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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실히 수련해 사람을 구하고 정념으로 박해를 부정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농촌 부녀자로 올해 60세다. 1998년에 법을 얻어 지금은 이미 23년이 되었고, 사부님의 보호 아래 평온하게 수련의 길을 걷고 있다. 파룬따파(法輪大法) ‘진선인(真·善·忍)’ 법리에 따라 자신을 수련하고, 수련 중에 심성이 높아져 일이 생기면 자신의 부족함을 찾아낼 수 있게 됐다. 오늘 나는 심득 체험을 써내 사부님께 보고드리고 수련생들과 교류하려 한다.

1. 돌을 제거하다

집 밖의 길에는 농촌에서 농사를 지을 때 주워낸 돌멩이들이 널려 있었다. 이 길은 400여 미터나 된다. 해마다 남쪽에서 북쪽까지 돌멩이를 던져서 크고 작은 차량 모두 정상적으로 운전하기 힘들었다. 나는 남편과 상의했다. “길가에 돌멩이가 널렸는데 치우는 사람이 없어요. 하지만 우리는 수련자이니 우리가 치워요.” 나중에 남편은 다른 집에 일하러 가게 되어서 이 일을 나 혼자 떠맡게 됐다.

어느 날 오후, 나는 외발 수레에 삽을 싣고 갔다. 나는 돌을 삽으로 긁어 담았다. 외발 수레에 싣고 구덩이에 밀어 넣었는데 비뚤비뚤해서 아주 힘들었다. 이렇게 한 수레 또 한 수레를 끌었다. 예전 같으면 힘쓰는 일에 자신이 없어, 이런 일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수련하기 전에는 일 년 내내 돈과 명예와 씨름했고 젊은 나이에 지쳐서 몸에 문제가 생겼다. 조금만 일을 하면 구들장에 2~3일 누워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무거운 물건을 들면 허리가 눌려 아팠고 아파서 걷지 못했다. 잠시만 걸어도 아파서 걷지 못했다. 허리가 아프면 서지도 못하고 앉지도 못했다. 아파서 흉악한 표정을 지을 정도로 참기 힘들었다. 파룬궁을 배운 이후로 건강이 좋아졌고 대법의 혜택을 받았다.

돌을 치우고 있는데 마을의 셋째 며느리가 밭에서 일하다가 나에게 물었다. “거기서 뭐 해? 할 일이 없나 봐?” 마을 둘째 며느리는 밭에 나가면서 말했다. “돈 버는 거지?” 내가 대답했다. “저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거에요. 요즘 사람들은 돈을 못 버는 일은 죽어도 하지 않지만요.” 남들이 아무리 나를 보고 말해도 난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됐다.

남은 일이 별로 없어서 서둘러 마무리했다. 밭에서 일하던 셋째 며느리도 일을 마치고 전동 삼륜차를 몰고 집으로 향했다. 그녀는 삼륜차를 천천히 운전하면서 나와 대화했다. 내가 말했다. “셋째 언니, 다음에 밭에 올 때 삼륜차를 편하게 운전할 수 있을 거예요. 도로가 평평하게 정리되면 얼마나 좋아요?” 셋째 며느리는 웃으며 말했다. “네가 너무 힘들어 보이는데.”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저는 대법을 얻고 몸이 건강해져서 일해도 힘들지 않아요.”

집으로 가는 길에 이웃에 사는 사촌이 나를 보고 말했다. “그 돌들을 혼자 다 골라냈네요. 혼자 어떻게 했어요? 힘들었죠?” 사촌은 또 내가 그 돌을 골라낸 것을 이웃에게 알려줬다.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착한지 보세요. 남들이 밭에서 골라내 던진 돌이에요. 역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좋아요.”

그렇다. 대법제자가 있는 곳마다 금빛이 난다. 대법제자는 대법의 아름다움을 세인들에게 전해 세인이 걷는 길에 걸림돌이 없게 한다.

2. 법을 전해 사람을 구하다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는 동안 나는 친척들을 두루 찾아다녔다. 지난겨울에 나는 항상 이모 댁에 가고 싶었다. 우리 가족은 예전에 이모 댁과 함께 지낸 적이 없었고 한두 번 만났을 뿐이었다. 이모를 만나서 나는 대법 박해에 관해 이야기했고 삼퇴하면 평안을 보장받는다고 말했다. 이모는 삼퇴에 흔쾌히 동의했다. 하지만 이모부는 삼퇴하지 않았고 남동생도 삼퇴하지 않았다. 나는 항상 마음속으로 그들을 생각하고 있었고 구하고 싶었다.

이모 댁까지 가는 길은 시간이 걸렸다. 높은 두 개의 산길을 지나야 하고 경사가 가팔랐다. 어느 겨울날 오후, 나는 진상 탁상 달력 세 개를 들고 갔다. 나는 이모가 살던 마을에 가본 적이 없었다. 사람을 만나 수소문하면서 삼퇴를 이야기했다. 손에 든 진상 달력 세 부를 모두 나눠줬고 세 명에게 삼퇴를 권했다.

길을 물어봤지만 마을을 찾지 못했다. 다시 돌아 나와 보니 날이 저물 것 같았다. 속으로 집으로 돌아가 내일 다시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튿날 나는 다시 갔다. 산을 넘고 고개를 넘었지만, 또 하나의 산을 걸었다. 가까스로 나이가 드신 이모 집을 찾았다. 가서야 알게 됐는데 이모부는 작년에 병원비로 수만 위안을 썼고 이모도 건강이 좋지 않아 오랜 세월 약을 먹었지만, 병이 낫지 않았고, 몇 년이나 먹어도 호전되지 않았다. “집에 30대 아들이 있는데 아직 장가도 못 가고 아파트도 못 샀다.” 이모의 이 말을 듣고 내가 말했다. “이모, 대법을 배우세요. 파룬궁은 병을 낫게 하는데 놀라운 효과가 있어요. 대법만이 이모 집안을 구할 수 있어요.”

이어서 우리 집안은 예전에 남편이 병이 있었지만 다 나았고 예전에는 돈을 모두 병원비에 썼지만, 지금은 대법을 배우고 연공한다고 말했다. 늙으신 이모와 이모부는 조용히 듣고 계셨다. 이모는 대법과 인연이 있어 이야기하자 곧 이해하여 연공을 잘하겠다고 하셨다.

다시 갈 때 나는 ‘전법륜(轉法輪)’ 2권과 안에 동작도해가 있는 ‘파룬따파 대원만법’과 대법 진상 소책자를 가지고 갔다. 나는 그들에게 공법을 두 번 가르쳤는데 그들은 거의 다 배웠다. 지난겨울은 날씨가 너무 추워 자전거를 탈 때마다 손이 얼어붙고 옷이 바람에 날렸지만 그래도 몇 번 찾아갔다.

며칠 전 또 이모 댁에 갔는데 이모는 신이 나서 말씀하셨다. 이전에는 만두를 만들 때 기력이 없어서 만두소를 다지고 온돌에 눕고 만두를 빚으면 또 쉬어야 했다. 지금은 좋아져서 힘이 나고 만두를 만들 때 쉴 필요가 없으며, 집도 치우고 청소도 하며 아르바이트도 해서 돈도 벌 수 있게 됐다고 하셨다. 이모와 이모부는 해바라기 심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하루에 1인당 120~130위안(한화 약 2만 3천 원~약 2만 5천 원)을 버셨다. 이모는 기뻐하며 주머니가 두둑하게 돈을 벌었고 아들도 교제하고 있으며 올해 결혼할 예정이라고 행복해하며 말씀하셨다. 요즘 농촌에는 30대에 결혼하지 않은 농부의 자식들이 많고 집이 있어도 며느리를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것은 이모가 법공부하고 수련한 후 사부님께서 이모 집에 베풀어주신 복이다.

3. 교란에 직면해 정념으로 진상을 말하다

1999년 7월 20일부터 중국공산당(중공) 장쩌민 집단은 TV와 신문에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대법과 사부님을 비방해, 사람들이 대법과 대법제자를 증오하게 했다. 또한 불법적으로 대법제자를 납치해 선고, 투옥해 지속해서 괴롭혔다.

예전의 마을 회계사는 우리 집에 두 번 왔었다. 한 번은 올림픽 기간이었고 두 번째는 향 당 위원회 서기와 여자 한 명을 데려왔다. 그 여자는 휴대전화를 들고 내 사진을 찍었다. 올 때마다 나는 그들에게 나는 합법적인 시민이라고 말했고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들은 모두 좋은 사람이고, 우리 사부님께서는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사람이 되라고 말씀해주셨다고 말했다. “우리는 법을 어기지 않았어요. 당신들이 우리 집에 온 것은 제 정상적인 생활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저에게 공포와 스트레스를 주는 거에요.” 그들이 말했다. “좋습니다. 당신은 집에만 있고 밖에 돌아다니지 마세요.” 그들은 진상을 다 듣고 갔다. 나는 마을 회계사에게 말했다. “당신이 파룬궁 때문에 우리 집에 두 번 왔어요. 다시는 오지 마세요. 그리고 돌아가서 윗사람에게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은 모두 좋은 사람이라고 알려주세요.” 그 후로 마을 회계사는 정말로 우리 집에 오지 않았다.

2015년, 장쩌민 고소 붐이 일 때 나는 최고법원에 고소장을 보내 장쩌민을 고소해 법 집행을 공정하게 하고 장쩌민이 법의 심판을 받도록 했다. 그리고 대법과 사부님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우리가 대법에서 혜택을 보고 병이 다 나았으니 정부가 마땅히 우리 대법제자들에게 자유로운 수련환경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어느 날, 길가 텃밭을 지나다가 경찰차가 우리 집으로 오는 것을 봤다. 경찰관 두 명이 와서 내게 ○○냐고 묻고 나서 경찰서에 가보라고 했다. 서명하고 집에서 연마하라고 했다. 나는 두 경찰관에게 정당하게 말했다. “저는 합법적인 시민이에요. 저는 법을 어기지 않았고 살인이나 방화를 저지르지 않았어요. 당신들의 차는 나쁜 사람을 잡기 위한 것이고 저는 차에 타지 않을 겁니다.” 두 사람은 차를 타지 말고 혼자 가라고 말했다. “시간이 없어요. 저는 일해야 해요.” 그들은 가려고 하지 않았다. 사부님의 가지(加持)와 보호로 나는 마음에 정념을 품고 지혜롭게 경찰에게 물었다. “장쩌민이 이렇게 오랫동안 우리를 박해했는데 대법제자가 폭력으로 싸운 적이 있었나요? 시위가 있었나요?” 중년 경찰관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나는 그들에게 파룬궁이 선하다고 말했고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진선인에 따르는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쳐주셨다고 말했다. 두 경찰관은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나는 다시 말했다. “보시라이와 왕리쥔을 보세요. 파룬궁을 박해한 사람은 모두 응보를 받았습니다. 선악에는 응보가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중년 경찰은 갑자기 차에 탔고 너덜너덜한 종이와 펜을 든 젊은 경찰관만 서 있었다. 중년 경찰이 말했다. “소장님이 우리에게 가라고 했고 이것은 우리 일입니다.” 나는 말했다. “돌아가서 당신들 소장에게 모든 파룬궁 수련자들은 좋은 사람들이라고 말하세요.” 그들은 내가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차를 타고 돌아갔다.

작년 3월에 사당(邪黨)은 또 ‘제로화’ 운동을 했다. 신임 마을 회계사가 와서 내가 마당에서 일하는 것을 보고 말했다. “그냥 보러 왔는데 밖으로 나가지 말아요.” 나는 마을 회계사에게 말했다. “우리는 서로 이웃 마을 사람이고, 우리의 사람됨을 당신도 알고 있어요.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은 모두 좋은 사람들입니다. 23년간 연공하면서 약 한 알도 먹지 않고 지금까지 감기에 걸리지 않았어요. 길을 걷다가도 돌이나 나뭇가지를 주워서 옆에 버리고 유리 조각을 보면 주워요. 타이어에 꽂히지 않도록요.” 마을 회계사는 이 말을 듣고 말했다. “당원 간부들 모두가 당신들 파룬궁을 닮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서명에 관한 일을 언급하지 않았다.

예전 마을 회계사는 촌장이 됐다. 촌장 가족은 화학비료를 팔고 있었다. 몇 년 전 남편과 내가 비료를 사러 갔다가 그에게 진상을 말해 주고 삼퇴를 권했다. 그때 촌장은 말했다. “웃기지 마세요. 제가 이 일을 다 관리하는데 나에게 탈당을 하라고?” 그는 탈퇴하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당신뿐만이 아닙니다. 경찰도 삼퇴했어요. 앞으로는 대법제자를 박해하지 마세요.”

지난봄 종자를 심을 때 나는 남편과 비료를 사러 갔다. 남편이 농업용 차량을 몰면서 나에게 누구네 집으로 사러 가냐고 물었다. 마을에는 비료를 파는 곳이 몇 군데 있었다. 남편은 차를 멈추고 어디서 살 것인지 물었다. 나는 한참 망설였다. 예전에 나는 속으로 촌장을 늘 원망했기 때문이다. 그가 회계사였던 시절에 우리 집에 와서 두 번이나 소란을 피웠기에 여전히 원망하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안으로 찾았다. ‘나는 대법제자이므로 그를 구해야 한다. 그의 생명도 매우 가련하다. 그는 진상을 모르고 사당을 따라 대법제자를 괴롭혔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말했다. “가요. 촌장 집에 가서 사요.”

비료를 몇 포를 사는데 촌장은 아내에게 비료 싣는 걸 도와달라고 했다. 그는 요통 때문에 못 싣는다고 했다. 비료 몇 포대는 촌장 부인이 돕지 않아도 됐다. 나는 남편과 비료를 실었다. 나는 기회를 기다렸다.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기회를 보고 촌장에게 진상을 이야기하고 삼퇴를 권했다. “촌장님, 허리가 아프시면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염하면 좋아질 거예요. 삼퇴하면 평안을 보장받아요. 평안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겁니다.” 촌장이 말했다. “저는 속으로 무슨 일인지 알고 있습니다.” 내가 말했다. “무슨 일인지 아는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반드시 삼퇴에 동의해야 합니다.” 남편이 비료를 다 싣고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제가 가명을 지어드릴 테니 동의만 하시면 됩니다.” 촌장은 알았다고 대답했다. 남편과 나는 둘 다 그의 생명이 제도받은 것에 기뻐서 웃었다.

7월 1일, 사당은 또 무슨 당의 경축 행사를 했다. 우리 마을 대장이 우리 집에 와서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맞아 파출소에서 전화가 와서 우리 사진을 찍어오라고 했다고 했다. 나는 안 찍는다고 했다. 촌장은 말했다. “그럼 현관문을 잠글 수 있겠어요? 당신들이 집에 없다고 말하고 자물쇠를 찍어 제가 온 것을 증명만 하면 돼요.” 내가 말했다. “대장님, 위에서 또 전화가 오면 공정한 말을 하세요. 상부에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은 모두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세요.” 대장은 말했다. “알아요, 알아요. 저는 벌써 말했어요.” 나는 말했다. “박해에 가담하지 않고 대법제자를 보호하면 복을 받아요. 이 복은 하늘이 내리는 복입니다.” 그는 웃으면서 돌아갔다.

표면적으로는 교란이지만 세인에게는 제도받을 기회이며, 법에 대한 대법제자의 확고함을 시험하는 것이기도 하다. 동시에 안으로 찾고 자신을 잘 수련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4. 맺는말

20년 넘는 수련 기간 처음에는 잘 수련하지 못했다. 항상 밖으로만 보고, 남의 허물만 보며, 안으로 찾지 않고, 자매 사이, 동서 사이, 이웃 사이에 갈등과 원망이 있었다. 끊임없이 법공부하고 외우면서 법에서 승화되니 일이 생겼을 때 안으로 찾을 수 있었다. 수십 년의 원한이 풀려 이제는 친동생처럼 지내고 순식간에 빙산처럼 녹아내렸다. 나는 법에서 자신을 바로잡았다. 사부님께 감사드리고 대법에 감사드린다. 다행히도 아직 이 시간이 종결되지 않았다. 제고하고 정법노정을 따라갈 기회가 주어졌다.

반본귀진(返本歸眞)의 길 위에서 믿음을 확고히 하고 착실하게 수련해 많은 사람을 구해 서약과 사명을 실현하고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원용하겠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와 보호에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2년 3월 3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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