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기혜(起慧)
[명혜망] 역사나 현대를 막론하고 체제 내의 많은 집행자는 가혹한 도덕적 난제에 직면하곤 했다. 법이나 체제 혹은 상급자의 지시가 그들에게 동포를 해치고 정의를 짓밟으라고 요구할 때,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역사상 무수히 많은 사람이 가장 쉬운 선택인 불의한 명령을 집행하는 길을 택했다. 그러나 중국 수천 년의 역사를 통틀어 볼 때,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나 혹은 나약함 때문에 부도덕한 명령을 수행한 자들은 결국 버려진 패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은 스스로 부귀영화로 가는 지름길을 잡았다고 생각했지만 권력 논리의 가장 냉혹한 면을 간과했다. 즉 정치적 풍향이 바뀌거나 정권이 교체되면 명령에 따라 악을 행한 자들은 종종 상급자에게 버림받거나 심지어 법의 엄중한 처벌을 받게 된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이 권력의 공모자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권력의 소모품에 불과했다.
명나라 시대의 중국
명성조 주체(朱棣)가 군사를 일으켜 자신의 조카인 명혜종 건문제 주윤문(朱允炆)의 손에서 천하를 빼앗았을 때, 정권의 정통성이 취약했다. 그래서 이견을 가진 자들을 숙청하기 위해 악명을 두려워하지 않는 잔인한 수단을 쓸 집행자가 필요했다. 진영(陳瑛)과 기강(紀綱)이 바로 불의한 명령을 수행하는 데 앞장섰던 두 선봉장이었다.[1]
추저우(滁州) 사람인 진영은 주체가 황제에 오른 후 도찰원 좌부도어사에 임명됐다. 진영은 황제의 마음을 헤아려 주체에게 “폐하께서는 천의에 응하고 민심에 순응하셨으나, 유독 일부 대신들이 복종하지 않고 건문제에게 충성을 다하고 있으니 이들은 반역자와 다름없습니다. 그들을 추격해 처단하게 해주십시오”라고 말했다. 그 후 이전 조정의 여러 문무 충신이 그의 무고로 인해 죽음을 맞이했다.
영락 1년, 그는 좌도어사로 승진해 더욱 방자하게 무고한 이들을 박해했다. 예를 들어 명나라 개국 대장인 장흥후(長興侯) 경병문(耿炳文)이 분수에 넘치는 기물(器物)을 사용했다고 탄핵해 경병문을 자살에 이르게 했다. 영락 3년에는 형부상서 낙첨(雒僉)이 올린 상소가 황제의 심기를 건드리자, 진영이 그를 탐욕스럽고 포악하다고 탄핵해 결국 낙첨은 살해됐다. 자신을 위해 반대 세력을 제거해 주었기에 주체는 진영을 더욱 총애했다.
이후 주체가 북방을 순시할 때 황태자 주고치(朱高熾)가 국정을 대리했다. 진영은 상소를 올려 병부주사 이정(李貞)을 무고했는데, 이후 이정의 아내가 북을 치며 억울함을 호소하자 황태자가 육부 대신들에게 합동 심문을 명했다. 조사 결과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으나 이정은 이미 고문을 당해 사망한 상태였다. 일부 대신들이 진영이 무고한 사람을 함부로 죽였다며 처벌을 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당시 태자는 진영을 혐오했으나 주체가 여전히 진영을 총애해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시간이 흐르자 주체 역시 진영에게 혐오감을 느꼈다. 영락 9년, 진영은 죄를 지어 죽게 됐고, 권력이 공고해진 뒤 언제든 내던져지는 권력의 소모품이 됐다.
임읍(臨邑) 사람 기강은 주체가 군사를 일으켰을 때 말 앞을 가로막고 달려가 스스로 돕겠다고 자처했다. 기강은 성격이 영민하고 교활하며 남의 마음을 잘 헤아렸기에 주체는 그를 매우 총애해 충의위 천호에 임명했다.
주체가 등극한 후 기강은 금의위 지휘사로 발탁됐다. 금의위는 명나라 황제가 신하와 민중을 감시하고 탄압하기 위해 사용한 기구로, 사법 재판을 거치지 않고 직접 범인을 처단할 수 있었다. 당시 기강은 황제가 반대 세력을 제거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눈치채고 곳곳에 밀정을 배치해 관리와 민중의 사생활을 수집했으며, 종종 가혹한 형벌과 무거운 법으로 사람들을 무고했다. 황제는 그가 매우 충성스럽다고 여겨 나중에 그를 도지휘첨사로 승진시켰다.
권력 남용은 언제나 탐욕과 부패를 동반한다. 기강은 조서를 위조해 각지의 염장에서 소금 400여만 근을 갈취했다. 또한 많은 큰 상인을 모함해 재산을 모조리 착취한 뒤에야 손을 뗐고, 민중의 토지와 재산을 빼앗기도 했다.
권력은 이성을 마비시킨다. 그는 왕과 제후의 의관을 걸치고 황제만이 사용할 수 있는 기물을 썼으며 몰래 무기를 만들기도 했다. 영락 14년, 한 태감이 그의 범죄 행위를 폭로했다. 이때 황제는 이미 이런 간신들에게 크게 의존하지 않았기에, 관리들에게 공개 탄핵을 명하고 도찰원에 넘겨 조사하게 했다. 그리고 바로 그날 시장통에서 기강을 능지처참했다.
현대 중국
현대 중국으로 돌아와서 보면 역사의 패턴은 진정으로 사라진 것이 아니라 형태만 바뀌었을 뿐이다. 명나라의 금의위처럼, 중국공산당(중공) 전 당 우두머리 장쩌민(江澤民)은 1999년 6월 10일, 체제 밖에서 중국의 법과 공안·검찰·법원 체계 위에 군림하는 ‘610사무실’(중공이 불법적으로 설립한 파룬궁 박해기구)을 설립하도록 지시했다. 이는 부처를 향해 선을 닦는 이들을 전문적으로 박해하기 위한 불법 조직이다.[2]
1999년 이래 수많은 610 직원은 정치적 자산을 쌓기 위해 적극적으로 실적을 올리며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자를 대대적으로 박해했다. 장쩌민이 물러난 후 새로운 지도자는 권력을 안정시키기 위한 수단 중 하나로 부패 척결을 내세웠고, 영달을 위해 명령에 따라 악을 행했던 이 관리들은 하나둘씩 역사가 보여준 결말을 맞이했다. 박해 정책을 가장 철저하고 잔혹하게 집행했던 보시라이(薄熙來)와 저우융캉(周永康)이 대표적인 예다.
보시라이는 줄곧 장쩌민을 바짝 따르며 극력 비위를 맞췄다. 그는 다롄(大連) 광장에 거대한 장쩌민 초상화를 세워 장쩌민의 개인숭배에 동조했다. 그가 다롄 시장과 랴오닝성 성장을 지내는 동안 다롄시와 랴오닝성은 파룬따파 박해가 가장 심각한 지역 중 하나가 됐다. 수많은 파룬따파 수련자가 불법적으로 납치, 구금되고 고문을 당해 부상, 장애, 사망에 이르는 유혈 사건이 발생했다.
권력 남용은 언제나 탐욕과 부패를 동반한다. 2013년 7월 25일, 산둥성 지난(濟南)시 인민검찰원은 지난시 중급인민법원에 보시라이의 뇌물 수수, 공금 횡령, 직권 남용 혐의에 대해 공소를 제기했다. 9월 22일, 지난시 중급인민법원은 1심 판결을 내렸다. 보시라이에게 뇌물죄, 횡령죄, 직권남용죄를 적용해 무기징역을 선고하고 정치 권리를 종신 박탈했으며 개인 재산을 전부 몰수했다.[3]
저우융캉은 장쩌민 일당의 파룬따파 박해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최고 우두머리 중 한 명으로서, 장 씨가 물러난 후에도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파룬따파 수련자에 대한 집단 학살을 추진하는 데 전력을 다했다. 저우융캉이 부임하는 곳마다 그 지역 파룬따파 수련자들이 받는 박해는 가중됐다. 2009년 말부터 2010년 초까지 저우융캉은 파룬따파를 겨냥해 법원 등 부처에 파룬따파 수련자 모함 사건은 신속하고 엄중하게 처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결국 저우융캉 역시 새 정권의 제물이 된 버려진 패가 됐다. 2014년 12월 5일, 중공 중앙정치국 회의는 중앙기율검사위원회의 ‘저우융캉의 엄중한 기율 위반 사건에 관한 심사 보고’를 심의하고 통과시켰으며, 저우융캉의 당적을 박탈하고 범죄 혐의와 단서를 사법기관에 넘겨 법에 따라 처리하기로 결정했다. 2015년 6월 11일, 톈진(天津)시 제1중급인민법원은 저우융캉의 뇌물 수수, 직권 남용, 국가기밀 고의 누설 사건에 대해 1심 선고를 내렸다. 세 가지 죄를 병합해 무기징역을 선고하고 정치 권리를 종신 박탈하며 개인 재산을 몰수했다.[4]
맺음말
명나라 시대부터 현대까지 반복적으로 검증된 하나의 법칙을 도출할 수 있다. 권력에 영합해 악을 행하면 단기적으로는 기세를 잡을 수 있겠지만, 도덕적 마지노선을 잃은 사람은 결국 보호막도 잃게 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체제 내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진정으로 고민해야 할 것은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복종할 것인가’가 아니라, ‘이 일이 양심에 어긋나지 않는가? 이 명령이 무고한 사람을 해치지는 않는가? 오늘의 선택을 장래에 감당할 수 있는가?’이다. 권력은 지위를 줄 수는 있지만, 사람을 대신해 인과를 감당해 주지는 못한다. 권력의 소모품이 되기보다는 가장 기본적인 시비와 양심을 지키는 편이 낫다. 오직 정도를 지켜야만 다음번 권력의 소모품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있다.
참고 문헌
[1] 장정옥(張廷玉) 등, ‘명사(明史)’, 위키문헌. https://zh.wikisource.org/zh-hant/明史. 인용 날짜 2026-03-26.
[2] 명혜망, 610의 멸절 박해 정책. https://library.minghui.org/pohai/Html/index.html. 인용 날짜 2026-03-26.
[3] 위키백과, 보시라이. https://zh.wikipedia.org/zh-tw/薄熙來. 인용 날짜 2026-03-26.
[4] 위키백과, 저우융캉. https://zh.wikipedia.org/zh-tw/周永康. 인용 날짜 2026-03-26.
원문발표: 2026년 3월 30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3/30/50822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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