족합니다!”라고 합니다. ‘나는 꽤 잘 수련했고 별문제가 없다’라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다들 수련하는 사람이며 수련을 얼마나 했든 자신이 어떠한지는 알고 있습니다. 저로 말씀드리면, 사람마음이 강하고 관념이 많으며 공산당 문화가 심합니다. 예컨대 명성과 이익에 대한 마음, 과시, 질투, 원망, 자아에 대한 집착 등을 착실히 없애지 못했습니다. 내일 끝난다면 아직 표준에 도달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서약을 완수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요? 저는 어떤 모습과 신분으로 내일을 마주해야 할까요? 이렇다고 할지라도 시간을 금처럼 소중히 여기고 노력해 선두를 따라잡으며, 태만하지 않고 정진하도록 사부님께서 제게 기회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만약 우리가 사부님 편에서 생각하면 지금 끝나지 않은 것은 엄청나게 좋은 일이 아닙니까? 사부님께서 우리를 자비롭게 여겨주시고 중생에게 자비로우시며 기회와 시간을 줘서 우리를 잘 수련하게 하시고 중생을 구하게 하시는 게 아닐까요? 모든 일에서 사부님 편에 서고 대법의 편에 설 수 있다면, 이는 반드시 정진하는 사람임이 틀림없으며, 어떤 문제는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관점: 당신이 감당한 것은 사부님께서 대신 감당해주시는 것의 나머지 부분

많은 수련생이 ‘병업(病業)’ 고비를 돌파하지 못할 때는 한 가지 중요한 요소를 소홀히 했을 수 있습니다. 당신이 감당한 것은 이미 사부님께서 당신 대신 감당해주신 것의 나머지 부분입니다. 남은 부분은 자신이 꼭 직면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부님께서는 신경문 ‘험악(險惡)을 멀리하라’에서 “사부는 당신을 구하는 동시에 또 당신을 대신해 죄업을 감당하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온갖 방법을 대어 당신의 죄업을 상쇄해주고 있는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죄업을 감당하고 계시는 것은 물론, 나머지는 또 온갖 방법을 강구해 우리를 도와 죄업을 상쇄해주시려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마음으로 수련을 대하고 사람의 정에 입각한 방식으로 사부님 은혜에 감사드리려 합니다. 우리가 사부님께 빚진 난(難)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병업’ 가상이 자주 나타날 때, 처음에는 아주 확고한 태도였지만 며칠 견뎌도 변화가 없고 심지어 더 심해지자 믿음이 흔들려 ‘왜 이렇게 괴로운 거지?’, ‘사부님께서 날 상관하지 않으시는 건가?’라며 바르지 않은 염두가 생겨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사상업(思想業)이 틈을 타고 침입해 끊임없이 머릿속에 이런 염두를 넣습니다. ‘빨리 병원에 가보자! 병원에 가면 치료될 거야!’ ‘얼마나 아파? 주사를 맞으면 낫겠지!’ 등등, 이런 염두에 순응해 따라가면 정말 그 길을 걷게 될 수 있습니다.

저도 유사한 경험이 있습니다. 한번은 몸에 극심한 통증이 나타났고 연속 4~5일 밤 내내 아팠습니다. 그 며칠 동안 9킬로그램이 줄었고 도저히 버틸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가족들은 차를 찾아 친척이 잡아놓은 병원으로 절 데려갔습니다. 도중에 운전하던 친구가 갑자기 제게 법을 외우라고 일깨워줬습니다. 저는 그 친구와 알고 지낸 지 20년이 넘었고 그에게 진상을 알렸으며 그도 공산당 조직을 탈퇴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그의 입을 빌려 저를 일깨워주신다는 생각이 들어 법을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사부님의 ‘논어’부터 ‘전법륜’의 외울 수 있는 단락에 이르기까지, ‘정진요지’부터 다시 ‘홍음’까지, 아무튼 생각나는 대로 외웠습니다. 도중에 친구가 볼일을 보러 차에서 내렸고 저도 바람을 쐬고 싶어 뒷문으로 내렸습니다. 저를 부축하고 차에 탔었던 그는 깜짝 놀라 “어떻게 내렸어?! 안 아파?”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안 아프다고 했습니다. 법을 외우자 자신감이 돌아왔고 이 고비를 돌파했습니다.

주변에 또 한 수련생이 있는데 차에 부딪힌 후 허리가 부러져 침대에 누워 일어나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아들이 그에게 고약을 사주겠다고 하자 친구는 사와도 붙이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아들은 고약을 사 온 뒤 이 일을 잊어버렸습니다.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침대에서 장애인이 될까 봐 병원에 가볼 것을 권했습니다. 친구는 엉겁결에 12일이면 나을 거라고 말했는데 결국 12일째 되던 날 침대에서 내려와 걸을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반신반의하다 사부님의 일깨움으로 다시 믿음을 갖게 된 과정이고, 두 번째 이야기는 전 과정이 믿음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다시 돌아온 것(돌아오지 못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이고, 두 번째 이야기는 흔들리지 않는 정념, 대법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확고한 믿음입니다. 신사신법의 정도에서 보면 차이는 일목요연합니다.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이 우주 중에는 잃지 않으면 얻지 못한다는 이치가 있어, 당신에게서 전부 제거해 버릴 수는 없으며, 당신이 조금이라도 감당하지 않는 이것은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다.”

만약 우리가 이미 사부님께서 우리를 위해 대부분 감당해주셨고, 남은 요만한 시련은 반드시 스스로 돌파해야겠다고 생각한다면 반드시 돌파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렇게 생각하는데 어떻게 돌파하지 못할 수 있을까요! 이런데도 사람마음이 올라와 여전히 사부님께서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사부님께서 우리를 대신해 감당해주신 그 업의 빚이 얼마나 큰지 알지 못합니다. 우리 스스로 감당하도록 하신 것은 그 거대한 업의 빚에 비하면 아주 보잘것없습니다. 사실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가장 잘 알고 계시며 남은 요만한 것은 분명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한 점은 대부분 수련생 여러분께서 공감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약간의 깨달음이며 적절하지 않은 부분은 자비롭게 바로잡아주시길 바랍니다.

[편집자 주: 본문은 글쓴이 개인의 현재 인식에 따라 작성된 것이므로 수련생 여러분께서 서로 교류하고 ‘비학비수(比學比修)’ 하는 데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3년 9월 1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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