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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수련생이 전쟁 속에서 수련한 경험

글/ 우크라이나 키이우 파룬궁수련생

[밍후이왕] 나는 러시아에서 태어났고 우크라이나에서 지낸 지 15년이 된다. 나와 남편은 파룬따파를 수련한 지 거의 20년이 되어간다. 키이우에서 많은 사람은 이미 대법을 알고 있고 중국에서 파룬궁을 박해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몇 년간 키이우 파룬궁수련생들이 인구가 가장 밀집된 도심에서 대형활동과 퍼레이드 등 정기적인 행사를 개최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중심가의 한 연공장에서 주말을 포함해 매주 며칠씩 연공했다.

하지만 어느 날 전쟁이 시작됐고 이 주변은 거의 폐허가 됐다. 처음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나는 머릿속이 백지장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계속 세 가지 일을 잘해야 하고 법공부, 연공,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면서 수련환경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사실 나는 전쟁 발발 당일 늦잠을 잤고, 평소에는 깊은 잠을 자지 않았지만 무엇 때문인지 이날은 첫 번째 포성이 울렸을 때까지도 깨어나지 못했다. 아침에 사람들이 내게 포격 소식을 알려줬지만 나는 믿기지 않았다. 사실이라면 나는 그 소리에 깨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주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우리에게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며 전쟁이 일어났다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길이 있다고 생각했다.

전쟁이 발발하기 전, 원래 나와 남편은 가족을 보러 러시아로 돌아가려 했다. 그러나 일주일 후에 표를 사기로 했는데 바로 그 주에 공격이 시작됐다. 나는 생각했다. ‘이 역사적인 시간에 우리는 우크라이나에 남아있을 필요가 있을지도 몰라.’

전쟁 5일째, 주변 지역의 정세가 더 악화됐다. 우리 집 바로 옆에서도 몇 번의 극렬한 폭발이 발생했다. 한 번은 군용기에서 포탄이 떨어져 민가 몇 채가 불에 탔고 한 여성은 사망하기까지 했다. 이 외에 우리 아파트 바로 상공에서 순항 미사일 한 발이 폭발해 아파트 출입구가 다 부서졌고 창틀도 손상됐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우리 집 창문의 유리는 조금도 파손되지 않았고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 집은 파손된 곳 없이 아주 멀쩡했다.

창문 밖으로 보다 보면 자주 쾅쾅 소리가 들리고 번쩍번쩍 빛이 나며 무엇인가 휙휙 지나갔으며 수시로 집이 흔들리고 폭발로 인한 충격파가 창문을 흔들었다. 이 때문에 주변의 모든 건물은 모두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이 불안하게 서 있었다. 우리는 밤에도 외출복을 입고 자야 했고 심지어 집안에서도 신분증과 휴대폰을 반드시 몸에 지니고 있었다. 집이 갑자기 무너질 때 바로 대피할 수 있도록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당시 우리는 정말 생사를 오가는 상황에 있었다.

나와 남편은 매일 법공부를 견지하고 다섯 가지 공법을 모두 연마하며 일하는 것도 멈추지 않았다. 저녁에는 폭격 위협 때문에 전등을 켤 수 없었다.

당시 절반 정도의 주민들이 키이우를 떠났다. 우리가 살던 이 빌라에는 원래 열 가구가 살았으나 지금은 우리밖에 남지 않았다.

키이우에는 절반가량의 파룬궁수련생들이 남았는데 우리는 채팅방에서 지속적으로 서로를 지지하고 격려해줬다. 이 기간 우리 모두는 남아있어야 할 필요성을 깊이 느꼈다.

나는 사부님의 많은 설법이 생각났다. 나는 생각했다. ‘나는 수련자다. 기왕 이 역사시기에 우리가 이 지역에 왔다면 자연스러움에 따라 여기서 자신의 역할을 발휘하자.’ 그동안의 수련에서도 나는 모든 것은 사부님의 손바닥 안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때 나는 몸과 마음에 큰 스트레스를 받아 등도 곧게 펼 수가 없었고 복부가 계속 경련을 일으키면서 아팠다. 주변은 자주 전쟁의 불길에 휩싸여 상황이 매우 암담했다. 어떤 때 우리는 우주의 변두리에 남겨져 거대한 어둠을 마주한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인내심을 갖고 마음을 고요히 하고 움직이지 않도록 했다. 만약 우리가 두려워하고 짜증 내거나 화를 내는 등 기타 속인 감정이 일어난다면 우리는 연공인의 작용을 발휘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끊임없이 자신을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내 몸에서 경솔함, 과시심, 영웅주의와 ‘병 치료’ 욕심 등 사람 마음을 버렸는데 마지막에는 중생을 구해야겠다는 일념만 남았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나는 중생구도만 생각했다. 이 간단한 일념이 ‘진아(眞我)’에서 기원한 안정을 가져다줬다.

이전에 우리는 연공에 정진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연공의 중요한 의의를 인식했기에 점심시간에 정원에서 제1장부터 제4장 공법을 연마하기로 했다. 이웃은 창문으로 우리를 내다보았고 나중에 그들은 우리를 매우 지지한다고 말해줬다.

우리도 밖으로 나가 사람들에게 작은 연꽃과 파룬따파 진상에 관련된 신문을 배포했다. 당시 거리에는 사람이 매우 적었는데 서로 만나면 매우 기뻐했다. 나는 사람들에게 작은 연꽃을 호신부로 삼아 주었고 진선인(真·善·忍)의 도리를 설명해줬다. 사람들은 우리의 선의를 느낄 수 있었고 대법의 이념과 중국 대법제자가 중공 사악의 박해에도 신앙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많은 사람이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어떤 사람들은 신께서 우리를 자신들에게 보냈다고 이야기했다.

'图1:我们送给当地居民的小莲花'
우리는 현지 주민들에게 작은 연꽃을 주었다.

나도 끊임없이 안으로 자신을 찾아 공포심을 제거했다. 매번 치열한 전투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자신의 쟁투심과 거친 성격을 찾아 이런 마음을 제거하도록 노력했다. 신기한 것은 내가 제거할 때면 격렬한 포성이 저절로 멈춘다는 것이다. 이런 수련 과정은 우리에게 개인의 제고가 주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보게 해줬다.

이 기간에 나는 중국 파룬궁수련생들을 더욱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나는 매일 일정을 아주 빈틈없고 명확하게 안배해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수련의 길을 잘 걸을 수 없었다. 나는 무엇이 정진이며 수련한다는 것인지 비로소 알게 됐다.

점차 우리는 더 차분하고 안정됐다. 사부님 법상을 보면 미소를 띠고 계셨고 매우 젊어 보이셨다. 마치 주변에서 발생하는 일들이 이미 우리와 관련이 없는 듯한 느낌이었다. 우리는 수련자가 마땅히 해야 할 세 가지 일을 잘하면 될 뿐이다. 그리고 창밖에서 발생하는 일은 마치 영화를 틀어놓은 것처럼 내 신경은 더 이상 포성에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내 신체도 반응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우리가 연공할 때 갑자기 ‘펑’하는 소리를 들으면 내 몸은 더 이상 놀라서 경련을 일으키지 않았다. 눈을 뜨고 먼 곳에서 날아가는 로켓을 보면 눈을 다시 감고 계속 연공하며 생각한다. ‘저것은 나랑 관련이 없어.’ 점차 포성은 갈수록 작아졌고 우리 지역의 정세도 안정을 되찾았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몇 주 후, 나와 키이우 수련생들은 주말에 도시 중심에서 연공하고 매주 한 번씩 대면 법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이상은 최근 나의 한정된 깨달음이다. 전쟁의 위험한 환경에서 나는 모든 사람이 반드시 남아야 한다든가 마땅히 이렇게 해야 한다는 주장은 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나의 깨달음에 따라 이렇게 한 것이다.

앞으로의 시간에서 나는 노력해서 대법 수련에서 정진하려는 마음을 유지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사부님의 중생에 대한 자비와 위험에서 저희를 보호해주시고 수련해 승화할 기연을 부여해주심에 성실하고 진지하게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2년 5월 3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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