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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법회] 경찰을 찾아가 진상을 알리다

글/ 중국 동북 대법제자(수련생 정리)

[밍후이왕] 저는 1997년부터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수련 전에 심한 병고로 죽지 못해 살아가는 상황이었지만 수련 후 모든 병이 깨끗이 사라졌습니다. 지난 몇 년간의 조사정법(助師正法) 과정을 돌이켜보면 사부님의 보호와 대법의 법리 속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습니다. 다음은 지난 몇 년간 대법제자를 박해한 경찰과 접촉하면서 법을 실증하며 깨달은 과정을 사부님께 보고드리고, 수련생들과 교류하려 합니다.

첫 납치

2000년 10월 2일, 시 ‘610(파룬궁 탄압기구)’ 요원과 지역 경찰에게 파룬궁을 수련했다는 이유로 납치돼 현지 파출소로 끌려갔습니다. 당시 저는 ‘어떤 사악도 대법 책에 손을 댈 자격이 없다. 사부님, 도와주세요!’하고 청을 드렸습니다. 그러자 경찰들은 집안을 온통 뒤지면서도 오직 대법 책이 있는 곳에는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악인들이 진상 자료의 출처를 말하라고 강요했지만 저는 응하지 않았습니다. 당일 밤 저는 시 구치소로 이송돼 다음 날부터 본격적으로 심문을 받았지만 역시 응하지 않았습니다. ‘610’ 요원이 작성한 문서에 서명하라고 요구해도 서명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제가 어느 곳 치안을 어지럽혔나요? 증거가 어디 있나요?”라고 반문했습니다. 그들은 예상치 못한 저의 질문을 받고 당황해하며 멍한 상태가 됐습니다.

그때 구치소 부소장이 다가와 제 뺨을 때렸습니다. 저는 왜 사람을 때리느냐고 항의했습니다. 그는 “당신은 범죄자로 들어왔으므로 맞아야 해!”라고 말했습니다. 정의감이 가득한 저는 어떤 두려움도 없이 “나는 범죄자가 아니야. 합법적인 사람을 당신들이 납치해 거야”라고 엄숙하게 말했습니다. 저는 손가락으로 ‘610’ 요원을 가리키며 “날 때렸으니 당신들은 법 집행을 하면서 법을 위반한 거야. 내가 이곳을 나가면 당신들을 고소할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온종일 심문하고도 아무런 성과가 없자 화가 치밀어 저를 구치소 동쪽 경찰견 사육장으로 끌고 가서 2평짜리 개 우리에 감금했습니다. 그들은 이부자리 천을 모두 찢어 벗겨버린 후 속 솜만 바닥에 깔고 자게 했고, 식사와 대소변도 모두 그 안에서 하게 했습니다. 사악은 이런 식으로 대법제자를 모욕했지만 저는 흔들리지 않으면서 대소변은 반드시 밖에서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교외에 있는 구치소는 추수철이 지나자 유난히 모기가 많았는데 크기도 컸습니다. 저는 밤이면 모기에게 휩싸였고 쥐들도 극성을 부렸습니다. 저는 ‘나는 대법제자로 사악에 박해받고 있다. 내가 진 빚이 있다면 내 업력을 모두 흡수하라. 빚이 없다면 나에게서 물러나라’고 모기와 소통하면서 그 자리에서 꼼짝 않고 계속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모기가 전부 가버렸습니다.

저는 계속 생각했습니다. ‘나는 범죄자가 아니다. 나를 개 우리에 가두는 것은 대법제자에 대한 모욕이다. 소위 형법 제 300조를 들먹이며 치안을 방해했다고 모욕하고 있지만 치안이 방해된 장소도 증인도 증거도 없다. 그들이 날조한 죄명으로는 범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법 집행자인 그들이 오히려 법을 위반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개 우리에서는 밥 한 알,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겠다.’ 단식 5일 만에 저는 개 우리에서 구치소로 옮겨졌습니다. 결국 박해로 사경을 헤매던 저를 가족이 속인 방식으로 구출했습니다.

두 번째 박해

2001년 12월 세인에게 대법 진상과 제 마음을 전하려고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습니다. 일단 베이징에 도착한 후 대법제자가 진상을 알릴 좋은 장소라고 생각한 톈안먼 광장에 갔습니다. 또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실한 목소리가 어디에서 가장 잘 들릴 수 있을지 찾다가 금수교에서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적당한 장소를 발견한 후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정념을 발했습니다. ‘사부님, 제자를 도와주십시오!’ 저는 재빨리 금수교 중심 난간 기둥에 현수막을 걸었습니다. 텅 빈 머릿속은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곧바로 관광객을 향해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 우리 사부님은 결백하시다! 톈안먼 분신자살은 사기극이다!”라고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무장경찰과 사복경찰이 사방에서 달려들어 현수막을 빼앗고 주먹질과 발길질로 저의 외침을 막으려 했습니다. 그때는 맞으면서도 아픈 줄 몰랐고 더욱 기세 좋게 외치며 금수교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달려갔습니다. 결국은 그들에게 붙잡혀 차에 실려 베이징 옌칭구 구치소에 감금됐습니다. ​

며칠 후, 저는 직장 상사와 지역 파출소에 인계돼 구치소에 불법 감금됐고, 법적 절차 없이 노동수용소에 1년간 감금돼 박해당했습니다. 수용소로 끌려가는 길에 사부님께 구원을 청했습니다. ‘사부님, 저는 갈 수 없습니다.’ 결국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수용소에 감금되지 않고 다시 구치소로 돌아왔습니다.

박해 항의 단식 8일째 되는 날 심박동이 급격히 빨라지고 혈압 수치가 40까지 떨어졌으며, 신장 165cm에 체중은 35~40kg밖에 안 됐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도 매우 쇠약해 언제든지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구치소 측은 책임질 것이 두려워 병원으로 절 데려갔습니다. 저는 의료진에게 “저는 병이 아니라 고문 박해로 이렇게 된 겁니다. 만약 당신들이 강제로 약을 써서 생명이 위태로워지면 책임져야 할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의료진은 상관하지 않겠다며 가버렸습니다.

‘610’ 요원이 오더니 “뭐 하는 거야? 이런 식으로 나가려고? 어림도 없어!”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법리가 분명치 못했던 저는 빨리 나가려는 마음이 급했습니다. 그러자 그 틈을 탄 사악이 “당신 형수(함께 감금된 수련자)가 단식으로 다 죽게 됐어”라고 말해 가족 정으로 제 의지가 흔들리게 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불안했고 결국 구치소로 돌아오게 됐습니다. 그 후 1년간 노동수용소에 감금돼 박해를 당했습니다.

공안국에서 진상을 알리다

저는 불법적으로 노동수용소에 감금돼 박해받고 돌아온 후, 매일 많은 시간을 집에서 법공부와 발정념에 집중하면서 ‘왜 2년도 안 되는 사이에 두 번이나 중공(중국공산당)에 납치됐는지’ 안으로 찾았습니다. 그간 사악 앞에서 정의감은 넘쳤지만 법리가 뚜렷하지 못했음을 알았습니다.

끊임없이 법을 배우면서 깨달았습니다. ‘파룬따파는 정법이다. 난 대법 수련으로 혜택을 본 사람이다’,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경찰은 상부의 명령을 집행할 뿐 대법이 박해받는 진상을 모르고 있다.’, ‘정법이 끝났을 때 이런 악행을 저지른 공안, 검찰, 법원 등 관계자들은 도태될 텐데 얼마나 가련한가. 대법제자에게는 그들이 더는 속지 않도록 할 책임이 있다.’

조사정법을 위해,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저를 박해했던 경찰을 찾아가 진상을 알리기로 다짐했습니다. 먼저 ‘610’ 요원을 찾아갔습니다. 그는 처음에 저에게 말을 못 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배후에 있는 대법과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모든 사악한 요소를 제거한다’는 정념을 발하며 잠시 앉아 있다가 돌아왔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그가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그를 찾아가는 횟수가 많아지자 사무실에 다른 사람이 있으면 “저 사람들에게도 진상을 알리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처음에는 그 말에 무슨 의도가 있는지 몰라서 말하지 않다가 다시 생각해봤습니다. ‘나는 진상을 알리러 온 게 아닌가? 어떻게 사람을 골라서 진상을 알릴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직접 공안국에서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한번은 610 요원을 만나러 갔다가 그의 상사를 만나게 됐는데 그가 상사에게 진상을 알리라는 의사표시를 했습니다. 상사는 제가 말하는 진상은 듣지도 않고 “당신들, 해외 파룬궁수련자가 왜 전화로 욕을 하지!”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럴 리가요?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들은 욕을 하면 덕을 잃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절대로 욕을 하지 않아요. 뭐라고 욕을 했는데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귀신이라고 욕했어”라고 했습니다. 저는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당신은 염황(炎皇: 중국인의 시조로 알려진 염제와 황제)의 자손인가요? 아니면 마르크스의 자손인가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시 말했습니다. “공산당 선언 첫마디에 ‘유령, 공산주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고 했는데 그 유령은 무엇인가요? 중국에서 유령은 귀신 아닌가요? 귀신은 인간성이 없으므로 하는 일이 모두 악합니다. 당신이 마르크스 자손이 되면 수명이 끝날 때 귀신이 당신을 데려갈 겁니다.”

저는 또 이어서 말했습니다. “법을 집행하면서 위법행위를 해서는 안 됩니다.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들은 모두 법을 위반하지 않는 합법적인 사람들입니다. 헌법 제35조, 제36조, 제37조는 언론, 출판, 집회, 종교, 신앙, 출판, 행진, 시위는 모두 자유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인민 경찰은 인민을 위해 봉사하고 보호해야 하며, 선량한 사람을 박해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자 그 상사는 “못 이기겠군!”하면서 황급히 가버렸습니다.

파출소장들에게 진상을 알리다

지역 파출소장이 베이징에서 저를 구치소로 이송할 때 그에게 진상을 알렸습니다. 그는 잘 받아들이면서 몇 가지 질문도 했습니다. 그는 자주 구치소로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는 ‘톈안먼 분신자살’에 대한 진실을 알고 싶어 했습니다. “중공 사당이 누구를 박해하려 할 때 연극을 꾸미지 않으면 어떻게 사람들을 속일 수 있겠어요?” 그 외 몇 가지 사례를 더 말해줬습니다. “수련 전에 심장병, 뇌신경 장애, 부인과 등등 질병으로 고통받다가, 파룬궁 수련 후 얼마 되지 않아 모든 병이 깨끗이 사라졌어요. 사부님께서 저에게 두 번째 생명을 주신 것이죠. 그런 사부님께서 누명을 쓰셨는데 나서서 공정한 말을 하지 않을 수 있나요?”

나중에 그가 왜 늘 저를 보러 왔는지 알았습니다. 하나는 진상을 알고 싶어서고 다른 하나는 저에게 미안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우리를 베이징에서 이송할 때 한 수련생이 지혜롭게 도망치는 바람에 화가 난 그는 제 손에 수갑을 채워 자동차 왼쪽 문고리에 걸어 놓았는데, 수갑을 너무 조여 손목이 자색으로 변했습니다. 마침 그 모습을 함께 갔던 제 직장 상사가 보았습니다. 결국 파출소장이 저를 학대했다는 사실이 지역 사람들에게 알려져 그는 체면이 말이 아니었고 또 제게 미안했던 것입니다.

나중에 그 파출소장은 대법제자들과 자주 접촉하면서 많은 진상을 알게 되어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해 복을 받았습니다. 파출소장에게 잘못이 있을 때 문책당해 좌천되는 것이 일반적인 사례인데, 그는 진상을 깨달아 좌천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다른 부서 책임자가 됐습니다.

그의 후임으로 새로 온 파출소장은 곧바로 지역 경찰을 동원해 대법제자의 집을 찾아가 소란을 피웠습니다. 경찰이 우리 집에 찾아왔을 때 마침 수련생 몇 명이 함께 있었습니다. 저는 경찰들을 보고 “뭘 하는 사람들인가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지역 경찰이라고 밝히며 “당신 가족사진을 가져다 파일로 저장하려 합니다”라고 말하면서 물건을 뒤적거리며 침실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저는 그를 가로막으며 “우리 집에 들어와 함부로 뒤지는 것은 불법입니다. 제 친구라면 상관없지만 당신이 경찰 신분이라면 이는 위법행위입니다”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는 난처한 표정으로 밖으로 나가다가 문 앞에 이르러 “지금 집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요?”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당신은 친척이나 친구가 없나요?”라고 반문했습니다. 그는 또 “당신들 모임이 아닌가요!”라고 했고 저는 “모임이라니요?”라고 강경한 태도로 반문했습니다.

그를 문 입구까지 바래다주면서 그가 헛걸음질 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진상을 알리기로 했습니다. “도대체 왜 우리 집에 오셨나요?” “우리 상사가 당신 사진을 한 장 구해오라고 했어요.” “그건 안 됩니다. 도시 전체 사람들이 사진을 제출하는 것이라면 협조할 수 있으나 유독 제 사진만을 요구한다면 그건 안 됩니다. 만약 당신에게 제 사진을 드리면 당신에게도 좋지 않아요. 박해가 끝나고 진상이 밝혀지는 날, 당신들이 우리를 박해한 증거가 됩니다. 그럼 제가 당신을 함정에 빠뜨린 게 아닌가요?” “걱정 마세요. 상사에게 가서 잘 말할 겁니다. 당신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 겁니다.” 그는 이어 “제 고모도 파룬궁을 수련하는데 제게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없어요”라고 했고 저는 “당신 고모는 당신을 해치지 않을 거예요. 당신은 파룬궁이 무엇인지, 중공이 왜 파룬궁을 박해하는지 잘 알아보세요. 그리고 앞으로 이런 일에 가담하지 마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후 저는 수련생들과 토론을 거쳐 새로 부임한 파출소장에게 진상을 알리러 갈 테니, 수련생들 모두가 며칠간 저를 도와 발정념을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오후에 집에서 법을 읽고 나서 ‘진상 알리기를 방해하는 모든 사악한 요소를 제거한다’는 정념을 발했습니다.

다음 날 오전 파출소로 가는 길에 파출소장과 마음속으로 소통했습니다. ‘당신에게 대법 진상을 알리러 간다. 당신은 진상을 듣고 좋은 미래를 선택해야 한다!’ 걸으면서 계속 정념을 발했습니다. 파출소에 도착해 문 입구에서 먼저 인사하고 “파출소장은 몇 층에 계신가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소장이 있는 곳을 알려주며 두말없이 들어가라고 했습니다. 끊임없이 ‘나는 대법제자고 신이다’라는 정념을 발했습니다.

3층 소장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을 보고 먼저 인사한 후 파출소장이냐고 물었습니다. 그가 물었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어제 한 경찰이 우리 집에 와서 사진을 달라고 했는데 주지 않았어요.” “그냥 주면 안 되나요?” 그럴 수 없다는 제 말이 끝나자마자 그는 갑자기 흉악한 모습으로 “저리 가, 저리 가!”라고 소리쳤습니다. 저는 단호한 어조로 “당신의 말과 태도는 예의에 맞지 않습니다. 신분에 어울리지 않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가 앉아 있는 자리를 가리키며 “그 자리에 앉을 사람들은 모두 교양있고 수양이 된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제가 말을 끝마치면 당신이 내쫓지 않아도 저 스스로 갈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에게 인민대표대회는 법률을 제정하는 기관이다, 파룬궁 박해는 장쩌민이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무시하고 자기 고집대로 빚어낸 결과다, 장쩌민이 프랑스 ‘르피가로’ 기자에게 파룬궁을 ×교라고 모함했는데 개인이 한 말은 법이 아니다, 형법 제300조를 파룬궁 박해에 악용하는 것은 법 집행자가 법을 위반하는 행위다 등을 말하자 그는 화난 목소리로 “내가 장쩌민이라면 너희들을 총으로 쏴 죽였을 거야!”라고 했습니다. 저는 엄숙하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정말 악하네요.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나요? 손에는 무기도 없는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어떻게 그런 사람들을 해칠 수 있단 말인가요? 그들이 당신의 형제자매와 뭐가 다른가요?”

이어서 ‘장자석(藏字石-‘중국공산당망’이 새겨져 있는 고대의 돌)’에 대해 말하고, 문화대혁명 이후 박해받던 사람들에게 억울한 누명을 벗겨줬고 사람을 때린 살인자들은 나중에 윈난성으로 끌려가 비밀리에 총살된 후 가족에게는 공무 순직으로 통고됐다는 사실을 말했습니다. “당신도 이런 걸 원하나요? 제가 이런 걸 알려주지 않으면 당신들은 계속 업을 지을 거예요.” 그는 고개를 숙인 채 펜을 만지작거리며 제 말을 듣고 있었습니다.

저는 말할수록 이 불쌍한 생명을 위한 자비심이 우러나왔습니다. 경찰 역시 구원받을 대상이라고 생각했기에 강한 선심이 나와 시간이 지날수록 제 말투는 선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파출소장에게 말했습니다. “박해 진상은 다 말했어요. 당신이 잘 알아보고 처신한다면 당신과 가족 모두는 좋아질 거고 평안도 지킬 수 있어요. 이젠 갈게요.” 말한 후 밖으로 나오다가 문득 중요한 한 마디가 떠올랐습니다. “소장님은 앞으로 파룬궁 수련자들을 박해하면 안 돼요. 그들은 모두 합법적인 사람들입니다.”

아래층으로 내려와 어제 집으로 찾아왔던 경찰관에게 다가가 말했습니다. “당신 상사와 얘기했으니 걱정 마세요. 어제 당신이 우리 집에 와서 마음대로 뒤진 것은 불법입니다. 다시는 그러지 마세요.” 그 경찰이 아무 대꾸도 하지 않자 맞은편 책상에 앉은 경찰이 “이건 우리의 임무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당신들은 인민에게 봉사하는 것이 직책 아닌가요? 우리는 합법적인 국민이므로 당신들은 우리를 위해 봉사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나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경찰은 제 말을 듣자마자 공책을 들고 일어나 나가버렸습니다. 저는 담당 경찰에게 “이제 다시는 파룬궁 박해에 가담해서는 안 돼요. 꼭 기억하세요”라고 말했고 그는 기억하겠다고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수련생 구출

동북의 한 중점대학 개교기념일 때, 전국 각지의 동문과 외국 동문들도 많이 와서 성대한 행사를 치렀습니다. 학교 책임자들의 연설이 한창일 때 하늘에서 많은 전단이 떨어졌습니다. 현장 사람들은 축제의 한 프로그램인 줄 알고 모두 주워 보았습니다. 그 전단은 파룬궁 진상을 알리는 내용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렸고 많은 사람이 전단을 보고 진상을 분명히 알게 됐습니다. 이는 한 수련생 가족이 돌아와 말한 것입니다. 이 사건으로 많은 경찰력이 동원됐고 많은 수련생이 불법적으로 납치됐습니다.

한 수련생이 다른 수련생들이 당할 박해를 대신 홀로 감당하기로 했습니다. 2001년 불법적인 재판에서 징역 7년 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감금됐는데 박해가 혹독했습니다. 이 상황이 알려지자 수련생들은 사악이 수련생을 이토록 박해하게 놓아둘 수 없으니 그를 구해야 한다고 토론하고 교류했습니다. 저는 그 수련생을 구하기 위해 구출 항목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처음 제가 그의 가족과 함께 감옥에 갔을 때 마음이 조마조마해지면서 부정적인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불안하고, 말도 잘 안 되고, 박해당한 수련생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나중에는 근거리 발정념을 했습니다. 우리가 감옥에 갔을 때 비록 그 수련생을 만나지는 못했어도 경찰들은 두려워하며 더는 함부로 수련생을 박해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경찰을 상대로 대담하게 진상을 알린 경험도 있어서 불법 감금돼 박해받는 수련생을 구출할 때도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됐고, 다른 수련생들은 정념을 발했습니다. 우리는 서로 호흡을 잘 맞췄으므로 현지에서 많은 파룬궁 박해 사건을 줄일 수 있었습니다.

한번은 한 수련생이 진상을 알리다가 신고로 납치돼 파출소로 끌려갔습니다. 저는 즉시 수련생 몇 명과 함께 수련생 가족을 데리고 파출소로 갔습니다. 담당 경찰은 “당신들은 어떻게 이처럼 빠른가요?”라며 놀라워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들은 모두 좋은 사람들인데 당신들이 좋은 사람을 여기로 납치했으니 죄를 지은 게 아닌가요? 국가의 어떤 법률도 파룬궁이 불법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사실 경찰들은 다년간 대법제자와 접촉해서 진상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단지 상부의 압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양심을 어기며 악행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사건 담당자는 자신들의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이럴 필요 없어요. 신고한 사람이 있으니 우리도 현장에 출동하지 않을 수 없어요. 한 2일 정도 있다가 벌금을 물리고, 며칠 있다가 풀어줄 겁니다.” 저는 담당자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똑똑한 사람인데 어떻게 이렇게 어리석은 일을 할 수 있나요? 단 하루를 감금하고, 한 푼의 벌금을 매기는 것도 죄를 짓는 거예요. 만약 오늘 사람을 풀어주지 않으면 내일 당신은 해외 악인 명단에 오를 거예요. 그럼 당신 가족에게도 영향을 주지 않겠어요?”

사실 구출에 참여한 수련생들은 서로 호흡을 잘 맞춰야 하고 강력한 정념으로 악을 억제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느 날 오전, 박해부서 담당 책임자를 찾아가서 한 수련생을 구출하기로 했습니다. 그는 우리를 보고 말했습니다. “어쩐지 오늘 누군가를 만날 것만 같더니만, 회의도 소집해야 하고 장례식에도 가야 했는데, 왠지 가기 싫었는데 이제야 보니 당신들을 만나려고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던 거군요!” 사실 우리가 그곳에 가기 전까지 ‘반드시 그 사무실에서 그 책임자를 만나 납치된 수련생이 무조건 석방되도록 해야 한다’는 강력한 정념을 발했는데 그것이 작용을 일으킨 것이었습니다.

여동생 구출

여동생(수련생) 구출 역시 정념이었고 사부님의 가호였습니다. 여동생이 진상 포스터를 붙이다가 현장에서 경찰에게 납치당했습니다. 제가 그 소식을 들은 것은 출산한 지 2일밖에 안 된 조카며느리를 병원에서 수발해주고 있을 때였습니다. 우리 집은 한창 내부 수리 중이었고, 거기다가 두 살밖에 안 된 손자를 데리고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는 등 많은 일거리가 겹쳐 있었습니다. ‘어떡하지? 어떻게 가족들을 설득해서 여동생이 있는 도시로 가서 구하지?’ 기점을 바로잡지 못하면 불안해지면서 가족 정에 이끌리기 쉽고, 사악에게 틈을 줘 구출에 참여한 수련생과 박해당한 수련생의 난을 가중시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여동생이 아니라 한 수련생이라는 사실을 거듭 일깨웠습니다. ‘결과를 바라지 말고 과정을 중시하며 관련된 세인을 구하기 위해 진상을 알리는 데 전념하자. 우리는 법의 기준에 따라 할 뿐, 이 과정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바로 잡으면 자연히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거야.’

다음날 여동생이 있는 도시로 갔습니다. 현지 수련생을 만나러 가지 않고 여동생과 같은 도시에 사는 둘째 언니(수련생) 집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법을 배우고 발정념을 한 뒤 저녁에 수련생 집으로 가서 동생을 구할 방법을 논의했습니다. 사흘째 되는 날, 현지 수련생이 공안국 가까운 곳에서 정념을 발했고 둘째 언니와 함께 공안지국으로 갔습니다. 이런 항목에 참여해 본 적이 없는 둘째 언니는 불안한 마음에 길에서 자꾸 저와 이야기를 하려 했습니다. 저는 말하지 말고 정념을 많이 발하라고 했으며, 제가 진상을 말할 때는 제대로 말하지 못한 부분에서 보충해야 하며, 반드시 똑발라야 한다고 일러줬습니다.

우리는 사건 담당자 A를 만났고 여동생은 이미 구치소로 이송됐습니다. 담당자는 우리에게 여동생과 어떤 관계냐고 물었습니다. 언니라고 대답하자 “걱정 마세요, 며칠 있으면 풀려날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의 말을 진실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며칠 후 다시 A를 찾아가 며칠이 지났는데도 왜 아직도 풀어주지 않느냐고 물으며 “동생이 어느 법을 위반했나요?”라며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당신도 수련하나요?”라고 되물었을 때 정면으로 대답하지 않고 “당신들은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이 이렇게 두렵나요?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은 많을수록 좋지 않나요?”라고 반문했습니다. 그는 말문이 막혀 말하지 못하다가 “그런 말을 계속하면 녹음해 붙잡아 갈 거야”라고 위협했습니다. 저는 “아니죠, 당신은 범죄자를 붙잡을 수는 있지만 죄 없는 사람은 잡을 수 없어요. 아무 사람이나 잡아다가 죄를 씌우면 되나요?”라고 반문했습니다. 그는 “말하지 마, 컴퓨터가 이미 엉망진창이야!”라고 언성을 높였습니다. 저는 “난리가 안 날 수 있겠어요? 말을 하면서 컴퓨터를 보고 있으니 한마음을 두 군데 쓸 수 없지 않나요?”라고 반문했습니다. A는 화가 나서 “당신들은 B한테 가! 사건은 이미 B에게로 넘어갔어”라며 B의 전화번호를 줬습니다.

우리는 사건 담당 경찰관 B를 찾았고 그가 여동생을 구치소에 감금한 것을 알았습니다. B가 여동생 옷을 우리에게 주었을 때 눈물을 참으며 스스로에게 다짐했습니다. ‘울지 말자, 동생도 수련생이야.’ 둘째 언니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고 팔을 살짝 밀며 작은 소리로 “울지 마, 정에 움직이지 마”라고 말했습니다. 둘째 언니도 감정을 억제했습니다. 우리는 여동생과 관련한 몇 가지를 더 확인했는데 B가 책임진 절차는 끝났고, 다음 절차는 C 경찰에게 넘겼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국에서 나온 후 겉으로 드러난 것에 흔들리지 말고 신사신법(信師信法)해야 한다고 서로 격려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발정념, 법공부, 연공을 했습니다.

우리는 계속 동생의 석방을 요구했습니다. 세 번째 사건 처리 담당자 C를 찾아갔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동생의 체포영장에 서명하라고 했지만 우린 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화를 내며 “당신들 장난치자는 거야? 서명하지 않는다면 당신들을 상대할 시간이 없어”라며 욕설과 함께 우리를 쫓아냈습니다.

동생의 상황을 알지 못하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변호사를 선임하기로 한 후 우여곡절 끝에 진상을 분명히 알고 있는 변호사를 찾았습니다. 변호사가 여동생을 면담했을 때 저는 동생과 마음으로 소통했습니다. ‘사부님과 법을 믿으면서 포기하지 마. 우리는 반드시 검은 소굴을 벗어날 수 있어.’ 변호사는 감방에 있는 여동생에게 저의 이런 뜻을 전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박해를 배치하지 않으셨다. 이곳은 수련자가 머물 곳이 아니다. 수련생들이 가족과 함께 구출에 나섰으며, 해외 수련생들도 경찰에 전화를 걸며 박해를 막고 있다.’ 갑작스러운 박해에 의기소침해진 여동생은 변호사가 전한 제 뜻을 깨달아 정념이 생겼습니다.

우리는 집에서 계속 법을 배우고 정념을 발했습니다. 15일 후에 다시 지국을 찾아가 석방을 요구했습니다. 이번에는 입구에서 당직 경찰이 우리를 들여보내지 않아서 바로 정념을 발했습니다. 그때 갑자기 첫 번째 사건 담당자 A가 1층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저는 그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갔습니다.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당신이 내 이름과 전화번호를 모두 해외로 보낸 건가? 해외에서 오는 전화가 매일 날 힘들게 하고 있어”라며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저는 말 없이 그의 눈을 바라보며 그의 배후에서 조종하는 일체 사악을 제거했습니다. 욕설을 퍼붓던 그는 갑자기 몸을 돌려 위층으로 뛰어갔고 저는 뒤를 쫓아갔으며 입구의 당직 경찰은 저를 제지하려고 쫓아왔습니다.

2층까지 뛰어 올라간 저는 당직 경찰에게 폐가 될 것 같아 로비로 돌아갔습니다. 당직 경찰은 “상사가 들어가지 못 하게 했는데 당신들이 억지로 들어가면 제가 문책받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공안국장의 전화번호를 알아내야 한다고 상의한 후 언니가 끈질기게 당직 경찰에게 말해 결국 전화번호 쪽지를 은밀히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 착한 경찰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밖으로 나와 곧바로 전화를 걸어 지국장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습니다. “저는 ○○의 언니입니다. 엊그제 당신들이 제 동생을 납치했는데 제가 데리러 가겠습니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전화기 너머에서 “왜 납치라는 단어를 쓰나요?”라며 너털웃음을 지었습니다. “동생은 법을 어기지도 않았는데 당신들이 잡아갔으니 납치가 아니면 뭔가요? 제가 동생을 데리러 온 이유는 집에 70대 노인이 동생의 보살핌이 필요하고, 건강이 좋지 않은 남편도 보살핌이 필요하고, 곧 대학 시험도 치러야 하는 아이도 엄마의 보살핌이 필요하기 때문이에요. 입학시험은 아이 인생에서 첫 번째로 큰일이고 아이의 평생이 달린 일이 아닌가요!”

이치에 맞는 제 말을 다 들은 그는 잠시 침묵했다가 말했습니다. “당신이 장 부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사실 경과를 나에게 보고하라고 하세요.” 제가 그의 전화번호를 모른다고 하자 그는 즉시 번호를 알려줬습니다. 저는 즉시 장 부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저는 ○○의 언니인데 국장이 장 부국장에게 ○○의 사건을 직접 보고하라고 하십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바빠 죽겠네!”라며 퉁명스럽게 전화를 끊었습니다.

동생을 구출하러 나온 지 이미 10여 일이 지났으므로 집안일이 무척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먼저 오후에 시외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거의 도착했을 때 구치소에서 가족에게 동생을 데려가라는 연락이 왔다는 언니의 전화가 왔습니다. 전화를 받은 저는 흐르는 눈물을 더는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동생이 구치소에서 풀려났기 때문이 아니라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 감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부님! 제자를 위해 노심초사하셨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법에 있다면, 우리가 행동만 한다면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하십니다!

사부님께서 사람을 구하려는 우리의 마음을 보시고, 정체(整體) 협조가 잘 되는 것을 보시고 수련생에게 공안지국에서 근무하는 한 친척을 통해 전화번호부를 받게 하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찾고 싶어도 찾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또 해외 수련생들에게서 걸려 온 전화에 사악은 매우 두려워했습니다. 모든 지국 사람들은 적어도 한 번은 해외에서 걸려 온 진상 전화를 받았습니다.

사부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허스(合十)

(밍후이왕 제19회 중국 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원문발표: 2022년 11월 1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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