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역 앞 20년, 묵묵히 자리를 지킨 진상 알리기 거점

글/ 한국 파룬궁수련자

[명혜망] 경기도 수원역은 서울과 남부를 잇는 교통 요충지로 하루 평균 수만 명이 오가는 곳이다. 2006년 3월부터 주말마다 이곳 출입구에는 파룬궁수련자들이 나타났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수원역 파룬궁 진상 알리기 거점은 비바람 속에서 자리를 지키며 오가는 시민들에게 진상을 전하고 있다. 이곳은 빠르게 돌아가는 현대 사회 속에서 세속의 이익을 넘어선 가치관, 즉 진리에 대한 믿음과 세상 사람들에 대한 신뢰를 한결같이 보여주고 있다.

초기의 자원봉사자 몇 명에서 지금의 일상화된 활동에 이르기까지, 수원역 진상 거점은 박해에 항의하고 ‘진선인(眞·善·忍)’ 이념을 전파하는 기나긴 과정을 목격했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한여름이든 발목까지 눈이 쌓이는 한겨울이든 이곳 자원봉사자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대략적인 추산에 따르면 20년 동안 이곳에서 배포한 진상 자료는 수십만 부에 달하며, 현지 시민과 출퇴근하는 직장인, 각국 관광객들에게 전달됐다.

'图1~6:二十年来,法轮功学员每周末坚持在水原站集体炼功,并向过往行人发传单、劝“三退”,传播“法轮大法好,真善忍好”的事实真相。'

20년 동안 매주 주말 수원역에서 단체 연공을 꾸준히 하며 오가는 행인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주고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권하며 파룬따파가 좋다는 진상을 전하는 파룬궁수련자들

1. 초심을 지키다: 첫 전시판을 세우던 날

진상 거점 설립 초기를 떠올리면 오래된 수련자들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 사람들의 낯섦과 몰이해에 직면해 그들은 오직 ‘더 많은 사람에게 진상을 알리겠다’는 단순한 소망 하나로 역 광장에 첫 번째 전시판을 세웠다.

자원봉사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이 20년 동안 그들은 엄청난 양의 한국어 자료를 배포했을 뿐만 아니라 이곳을 오가는 중국인 관광객과 유학생들을 위해 다량의 중국어 진상 소책자를 준비해 수많은 사람이 거짓말의 영향을 깨뜨릴 수 있도록 도왔다.

20년 가까이 참여해 온 수련자 전 씨는 “처음에는 이상한 눈초리로 보는 사람도 있었고 심지어 오해도 있었습니다”라며 “하지만 우리가 생각한 것은 오직 진심으로 대해야만 상대방의 의심과 경계를 없앨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라고 회상했다.

그래서 나중에 대면해 진상을 알릴 때는 먼저 자신의 이름을 밝힌 다음, 자신이 법을 얻은 후 겪은 심신의 변화와 왜 삼퇴를 해야 하는지 설명했다. 이렇게 하자 절반 이상의 중국인들이 실명으로 삼퇴를 했고, 짧은 몇 마디 대화 속에서 중국공산당(중공)의 사악한 본질을 깨닫고 흔쾌히 삼퇴에 동의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사람들이 진실을 알도록 돕겠다는 이 초심은 그들이 20년이라는 긴 세월을 묵묵히 버틸 수 있게 해준 버팀목이었다.

2. 환경의 변화, 오해와 냉대에서 선의의 지지로

1) “이곳은 중국이 아니라 한국입니다”

파룬궁수련자 김 씨는 오랫동안 수원역에서 전시판 설치를 담당했다. 간혹 교란하러 오는 중국인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대부분 공산당 당(黨)문화의 영향을 깊이 받아 한국 법률을 모를 뿐만 아니라 인식이 비교적 편협해 수련자들이 하는 모든 것이 위법 행위라고 오해했다. 진상 거점은 그들의 이런 오해를 바로잡는 계기가 되었다.

한번은 한 한국인 여성 수련자가 전단지를 나눠주다가 중국 남성에게 제지당한 적이 있었다. 이 사람은 체격이 크고 태도가 거칠었다. 이 한국 여성 수련자는 중국어를 할 줄 몰라 의사소통을 할 수 없었다. 이를 본 중국어를 할 줄 아는 김 씨가 다가가 그 남성을 가로막고 정색하며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왜 우리가 전단지 나눠주는 걸 방해하죠?”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 남자는 “전단지 내용은 다 가짜고 다 정치하는 거잖아”라고 대답했다.

김 씨는 “이곳은 중국이 아니라 한국입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한국 정부의 허가를 받았으므로 당신은 막을 권리가 없습니다. 우리가 전시하는 내용은 모두 사실입니다. 중국 대사관도 우리가 여기서 하는 일을 환히 꿰뚫고 있는데 내용에 조금이라도 사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진작에 경찰에 신고해 활동을 취소시켰을 겁니다”라고 대응했다.

상대방은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김 씨는 “마음대로 하세요. 우리는 여기서 진상을 알리고 있고 모든 활동은 법에 따라 신고가 되어 완전히 합법적입니다”라고 차분하게 말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 사람은 정말 근처 경찰서로 들어갔다. 그러나 나온 후 그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곧장 차를 타고 떠났다.

2) 한국 파룬궁 단체의 주체는 현지 시민

한번은 한 한국 시민이 현수막을 보면서 김 씨에게 자신은 이런 활동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씨는 상대방의 속마음을 알아차리고 “이것들이 모두 중국 것이고 저 역시 중국인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나요?”라고 물었다. 상대방은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김 씨는 끈기 있게 설명했다. “중국인이 한국에 오고 한국인이 중국에 가는 것은 국가 경제 발전의 필요성 때문입니다. 그리고 파룬궁은 한국에 합법적으로 등록된 단체로 회장과 각 지역 책임자가 모두 한국인이며 수련자 중에도 한국인이 아주 많습니다. 불교나 기독교처럼 비록 다른 나라에서 기원했지만 이미 한국 사회의 일부가 됐습니다. 우리 중국인은 그중 참여자일 뿐이며 한국 파룬궁 단체의 주류와 핵심은 한국 현지 시민들입니다.”

상대방이 인터넷에서 부정적인 댓글을 본 적이 있다고 말하자 김 씨는 “그 부정적인 평가들은 모두 중공 정부가 조작하고 지시한 것입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나아가 사실을 들어 비교했다. “한국은 신앙의 자유가 있지만 중국은 없습니다. 중국에서는 모든 종교 단체가 중공의 명령을 들어야 하고, 각 교회의 최고 책임자는 반드시 당원이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불법 집회라는 이유로 단속을 받게 됩니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말했다. “파룬궁은 수련자들에게 마음을 닦고 선을 지향하며 진선인을 기준으로 삼을 것을 요구하며 절대 중공과 한통속이 되지 않습니다. 바로 이 때문에 중공의 잔혹한 박해를 받게 된 것입니다.”

이 설명을 다 듣고 난 상대방은 눈빛에서 의구심이 사라졌고 파룬궁수련자들의 행동에 이해를 표했다.

3) 조선족의 오해를 풀어주다

수원역 진상 거점이 설립된 이래 현지 수련자 안 씨는 한 번도 나태함 없이 계속 이곳을 지켜왔다. 다음은 그녀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몇 가지 경험이다.

한번은 한 조선족 남성이 진상 거점을 지나가다 갑자기 큰 소리로 꾸짖었다. 안 씨가 다가가 끈기 있게 그에게 진상을 알려주었다. 상대방은 처음에 강경한 태도로 계속해서 “공산당이 국민을 먹여 살렸다”고 주장했다. 안 씨가 말했다. “공산당은 스스로 일하지 않으면서 도리어 국민의 피땀 어린 돈으로 자신들의 배를 불리고 있습니다. 아저씨, 절대 그들에게 속지 마세요.” 결국 이 조선족은 삼퇴에 동의했고, 헤어질 때는 먼저 악수를 청하며 감사를 표했다.

또 한번은 안 씨가 진상 전시판을 막 다 설치했을 때, 중국인 두 명이 다가와 길을 물었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이 사람들의 삼퇴를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당시 그녀 혼자 있었고 말이 통하지 않아 한동안 어찌할 바를 몰랐다. 급한 김에 그녀는 한 중국 수련자에게 전화를 걸었고, 중국 수련자의 설명으로 두 사람은 진상을 깨닫고 중공 조직에서 탈퇴하는 데 동의했다.

3. 비바람 속 따뜻한 순간

시간이 흐르면서 파룬궁수련자들의 끈기와 선행은 주변 환경을 바꾸었고 사람의 마음도 변화시켰다. 진상이 널리 전파됨에 따라 수원역의 분위기에는 미묘하면서도 깊은 변화가 일어났다.

예전에는 피하기 바빴던 행인들이 이제는 스스로 발걸음을 멈추고 전시판을 읽는다. 바쁘게 길을 걷는 직장인들도 자료를 받아 서류 가방에 넣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건네고, 심지어 주변 상인들은 휴식 시간에 따뜻한 물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오해에서 존중으로 바뀐 이러한 변화는 20년의 끈기가 가져다준 가장 소중한 선물이다.

다년간 수원역을 통해 출퇴근해 온 한 시민은 “처음에는 파룬궁수련자들이 왜 매일 여기에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20년이 지나면서 그들의 선량함과 끈기를 보았고 이것 자체가 바로 가장 강력한 진상입니다”라고 말했다.

진상을 깨달은 수많은 시민은 박해 반대 서명부에 진지하게 이름을 남겼다. “수고하십니다”라는 짧은 한마디는 이 끈기에 대한 가장 큰 인정이다.

이 밖에 지나가던 시민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수련자들이 제5장 공법을 연공하는 모습을 지켜보곤 한다. 어떤 사람은 “정말 대단합니다. 어떻게 저렇게 미동도 없이 있을 수 있죠?”라고 감탄하고, 어떤 사람은 “저도 한번 배워보고 싶네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수원 진상 거점은 정보 전달의 장소일 뿐만 아니라 수많은 감동적인 이야기가 탄생하는 장소가 됐다.

한때 생활고에 시달리던 한 젊은이가 전시판을 다 읽은 후 자원봉사자와 길게 대화를 나눴는데, 떠날 때 눈물을 머금고 “희망을 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또 진상을 깨달은 많은 시민이 지지 서명을 한 후 도리어 자원봉사자들에게 “꼭 계속해주세요”라고 격려하기도 했다. 이러한 순간들은 작은 빛줄기처럼 모여 진상 거점이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중국에서 한국으로 여행 온 한 관광객이 전시판 앞에서 한참을 서성인 적이 있었다. 그는 처음의 거부감에서 자원봉사자로부터 ‘천안문 분신자살’ 조작 사건의 진상을 듣고 충격을 받기까지 하더니, 결국 눈물을 흘리며 삼퇴를 선택했다. 그는 떠날 때 자원봉사자의 손을 꽉 잡고 “외국에 나와서 이것들을 보고 나서야 지난 수십 년간의 거짓말을 똑똑히 알게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미 삼퇴를 한 어느 중국인 여성은 꿈에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생전에 모 협동조합 책임자를 지낸 중공 당원이었다. 꿈에서 그녀는 아버지가 지옥에서 삽질하며 고통스럽게 일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녀는 이 꿈을 전 씨에게 알렸고, 전 씨의 도움으로 아버지를 대신해 탈당 성명을 냈다. 얼마 후 아버지가 다시 꿈에 나타났는데 이번에는 하늘색 옷을 입고 혈색이 좋았으며 평온한 표정으로 조용히 앉아 장부를 넘기고 있었다. 아버지는 딸에게 자신이 중공 조직에서 탈퇴할 수 있게 도와주어 고맙다고 인사했다.

진상 거점은 서양인 관광객의 발길도 이끌었다. 유럽 출신의 한 학자는 진상을 알고 난 뒤 말했다. “20년 동안 이어온 이 평화로운 항쟁은 인류 문명에서 매우 드물고 귀한 용기의 모습입니다.”

맺음말: 끝나지 않은 이야기

해 질 녘 석양이 수원역 광장을 비출 때, 자원봉사자들은 조용히 전시판을 정리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20년은 하나의 이정표이지만, 그들에게는 길고 긴 수호의 여정 속 평범한 하루일 뿐이다.

다음 주말에도 수원역 출구에는 같은 모습이 어김없이 나타날 것이다. 이것은 이미 지나온 역사이기도 하지만, 지금도 써 내려가고 있는 정의와 용기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원문발표: 2026년 3월 31일
문장분류: 해외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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