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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동전(銅錢)의 진정한 내포를 아는가?

글/ 저우칭(周清)

[밍후이왕] 고대의 동전은 바깥 테두리는 둥글고 중심은 네모꼴로 구멍이 뚫려있다. 그래서 원은 하늘을 상징하여 선천적인 지혜를 장사의 근본으로 삼는 것이고, 중심의 네모는 땅을 상징하여 개인의 수양을 통해 성실하고 신용 있게 처신함을 뜻했다. 동전은 시장에서 거래하고 유통되면서도 잘 꺾이지 않고 장수할 수 있음을 상징했고, 장시간 사용에도 파손되지 않으니 도의를 상징했다. 그래서 오래 갈 수 있었다.

‘전(錢)’에는 샘(泉)이라는 뜻도 있어서 마땅히 있어야 할 지혜와 수양을 갖춘 후에 장사하면 ‘전(錢)’이 곧 샘물처럼 끊임없이 밀려드는 것이다.

덕으로 장사하고 식객의 체면을 세우다

청나라의 산서 상인 교치용(喬致庸)은 덕으로써 장사할 줄 알았다. 그는 태평천국 시대에 자금을 모아 남방에서 차를 구매하며 끊어졌던 찻길을 회복시켰는데, 이런 일에는 아주 큰 위험이 따랐다.

그는 사람을 데리고 남방에서 찻잎을 운반해 와 자금을 댄 사람에게 넘겼다. 찻잎 가게 사장이 말했다. “찻잎 무게를 한번 달아 주게. 양이 맞는지 보게” 그의 점원이 무게를 단 후에 기뻐하며 말했다. “사장님, 자루마다 한 근 두 냥입니다.” 교치용이 매 한 근에 두 냥을 더 준 것이었다. 사장이 듣고는 몹시 기뻐하며 “일찍 서둘러 다시 한 근씩 포장하라!”라고 말했다.

옆에서 있던 노인이 말했다. “끝났어, 앞으로 이 찻길은 모두 교치용의 것이야!”

어느 해에는 흉년이 들어 굶는 사람이 속출해 동냥하거나 남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가난한 사람은 동냥해도 상관이 없었지만, 약간의 지식과 신분이 있는 사람이 동냥하자니 체면이 서지 않았다. 교 씨는 이를 고려해 집을 짓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구제했다. 벽돌 하나를 운반하면 음식을 제공했고, 그렇지 않으면 동냥으로 쳤다. 일을 도왔기에 그 밥을 먹는 것으로, 사람들의 체면을 살려 주었으니 얼마나 착한가!

수북하지 않으면 상인이 아니다

고대 중국의 저울은 16냥짜리였는데, 16개의 별을 눈금으로 새겼다. 앞의 여섯 냥은 남두성(南斗星)의 6개, 다시 일곱 냥은 북두칠성의 7개, 마지막 세 냥은 복(福), 녹(祿), 수(壽)의 3별이다. 남두성은 생을 주관하고, 북두칠성은 죽음을 주관하며, 복록수는 복, 재물, 수명을 주관한다. 무게를 다는 것을 생사에 관계되는 것으로 여겨 복, 녹, 수 세 개의 별을 관장하는 신선이 상인의 행위를 감독한다는 표시였다. 상인이 만약 다른 사람에게 한 냥을 적게 주면 신선이 그의 복을 줄이고, 두 냥을 적게 주면 재물을 줄이고, 세 냥을 적게 주면 명을 줄인다고 했다. 그래서 고대인들은 무게를 달 때 항상 고객에게 이익을 주었고, 많은 쪽으로 주었다.

현재는 “교활하지 않으면 상인이 아니다(無奸不商)”는 말이 있는데, 마치 모든 상인이 교활하다는 듯하다. 이는 현재의 변이된 말이며, 고대에는 간(奸) 자가 아니고, 수북하다(冒尖)는 뜻의 첨(尖) 자였다. 그래서 “수북하지 않으면 상인이 아니다(無尖不商)”고 했다. 현재 일부 가게와 사무실에서는 무재신(武財神) 관공(關公-관우)이나, 문재신(文財神) 조공명(趙公明)을 모신다. 문재신 조공명이 처음 사고팔기 시작한 것은 양식이었고, 말과 되로 양을 쟀다. 말은 원뿔꼴의 용기였고, 되는 원기둥꼴의 용기였다.

고대인은 다른 사람과 양식을 거래할 때 말과 되로 양을 쟀는데, 가득 찬 것을 괄판(刮板)으로 한번 밀면서 깎아 편평하게 해서 많지도 적지도 않게 했다. 괄판이 없으면 손바닥을 아래로 하여 한번 깎았는데, 어떤 사람은 교활하게 손바닥을 아래로 눌러 양을 줄였다. 너그럽고 후한 사람은 손등을 조금 위로 올려 손바닥을 비웠고, 수북한 부분이 위로 솟게 함으로써 주는 양을 늘렸다. 조공명은 양식을 팔 때 매번 수북하게 했는데, 이것이 바로 “수북하지 않으면 상인이 아니라”고 하는 말에서 나온 뜻이다. 수북한 상인은 너그럽고 신용 있는 좋은 상인이다.

‘수북하지 않으면 상인이 아니라’는 것은 상인이 고객에게 이익을 준다는 의미다. 상인의 평판이 좋으면 장사가 자연히 잘되고 커진다. 양식을 파는 일 외에도 천을 팔 때 “자를 채우고, 세 치를 더한다(足尺放三)”는 말이 있다. 자로 재다가 마지막 한 자를 잴 때 세 치를 더하는 것이다. 또한, 기름과 식초를 파는 상인도 마지막에 고객에게 약간의 덤을 준다. 그래서 ‘수북하지 않은 상인이 없는’ 이익을 주는 행위는 고대의 상인이 장사하면서 준수하는 황금 법칙이었고, 상인의 성공 비결이었다.

천금을 뿌려도 다시 돌아온다

춘추전국시대 월(越)나라 사람 범려(范蠡)는 자호(字號)가 도주공陶朱公)이었고, 월왕 구천(勾踐)의 책사였다. <도주공 상경(商經)>으로도 불리는 그의 <상훈(商訓)>은 고대의 영업 서적이었다. 후세인은 그를 상업의 시조, 경영의 신으로 추앙한다. 그는 20여 년 동안 월왕 구천을 보좌해 나라를 다시 일으켰고, 공을 세운 후에는 어떤 포상도 사양하고 빈손으로 떠나 제(齊)나라로 갔다. 범려는 제나라에서 사업으로 자수성가했는데, 사업이 크게 번창하자 제나라 왕이 그를 재상으로 삼았다. 그러나 그는 모든 재산을 나눠주고 재상의 인장도 반납한 채 빈손으로 떠나 가족을 이끌고 도(陶) 땅에 도착했다. 여기에서도 범려는 빈손으로 경영을 시작해 19년 동안 세 번이나 천금의 재물을 모았고, 다시 세 번에 걸쳐 모든 재물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백은 이런 시를 지었다. “하늘이 나에게 재주를 내리니 반드시 쓰임이 있을 것이요/ 천금이 모두 흩어져도 다시 돌아오도다” 이는 곧 범려 이야기다. 그런데 그의 눈에 높은 관직과 후한 복록, 거액의 재산은 모두 언제든 버릴 수 있는 몸 밖의 물건이었고, 버리는 것이 있어야만 얻을 수 있었다.

19세기 한국 제일의 거상 임상옥은 죽기 전, 어떠한 유산도 남기지 않고 모든 재산을 국가에 헌납했다. 서양의 큰 부자, 대 부호의 대부분은 큰 자선가다. 그들은 번 돈을 모두 필요한 사람을 돕는 데 썼다. 사실 재부는 샘물처럼 흐르는 것이다. 설령 금전의 형태가 아니어도 다른 복이 되어 돌아오므로 잃지 않는 것이다.

한번은 범려가 계속 자금 회전이 막혀 어느 부자에게 10만 전을 빌렸다. 1년 후, 부자가 차용증으로 빚을 받으러 나섰다가 주의하지 않아 보따리를 강물에 떠내려 보내는 바람에 차용증과 여비를 모두 잃어버렸고, 그래서 범려에게 몸을 의탁했다. 차용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범려는 그에게 원금과 이자를 돌려주었을 뿐만 아니라 여비까지 더 주었다. 범려의 어진 마음과 신용은 천하에 널리 알려졌다. 이후에 장사할 때는 여러 부호가 자발적으로 돈을 들고 찾아왔으므로 범려는 재정적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범려는 장사를 하면서 도덕과 도의를 대단히 중시했다. 그는 19년 동안 잇달아 재산을 가난한 사람과 소원하게 지내는 형제에게도 나누어 주어 금전으로 곤란을 겪지 않게 했다.

기개를 품어 의를 보면 반드시 행한다

청나라 건륭 시기의 양곡상 오붕상(吳鵬翔)은 슈닝(休寧)현 사람으로, 일 년 내내 한양에서 장사했다. 어느 해에 오붕상이 후추장사를 하면서 다른 사람과 계약을 맺고 후추 8백 곡(斛)을 사들였다. 곡은 고대의 용량 단위로, 8백 곡은 대략 오늘날의 8톤에 해당한다. 아주 빨리 화물을 받았지만, 오붕상의 점원이 그 후추에 독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소식은 판매자의 귀에 들어갔고, 판매자는 오붕상에게 “반품과 계약해지, 그리고 환급해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오붕상은 판매자의 제안을 거절하고, 반품도 환급도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독 후추를 전부 불태워버렸다. 그래서 큰 손실을 보았다. 어떤 사람이 이유를 묻자, 오붕상은 “만약 판매자가 후추를 회수하면 틀림없이 다시 다른 사람에게 팔 것이니 그렇게 되면 수많은 사람을 해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독이 있는 후추를 모두 소각하면 대규모의 중독사건을 피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건륭 48년부터 49년 사이에 후베이에 큰 가뭄이 들어 쌀 가격이 폭등했다. 마침 오붕상에게는 쓰촨에서 가져온 수만 석의 쌀이 있었지만, 그는 값이 오른 기회를 이용하지 않고 저가로 판매해 현지 백성들이 난관을 넘길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가 곧 공자가 말한 군자일 것이다! 공자는 말했다. “군자가 인을 버리면 어찌 이름을 얻겠는가? 군자는 밥을 먹는 동안에도 인을 어기지 말아야 하느니, 다급해도 반드시 그래야 하며, 망해도 반드시 그래야 하느니라” 다시 말해서 군자가 만약 인덕(仁德)을 떠난다면 어떻게 군자라 할 수 있겠는가? 군자는 항상 인덕을 어기지 않으며, 설령 가장 긴박한 순간일지라도 반드시 인덕에 따라 일을 처리해야 하고, 망해서 유랑할 때도 똑같이 그래야 한다.

현대의 어진 상인

고대인들은 “군자가 재물을 좋아하나, 취함에는 도리가 있다”고 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원칙과 도의를 저버릴 수 없다는 것은 고대인의 기본적인 준칙이었다. 현재 사회의 난잡한 모습을 돌아보면 사람들은 돈을 위해서라면 어떤 악한 일도 가리지 않고, 티끌만 한 이익을 위해 심지어 살인 방화까지 온갖 나쁜 짓을 서슴지 않는다. 이는 수천 년 된 중국의 도덕 준칙과 정반대로 가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모두 바쁘게 명리를 추구하는 오늘날에도 이를 거슬러 올라가는 어진 상인들이 있다. 밍후이왕은 <최고의 고춧가루가 최고의 상인들을 이끌어 내다>라는 글을 2012년 5월 30일에 발표했다.

글의 주인공은 고춧가루 도매사업을 하는 사람이다. 그는 파룬궁(法輪功) 수련 후, 파룬궁의 ‘진선인(真·善·忍)’ 표준에 따라 장사를 했다. 결국, 그는 가짜를 섞지 않은 고춧가루를 상인에게 원가에 넘기고, 건축막노동을 하기로 했는데, 비록 원가였지만 시장 가격보다 비쌌다.

그는 가짜를 섞지 않은 고춧가루를 시장에서 도매로 넘기면서 중개인에게 말했다. “이 고추는 제 마지막 도매물건이고, 가짜는 조금도 안 넣은 것이다. 나는 파룬궁을 수련하기 때문에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고 진선인에 따라야 한다. 그래서 가짜를 안 넣는다. 이전보다 비싸게 팔아야겠지만, 나에게 기름값과 인건비만 주면 된다. 중개인은 전문가였기에 좋은 가격으로 물건을 사 갔다.

그가 건축 일을 찾기도 전에 그 중개인이 다시 물건을 주문했다. 그렇게 그의 고춧가루 사업이 다시 시작되었고, 갈수록 잘 되어 버는 돈도 갈수록 많아졌다. 동업자가 배우기를 청하자 그는 사실대로 알려주었다. “나는 파룬궁을 수련하기 때문에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고 진선인에 따라야 한다. 그래서 가짜를 안 섞는다. 이전보다 비싸게 팔았지만, 그들이 모두 원하고 있다” 그의 인도에 따라 공급 상인들도 점차 고춧가루에 가짜를 넣지 않게 되었다.

시장의 고추 소매상들은 늘 우스갯소리를 한다. “아, 리 대사의 파룬궁은 대단해. 그의 제자가 좋은 사람이 되어 가짜를 넣지 않으면서 최고의 고춧가루로, 최고의 상인들을 이끌어 냈고, 우리까지 바꿔놨어.”

군자가 재물을 좋아하나, 취함에는 도리가 있다

뤄융제(羅永傑)는 파룬궁 수련자로, 대만의 부동산중개인이다. 그는 대만 돈으로 8천만 원 상당의 계약을 성사시켜 판매자로부터 200여만 위안(한화 약 3억4000만 원)의 중개수수료로 받게 되고, 구매자로부터 50만 위안(한화 약 8503만 원)을 받게 되었다. 매매가 성사된 당일 판매자에게서는 약정액수대로 받았지만, 구매자는 서명 후에 바쁘다는 핑계로 급히 떠나는 바람에 50만 위안은 고사하고 일부도 받지 못했다.

이후 회사에서 그 미수금 건에 대해 뤄융제에게 일임했다. 구매자는 스스로 도리에 어긋난 것을 알았는지 그에게 20만 위안(한화 약 3401만 원)을 찔러주며 “당신 혼자서 가지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20만 위안 전액을 회사에 입금했다. 그러자 회사는 신의를 배반한 악질적인 구매자에 대해 크게 화를 내면서 “그를 고소하겠다”라고 했다. 뤄융제는 “내 개인적인 일이라면 고소에 동의하지 않겠지만, 회사 차원에서 고소한다면, 사실을 입증하는 데 전력을 다하겠다”라고 말했다.

회사는 이해득실을 따진 후 결국 포기했고, 그 일은 흐지부지되었다. 뤄융제가 말했다. “그게 내 것이라면 잃지 않을 것이고, 내 것이 아니라면 다퉈서도 얻지 못한다. 아마 내가 그에게 빌린 것을 이번 생에 갚은 것일 테니, 그렇다면 참 좋은 게 아닌가. 만약 그가 나에게 빚을 졌다면 다른 쪽에서 내 손실이 메워질 거다. 돈은 작은 것이다. 가장 애석한 건 인품과 도덕을 잃은 것이다. 어떤 말을 해도 다시 되돌리기 어렵다.”

그는 또 말했다. “군자는 재물을 아끼지만 도(道)에 맞게 얻는다. 처지를 바꾸어 상대방을 좀 더 배려하기만 하면 세상 곳곳에 그 향기가 난다.”

 

원문발표: 2020년 10월 3일
문장분류: 문화채널
원문위치: http://big5.minghui.org/mh/articles/2020/10/3/41298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