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명간(明簡)
[명혜망] ‘진정한 중화문화는 정치를 중심으로 하지 않는다’라는 글은 중화문화가 회천(回天, 하늘로 돌아감)을 근본으로 삼고 있음을 소개했다. 중화문화 중 치세(治世)에 관한 부분일지라도 사실은 회천을 근본으로 하며, ‘회천’에 의해 결정된 가치관, 시비 기준, 치국 이념 등이 일관되게 흐르고 있다.
본문은 중화문화가 어떻게 ‘회천위본(回天爲本, 회천을 근본으로 함)’에서 출발해 오독(誤讀)으로 인해 ‘치세위본(治世爲本, 치세를 근본으로 함)’으로 변하게 됐는지 소개한다.
1. 당나라 이전의 중화문화는 ‘회천위본’이라는 본색을 유지했다
중국 문화의 발전은 춘추전국시대에 이르러 백가쟁명이 출현하면서 역사 문화에 대한 대규모의 총결, 개척 및 전환점이 됐다. 그 후 한나라에 이르러 유학을 주도로 삼고 다른 제가백가를 포용하는 사회 문화 및 교육 모델이 확립됐다. 동한 시기 유학은 전성기를 맞았다. 이와 동시에 불교가 전래돼 번영의 길을 걸었다. 도가 역시 원래의 황로지학(黃老之學)을 기초로 도교를 창시해 점차 번영했다. 그래서 한당(漢唐) 시기에 유불도 세 가지가 서로 빛을 발하며 공동으로 지탱하는 구도가 점차 형성됐다. 당나라, 특히 정관(貞觀)과 개원(開元) 연간에 이르러 중화문화는 여러 문화를 포용해 기세가 웅장했으며, 만방이 조공을 바치러 오게 해 모두 중화를 본받을 으뜸으로 삼게 했다. 이는 중화문화의 정점이었다.
당나라 이전의 중화문화는 ‘회천위본’이라는 본색을 유지했다. 즉 당나라 이전에 중화문화는 회천을 근본으로 삼고 치세의 학문을 통솔한다[以回天爲本, 統帥治世之學]는 황제(黃帝) 시기에 확립된 문화적 입장을 온전히 계승했다.
2. 황제 시기에 확립된 문화적 입장은 회천을 근본으로 삼고 치세의 학문을 통솔하는 것
이 점은 ‘장자(莊子)’ 재유(在宥)편에 기록된 한 가지 이야기에서 매우 분명하게 나타난다. 황제(黃帝)는 천자가 된 지 19년이 돼 천하를 호령하게 됐고, 이에 백관과 수행원을 거느리고 공동산(崆峒山)으로 가서 광성자(廣成子)를 방문했다. 황제는 공손하게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지극한 도[至道]에 통달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감히 여쭙건대 지극한 도의 요체가 무엇입니까? 저는 천지의 정화를 취해 오곡의 생장을 돕고 민중을 양육하고 싶습니다. 또한 천지 사이의 음양 두 기운을 관리해 각종 생명의 수요를 충족시켜 주고 싶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얼마나 백성을 위해 심혈을 기울이는 천자인가!
뜻밖에도 광성자는 황제에게 엄숙한 비판을 가했다. “당신이 묻고자 하는 것(지극한 도의 요체)은 가장 핵심적인 것이오. 하지만 당신이 관리하고자 하는 것(천지의 정화, 음양의 두 기운)은 가장 말단의 것이오.” 즉, 당시의 문화 환경에서 황제는 득도한 선비들이 ‘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자주 들었기에 광성자를 참배할 때 입으로는 도의 요체를 가장 중시했지만, 실질적인 사상 경지에서 진정으로 중시했던 것은 오히려 말단적이고 지엽적인 것들이었다.
광성자는 또 말했다. “당신이 천하를 다스린 이후로 구름 기운이 아직 모이기도 전에 비가 내리고, 초목이 아직 누렇게 변하기도 전에 잎이 떨어지며, 해와 달의 빛은 갈수록 어둡고 침침해졌소. 게다가 똑똑하고 말 잘하며 이익을 꾀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모두 꿈틀거리게 됐소. 당신이 이렇게 천하를 다스리는데 어떻게 지극한 도를 알려줄 수 있겠소?” 광성자는 여기서 황제가 물질적 이익과 생활의 편의성 측면에서 백성을 만족시키는 것을 중시하고 이를 치국 방침으로 삼아 자연환경과 사회 인심에 끼친 해악을 지적했다.
황제는 내면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광성자를 떠난 뒤 천하를 관리하는 일을 내려놓고, 특별히 정실(靜室)을 하나 지어 바닥에 백모(白茅)를 깔고(이는 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공물을 올려놓을 때 사용하는 깔개다) 모든 마음을 내려놓은 채 석 달 동안 재계한 후 다시 광성자의 가르침을 얻고자 찾아갔다.
광성자는 머리를 남쪽으로 향한 채 자고 있었다. 황제는 바람이 부는 아래쪽을 택해 무릎을 꿇고 무릎걸음으로 기어 광성자 근처까지 갔다. 광성자가 깨어나는 것을 보고는 두 번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공손히 여쭈었다. “선생님께서는 지극한 도에 통달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감히 여쭙건대 몸과 마음을 조절해 어떻게 하면 생명을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습니까?” 광성자는 듣고 나서 곧바로 일어나 말했다. “잘 물었소! 오시오, 내가 당신에게 지극한 도를 알려주겠소….”
‘장자’ 이 부분의 기록은 상고 시대 중화문화의 기본 태도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이 태도는 오늘날이나 전 세계 누구에게 적용해도 여전히 유효하다. 재물이 아무리 많아도 모두 몸 밖의 물건이며, 물질적 향유는 아무리 풍부해도 욕망이 끝이 없고, 오직 몸과 마음의 안녕과 생명의 영원함만이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중화문화에서 하늘로 돌아가고 수련하며, 몸과 마음을 편안히 하고 생명의 영원함에 도달하는 것이 만물이 풍성하고 민중이 넉넉해짐을 추구하는 것보다 높은 것이다. 당연히 자기 자신의 부의 축적을 추구하는 것보다도 더 높다.
황제가 후세에 남긴 수련 문화와 치세 문화를 포함한 모든 것은 이러한 가치관 위에 세워졌다. 황제가 남긴 치세의 학문 역시 이 가치관이 통솔하는 기초 위에 세워졌다.
3. 한당 시기 유학은 상고에 확립된 예악으로 세상을 다스리고 성정을 조절하는 문화적 입장을 계승했다
한당 시기의 유학은 황제 시기에 확립된 이러한 문화적 입장을 계승했다. 한당 유학은 전체적으로 장구지학(章句之學), 즉 공자(孔子)가 전한 각종 경전에 대한 해석이다. 이러한 해석들 중, 특히 ‘예기(禮記)’에서 상고 시대에 확립된 예악(禮樂)으로 세상을 다스리고 성정을 조절하는 문화적 입장을 명확히 계승했다.
이를 위해 먼저 예(禮)의 기원에 대해 말해야 한다. 예는 신의 계시와 인간의 본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두 가지 측면의 결합이다. 신이 인류에게 계시할 때 사람이 마땅히 어떻게 귀신[귀(鬼)는 조상이 세상을 떠난 후의 생명 상태를 가리키고, 신(神)은 더 높은 경지의 신기, 신명을 가리킴]에게 제사를 지내야 하는지 규범화했을 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각종 관계를 규정했다.
다음으로 예의 역할에 대해 말해야 한다. 예는 주로 신의 계시로 형성됐기에 주로 인류 생명의 표면적이고 낮은 층 부분에 호응하는 것이 아니라 주로 내재적이고 높은 층 부분에 호응한다. 인간의 생명은 안팎과 겉과 속, 높고 낮음이 연결돼 여러 방면으로 함께 구성된 완전한 시스템이므로 사람은 ‘천지의 정신과 서로 왕래’할 수도 있고 식생활과 남녀의 번식 방식을 취할 필요도 있는데 그 속에 ‘사람의 큰 욕망이 존재한다’. 예는 사람의 심성과 생명 중 비교적 높은 부분을 이끌어 줄 수 있다.
그러고 나서 악(樂)의 역할과 기원에 대해 말해야 한다. 만약 예만 있다면 사람의 생명 중에서 상대적으로 낮고 표면적인 부분이 억압돼 병적인 상태에 빠질 것이다. 그래서 신, 상고 시대의 성스러운 왕은 인류에게 악을 창조해 줬다. 악은 사람의 각 층 생명 요소를 인도하고 표출하며 바르게 잡아 표면적인 감정과 생명 요소도 예와 배합되게 함으로써 일종의 전체적으로 조화로운 생명 상태에 진입하게 할 수 있다. 악의 구성은 어떠한가? 상고 시대의 악은 음악뿐만 아니라 신체의 춤을 포함하며, 후대에는 이를 통틀어 악무(樂舞)라고 불렀다. 예와 악무가 서로 배합돼, 노래를 부르는 것과 악기의 반주 및 이끎을 포함해 예악이라고 통칭한다.
그럼 요약하자면 예악은 왜 생겨났는가? 목적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신이 인류 생명 중에서 상대적으로 더 높은 부분을 이끌어 주는 동시에 인류가 생명 전체의 조화와 연속성을 유지하게 하기 위해서다. 사실 예악의 출현은 인류에 대한 신의 진정한 자비와 자애에서 비롯됐다. 만약 이러한 예악의 이끎과 역할이 없이 인류를 완전히 제멋대로 내버려 둔다면, 사람은 표면적인 생명 요소와 저급한 취미의 작용 아래 빠져 스스로 헤어 나오기 매우 어려울 것이다. 동시에 인류의 도덕을 유지하기 어렵고 사람의 본질을 보존할 수 없게 된다. 이런 ‘사람’은 신이 보기에 금수(禽獸)와 다를 바 없으며, 그렇게 되면 훼멸되는 재난을 초래할 것이다. 그래서 예악의 역할은 생명의 혼란과 타락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계속)
원문발표: 2026년 6월 29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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