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영·호주 등 15개국 연합성명을 읽고 든 생각

글/ 일언(一言)

[명혜망] 2025년 11월 21일, 미국, 영국, 호주 등 15개 유엔 회원국이 ‘중국 인권 상황에 관한 연합성명(Joint Statement on the Human Rights Situation in China)’을 발표해 중공(중국공산당)이 위구르족과 기타 무슬림 소수민족, 기독교인, 티베트인, 파룬궁수련자 등 집단을 겨냥해 박해하는 것을 규탄했다. 성명은 또 각 회원국에 유의미한 책임 추궁을 추진할 것을 촉구했다.

성명은 다음과 같이 밝혔다. “우리, 다음 서명국은 국내외에서 인권 및 기본적 자유를 증진하고 보호하는 데 주력하며, 여기에는 언론의 자유, 평화로운 집회의 자유, 결사의 자유, 종교 또는 신앙의 자유가 포함된다. 동시에 우리는 중국 내에서 발생하는 심각한 인권 침해 행위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한다.”

“신뢰할 만한 보고에 따르면, 중국에는 임의적 구금, 강제노동, 불법적이거나 임의적인 대규모 감시, 그리고 종교와 문화적 표현에 대한 제한이 지속적으로 존재한다. 소수민족과 종교 집단, 특히 위구르족과 기타 무슬림 소수민족, 기독교인, 티베트인, 파룬궁수련자 등은 겨냥된 박해를 받고 있으며, 그 수단에는 아동을 기숙학교에 보내 가족과 분리하는 것, 고문, 문화유산 파괴 등이 포함된다. 우리는 또 홍콩에 장기간 존재하는 시민의 자유와 법치에 대한 지속적인 침해에 우려를 표하며, 홍콩 밖에서 언론의 자유를 행사하는 개인에 대해 체포 영장을 발부하고 현상금을 거는 것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한다.”

지난번 중국 인권에 대한 연합성명은 2022년이었는데, 구체적으로 한 번은 유엔인권이사회(UNHRC)에서, 다른 한 번은 유엔총회 제3위원회에서 있었다. 이런 성명은 2019년부터 매년 중국(특히 신장 위구르족 인권 문제)을 겨냥해 온 국제적 압박 패턴의 연속이지만, 2023년과 2024년에는 유사한 규모의 성명 발표가 없었기에 올해 다시 보게 돼 매우 기쁘다.

동시에 다소 우려도 된다. 미국, 영국, 호주 등 서구 자유사회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과연 중공의 파룬궁 박해야말로 중국 최대의 인권 침해라는 사실을 똑똑히 보았는지 모르겠다. 위구르족, 티베트인, 기독교인 집단, 인권 변호사에 대한 박해는 비록 난폭하고 잔인하며 피비린내 나지만, 전체 중국인에 대한 도덕적 납치와 육체적 소멸의 규모와 심도에는 미치지 못했다. 오직 26년 동안 지속됐고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파룬궁 박해 정치운동만이 중공에게 민족, 신앙, 연령, 직업을 불문하고 전체 중국인을 대상으로 사상 통제를 감행하는 지경에 이르게 했으며, 사람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고 제멋대로 학대하고 해치게 했다.

중공은 1999년 파룬궁을 겨냥한 정책으로 ‘명예를 실추시키고, 경제를 파탄시키며, 육체를 소멸하라’를 특별히 강조했다. 여러분은 중공 치하의 매번 정치운동, 그리고 1999년 이후 민간에 폭로된 사례들(위구르족, 티베트인, 기독교인, 인권 수호 민중, 무고한 청소년, 양심 인사를 포함)을 대조해 볼 수 있다. 본질적으로 모두 이 정책의 실시가 아닌가?

2025년 10월 27일과 28일 이틀간, 공산주의 희생자 기념재단(Victims of Communism Memorial Foundation)이 미국 수도 워싱턴에서 연례 ‘중국 포럼’ 회의를 개최했다. 전 미국 국제종교자유 무임소 대사(Ambassador at Large)이자 캔자스주 연방 상원의원, 캔자스 주지사를 역임한 샘 브라운백(Samuel Brownback)은 중국이 매년 수십억 달러를 투입해 종교를 탄압하고 있으며, 파룬궁은 모든 종교 단체 중에서 가장 심각하게 박해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공은 왜 종교의 자유를 파괴하는가? 그것은 중국공산당이 중국 인민을 통제하려 하는데, 그들에게 저항하는 사람들은 종종 정부보다 더 높은 권위에 복종한다는 사실을 중공이 발견했기 때문이다. 공산주의는 처음부터 가장 끔찍하고 급진적인 방식으로 신앙인을 공격했다.

브라운백은 말했다. “중국 입장에서 볼 때 종교의 자유는 (중공) 생존에 대한 위협이다. 미국에서 종교의 자유는 미국의 건국 원칙이기에, (종교의 자유를 파괴하는 것은) 미국의 생존에 대한 위협이다.”

“(종교의 자유) 이 문제는 단순한 인권 문제에서 국가 안보 문제로 격상돼야 한다.”

“나는 우리가 파룬궁을 지지하고, 현재 미국에 거주하고 계신 파룬궁 창시자 리훙쯔(李洪志) 선생을 지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백악관이 그분과 만나야 하며, 그들이 종교의 자유를 누려야 한다고 선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브라운백은 또 지적했다. 중공은 줄곧 거짓말을 퍼뜨려 중국인을 속이고 종교 신앙 단체를 ‘외부 세력’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중국에서 진정한 외부 세력은 바로 공산주의다. 공산주의는 유럽 산업혁명 시기에 발전해 나중에 중국으로 들어온 것으로, 중국과는 격이 맞지 않는다.

필자는 이 미국 상원의원이자 국제종교자유 무임소 대사의 인식이 매우 정곡을 찔렀다고 생각한다. 더 많은 미국인, 영국인, 호주인과 자유와 천부인권을 사랑하는 각국 인사가 이 점을 인식하고, 중공의 파룬궁[진선인(眞·善·忍)]에 대한 박해와 배척이야말로 중국의 가장 크고 근본적인 인권 박해임을 인식해야만, 사람들(수많은 중국인 포함)이 중공의 공포, 폭력, 통제에서 벗어나 창세주께서 희망하시는 자유로운 자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모호한 인식과 요행수를 바라는 심리에 머물러 있거나, 심지어 다소나마 중공을 정상적인 사회의 일원으로 간주하고 중공의 파룬궁 박해 행위를 정상적인 표현으로 간주한다면, 그 결과는 중공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도와 ‘호랑이를 키워 화를 자초한 것(養虎爲患)’보다 훨씬 더 심각할 것이다. 개인에게도 그렇고 단체, 사회, 나아가 국가에 이르기까지 모두 같은 이치다.

여기에 중국 고대 우화 ‘중산랑전(中山狼傳)’을 하나 공유하겠다. 현대인은 흔히 ‘동곽 선생과 늑대(東郭先生和狼)’라고 부른다.

진(晉)나라 대부 조간자(趙簡子)가 중산에서 대규모 사냥을 했다. 늑대 한 마리가 길을 막고 사람처럼 서서 울부짖었다. 조간자가 쏜 화살이 늑대 몸에 깊이 박혔다. 늑대는 아파서 비명을 지르며 필사적으로 도망쳤고, 조간자는 크게 노해 수레를 몰고 뒤를 쫓았다.

그때 마침 묵가(墨家) 학파의 동곽(東郭) 선생이 관직을 구하려 북쪽 중산국으로 가고 있었다. 그는 다리를 저는 당나귀를 몰고 있었고 자루에는 책이 들어 있었는데, 길을 잃은 상태였다.

그 늑대가 갑자기 그의 앞에 나타나 말했다. “선생께서는 혹 남을 돕고자 하는 뜻이 있지 않으십니까? 옛날에 모보(毛寶)는 거북이를 놓아주어 나중에 그 덕분에 강을 건너 도망칠 수 있었고, 수후(隋侯)는 다친 뱀을 구해주어 나중에 뱀이 물어온 진주를 얻었습니다. 하물며 거북이나 뱀이 어찌 늑대만 하겠습니까! 지금 이렇게 위급한데 왜 저를 빨리 자루 속에 숨겨 잠시나마 위태로운 목숨을 이어가게 하지 않으십니까? 훗날 만약 제가 뜻을 펴고 출세한다면 선생의 은덕을 어찌 감히 진심으로 보답하지 않겠습니까!”

동곽 선생이 말했다. “우리 묵가 학파는 인애(仁愛)를 종지로 삼으니 내 결국 당신을 살려낼 방법이 있을 것이오. 설령 화를 입더라도 사양하지 않겠소.” 그리고는 책을 꺼내 자루를 비우고 늑대를 자루에 집어넣으려 했다. 먼저 앞몸을 넣으려니 늑대 턱이 다칠까 걱정됐고, 먼저 뒷몸을 넣으려니 늑대 꼬리가 눌릴까 염려돼 연거푸 몇 번이나 늑대를 집어넣지 못했다.

추격자가 점점 가까워지자 늑대가 재촉했다. “선생께서는 불을 끄고 사람을 구해야 할 결정적인 순간에 겸양을 따지고 예의를 차리십니까? 도적을 피해 달아날 때도 평소처럼 수레에 앉아 방울을 울리시겠습니까? 어서 방법을 생각하십시오!” 그러면서 네 발을 웅크리고 밧줄을 가져오게 해 동곽 선생에게 묶게 하더니, 고슴도치처럼 몸을 말고 뱀처럼 똬리를 틀고 거북이처럼 엎드려 동곽 선생이 하는 대로 맡겼다.

동곽 선생은 늑대의 뜻대로 늑대를 자루에 넣고 입구를 묶은 뒤 어깨로 메어 당나귀 등에 싣고는, 길가로 피해 조간자 일행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조간자가 들이닥쳤으나 늑대를 찾지 못하자 동곽 선생에게 크게 화를 냈다. 동곽 선생은 황급히 땅에 엎드려 기어가서 무릎을 꿇고 말했다. “소인은 비록 무능하나 세상에서 사업을 해보려 합니다. 지금 먼 곳을 가다가 저 자신도 길을 잃었는데, 어찌 늑대의 행적을 발견해 어르신께서 쫓는 것을 도울 수 있겠습니까? 제가 설마 늑대를 모르겠습니까? 늑대는 탐욕스럽고 악독하며 승냥이와 한패가 되어 나쁜 짓을 합니다. 어르신께서 그것을 없애실 수 있다면 마땅히 미력이나마 보태야 할 텐데 어찌 숨기고 알리지 않겠습니까!”

조간자는 침묵하다가 수레를 돌려 길을 떠났다. 동곽 선생도 당나귀를 몰며 서둘러 길을 갔다.

수레와 말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자 늑대가 자루 안에서 외쳤다. “나를 자루에서 꺼내 주시오! 묶인 밧줄을 풀고 내 앞다리에 박힌 화살을 뽑아 주시오. 나는 가야겠소.”

동곽 선생이 늑대를 꺼내 주었다. 자루에서 나온 늑대가 동곽 선생에게 말했다. “방금 선생이 나를 구해준 것은 고맙소. 하지만 지금 배가 너무 고픈데 먹을 것을 얻지 못하면 결국 죽게 될 것이오. 선생은 천하 사람을 위해 이익을 도모하고자 하니, 선생의 몸을 내게 먹이로 주어 내 목숨을 보전하게 해주는 것이 어떻겠소?” 말을 마치자마자 이빨과 발톱을 드러내며 동곽 선생에게 덤벼들었다.

동곽 선생은 급히 손으로 늑대와 맞서 싸우며 크게 소리쳤다. “늑대가 은혜를 원수로 갚는구나! 늑대가 은혜를 원수로 갚아!” 늑대가 말했다. “본래 자네를 저버리고 싶진 않았지만, 하늘이 너희 인간을 낳은 것은 본래 우리 늑대에게 먹이로 제공하기 위함이라네!”

당나귀를 사이에 두고 오랫동안 대치하는 사이 해가 서쪽으로 기울었다. 동곽 선생은 날이 어두워져 늑대 무리가 떼 지어 올까 두려워 늑대를 속여 말했다. “사람들의 관습에 의심나고 결정하지 못하는 일이 있으면 반드시 세 분의 노인에게 가르침을 청해야 하오. 우선 갑시다. 세 분의 노인을 찾아 물어보고, 만약 그들이 내가 잡아먹혀야 한다고 하면 잡아먹히고, 그렇지 않으면 그만두기로 합시다.” 늑대는 동곽 선생과 함께 길을 나섰다.

길에는 행인이 한 명도 없었다. 얼마 후 길가에 서 있는 늙은 살구나무 한 그루가 보였다. 늑대가 말했다. “이 어르신께 물어보면 되겠군.” 동곽 선생은 어쩔 수 없이 늙은 나무에게 자초지종을 다 말하고 물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늑대가 저를 잡아먹어야 합니까?” 늙은 나무는 늙은 정원사 집에서의 자기 경험에 비추어 동곽 선생에게 말했다. “나는 늙어서 베어짐을 면하려 해도 불가능하다네. 자네가 늑대에게 무슨 이로움이 있다고 감히 죽음을 면하길 바라는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늑대가 다시 이빨과 발톱을 드러내며 동곽에게 덤벼들었다. 동곽 선생이 말했다. “늑대가 약속을 어기는구나! 세 분의 노인에게 묻기로 맹세해 놓고 막 늙은 살구나무 하나를 만났는데 어째서 즉시 핍박하는가?” 그리하여 다시 함께 앞으로 걸어갔다.

이때 햇볕을 쬐고 있는 늙은 소 한 마리가 보였다. 늑대가 말했다. “이 어르신께 물어보면 되겠군.” 동곽 선생은 짐승이 무엇을 알겠느냐며 거절했다. 늑대가 말했다. “어서 물어보아라. 묻지 않으면 물어 죽이겠다!”

어쩔 수 없이 동곽 선생은 자초지종을 늙은 소에게도 한 번 설명했다. 늙은 소는 다 듣고 나서 늙은 농부 집에서의 자기 경험에 비추어 말했다. “자네가 늑대에게 무슨 은덕이 있다고 요행으로 화를 면하려 하는가?”

늙은 소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늑대가 다시 동곽 선생에게 덤벼들었다. 동곽 선생이 크게 소리쳤다. “서두르지 마라!”

그 후 그들은 멀리서 명아주 지팡이를 짚고 걸어오는 한 노인을 보았다. 덕망 있는 선비처럼 보였다. 동곽 선생은 황급히 앞으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리며 지팡이 짚은 노인에게 구해달라고 울며 애원했다. 노인이 연유를 묻자 동곽 선생은 다시 한번 설명하고는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땅에 엎드려 노인의 처분을 기다렸다.

노인은 다 듣고 나서 지팡이로 늑대를 때리며 말했다. “네가 틀렸다! 남이 너에게 은혜를 베풀었는데 네가 은혜를 원수로 갚으니 이보다 더 상서롭지 못한 일이 어디 있느냐! 당장 꺼져라! 그렇지 않으면 지팡이로 때려죽이겠다!”

늑대가 말했다. “어르신께서 일의 한 면만 아시고 다른 면은 모르십니다. 애초에 선생이 저를 구할 때 제 발을 묶고 자루 속에 가둔 뒤 책으로 눌러 놓아 저는 몸을 구부리고 숨도 크게 쉬지 못했습니다. 그는 저를 자루 속에서 말려 죽이려 했습니다. 그러니 지금 제가 어찌 그를 잡아먹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동곽 선생은 승복하지 않고 늑대에 대한 자신의 호의를 상세히 설명했고, 늑대는 교묘한 말로 둘러댔다. 노인이 말했다. “이런 말들은 증거가 되기에 부족하다. 다시 한번 자루에 넣어 내게 보여다오.” 늑대는 기꺼이 따르며 발을 동곽 선생에게 내밀었다. 동곽 선생은 늑대를 묶어 자루에 넣고 당나귀 등에 올렸다.

노인이 동곽 선생에게 귓속말을 했다. “비수가 있는가?” 동곽 선생이 말했다. “있습니다.” 노인은 눈짓하며 동곽 선생에게 비수로 늑대를 찌르게 했다. 선생이 말했다. “그러면 늑대가 다치지 않겠습니까!” 노인이 말했다. “금수가 은혜를 원수로 갚음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자네는 차마 죽이지 못하는군. 인자함이 어리석은 지경에 이르렀으니 이는 군자가 찬동하는 바가 아니라네.” 말을 마치고 크게 웃었다. 노인은 동곽 선생을 도와 함께 늑대를 죽여 길에 버리고 떠났다.

이 이야기는 선(善)이 악(惡)에 이용당할 때, 그것은 이미 선이 아니라 어리석음임을 내게 알려준다. 어리석음은 악을 방임하게 한다. 오늘날 세상에는 악을 방임하다 도리어 악에게 해를 입는 사람과 일이 비일비재하다. 앞 수레가 뒤집히는 것을 보고 뒷수레는 경계로 삼아야 한다(前車之鑒 後事之師).

 

원문발표: 2025년 12월 5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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