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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의 사진에 백만 명 생명의 가치가 있다 (사진들)

로스앤젤레스 (FDI) – 1992년 철조망 뒤에 굶주린 남자들을 보여주는 언론매체 필름 장면이 전 유고슬라비아에서의 인종 말살에 대한 전 지구적 분노와 반응을 불러왔다.

언론매체는 오늘 날 파룬궁 수련생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모습의 사진을 세상에 보여주는 시간을 너무 오래 지체하고 있다.

1999-2000 국제 매체는 장쩌민의 박해 착수에 의해 톈안먼 광장에서 파룬궁 수련생들을 폭력적으로 체포하는 경찰들의 이미지를 방양했었다. 이제, 이 이야기가 반복적으로 되거나 적게 알려질 때, 이러한 모습들이 세계의 신문과 텔레비전 쇼에서 사라졌다.

중국 밖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파룬궁에 대한 잔인성도 사라져 버렸다고 믿게 되었다.

아무 것도 현실에서 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잔인성은 단순히 공중의 눈으로부터 강제수용소 벽 뒤로 옮겨졌을 뿐이다.

[사진] 중국에서 파룬궁 박해가 시작되기 전 32세의 왕샤 여사. (왼쪽)
2년간의 반복되는 고문과 구타로 고통 받은 후, 왕의 체중은 20.25kg으로 줄었으며 (오른쪽) 위험상태에 처해있다.

왕샤 여사는 (위 사진) 그녀가 단순히 공개적으로 사람들에게 파룬궁에 대해 이야기 했다는 이유만으로 몽고 강제노동수용소로 보내졌다. 그녀에 대한 구류와 남용을 항의하기 위해 단식을 감행한 후 그녀에게 아지 못 할 약물이 주입되었다. 한 때 54kg이었던 여인의 체중이 지금은 20kg가 되었고 사경을 헤매고 있다. 감옥에 책임을 맡고 있는 한 사람은 여러 감시원들 앞에서 말했다: “화장시키도록 그녀를 시체실로 옮겨라!”

[사진] 장중은 국영TV에 인권 잔악행위를 폭로하려 했던 것으로 체포되어 고문 받았다.

장중씨는 (사진) 파룬궁 수련생에 대한 인권 남용에 대한 프로그램을 보여주기 위해 무선 TV 방송 신호에 삽입함으로써 장의 박해와 오보의 폭로를 꽤하려다가 2002년에 체포되었다. 장은 족쇄가 채워지고, 매달려지고, 피를 토할 때까지 바늘로 찔렸다. 고문 결과로 그는 음식을 소화시킬 수 없었으며 먹는 대로 토했다. 그는 피 소변을 보며 지난 6개월 동안 단 네 번밖에 대변을 보지 못했다.

세상으로 하여금 보게 하라

중국 정부는 국제조사를 계속 거부하고 있다. 기자들, 인권행동가들, 그리고 노동수용소에서의 잔혹행위 폭로를 강구했던 중국의 다른 많은 용기 있는 개인들, 그들 자신들이 그곳으로 보내지고 있다. (뉴스)

우리는 이라크의 아부 그라이브 (Avu Ghraib)에서 한 것과 같이 이런 노동수용소 내에서 필름 장면을 찍지 못했지만, 그들이 죽기 직전 집으로 보내진 후의 고문 희생자들의 사진을 많이 가지고 있다.

이러한 사진들 매 한 장은 사람들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쓴 데서 나온 것이고 박해자들이 세상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것을 폭로함으로써 이런 사진들 매 한 장은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잠재성을 가지고 있다.

5년간의 박해 그리고 가장 가능하게 수 천 명의 사망자 숫자를 낸 지금, 우리는 국제 매체에 요청한다: 세상이 그들 자신들의 눈으로 중국에서 파룬궁 수련생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게 하라.

논평 – 2004년 8월 23일
法輪大法(파룬따파) 정보센터, www.faluninfo.net

영문위치: http://www.clearwisdom.net/emh/articles/2004/8/25/5170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