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백로(白露)
[명혜망] 음장생(陰長生)은 동한(東漢)의 저명한 수도인으로, 그 사적은 주로 진(晉)나라 사람 갈홍(葛洪)의 《신선전(神仙傳)》에 보인다. 그는 도가에서 예로부터 존중받았는데, 득도해 신선이 됐기 때문만이 아니라 ‘단을 이루고도 세상을 잊지 않았기(丹成而不忘世)’ 때문이다. 즉 먼저 장생할 수 없는 창생들을 구제한 뒤 태청(太淸)으로 비승(飛升)했다. 아래는 고적 전설에 근거해 정리한 이야기다.
신세: 귀족 가문을 뒤로하고 수도에 뜻을 품다
음장생은 동한 남양(南陽) 신야(新野) 사람으로 출신이 매우 현혁했다. 그는 광무제(光武帝)의 황후 음여화(陰麗華) 일족의 후예였다. 음씨 일가는 대대로 고관대작을 배출해 자수금인(紫綬金印, 보라색 인끈과 금도장)을 찼고, 집안에서는 종을 쳐서 식구들을 모으고 솥을 벌여놓고 식사할 정도로 당시 천하에 손꼽히는 외척 명문가였다.
상리대로라면 이런 가문에서는 공경장상(公卿將相)이 나와야 했다. 그러나 음장생은 어려서부터 일족 자제들과 달랐다. 남들은 관작과 녹봉, 성색견마(聲色犬馬-음악, 여색, 사냥, 말타기)를 다툴 때, 그는 도리어 자주 홀로 뜰 앞의 아침 이슬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영화는 아침 이슬 같아 해가 뜨면 마르고, 부귀는 뜬구름 같아 바람이 불면 흩어지는구나. 사람이 비록 만관의 재산을 가지고 제후에 봉해지고 재상에 오르더라도, 백년 후에는 한 줌 황토에 불과할 뿐이구나.’
그는 마음속으로 이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그는 천지간에 본래 ‘장생구시(長生久視)’의 도(道)가 있어, 예로부터 진인(眞人)이 이를 얻으면 반로환동(返老還童)하고 생사를 초탈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한 번 생각이 일자 다시는 내려놓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영화와 부귀를 버리고 구도(求道)의 뜻을 세웠다. 오직 사람들이 피하고 말하지 않는 그 문제, 즉 ‘사람은 과연 죽지 않을 수 있는가?’를 묻기 위해서였다.
그 무렵 그는 득도한 선비를 찾아냈는데, 성은 마(馬) 씨고 이름은 명생(鳴生)이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그는 이미 신선술에 통달해 사방을 행각하며 행방이 일정하지 않다고 했다. 음장생은 가문을 버리고 그를 따라나섰다.
지극한 정성으로 스승을 모시다: 20년 비질하며 무리가 떠나도 홀로 남아
마명생은 그를 거두었지만 애석하게도 신선술은 조금도 전수하지 않았다.
하루하루 사제가 함께 지냈지만, 마명생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온통 저잣거리의 자질구레한 일상사나 농사에 관련된 것뿐이었고, 연단(鍊丹)이나 수진(修眞)에 대해서는 한 글자도 꺼내지 않았다. 음장생은 매일 물을 긷고, 비질하고, 불을 때고, 심부름을 하며 하인처럼 공손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마명생 문하에 투신한 제자가 무려 10여 명이나 됐다고 한다. 그들은 유명한 사부를 배알했으니 며칠 안으로 비결을 전수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기다리고 또 기다려 1년, 2년, 5년, 10년이 지났음에도 스승은 여전히 속된 일만 이야기할 뿐 비결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점차 낙심하다가 이내 원망을 품었고, 마명생을 사기꾼이라고 욕하며 하나둘 소매를 떨치고 떠나버렸다.
마침내 10여 명의 제자가 뿔뿔이 흩어지고 오직 음장생 한 사람만 남았다. 20여 년간 그는 스승 모시기를 하루같이 했고, 비질을 게을리하지 않았으며, 공경하는 마음을 조금도 줄이지 않았고, 얼굴에 불쾌한 기색 하나 없었으며, 마음속에 한 점의 의심이나 후회도 없었다.
하지만 그가 몰랐던 것은, 이 기나긴 세월 자체가 바로 가장 연성하기 어려운 화로의 단(丹)이라는 사실이었다. 신선의 도는 예로부터 조급하게 속도를 구하는 마음에 가벼이 주어지지 않았다. 진정한 문턱은 산이 높고 길이 먼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 20년의 적막을 감내하고 지성으로 흔들리지 않음에 있었다.
공을 이루고도 곧바로 승천하지 않다
어느 날 마명생이 마침내 웃었다. 그는 음장생에게 말했다. “내 문하에 온 사람이 몇 명인지 모르나 오직 너만이 진정 이 ‘도(道)’ 자를 감당할 수 있겠구나.”
마명생은 그를 데리고 칭청(靑城)산에 올라가 재계하고 깨끗한 단기(丹器)를 준비하게 한 뒤, 정중하게 《태청신단경(太淸神丹經)》을 그에게 전수했다. 경전 전수가 끝나자 마명생은 스스로 자신의 선업(仙業)을 성취하러 표연히 떠났다.
음장생은 경전에 따라 띠집을 짓고 연단했다. 춥고 더운 계절을 다 겪은 끝에 마침내 한 화로의 금단이 완성됐다. 그가 꺼내 복용하니 몸이 가볍고 튼튼해졌으며, 백발이 검어지고 빠진 이가 다시 나는 등 나이가 마치 거꾸로 흐른 듯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런 성취를 얻었을 때 십중팔구 구름을 타고 곧장 올라가 우화등선(羽化登仙)했을 것이다. 하지만 음장생은 도리어 그러지 않았다. 단이 이뤄졌으나 그는 즉각 승천하지 않았다. 그는 이 혼탁한 인간 세상에 계속 남기를 선택했다. 왜일까? 산 아래에서 고통받고 있는 범속한 사람들을 내려놓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황백술로 세상을 구제하고 빈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다
《태청신단경》에는 금단법 외에도 ‘황백지술(黃白之術)’이 실려 있었다. 즉 단약으로 평범한 쇠와 돌을 점화(點化)해 진짜 금과 은으로 변화시키는 법문이었다.
음장생은 이 재주를 다른 곳에 썼다. 그는 돌을 금으로 만들었으나 한 푼도 자신에게 쓰지 않고 모두 천하를 구제하는 데 썼다. 굶주린 자에게는 먹을 것을 주고, 헐벗은 자에게는 옷을 주었으며, 고아와 과부, 가난하고 병든 자들 모두 그에게 암암리에 도움을 받았다. 그가 이처럼 선술과 어진 마음을 지니고 인간 세상을 거닌 것이 전후 170여 년에 달했는데, 용모는 시종일관 소년과 같았다고 한다.
뜻있는 사람을 기다리다
최종적으로 신선이 되어 떠나기 전, 음장생은 책 9편을 저술하고 또 돌에 자신의 일생을 기록한 세 개의 비문을 새겼다.
비문의 대의는 이러했다. 그는 본래 음씨 귀족 출신으로 대대로 한(漢)나라 왕실의 총애를 받아 자수금인을 찼으나, 도리어 이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사부를 따라가 고생스레 신단을 수련했다. 이제 큰 공을 이루고 세상을 돌아보니 일찍이 그를 ‘구도(求道)는 어리석은 짓’이라고 비웃던 사람들은 결국 모두 황천의 진토로 돌아갔고, 오직 그 한 사람만이 구름을 타고 비승해 태청에서 소요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가 돌에 글을 새긴 의도는 비웃던 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는 비문에 분명히 밝혔다. 이 글자들을 남기는 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훗날 이곳을 지나가다 우연히 읽게 되는, 마음속에 진정 구도할 뜻을 품은 단 한 사람을 위해서다. 만 명 중에 단 한 사람이라도 이 몇 줄의 석각으로 인해 대도(大道)에 오를 수 있다면, 그의 이 돌은 헛되이 새겨진 것이 아니라고 했다.
이것이 음장생이 후세에 남긴 가장 빛나는 한 획이다. 그는 자신이 개척한 길을 돌에 뚫어 새겨, 천백 년 동안 훗날의 구도자들을 위해 등불 하나를 밝혀주었다.
백일승천해 ‘음왕’으로 잘못 전해지다
마침내 음장생은 평도산[平都山, 현 충칭 펑두(豊都)]에서 백일승천했다. 백주대낮에 뭇사람이 주시하는 가운데 허공으로 날아가 선업을 성취했다.
전설에 따르면 그와 함께 평도산에서 비승한 또 다른 진인 왕방평(王方平)이 있었다고 한다. 후세 사람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하면서 ‘음(陰), 왕(王) 두 진인’을 이어서 부르다 보니, 오랜 세월이 흘러 뜻밖에도 ‘음왕(陰王)’ 두 글자로 잘못 전해졌다. 평도산과 풍도(豊都) 역시 수천 년간의 견강부회와 변천 속에 유명(幽冥, 저승) 지부의 도읍, 즉 오늘날 멀리까지 이름이 알려진 ‘귀성(鬼城)’으로 상상됐다. 옛 수도인들 중에서는 매번 이 부분을 언급할 때마다 항상 빙그레 웃으며 탄식하곤 했다.
[역주: ‘음(陰)’에는 ‘저승, 명계’라는 뜻도 있어, 이 ‘음왕’이 우연히 ‘저승의 왕’이라는 의미로도 읽히게 되었다. 이 오해가 굳어지면서 두 신선이 승천한 성지였던 평도산과 그 소재지 풍도는 점차 ‘저승의 도읍’이라는 전설이 덧붙여졌고, 오늘날 ‘귀성(鬼城)’이라 불리는 관광지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원문발표: 2026년 8월 18일
문장분류: 천인사이(天人之間)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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