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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주 무제의 지옥 심판이 주는 교훈

글/ 저우칭(周淸)

[밍후이왕] 중국 역사상 불교를 소멸한 4명의 황제가 천벌을 받았는데, 그들은 바로 ‘삼무일종(三武一宗)’, 즉 북위(北魏)의 태무제(太武帝), 북주(北周)의 무제(武帝), 당(唐)나라의 무종(武宗)과 후주(後周)의 세종(世宗)이다. 오늘 우리는 북주의 무제 우문옹(宇文邕)이 지옥에서 심판을 받은 이야기를 하려 한다.

건덕(建德) 3년(574년), 북주의 무제는 불교와 도교 두 종교를 금지하는 조서를 내려 경서와 조각상을 모두 파괴하고, 승려와 도사를 폐지해 백성으로 환속하게 했다.

선정(宣政) 1년(578년) 5월 기축(己丑)일, 무제는 대군을 이끌고 북벌에 나섰다. 6월 정유(丁酉)일, 무제는 수도에 돌아온 날 중병으로 저녁에 수레 위에서 사망했는데, 당시 36세였다.

지옥의 심판

‘명보기(冥報記)’ 기록에 따르면 무제는 달걀을 좋아해 한 번에 여러 개를 먹었다. 발표(拔彪)는 식사를 감독하는 의동(儀同, 주나라의 벼슬)이었는데, 늘 황제의 식사 시중을 들어 총애를 받았다. 나중에 수(隋)나라 문제(文帝)가 즉위한 후에도 그는 직책을 유지했다. 그는 개황(開皇, 수나라의 첫 번째 연호) 연간에 갑자기 사망했는데, 아직 심장이 따뜻했으므로 가족들이 그를 매장하지 못했다.

그는 3일 후에 깨어나자마자 말했다. “나를 황상께 데려다주시오. 북주의 무제를 대신해 전해드릴 말씀이 있소.” 가족들이 알현을 주선하니 수 문제가 그에게 무슨 말을 전하려 하느냐고 물었다. 그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급사 후에 누군가가 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고, 저는 그를 따라 커다란 동굴이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그곳 모든 길은 동굴로 통해 있었습니다. 동굴 입구에 도착하니 멀리 서쪽에서 백여 명이 말을 타고 왔는데, 그들은 왕으로 보이는 사람을 호위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들이 동굴로 들어갈 때가 되어서야 그 사람이 북주의 무제인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제가 무제에게 절하니 그가 말했습니다. ‘염라대왕이 자네를 소환해 내 일의 증인으로 삼으려 하는데, 자네에게는 죄가 없네.’ 무제는 말을 마치고 동굴로 들어갔습니다.

저도 사자를 따라 동굴로 들어가 궁궐에 도착하니 염라대왕이 보였습니다. 무제는 염라대왕에게 깍듯이 예를 갖추었습니다. 사자는 저에게 염라대왕께 절하게 했습니다. 염라대왕이 제게 물었습니다. ‘네가 여러 해에 걸쳐 무제의 식사를 준비했는데, 무제가 백단(白團)을 모두 몇 개나 먹었느냐?’ 저는 백단이 무엇인지 몰라 좌우의 사람을 쳐다봤습니다. 그들은 백단이 곧 달걀이라고 알려줬습니다. 저는 곧 대답했습니다. ‘무제는 늘 백단을 먹었사온데,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는 세어본 적이 없사옵니다.’

염라대왕이 무제에게 말했습니다. ‘이 자가 몇 개인지 모르니 우리가 계산해주겠다.’ 무제가 그 말을 듣고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일어섰습니다. 갑자기 쇠 침대가 나타나고, 사람 몸에 소머리를 한 옥졸 수십 명이 나타나자 무제는 이미 침대 위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때 옥졸이 철 기둥으로 무제를 누르자 무제의 양 옆구리가 터졌습니다. 갈라진 곳에서는 달걀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와 순식간에 침대 높이로 쌓였고, 10여 섬이나 됐습니다. (한 섬은 다섯 말) 염라대왕이 옥졸에게 수를 세게 했는데, 모두 세자 침대와 옥졸이 전부 사라지고, 무제는 이미 자리에 앉아있었습니다. 염라대왕은 제게 가도 좋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를 따라 동굴 입구를 나왔는데, 무제가 따라와 제게 말했습니다. ‘자네는 수나라 천자에게 내 말을 전해주게. 지금 국고에 있는 금과 옥, 베와 비단은 모두 내가 저축한 것이네. 내가 생전의 제왕 시절에 불법(佛法)을 소멸해 현재 큰 고통을 받고 있으니 날 대신해 공덕을 쌓아달라고 전해주게.’”

이 이야기를 들은 수 문제는 천하에 훈령을 내려 집마다 한 푼씩을 거둬 북주의 무제를 위해 공덕을 쌓아 그를 초도(超度)하게 했다.

멸불(滅佛)은 최대의 죄업

무제가 생전에 달걀을 좋아했지만, 생활은 조금도 사치스럽지 않았고 평소 거친 옷과 소박한 음식으로 근검절약하며 살았다. 웅장하고 화려한 건물은 허물어 가난한 백성에게 나눠 주었고, 노비를 석방해 평민이 되게 했다.

후궁에는 두 명의 비(妃), 세 명의 후궁, 세 명의 소실만 남겼다.

무제는 북제(北齊)를 평정한 후, 조서를 내려 북제의 가혹한 행정 명령을 폐지하고, 북제의 관청과 민가의 노비를 석방했다. 또한 노인, 허약자, 병자, 장애자와 무연고자, 양식이 없어 굶주리는 사람을 구제하되, 그들에게 옷과 양식을 제공하는 일을 점검하게 했다.

무제는 부지런하고 검소했으며 백성을 사랑했으니 아마 좋은 군주였을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젊은 나이에 죽었을까? 이는 그가 불법(佛法)을 파멸시키며 하늘을 거역하는 죄를 범해 응보를 받은 것이다. 생각해 보자. 지옥에서 달걀을 얼마나 먹었는지 분명히 계산할 수 있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고, 얼마나 많은 불상(佛像)을 없앴는지 분명히 계산할 수 없겠는가?

그래서 그는 총애하는 신하인 발표가 수 문제에게 이야기를 전해 천하의 백성에게 명해 마음을 닦고 선을 쌓아 자신을 초도하도록 한 것이다.

하늘은 공평하며, 세상에서 당신이 국왕이든지, 서민 백성이든지를 막론하고 불법을 비방하고, 신불(神佛)에 불경하면 징벌을 받게 된다. 세간의 응보뿐 아니라, 지옥에서도 자신의 죄업을 계속해 갚아야 한다. 사람이 죽었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서기 438년, 북위의 태무제 탁발도(拓跋燾)는 조서를 내려 50세 이하의 승려를 환속시켜 병력 문제를 해결했고, 444년에 또다시 조서를 내렸다. ‘가짜 서쪽 오랑캐가 황당무계하여 요사스러운 짓을 일으킨다’는 이유로 승려를 쫓아냈다. 서기 446년, 최호(崔浩)가 진언을 올려 승려를 모두 죽이고, 불경과 불상을 불태우라고 했다. 탁발도는 조서를 내려 불상과 불경을 불태우고, 사원을 허물고, 승려를 생매장했다.

452년, 탁발도가 환관에게 살해당했는데 당시 45세였다.

최호도 그로 인해 멸족을 당했는데, 처형 전에 지붕 없는 수레에 실려 거리를 돌았고, 10여 명이 그의 입에 오줌을 누었다. 그는 또 사형수가 종래로 겪지 않았던 채찍질, 곤장, 조리돌림, 유배 등의 모욕을 당했다.

당나라 회창(會昌) 5년 8월(서기 845년), 무종 이염(李炎)은 많은 절을 파괴했고, 조서를 내려 사원 4600여 개, 작은 절 4만여 개를 허물게 했으며, 대량의 불경을 불태우고, 불상을 녹여 돈을 찍고, 승려와 비구니 26만여 명을 강제로 환속시켰다. 외국에서 온 인도와 일본 승려도 화를 피할 수 없었다. 역사는 이를 회창멸불이라 칭한다. 이후에 무종 이염은 장생의 단약을 과량 복용해 중독으로 사망했는데 당시 그는 33세였다.

서기 955년, 후주의 세종 시영(柴榮)은 조서를 내려 마음대로 출가하는 것을 금지했으며, 황제가 내린 글이 있는 사원 외에는 각 현(縣)에 하나의 절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파괴했다. 전국의 절 3만 360곳을 철거하고, 불상을 부수어 돈을 찍고, 약 백만 명의 승려와 비구니를 강제 환속시켰다. 세종은 갑작스러운 질병으로 사망했는데 당시 39세였다.

표면적으로는 사망 원인이 제각각이지만 진실은 그들이 불법을 파멸시켜 응보를 받은 것이다.

옛일을 거울로 삼다

당 태종은 이런 말을 했다. “구리가 거울이면 의관을 바르게 할 수 있고, 옛일이 거울이면 흥망을 알 수 있으며, 사람이 거울이면 득실을 알 수 있다.” 뜻인즉, 한 사람이 구리를 거울로 삼으면 의관이 단정한지 비추어 알 수 있고, 역사를 거울로 삼으면 국가 흥망의 원인을 알 수 있으며,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자신의 잘못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파룬궁은 파룬따파(法輪大法)라고도 한다. 1992년 리훙쯔(李洪志) 대사께서 창춘(長春)에서 전하신, 불가(佛家) 고덕(高德) 대법이며, ‘진선인(真·善·忍)’이라는 우주 최고의 표준으로 수련을 지도한다. 세계 각국 정계인사와 국민의 호평을 받으며 수련자가 날로 증가하고 있다. 파룬궁의 저서 ‘전법륜’은 40여 개 언어로 번역되어 세계 각지에서 발행되고 있다. 파룬따파의 창시자 리훙쯔 사부님께서는 노벨 평화상 후보로 네 차례나 지명되셨다.

그러나 1999년, 장쩌민이 소인배의 질투심을 일으켰고, 우주 최고 표준인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는 파룬궁 수련자들을 탄압하고 박해하며 21년을 끌어왔다. 법률을 초월하여 국가 기관을 가동하고, 독일의 나치의 게슈타포와 유사한 ‘610 사무실’을 만들어 파룬궁 수련자를 전문적으로 탄압했으며, 방송, 신문, 인터넷, 공안, 검찰, 법원, 사법 등 기관을 이용해 거짓 선전을 날조하고 국민을 속이며 파룬따파를 모욕했다.

악독한 장쩌민은 공안, 검찰, 법원, 사법 등 기관을 압박하고 언론 담당자와 함께 하늘에 거역하는 죄를 저질렀다. 더욱 음흉한 것은 진상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거짓 선전을 주입해 파룬따파에 대해 반감을 일으키게 하고 부처를 비방하는 죄업을 짓게 한 것이다. 말하자면 장쩌민은 자신이 죽을 때 그런 사람들이 함께 순장되게 하려는 것이다.

신불(神佛)은 언제나 사람에게 자비로우며, 잘못을 고칠 기회를 주고, 진상을 모르는 선량한 사람이 미래를 선택할 기회를 준다. 그것은 바로 중공의 당, 단, 대에서 탈퇴하는 것이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다)’를 기억하자.

 

원문발표: 2020년 9월 8일
문장분류: 천인지간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9/8/41149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