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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마음씨 좋은 이선생님이 근접 감시 당하고 있을까

글/ 단천

【밍후이왕 2010년 5월 9일】최근에 본 사이트에서 하나의 사례를 보도 하였는바 많은 사람들이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장수(江蘇)성 쿤산(昆山)시의 리지난(李紀南) 여사는 본래 정부 부문의 관리로 올해 55세이다. 1993년부터 산둥(山東) 이멍(沂蒙)산 지역 린수(臨沭) 현의 빈곤한 아동 훙강(宏剛)에게 자선 자금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그때 훙강은 초등학교 2학년 학생이었다. 리지난 여사는 경제적 도움뿐만 아니라 늘 편지를 보내 그와 교류했다. 경제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편지를 보낼 때 답장편지봉투와 우표까지 첨부했다. 10여 년간의 자금지원과 교류로 두 사람은 모자 같은 끈끈한 정을 나누었다.

2002년 11월 리지난 여사는 파룬궁 수련을 견지한다는 이유로 납치되어 불법 노동교양 판결을 받았다. 이듬해 훙강은 우수한 성적으로 톈진공정사범대학에 입학했다. 입학통지서를 받은 그의 첫 생각은 이 여사께 편지 쓰는 일이었다. 하지만 훙강의 편지는 ‘이런 사람이 없음’이라고 되돌아왔다. 훙강이 대학 입학 후 이지난 선생님에 대한 그리움은 날 따라 커갔다. 그는 자신의 상황을 기자에게 알렸다. 2006년 3월 27일 ‘쿤산일보’는 “‘마음씨 좋은 이선생님’ 어디에 계실까” 라는 제목으로 훙강을 대신해 ‘이선생님’이라고 불리고 본명을 알리지 않은 좋은 사람을 찾으려고 했다.

세상기풍이 날 따라 미끄러져 가는 현대 사회에 이름도 이익도 보답도 바라지 않는 훌륭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감명을 받았다. 하지만 사람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은 이때 리지난 여사가 감옥에서 박해를 받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유인 즉 그녀가 ‘진(眞), 선(善), 인(忍)’의 표준으로 좋은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리지난 여사는 10여 년 간 파룬궁 수련을 견지하면서 ‘진(眞), 선(善), 인(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된 수련생이었다. 수십 년 간 그녀는 자신의 정력과 저축을 모두 빈곤한 학생들에게 바치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그녀는 얼마나 많은 학생들에게 자선금을 보냈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자선금을 받았던 일부는 이미 사업에 종사하고 일부는 아직도 학생이고 훙강은 하나의 사례라는 사실을 지인에게 알렸을 뿐이었다.

2006년 5월 쿤산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던 이선생은 감옥에서 나왔다. 하지만 현지 ‘610’(중공 당국의 초법적 파룬궁 박해 전담기구), 국가안전국 경찰들은 줄곧 그녀를 엄밀히 감시했다. 어쩔 수 없이 리지난 여사는 외지에서 떠돌이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2009년 5월 리지난 여사가 외지에서 귀가한 후 현지 경찰들은 공공연하게 자택의 남쪽과 북쪽의 맞은 편 건물에 감시카메라(CCTC)를 설치해 24시간 촬영하였다. 물론 자택의 북쪽은 주방과 화장실이지만 여전히 맞은편 창문에서 24시간, 일년 내내 근거리 감시를 실시했다. 이것도 모자라 경찰은 그녀의 아파트 옆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하고 밤에는 아파트를 출입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을까 봐 조명등까지 설치했다. 현지 정부는 사회지역, 주민위원회(한국의 동사무소에 해당) 임원과 아파트 단지의 경비, 이웃 등등을 그녀의 감시에 동참하게 했다. 리지난이 문만 나서면 많은 스파이들이 근접 미행했다.

2010년 4월 18일, 리지난의 팔순이 넘는 어머니가 천리타향에서 쿤산에 딸을 보러 왔다. 기차에 내리자마자 한 무리 사람들이 리지난을 따라 기차역에 와 있는 것을 본 노인은 깜짝 놀랐다. 현지 ‘610’, 국가보안대, 가도 위원회, 사회구역 담당 등에서 파견한 사람들이었다. 모녀가 시장에 반찬거리를 사러 가거나 산책을 나가도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미행했다. 4월 24일, 이지난은 연로한 어머님을 모시고 현지 이름난 옛 도시 진시(錦溪)에 놀러 갔다. 결국 한 무리의 경찰들이 관광지까지 차를 몰고 따라다녔다. 더 한심한 것은 모녀가 목욕탕을 가도 경찰들은 사람을 파견해 목욕탕까지 미행했다는 점이다. 이처럼 인간성을 상실한 정신적 박해로 연로하신 그녀의 어머니는 너무 큰 심리적 부담을 느꼈다.

4월 25일, 그녀의 어머니는 상해에 있는 친척집으로 가려고 기차역에 갔다. 이지난 여사가 어머니를 모시고 기차역에 도착하자 미행하던 스파이들이 이미 통지하여 한 무리의 ‘610’, 국가보안대 경찰들은 부랴부랴 쫓아와 리지난이 쿤산지역을 떠나면 즉각 체포하겠다고 협박했다. 어쩔 수 없이 그녀의 어머니는 홀로 눈물을 머금고 쿤산을 떠났다.

어떤 사람들은 아마 생각할 것이다. 이 사람들은 왜 이렇게 파렴치한가? 리지난 여사가 법을 어긴 것도 아닌데 왜 이처럼 감시하는가? 목욕을 해도 감시 당하는데 사람을 어떻게 생활하라고 이러는가? 이게 감옥살이와 무슨 다른 점이 있는가?

하지만 이것이 바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중공의 이토록 파렴치한 악행은 인간성에 부합되지 않지만 중공 자신의 목적에는 부합된다. 중공은 대체 어떤 생각일까?

중공 당국이 대대적으로 리지난 여사를 감시하는 목적은 그녀의 정상적인 파룬궁 수련을 교란하기 위함이다. 특히 리지난이 파룬궁 진상을 알리는 것을 이 부류의 사람들은 마음속으로부터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그녀는 설득력이 아주 강한바 그녀 본인이 바로 가장 좋은 실증자료이기 때문이다. 중공의 감시 속에 누가 감히 그녀와 접촉하겠는가? 아울러 이렇게 감시하면 그녀와 다른 파룬궁 수련생들과의 정상적인 왕래를 제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겉으로 볼 때 그런 것이다.

중공의 근접 미행은 또 다른 목적이 있다. 바로 리지난에 대한 박해를 실시하기 위함이다. 이처럼 근접 미행 자체가 그녀의 인권자유에 대한 박해이다. 고금중외에 이토록 덕망이 높고 좋은 사람을 이렇게 대하는 경우가 있었을까? 리지난이 어디를 가든 무형의 감옥은 바로 거기까지 이동하는 것이다.

현지 정부가 리지난에 대하여 이렇게 감시하는 것은 또 다른 목적이 있는 것으로 리지난 여사의 사회적 명망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녀가 선행한 사실을 알게 되면 누가 그녀를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겠는가? 나아가 이렇게 좋은 사람이 파룬궁 진상을 알리면 누가 믿지 않을 수 있겠는가?

10여 년간 중공 당국은 파룬궁 박해에 이런 수법을 일관되게 사용해 오지 않았는가? 아울러 박해할 때는 파룬궁 수련생을 감옥에 가두어 비밀리에 혹형을 가해 박해했다. 리지난 여사가 불법 판결을 받았을 때 그녀의 사회적 성망은 이처럼 높지 않아 그녀에게 수년간의 유기징역 판결을 내린 것은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그녀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다 아는 상황에서 그녀에 대해 요언을 날조해 모함하면 사람들이 수긍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위의 사실에서 알 수 있다시피 중공의 감시통제는 바로 리지난 여사가 파룬궁을 실증하는 일을 하지 못하도록 제지하기 위함이다. 너무나 가소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공인받은 좋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을 두려워 이토록 감시한다는 사실은 세상에서 보기 드문 일이 아닐 수 없다. 중공당국의 불법 감시 자체가 바로 리지난 여사가 파룬궁이 박해 받고 있다는 사실을 실증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중공 당국의 근접 감시통제행위 자체는 바로 중공의 허위, 파렴치함과 두려움을 폭로하는 것이다.

문장발표: 2010년 5월 9일
문장분류: 수련생 논평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5/9/22317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