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이 박해를 반대하기 위해 설립된 지 26주년에 부쳐
글/ 명월(明月)
[명혜망] 석가족(釋迦族, 샤카족)의 멸망은 불교 경전 중 비장하면서도 인과율을 깊이 체현한 역사 이야기로, 석가모니불이 어떻게 자신 부족의 멸망을 직면했는지를 묘사할 뿐만 아니라 업보를 거스를 수 없음을 체현했다. 이 외에도 이 역사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현실적 의미가 있다.

다음은 이 이야기의 주요 내용으로, 《대열반경(大涅槃經)》, 《잡아함경(雜阿含經)》과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 등 경전의 인터넷 자료를 정리해 만든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양해를 바란다.
1.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이 출가하기 전 이름은 고타마 싯다르타였다. 그는 고대 인도의 카필라바스투국에서 태어났다. 카필라바스투국은 오늘날 네팔 남부에 위치해 인도 국경에 가깝다. 싯다르타는 카필라바스투국 국왕 수도다나왕의 아들로, 그 나라의 태자였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싯다르타의 어머니 마야 부인은 큰 흰 코끼리가 자신의 배 속으로 날아드는 꿈을 꾸었고, 그 후 싯다르타를 낳았다. 마야 부인은 출산 후 며칠 만에 세상을 떠났고, 싯다르타는 마야 부인의 여동생 마하파자파티가 길렀다.
기록에 따르면 싯다르타는 어릴 때부터 매우 총명해 12세에 인도 최고의 학문을 터득했다. 그는 약 16세에 아름다운 사촌 야수다라(이후에 불타 10대 여제자 중 한 명)와 결혼했고, 혼인 후 독자 라훌라(이후에 불타 10대 제자 중 한 명)를 낳았다. 이 시기 싯다르타는 왕자의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며 걱정 없이 지냈는데, 그가 약 29세였을 때 사문출유(四門出遊)가 일어났다.
《대열반경》과 《장아함경》 기록에 따르면, 싯다르타는 29세 이전에 궁중에서 비교적 폐쇄적인 생활을 보냈다. 수도다나왕은 아들이 세간의 고통을 겪는 것을 피하게 하려고 그를 궁전 안에만 머물게 했고, 그가 모든 아름답고 즐거운 일만 접하도록 정교하게 안배했으며, 심지어 노병사(老·病·死)와 관련된 모든 광경을 멀리하게 했다. 그러던 중 29세 되던 어느 날, 싯다르타 왕자는 궁을 나가 왕국 밖의 세계를 탐험하기로 결심했다.
싯다르타가 출유할 때, 그가 네 개의 궁문 중 어느 문으로 나가든, 그의 부왕이 어떻게 안배하든 예외 없이 그의 심령을 진동시키는 광경을 보게 됐는데, 이것이 후인이 말하는 사문출유 사건이다.
사문출유 사건은 싯다르타 왕자가 동서남북 성문을 각각 나갈 때 본 노인, 병자, 죽은 자, 고행승을 가리킨다. 이 네 가지 광경은 그의 심령을 깊이 충격했고, 그가 처음으로 생명의 무상함과 고통을 의식하게 했으며, 출가 수행해 해탈의 길을 찾으려는 결심과 의지를 불러일으켰다.
그해 약 29세에 싯다르타는 한밤중에 몰래 궁전을 떠나 생로병사의 해탈을 추구하기 시작했고, 출가 수행을 떠났다.
각지를 두루 다니며 고생을 맛본 후, 약 35세 되던 해에 싯다르타는 보리수 아래서 연속 7일밤 좌선하며 시련을 겪은 후 마침내 깨달았고, 성불해 석가모니불이 됐다. ‘석가모니’라는 칭호는 석가족에서 온 수행 성취자란 의미다.
2. 석가족과 콜리야족의 혼인 인연
마가다국과 코살라국은 고대 인도의 두 중요한 국가다. 그중 마가다국은 석가모니불 시대의 강국 중 하나였으며, 불타가 성불한 후 불교의 발원지 중 하나가 됐다. 마가다국은 강대한 왕권을 가지고 있었다. 이 나라는 불교 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고, 많은 불타의 제자[예를 들어 신통제일인 목건련(목갈라나)]와 불타의 지지자들이 이 지역 출신이다. 코살라국은 당시 인도 북부에 위치했으며, 역시 후에 불타가 빈번히 설법한 장소 중 하나다. 이후에 석가족을 멸망시킨 비루다카왕이 바로 이 나라의 국왕이다.
그렇다면 콜리야족은? 콜리야족은 작은 부족국가로, 오늘날 인도 북부에 위치해 코살라국과 카필라바스투국의 경계에 가깝다. 콜리야족의 영토는 보통 싯다르타가 태어난 카필라바스투국과 인접했다.
콜리야족은 석가족의 친족 중 하나다. 콜리야족의 중요한 인물은 마하마야(Mahamaya), 즉 싯다르타의 어머니로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마야 부인이다.
인연이 되어 석가족은 석가모니불이 속한 부족이 됐고 카필라바스투국에 거주했으며, 이후에 비루다카왕이 통치한 코살라국과 많은 교류가 있었다. 그렇다면 비루다카왕은 또 누구인가?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잡사》 기록에 따르면, 석가족 중에 한 계집종이 있었는데 딸을 낳았고 용모가 매우 아름다웠다. 석가족 사람들이 이 계집종의 딸을 콜리야족과 혼인시키기 위해 보냈다. 콜리야왕이 그녀를 비(妃)로 맞았고, 이후에 비루다카왕을 낳았다.
비루다카왕은 자란 후 자신이 계집종의 아들임을 알게 됐고, 마음속으로 석가족이 그의 어머니를 모욕했다고 원망하며 마음에 한을 품었다.
3. 비루다카왕이 석가족을 정벌하다
이후에 비루다카왕이 코살라국의 국왕이 되자 군사를 보내 석가족을 공격했는데, 어머니가 받은 모욕을 갚으려 했다.
그가 첫 번째로 군사를 보냈을 때 부족을 구하기 위해 석가모니불이 직접 길목의 마른 나무 아래 앉아 있었다.
비루다카왕이 불타가 단정히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물었다. “세존(世尊)이시여, 이렇게 많은 초록 그늘이 무성한 큰 나무를 두고 앉지 않으시고, 왜 하필 이 마른 나무 아래 앉아 계십니까?”
불타가 답했다. “잎이 있는 나무 아래 앉는 것보다 차라리 친족이 멸망하는 곳에 앉겠다. 그늘은 없지만 마음이 슬프고 가엾어 여기에 앉았다.”
비루다카왕은 세 번 출병했는데, 매번 불타가 앞에 나서서 저지하는 것을 만났고, 그는 불타를 존경해 철군했다. 하지만 네 번째에는 결심을 굳혔고 더 이상 퇴병하지 않았다.
4. 석가족의 멸망
석가모니불은 이것이 석가족이 누적한 업보에 의한 것임을 알았고, 거스를 수 없으며, 부처라도 업력이 성숙하면 인과응보를 저지할 수 없음을 알았다. 그렇지 않으면 부처 자신이 우주의 법칙을 위반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제자들에게 말했다. “나에게 큰 신통이 있다 해도 이미 성숙한 공업(共業)을 바꿀 수는 없다.”
불교에서 ‘공업’이라는 말의 의미는 단체의 업력, 즉 여러 사람이나 한 집단이 공동으로 만든 업력이다. 공업은 최종적으로 조업(造業)에 참여한 자들이 공동으로 그 과보를 짊어지게 된다. 석가족이라는 종족이 공동으로 어떤 업력을 조성했는지는 마지막에 다시 말하겠다.
비루다카왕은 마침내 대군을 몰고 와서 석가족을 거의 몰살시켰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당시 갠지스강의 물이 모두 석가족의 피로 붉게 물들었고, 3일 동안 맑아지지 않았으니 처참함이 비할 데 없었다.
5. 부처님 제자 목건련 존자의 비원(悲願)과 헛됨
목건련 존자는 석가모니불 제자 중 신통제일이다. 출가 전 그는 석가족 출신이 아니라 마가다국의 귀족 가정 출신이었다. 하지만 신통이 광대한 불제자로서 목건련은 석가족 사람들이 살해당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공양그릇에 석가족 500명을 담아 공중에 숨겼다. 하지만 이후 그가 공양그릇 속 사람들을 내보내려 했을 때 그릇 속에는 한 웅덩이의 핏물만 있었다. 이는 석가족 사람들이 비록 한때 목건련의 구원을 받았지만 결국 공업의 응보를 피하기 어려움을 나타낸다.
6. 업보와 불타의 설명
이에 대해 불타는 해석했다. 석가족은 과거 어떤 곳에서 강 속 물고기들을 수백만 마리 독살한 적이 있다. 금세에 업보가 성숙해 부족이 멸망하는 보응을 받은 것이다. 이것이 ‘공업’ 현상이다. 개인이 비록 선을 수행했지만 단체가 공동으로 조성한 업과는 여전히 피할 수 없다.
《잡아함경》은 아함경의 한 부분으로 불교 경전에 속한다. 아함경은 석가모니불의 초기 설법을 기록한 경문으로, 주로 인과율, 열반, 무상, 무아 등 내용을 둘러싸고 있으며, 불교 경전 중 근본에 속한다. 오늘날의 수련에 문화적 기초를 제공했다.
《잡아함경》에서 말했다. “이와 같은 업이 성숙될 때 스스로 받으며, 선업과 악업은 사라지지 않는다.” 즉 “사람이 업을 조성하면 업과가 성숙할 때 사람은 반드시 스스로 그 과를 받는다. 선악의 업은 모두 사라지지 않으며 반드시 모두 과보(果報)가 있다”는 뜻이다.
【후기】

석가족 멸망의 이 역사는 단지 부족 흥망에 대한 서술이 아니라 인과업보, 인생무상, 인과율을 거스를 수 없는 공업의 힘을 깊이 체현한 것이다. 불타와 같은 이미 깨달은 사람조차도 성숙한 업과에 간여하지 않기를 선택했는데, 이는 천지간 ‘인과응보’의 법칙을 드러낸 것이다.
지금 중공(중국공산당)이 파룬궁을 박해한 지 이미 26년이 지속됐다. 그들은 ‘명예 훼손, 경제 박탈, 육체 소멸’이라는 소멸 정책을 제정했다. 먼저 ‘육체 소멸’이라는 조항을 말해보자. 중공이 금전, 명예로 전 중국의 얼마나 많은 의사 및 관련 인원이 파룬궁수련자의 장기를 생체 적출하는 이 죄악에 참여하게 했는가? 이 업채(業債)는 개인의 업보 외에 공업의 업보도 있지 않을까?
다시 ‘경제 박탈’이라는 조항을 말해보자. 중국의 경찰, 감옥, 가도(街道, 주민센터) 등 모든 공안·검찰·법원과 관련된 인원 중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가택수색, 강탈, 갈취, 착취를 목적으로 한 파룬궁수련자에 대한 반복적인 체포에 참여했는가? 이는 자신의 탐욕을 만족시키는 것 외에도 중공의 박해 정책을 실행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명예 훼손’ 조항을 말해보자. 중공이 각종 거짓말을 조작해 파룬궁을 모독하고, 당시 중국인 약 10분의 1을 차지했던 파룬궁수련자를 잔혹하게 타격했다. 26년간 중공이 주장하는 14억 중국 대륙인 중 얼마나 많은 사람이 중공 선전을 듣지 않고 중공을 따라 거짓말을 지어내고 전파하는 것을 거부했는가? 전국 인구의 50%나 될까?
중공과 함께 파룬궁을 박해한 사람들은 돈을 벌거나 승진을 위해서든 박해에 참여하기만 하면 모두 업을 조성한 것이다! 그렇다면 1999년부터 2025년까지 26년 동안 얼마나 많은 중국인이 깨달아 자신을 중공이라는 조업(造業) 집단에서 벗어났는가? 아직 4억 5천만 명이 안 된다.
선에는 선한 보답이 있고 악에는 악한 응보가 있는데 털끝만큼도 어김없다. 개인에게는 개인의 업력이 있고, 집단에게는 집단의 업력이 있다. 이것이 또한 중공 같은 사이비교 마당(그 부속 조직인 공청단, 소선대 등등 포함)에 가입하지 않는 것이 좋고, 가입했다면 아직 늦지 않았을 때 빨리 탈퇴해야 하는 이유다. 탈당, 탈단, 탈대는 최소한 자신이 더 이상 업력을 증가시키지 않고, 개인이 분담해야 할 업력 응보를 줄여 성명(性命)을 보전할 수 있다.
일찍이 중공 당·단·대에 가입했던 당신이 말세 인류의 대보응이 닥쳐오기 전에 창세주의 특별한 은혜를 소중히 여기는 것은, 예전에 수행으로 쌓은 자신의 복덕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아닐까?
‘사람이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천주지멸(天誅地滅, 하늘이 주살하고 땅이 멸한다)을 당한다’는 말을 오늘 이 역사 시기에서 말한다면, 사람이 만약 아직도 중공 악당이 조성한 공업에서 자신을 해탈시키고 자신을 위해 살길을 찾는 것을 모른다면, 당신이 중국에 있든 땅끝과 바다끝에 있든 언젠가 천주지멸을 당하게 될 것이다.
원문발표: 2025년 6월 22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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