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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에 ‘효’를 말하다

글/ 이촨(一川)

[밍후이왕] 추석 명절은 가족이 단란하게 모이는 날인데, 당신은 부모님과 함께 보내러 집으로 돌아갔는가? 요즘 사람은 혼자 핸드폰을 볼지언정 부모님과 몇 마디 말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어디서 효도가 가장 체현되는가?”라고 물었을 때 “위챗 스토리에서”라고 대답한 사람도 있다.

이것은 현대인의 자조(自嘲)이고 진실한 모습이다. 위챗 스토리에서 자주 부모에게 ‘좋아요’를 보내고 설이나 명절에 부모에게 문안 인사를 보내며 택배로 선물을 보내고, 가끔 부모님을 모시고 나가 식사하고 관광한 후 위챗 스토리에 올려놓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부모와 함께 있을 때가 매우 적다. 양로(養老)는 이미 가정과 사회가 직면하기 꺼리는 무거운 화제가 되었다.

“모든 악(惡) 중 최악은 음란함이고 백 가지의 선(善) 중에서 효가 으뜸이다.” 사람들은 이 옛말을 점점 잊어버리고 있다. 사실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사람의 기본 성품이다. 공자는 말했다. “무릇 효도는 어버이를 잘 섬김에서 시작하여, 임금을 잘 섬김으로 중심을 잡고, 몸을 똑바로 세움을 마지막으로 삼아야 하느니라.” 이것은 “심신을 닦고 집안을 정제한 다음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정함[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과 같은 이치다. 효도는 사람의 근본이다. 효도가 없으면 다른 도덕성은 모두 공담(空談, 쓸데없거나 실행이 불가능한 헛된 이야기)이다. 고대에는 많은 효도 이야기가 있는데, 오늘날 사람은 만분의 일도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천선배(天仙配)’에 대한 바른 풀이

현대인은 ‘견우와 직녀’를 로맨틱한 러브스토리로 묘사했는데, 실제로는 ‘효도’와 관련된 이야기다.

동영(董永)은 한나라 청주(青州) 천승(千乘) 출신이다. 어릴 때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와 의지하면서 살았다. 그는 늘 다른 사람에게 일해 주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농사일이 바쁠 땐 허약하고 병든 아버지를 좁은 외바퀴 수레에 태우고 수레에 물과 밥을 놓은 다음 수레를 밀고 밭에 가 그늘 밑에 세웠다. 이렇게 하면 그는 밭일을 보면서 수레에 있는 아버지를 돌볼 수 있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 동영은 장례 치를 돈이 없어 자기를 팔아 장례 돈을 마련하려 했다. 그를 종으로 산 주인은 동영이 무던하고 착실하며 효도를 중히 여기는 것을 보고, 그에게 1만 전의 돈을 주고 갚으라고 할 생각이 없었다.

동영의 효심은 당시 매우 유명했다. 산동(山東) 가상(嘉祥) 무씨사(武氏祠) 뒷벽에는 동한 시기 초상화가 있는데, 바로 ‘동영이 수레로 아버지를 태운 것’을 묘사한 것이다. 천년이 지난 후 이 돌에 새긴 초상화는 이미 흐릿해 똑똑히 보이지 않으나 대체적인 뜻은 보아낼 수 있다. 1821년 풍운붕의 ‘금석색(金石索)’을 복원한 그림은 매우 선명했다. 명나라 구영(仇英)의 그림 ‘이십사효(二十四孝)’ 중 하나가 바로 ‘동영이 몸을 팔아 아버지 장례를 치르다’이다. 현재 이 그림은 타이베이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돼 있는데, 동영이라는 사람과 실제로 효도한 사실이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董永辘车载父,东汉画像石,出山东嘉祥武氏祠后墙。'
동영이 수레에 아버지를 태우다, 동한나라 화상석, 산동 가상(嘉祥) 무씨사(武氏祠) 뒷벽
'董永辘车载父,出汉代武梁祠画像石,1821年冯云鹏《金石索》中的复原图。'
동영이 수레에 아버지를 태우다, 한나라 무량사 화상석, 1821년 풍운붕의 ‘금석색’을 복원한 그림 중 하나
'明朝仇英《二十四孝》册中的《董永卖身葬父》,台北国立故宫博物院藏。'
명나라 구영의 ‘이십사효’ 책 중의 ‘동영이 몸을 팔아 아버지 장례를 치르다’가 타이베이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3년 동안 아버지 시묘살이를 한 후 동영은 주인의 돈을 갚으려고 종살이하러 가는 도중에 한 아름답고 현숙한 여성을 만났는데, 기어이 동영과 결혼하려 했다. 동영은 아내를 데리고 함께 주인집에 갔다. 주인이 말했다. “동영 씨 아내가 나에게 천 필의 비단을 짜주면 나의 돈을 갚은 것으로 치고 자네 부부는 집에 돌아가게.”

여성은 낮에는 일하지 않고 밤에 다른 사람이 다 쉴 때 베를 짰다. 그녀는 씨줄과 날줄 양쪽으로 교차해 오가며 재빨리 베를 짜 눈 깜짝할 사이에 무늬와 도안이 매우 아름다운 반짝반짝 빛나는 고운 비단을 짰다. 주인과 동영은 매우 놀랐다.

동영의 효심이 천지를 감동하게 했기에 신이 도와준 것이다. 신의 뜻에 따라 인간 세상에 내려온 선녀는 동영을 도와 빚을 갚았다. 인간 세상의 이치를 어기지 않고 밤에 신통력을 펼쳤고, 게다가 연분이 다 되고 인연이 끝나자,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은 선녀는 백일비승(白日飛升)해 날아갔다. 이것은 사람과 신이 공존한 천고의 이야기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이하 중공)은 정치의 필요에 따라 ‘천선배’를 새로 편집했다. 원래 신의 뜻에 따라 인간 세상에 내려온 선녀를 사사로이 인간 세상에 내려온 것으로 묘사하고 자율적으로 동영에게 돈을 내주고 차용증을 태워버린 주인은 사람을 못살게 구는 악인이 되었다. 모습이 전혀 다른 ‘천선배’는 계급 투쟁, 계급의 증오 요소를 추가해 권력자가 조종하는 도구가 됐지만, 중국 내외에서 인기 있는 예술 영화였다.

효도는 천지를 감동시킬 수 있다

동영이 ‘몸 팔아 아버지 장례를 치른’ 것은 고대 ‘이십사효’ 이야기 중 하나다. 전설에 따르면, 원나라 문관이 요와 순에서부터 송나라에 이르기까지 구두로 전해진 야사를 기록한 경전을 수집해 효도 이야기를 책으로 편찬했다. 이야기마다 모두 오언절구여서 낭랑하고 유창하게 읊을 수 있어 명, 청나라 이래 서당의 과외 도서가 됐는데, 한편으로 초학자에게 글을 많이 익히게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아이들에게 어릴 때부터 ‘효도’를 알게 했다.

그중 하나는 북송 시인 황정현(黃庭堅)의 ‘척친익기(滌親溺器, 오줌통을 친히 씻는다)’다. “현귀한 몸이거늘 모친 공경에 정성을 다하네. 매일 밤 어머니 오줌통을 친히 씻고 하루라도 자식 된 도리를 잊은 적 없다네.” 황정현은 어릴 때부터 유명한 효자라고 전해졌다. 어릴 때 어머니 오줌통을 친히 씻었고 나중에 큰 벼슬을 한 후에도 여전히 직접 오줌통을 씻었다. 그의 효행 미덕은 그 일대 사람을 감화시켰다.

‘녹유봉친(鹿乳奉親)’은 춘추 시기의 천성이 매우 효성스러운 담자(郯子)의 이야기다. 부모가 연로해 두 눈이 실명됐는데, 사슴 젖을 먹으면 낫는다는 말을 듣고 담자는 사슴 가죽옷을 빌려 사슴으로 변장해 심산 속에 가서 사슴 무리에 섞여 사슴 젖을 구했다. 사냥꾼은 움직이지 않는 ‘사슴’을 보고 화살을 뽑아 쏘려 했다. 담자는 얼른 몸을 일으켜 사슴 가죽을 벗고 사냥꾼에게 큰소리로 상황을 상세하게 설명하고서야 사살될 위험에서 벗어났다. 사냥꾼은 매우 감동해 그에게 사슴 젖을 주었다. 담자가 사슴 젖을 가지고 집에 돌아온 후 부모에게 대접한 후 시력이 회복됐다.

나중에 담자는 담국(郯國)의 군주가 됐다. 담자는 도덕성을 지키고 인의를 베풀어 나라를 다스려 국민은 기뻐하고 심복했다. 담국은 작은 나라였지만 매우 유명했는데, 문화가 발달하고 민풍이 순박했다. 일부 법령 제도를 유지해 내려와 후세에 미친 영향이 매우 광범위했다. 역대 제왕은 담자를 미덕, 재능, 명성, 우아함의 화신으로 여겼다. 담자가 죽은 후 후세 사람은 담자 사당과 담자 묘를 세워 그를 기념했다.

‘이십사효’ 중에는 또 동영과 유사한 여러 부류의 ‘효도로 천지를 감동시킨 이야기’가 있는데, 예컨대 ‘곡죽생순(哭竹生筍, 대나무를 잡고 울어 죽순이 돋아나게 하다)’이다. 진(晉)나라 맹종이 병이 난 어머니가 겨울에 죽순을 먹겠다고 하자, 죽순을 구할 방법이 없었던 맹종은 숲속에서 대나무를 잡고 울었다. 이에 신이 감동했고, 갑자기 땅이 갈라지며 죽순이 돋아났다. 그 죽순을 먹은 후 어머니가 병이 나았다는 이야기다.

‘와빙구리(臥冰求鯉, 얼음 위에 엎드려 잉어를 구한다)’는 진(晉)나라 왕상이 계모를 위해 얼음이 언 추운 날에 물고기를 구하려고 얼음 위에 엎드렸는데, 불현듯 얼음이 녹으면서 잉어 두 마리가 뛰쳐나와, 어머니에게 대접했다는 이야기다. ‘노의순모(蘆衣順母, 갈대 옷을 입고도 계모에게 순종하다)’는 민손(閔損)이 계모의 학대를 받았는데, 계모는 자기에게서 태어난 두 자녀에게는 솜을 넣은 솜옷을 입히고, 민손에게는 갈대꽃을 넣은 옷을 입혔다. 아버지가 그 사실을 안 후 계모를 쫓아내려 했지만, 민손이 “어머님이 계시면 한 자식만 추우면 되지만 어머님이 안 계시면 세 자식이 괴롭게 됩니다”라고 말했다. 민손의 말을 들은 계모는 매우 감동해 그때부터 회개했다는 이야기다.

‘복을 모아 재난을 없애는 길’이라는 책에도 많은 효도 이야기가 기록돼 있다. 예를 들면 최면(崔沔)이 눈먼 어머니에게 효도해 복 받은 이야기가 있다. 두 눈이 실명한 어머니를 위해 그는 곳곳에 다니며 의사를 찾아다녔으나 치료하지 못했다. 최면은 어머니 옆을 지키면서 30년 동안 매우 공경하고 조심스럽게 어머니를 섬겼다. 밤에도 언제든지 일어나 돌볼 수 있도록 모자와 겉옷을 벗지 않았다.

명절이 되거나 주변이 아름다운 경치로 변하고 좋은 계절이 오면 그는 어머니를 부축해 교외에 나가 돌거나 친척, 친구를 방문해 사람들과 웃고 말하며 어머니가 실명의 고통을 잊게 했다. 나중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최면은 어머니를 사랑하듯이 형님과 누나를 잘 대해 하늘에 계시는 어머니 영혼을 위로했다. 나중에 그는 중서시랑(中書侍郎)에 임명됐고, 아들 최우보(崔佑甫)는 현명한 재상이 되었다. 정말 선과 악에는 응보가 있는 것이다.

‘진선인’이 사람을 변화시키고 있다

몇 년의 찬란한 중화 문명과 휘황한 역사를 돌이켜 보면, 당신은 그런 휘황한 기초가 바로 우리 조상이 신봉한 처세 원칙이라는 것을 생각해보았는가? 예컨대 ‘인·의·예·지·신’, 충성, 효도, 우애 등등이다.

중공이 정권을 찬탈한 후 문화대혁명을 일으켰고, ‘4가지 낡은 사상을 타파’하고 공자를 비판했으며, 중국 전통의 유가, 불가, 도가 사상을 타파하고 인간 본성을 변형시켰다. 심지어 사람들을 무관심하게 만드는 ‘가짜, 악, 투쟁’의 당(黨)문화를 주입했다. 인터넷에서 효도를 ‘어리석은 충성’이라고 비판한 ‘우마오(五毛-댓글부대)’는 그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미덕이 아닌 봉건적 찌꺼기라고 생각했다. 전통문화로 육성되지 않은 많은 젊은 세대도 자식을 키운 후에야 부모의 은혜를 알았다. 그러나 많은 청소년은 부모의 꿀단지에서 자랐기에 받을 줄만 알고 베풀 줄은 모르며 성격이 반항적이고 육친정을 무시해 부모를 실망케 했다.

사회도덕성이 급격히 쇠퇴하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양심을 되찾을 수 있을까? 아래의 실제 이야기를 살펴보자.

허베이(河北)성 롼핑(灤平)현의 식품공장 주인 류즈펑은 예전에는 성격이 거칠고 급해 직원들은 감히 그와 말을 많이 하지 못했다. 그는 매일 사회의 친구들과 먹고 마시면서 공장을 거의 관리하지 않았다. 가족도 업신여기고 늘 가족과 싸우고 아내를 때리고 욕하는 것이 일상사였다.

2012년에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한 후 류즈펑은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다. 말투가 평온해졌고 누구에게든 웃는 얼굴로 대했으며 직원도 그를 보고 우스갯소리를 할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정이 화목해졌다는 것이다. 아내를 잘 대했고 자녀도 관심을 두기 시작했으며 부모에게는 특히 효도했다. 그들 형제 다섯 중 줄곧 류즈펑 부부가 부모를 부양했지만, 전혀 불평하지 않았다. 류즈펑의 아내 왕하이친은 남편이 파룬궁(法輪功, 파룬따파)을 수련한 후 이렇게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을 보고는 그녀도 배우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집안은 매우 화목했다. 그러나 류즈펑은 파룬궁을 수련해 좋은 사람이 됐다는 이유로 며칠 전에 법원의 불법적인 재판을 받았다.

파룬궁은 불가의 상승(上乘) 공법이다. 1992년에 전해지기 시작한 후 수련자가 거의 1억 명에 달해 공산당원 수보다 더 많았다. 장쩌민은 질투심에서 1999년 7월 20일에 파룬궁을 잔인하게 탄압하기 시작해 류즈펑과 같은 ‘진선인(真·善·忍)’을 수련하는 많은 파룬궁 수련생이 박해받았다.

59세인 하얼빈(哈爾濱) 상팡(香坊)구 파룬궁 수련생 둥원슈는 며칠 전에 하얼빈시 철도 운수 법원으로부터 억울하게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둥원슈는 상소했다. 그녀를 잘 아는 사람들은 모두 둥원슈는 가족이 인정하는 현모양처이고 효도하는 며느리라는 것을 다 알고 있다. 그녀는 결혼한 후 줄곧 시어머니와 같이 살았다. 파룬궁을 수련한 후 시어머니를 친어머니처럼 각 방면에서 잘 돌봤으며, 모든 집 안팎의 일을 했다. 시어머니가 위독해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가 응급조치를 받을 때 병원에는 매우 비싼 병상만 남았는데, 의사는 가족에게 비용을 아껴주려고 병원에 입원하지 말 것을 제안했다. 많은 사람이 주저하고 있을 때 둥원슈는 전혀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병상이 비싸도 입원해야 합니다. 생명을 잃을 판국에 돈을 남겨둬서 뭘 하겠습니까?” 시댁 사람들은 모두 감동했다.

광둥(廣東)성 제양(揭陽)시 파룬궁 수련생 황아이화는 수련하지 않았을 땐 성격이 강직했다. 시어머니도 매우 강한 사람이어서 고부 사이는 늘 작은 일로 다투었다. 남편은 중간에 끼여 감히 말하지 못하고 이웃이나 친척을 불러 싸움을 말려달라고 했다. 그녀는 늘 남편이 무용지물이라 안팎으로 그녀가 모든 걸 신경 써야 한다고 원망했다. 시어머니는 아들과 손자만 아끼고 며느리를 외부 사람으로 대했고, 일할 때도 트집 잡았다. 그때 황아이화는 사는 것이 매우 힘들고 원망스러워 질병에 시달렸다.

1999년 파룬궁이 이 지역에 전해졌을 때 황아이화는 연공하면 몸이 좋아진다는 말을 듣고 따라서 배웠는데, 정말로 몸이 점점 좋아졌고 마음도 따라서 변했다. 황아이화는 이전에 남편이 무용지물이라고 원망했지만, 수련 후 남편이 오히려 정직하고 선량하다고 여겼고, 시어머니가 괴롭히는 것을 그녀의 심성을 제고하라는 것으로 간주했다. 시어머니가 아무리 그녀를 나쁘게 대해도 그녀는 참을 수 있었고 즐겁게 시어머니는 보살폈다. 시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전 7년 동안을 휠체어에 앉아 있었고 치아도 없었지만, 황아이화가 매일 세심하게 보살펴주어 시어머니는 피부색이 하얗게 좋아지고 살도 쪘다. 그녀의 진심 어린 보살핌에 시어머니는 감동했고 점차 친절해졌다.

올해 8월 타이완 냐오쑹(蔦松) 예술중학교에 다니는 위친은 100여 명의 파룬궁 수련생과 함께 ‘타이완 파룬따파 여름 청소년 캠프’에 참가했는데 수확이 크다고 느꼈다. 그는 어릴 때 성격이 매우 나빠 어머니에게 대들고 다투었지만, 냐오쑹에서 공부한 후 효도를 배웠고 선량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끊임없는 법 공부를 통해 어머니에게 더는 대들지 않았고 화목하게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参加青年营的法轮功学员在打坐炼功'
청년 캠프에 참가한 파룬궁 수련생이 가부좌하고 연공하다

과학은 가부좌가 사람을 평온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파룬궁은 사람에게 우주의 ‘진선인(真·善·忍)’의 법리에 따라 수련하도록 가르쳤고 일에 부딪히면 다른 사람을 질책하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 찾고,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해도 대꾸하지 말며, 가정과 사회에 유익한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쳤다. 사람은 ‘진선인’의 본성으로 회귀해야 중공의 ‘당문화’가 주입한 마성에서 벗어날 수 있고, 사람으로서 마땅히 있어야 할 이성과 평온, 인자함으로 돌아갈 수 있다.

 

원문발표: 2020년 10월 4일
문장분류: 문화채널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10/4/41334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