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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문화혁명’ 시기 파괴한 일부 유명 문물

글/ 퉁저우(同舟) 정리

[밍후이왕] 중국공산당은 문화혁명을 일으켰을당시 대량의 중화문물을 파괴했다. 아래 파괴한 문물에서 중국공산당이 전통문화를 파괴한 사악함과 우매함을 볼 수 있다.

1. 중국인은 염황(炎黃)의 자손이라고 부른다. 염황 자손의 ‘염(炎)’은 염제를 가리킨다. 문화혁명 당시 염제릉의 주전(主殿)을 불사르고 왕릉을 파헤쳤다.

2. 글자를 만든 시조 창힐(倉頡)의 능원(陵園)은 문화혁명 때 파괴돼 ‘열사능원’으로 개조됐다.

3. 산시(山西)성에 위치한 순제릉(舜帝陵)이 훼손됐고 묘에 큰 확성기를 설치했다.

4. 저장(浙江)성 사오싱(紹興) 후이지산(會稽山)에 위치한대우(大禹)의 사당을 허물고 크고 높은 대우의 석상을 부숴버렸으며 석상 머리를 절단해 삼륜차에 싣고 조리돌림을 했다.

5. 공자의 무덤을 평평하게 깎고 발굴했다. ‘대성지성선사문선왕(大成至聖先師文宣王: 공자의 칭호)’ 비석을 완전히 파괴했다. 묘비도 부수고 공자묘의 진흙 조각상도 때려 부쉈다. 공자의 76대손 공령이(孔令貽)의 무덤도 파헤쳤다.

6. 허베이(合肥) 사람들이 대대로 보호하고 매년 성묘하는 ‘포청천’의 묘를 훼손했다.

7. 항저우(杭州)에 있는 악비(岳飛)묘를 문화혁명 당시 전부 파헤쳤고 악비의 유골을 태워 재로 만들어 뿌렸다.

8. 허현(和縣) 오강(烏江)변의 항우(項羽) 패왕사당(霸王廟), 우희사당(虞姬廟)과 우희묘는 중국공산당이 망가뜨려 폐허가 됐다. 문화혁명 후 패왕묘를 추모하러 간 사람들은 흙에 절반 묻혀있는 석사자(石師子)만 볼 수 있었다.

9. 서한의 명장 곽거병(霍去病)의 곽릉도 피해를 보았다. 향촉(香燭)과 첨통(簽筒)을 망가뜨린 외 곽거병의 석상도 훼손했다.

10. 의성(醫聖) 장중경(張仲景)의 석상을 파괴하고, 묘정(墓亭) 비석도 박살냈으며 ‘장중경기념관’ 전시품도 몽땅 털어갔다. 그래서 ‘의성사(醫聖祠: 의성을 모신 사당)’는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11. 명대 왕양명(王陽明)의 문묘(文廟)와 왕문성공사(王文成公祠) 두 건축물 및 왕양명의 석상을 포함해 전부 문화혁명 때 허물어 현재 볼 수 없다.

12. 허난(河南) 난양(南陽) 제갈량(諸葛亮)의 ‘제갈초려(諸葛草廬)’(무후사라고 부른다)의 ‘천고인용(千古人龍)’, ‘한소열황제삼고처(漢昭烈皇帝三顧處)’, ‘문도무략(文韜武略)’ 세 가지 석방(石坊) 및 인물석상, 사당, 그리고 명대 성화 연간(年間)에 조각한 18개의 유리나한(琉璃羅漢)이 전부 중국공산당에 훼손됐다. 청대 강희(康熙) 연간에 지어진 진귀한 ‘와룡강지(臥龍崗志)’, ‘충무지(忠武志)’ 목각본도 불에 태워버렸다.

13. 한중(漢中) 면(勉)현의 ‘고정군산(古定軍山)’ 비석도 중국공산당이 제갈량을 ‘지주(地主) 분자’라고 욕하며 부숴버렸다.

14. 서성(書聖) 왕희지(王羲之)의 묘와 20무(畝)에 달하는 금정관(金庭觀)을 대부분 깎아 평평하게 만들었다.

15. 티베트 각랍사(覺拉寺)에는 당나라 시기 문성공주(文成公主)가 당시 직접 지시해 만든 송찬간보(松贊幹布: 손챈감포)와 문성공주 두 사람의 석상이 있었으나 문화혁명 당시 훼손됐다.

16. 아라텅간더리(阿拉騰甘得利) 초원의 칭키스칸 능원을 전부 파괴했다.

17. 명나라 개국황제 주원장(朱元璋)의 황릉비석도 넘어뜨리고 석인(石人), 석마(石馬)가 폭약으로 파괴됐으며 황성(皇城)도 철거됐다.

18. 하이난(海南) 천애해각(天涯海角)에 있는 명나라의 청백리 해서(海瑞)의 묘를 훼손했고 해서의 유골을 파내 조리돌림을 했다.

19. 후베이(湖北)성 강릉(江陵)의 명재상 장거정(張居正)의 묘도 홍위병에 의해 파괴되고 유골이 불태워졌다.

20. 명나라 명장 원숭환(袁崇煥)의 묘도 문화혁명 당시 파헤쳐져 평지로 만들었다.

21. 명나라의 ‘서유기’ 작가 오승은(吳承恩)의 고택은 장쑤(江蘇)성 화이안(淮安)현 허샤진(河下鎭) 다퉁항(打銅巷)에 있었다. 고택은 3개의 담으로 구성되어 남쪽은 객실이고 중간은 서재이고 북쪽은 침실인 단출한 집이었다. 수백 년 간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고택과 묘를 추모했고 화이안에는 많은 절경이 있었지만 사람들이 방문하는 것은 이 고택과 그의 묘밖에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문화혁명 중 중국공산당은 ‘서유기’를 ‘봉, 자, 수(封, 資, 修: 봉건주의, 자본주의, 수정주의)’ 중의 ‘봉(封)’이라고 모독하고 오승은의 고택을 폐허로 만들었다.

22. 청나라 평민 교육자 무훈(武訓)의 묘는 산둥(山東)성 관현(冠縣) 중학교 홍위병들에 의해 파괴됐다. 홍위병들은 유골을 파내 조리돌림을 하고 비판 후 태워버렸다.

23. 청대 명재상 장지동(張之洞)의 묘도 파헤쳤다. 장지동은 청백리라 묘에 보물이 없자 홍위병은 장지동 부부의 아직 부패하지 않은 시신을 나무에 걸어놓았다. 장지동의 자손들은 감히 시신을 거두지 못했고 나무에 한 달 넘게 걸려 있자 개가 뜯어먹기도 했다.

24. 청말 정치가이자 학자 캉유웨이(康有爲)의 묘는 문화혁명 당시 한 중학교 교사가 중학생을 거느리고 “보황파(保皇派: 황제를 모시고 입헌군주제를 주장했던 청말 당시 파벌) 두목을 조리돌리기 하자”라며 묘를 파헤치고 캉유웨이의 유골을 끈에 매달아 조리돌림을 했으며 채찍질했다. 조리돌림 한 후 캉유웨이의 머리는 중국공산당이 ‘칭다오시 조반 유리 전시회(青島市造反有理展覽會)’에 보냈고 전시용 라벨에는 ‘중국 최대 보황파 캉유웨이의 개머리’라고 쓰여 있었다.

25. 난장현(南漳縣)의 항일 명장 장자충(張自忠)의 장공사(張公祠), 장씨 의관총(衣冠塚)과 3개 기념관이 모두 파괴됐다.

……

무덤과 묘를 파헤치고 뼈를 가루로 만들어 뿌리는 것은 사람에게 주는 가장 큰 치욕이다. 중국공산당은 도대체 역사 인물들을 얼마나 증오했기에 무덤과 묘를 파헤치고 뼈를 태워 재로 날릴 정도인가? 여기에서 중국공산당은 모든 문명과 아름다움이 담긴 사물에 증오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모든 정상적인 사물을 증오하고 부수며 훼손하는 것이 바로 중국공산당의 진실한 모습이다.

중국공산당은 이런 역사 위인들을 증오하기에 당(黨)문화의 역사 유물주의로 이런 역사 인물을 비판하는데 힘쓰고 중화 5천년 역사의 진상을 왜곡하고 있다. 생각 있는 독자들은 당문화에 기만당하면 안 된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우리 중화민족 역사의 악비 등 위인을 보면 민족의 자부심이 생길 것이다. 하지만 중국공산당 눈엔 단지 증오밖에 없다.

이상 사례를 보고 독자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는가? 시신을 파내고 무덤을 파헤치며 뼈를 재로 만들어 뿌리는 행위가 중국공산당의 병적 상태이고 편집적 취미라는 것을 발견했는가? 신속히 중국공산당의 피비린내 나고, 변태적이며, 비뚤어진 공산당 악마에서 탈퇴하자. 증오를 선전하는 공산당에 미혹되지 말고 이성적이고 명석하며 민족의 자부심이 있는 중국인이 되도록 하자.

문장발표: 2016년 6월 25일
문장분류: 시사평론>사실복원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6/25/33047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