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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과 전자제품에 대한 집착을 버리다

글/ 중국 랴오닝(遼寧)성 대법제자

[밍후이왕] 젊은 대법제자로서 인터넷과 전자제품 방면에서 집착을 버린 약간의 개인 체득을 교류하려 한다.

1. 초등학생 때 게임중독을 끊다​

나는 어려서부터 전자제품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초등학생 때 친구에게 이끌려 컴퓨터 게임에 빠졌다. 처음에는 인터넷에 접속할 줄도 몰라 친구가 가르쳐주었는데 몇 번은 중독된 느낌이 없었지만, 계속했더니 중독이 됐다. 그때는 우리 집이 인터넷이 안 돼서 옆집에 가서 게임을 했다.

나는 또래에 비해 자제력이 뛰어난 편이었지만 컴퓨터 게임에서는 의외로 자신을 통제하지 못했다. 너무 오래 해 지쳤는데도 마음속에서 계속하게 만드는 느낌이 있었는데, 한 가지 집착이 이 정도로 강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 나쁜 줄 알면서도 어른들 몰래 했다. 그러나 이런 ‘좋지 않다’라는 것도 겉으로만 하는 말이지, 잠재의식에서 좋지 못한 행위와 집착임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깊이 파고들지 않았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감히 직면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는 갈수록 컴퓨터 게임의 부정적인 작용을 느꼈다. 원래 풍부하고 아름답던 세계가 온통 컴퓨터 게임에 관한 생각으로 대체됐다. 예전에 이웃집 아이들과 인형 놀이를 하며 즐거워했는데, 인형이 너무 낯설게 느껴졌고, 전자제품에 미혹되어 어린이의 천진함을 잃어버렸다.

시간이 길어지자 컴퓨터 게임도 더는 신선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게임이 아무리 업데이트되어 사람을 유인하려 해도 원래 컴퓨터 게임 자체가 단조롭다. 컴퓨터 게임의 진짜 목적은 사람을 게임에 중독시켜 돈을 버는 것이다. 컴퓨터 게임은 사실 그렇게 재미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는데, ‘재미있다’라는 것은 다만 사람의 집착이 만들어낸 주관적인 느낌일 뿐이었다. “만약 그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으면, 그 물질 자체는 작용을 일으키지 못하는바, 진정 사람을 교란하는 것은 바로 그 마음이다.”[1] 소위 오락이니 휴식이니 하는 것도 사실 모두 핑계일 뿐이고 전자제품을 장시간 접촉하면 많든 적든 통제를 받게 된다.

나는 갈수록 이 집착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어른들도 내가 옆집에 다녀와서 눈이 많이 피로해진 것을 보면, 컴퓨터를 하고 온 것이 아닌지 의심했다. 나는 부정하기는 했지만, 게임을 하는 행위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빨리 끊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거짓말을 하는 것도 나쁜 행위이다. 한 학기 동안 게임을 했더니 성적도 떨어졌다. 1등에서 2등으로 떨어졌을 뿐이지만, 단지 이뿐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다.

나는 결심했다. ‘지금부터 절대 다시는 컴퓨터 게임을 하지 않겠다.’

며칠간 하지 않았더니 너무 괴로웠다. 마음속에서 어떤 생각이 나에게 빨리 게임을 하라고 재촉하면서 마음을 근질근질하게 했다. 이것은 아주 강한 집착이었다. 반드시 마지막 이 부분을 제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 게임을 한 번밖에 하지 않았다. 이 집착이 다시 나오면 어차피 할 일도 없는데 옆집에 가서 놀자고 생각하다가 즉시 경계했다. 가면 또 자신을 통제하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 망설이다가 결국 갔는데 정말로 통제하지 못하고 게임을 했다.

집착이 나타났을 때 이유가 아무리 그럴듯해도 모두 핑계이고 그 집착이 살아남기 위해 주의식(主意識)을 속이는 것이다. 사람을 강하게 집착하게 하는 물질을 직접 접촉해 이 방법으로 제거한다는 것은, 심성(心性) 상에 어느 정도 기초가 있는 사람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몸부림치며 전혀 이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이런 강렬한 것을 접촉하면 역효과가 날 뿐이다.

이것은 큰 고비이다. 수련해서 올라가거나 떨어지는 것, 모두 나 자신에게 달렸다. 그때 나는 진정하게 수련을 시작했다고 할 수 없었지만, 도(道)를 구하는 확고한 마음이 있었다. 그 층의 표준에 도달했는지 나는 이 확고한 마음을 기반으로 게임중독을 정말 끊어버렸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수련을 처음과 같이하면, 반드시 정과를 얻는다.”[2] 이 체험은 항상 끊임없이 정진할 수 있게 나를 격려해준다. 어떤 것을 내려놓기 어려울 때마다 나는 그때의 체험으로 자신을 격려한다. ‘그때처럼 그런 확고한 의지만 있다면, 반드시 지나갈 수 있다.’

이 교류문장을 쓸 때 문득, 처음 게임을 시작했을 때는 왜 중독되지 않았는지 알게 됐다. 처음 몇 번은 친구 집에서 했는데 나는 잠깐만 했고 친구가 많이 했다. 그러나 나중에는 이웃집 친구가 성격이 유해서 내가 하고 싶은 만큼 하게 했기 때문에, 외부적인 제한이 없는 상황에서 이 집착이 튀어나왔다. 원래 이 집착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그것이 깊이 숨어 있었던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속인이 말하는 ‘군자는 혼자 있을 때도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않는다’라는 뜻일 것이다.

2. 고등학생 때 색(色)을 제거하고 전자제품에 대한 집착을 버리다​

인터넷에서 색욕의 교란을 받아 색욕이 일어났다. 음란한 그림과 글, 미색(美色)에 관련된 드라마 때문에 색욕 이 문제에서 끊임없이 아래로 미끄러지고 있었다.

어느 날, 색욕을 되짚어보다가 갑자기 생각났다. ‘만약 컴퓨터 화면을 통해 보지 않고 직접 본다면 이처럼 집착할까? 아니지!’ 자신의 대답에 스스로 놀랐다. 동시에 이 문제에 이처럼 집착하는 다른 원인을 찾아냈다. 색욕뿐만 아니라 전자제품에 대한 집착도 이런 집착을 강화했다. 이 일에서 나는 외계인의 기술이 얼마나 대단한지 체험하게 됐다. 이런 빛을 내는 픽셀들은 놀랍게도 사람을 통제해 정신을 못 차리게 할 수 있다. ‘이것은 외계인의 기술인데 마(魔)가 그것을 이용하고 있고 당신을 유혹해 스스로 당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빠져들게 한다. 당신의 생명을 낭비하고 있는데도 당신은 아직도 내려놓기 아쉬워한다!’[3]

때로는 정념이 더 강하고, 때로는 집착이 더 강해 통제하지 못하며 그런 좋지 않은 것들을 보았고, 보고 난 후에는 또 후회했지만’ 다음번에도 여전히 자신을 통제하지 못했다. 이런 상태를 장기간 돌파하지 못해 너무 고통스러웠다. 어느 날, 법공부를 하면서 “진정하게 수련을 결심한 사람으로서”[1] 까지 읽고 깨달았다. 내려놓지 못한다는 것은 바로 아직도 자신의 ‘결심’이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만약 이 한마음을 굳게 먹으면 어떤 곤란도 가로막지 못할 것인즉, 그러면 문제없다고 나는 말한다.”[1] “당신은 목숨을 걸고, 정념정행하고, 사부가 말한 바에 따라 하라.”[4]

“그러나 또 이런 것도 있는데, 첫 번에 넘지 못하고 깨어난 후에 풀이 죽어서 크게 낙심한다면, 당신의 이런 심리, 이런 상태 역시 당신의 사상에 깊은 인상(印象)을 줄 수 있어, 다시 문제와 마주치면 당신은 파악할 수 있으며 곧 넘을 수 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넘지 못하고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면, 나중에는 지켜내기가 더욱 어려운데, 보증코 이러하다.”[1] 낙심하면서도 왜 반복적으로 넘지 못할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낙심’한 사람은 진정으로 법을 중시하고 수련을 중시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사람처럼 그렇게 중시하지 않았다. 사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긴’ 쪽에 속했다. 그러니 반복적으로 잘못을 저지르면서도 넘어가지 못한 것이다.

3. 대학생 때 SNS 중독을 끊다​

대학에서 공부하려면 친구들과 연락해야 하기에 고교 졸업 후 핸드폰을 샀다. 스마트폰을 사자 QQ, 위챗 등 SNS로 친구들과 채팅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주로 잡담이었다. 나는 곧 이 집착을 발견하고 자신에게 주의하라고 일깨웠다. 한동안 시간이 지난 후, 이 집착을 제거했다.

학부 때 공부하면서 메시지를 자주 확인하지 않으면 공부에 지장이 있을 수 있었다. 또 한번은 친구가 급한 일이 있어 QQ에 음성 메시지를 남겼는데 내가 확인하지 못해 사이가 틀어진 적이 있었다. 그때 꼭 속인 상태에 부합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자주 보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한가할 때면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속인처럼 핸드폰에 중독된 상태가 나타나 아무 소식이 없어도 무의식적으로 찾아보곤 했다. 이런 상태를 인식했을 때 나는 깜짝 놀라 정신이 들었다.

속인 사회에서 수련하기에 많은 것을 근절할 수 없는데, 심지어 자주 접촉하면 집착이 반복될 수 있다. “그러나 속인 중에서 수련함은 매우 복잡한 것으로서, 집에서는 늘 고기 요리를 하여, 시간이 길어지면 당신은 먹어서 맛있음을 다시 느낄 것인데, 이후에 반복하여 나타날 것이며 전반 수련 과정 중에 여러 차례 반복하여 나타날 것이다.”[1] 이런 집착을 일으키기 쉬운 것들은 평소에 더 주의하여 집착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더욱 착실하게 수련할 수 있다.

교란받지 않기 위해 나는 채팅용 프로그램들을 무음으로 설정하고 정기적으로 확인했다.

그러나 가끔은 당장 친구와 연락해야 하는데 답장이 바로 오지 않을 때면, 앱 알람을 소리 나게 설정했다. 그러면 답장이 왔는지 계속 신경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용건이 끝나면 앱을 다시 무음으로 설정했다.

남은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세 가지 일을 잘하여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을 따르자 “최후 얼마 남지 않은 길을 잘 걷도록 하라.”[5]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지설법9-2009년 대뉴욕국제법회 설법’
[3] 리훙쯔 사부님 경문: ‘2016년 뉴욕법회 설법’
[4] 리훙쯔 사부님 경문: ‘2018년 워싱턴DC 설법’
[5] 리훙쯔 사부님 경문: ‘다시 방할(棒喝)하노라’

 

원문발표: 2021년 7월 2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7/25/42819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