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5: 암암리에 준비된 대학살은 어떻게 해소됐는가?

글/ JT, 일언(一言)

[명혜망] 며칠 전 명혜망의 한 기사인 ‘‘4·25’ 내막 폭로: 장쩌민 시기의 학살 계획과 불법적 성격 규정을 보았다. 기사에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이 독자의 제보에 따르면, 한 중공 고위 관리는 ‘4·25’ 청원 당일 외부에서 보기에는 수련자들이 조용하고 질서 있게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지만, 푸유가(府右街) 주변의 분위기에는 극히 살벌한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고 밝혔다. 당시 중공 최고지도자 장쩌민은 비밀리에 부대에 명령해 대기 상태에 들어가게 했다. 사람들의 이목을 속이기 위해 이 군인들은 전부 경찰 제복으로 갈아입었고, 실탄을 장전했으며, 명령만 떨어지면 청원 현장의 소위 ‘중난하이 포위자’를 전부 사살하려 했다.”

“소식에 따르면 당시 여러 중앙 지도자가 극력 만류하며 먼저 수련자 대표와 협상할 것을 청했고, 만약 청원자가 철수에 동의하면 발포하지 말라고 요청했다. 이후 고위 관리 몇 명이 청원 수련자와 면담했고, 합의가 이루어지자 파룬궁수련자들은 신속하고 평화롭게 철수했으며, 심지어 바닥의 쓰레기까지 주워가며 매우 높은 소양을 보여주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그날 밤 푸유가는 1989년 ‘6·4’(천안문 사태)의 피비린내 나는 참사를 재연했을 가능성이 매우 컸다.”

이 소식을 본 후 나는 등골이 서늘해짐을 금치 못했는데 왜냐하면 내가 당시 현장에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본 것은 평화로움이었고 그렇게 많은 사람이 다 함께 청원하면서도 그토록 조용하고 질서 정연한 것을 본 적이 없었기에 그 배후에 살기가 숨겨져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

만여 명의 대법제자가 중공의 총살을 면한 것은 선량함과 아름다움이 광기를 진정시킬 수 있음을 증명한다. 반대로 생각해보자. 만약 파룬궁이 정말로 매우 좋은 것이 아니었다면 그토록 많은 중앙 지도자가 장쩌민에게 ‘총을 쏘지 말라’고 만류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파룬궁수련자들이 현장에서 그토록 절제하고 자율적이며 선량하고 평화롭지 않았다면 언제든 사격 명령을 내릴 준비가 돼 있었던 장쩌민의 입을 막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현재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한 지 이미 27년째에 접어들었다. 27년 동안 매년 ‘4·25’를 기념하며 많은 파룬궁수련자가 그날 자신이 겪고 보았던 감동적인 장면들을 잇달아 공유해 왔지만, 고위층에서 나온 이 상세한 폭로는 처음 보았다. 이전에는 장쩌민이 이토록 잔인한 학살 계획을 세웠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제야 나는 많은 회고록에서 언급됐듯이 중공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그들이 당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담담한 심정으로 파룬궁을 위해 청원하러 갔다는 점에 주목하게 됐다.

게다가 글에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중공 고위 관리는 또 법률적 차원에서 거대한 모순점을 드러냈다. 파룬궁에 대한 성격 규정은 어떠한 사실 조사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장쩌민 개인의 질투와 독단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베이징시, 공안부 등 지도자가 참가한 내부 회의에서 조사 사실과 상반되는 이 성격 규정에 대해 그 어떤 부위원회 지도자도 ‘책임을 뒤집어쓰려’ 하지 않았다.”

친구여, 여기까지 보고 어떤 생각이 드는가? ‘중난하이 포위 공격’이라는 하늘 가리는 커다란 거짓말에 당신도 속지는 않았는가?

파룬궁 ‘4·25’ 청원은 연극도 아니고 어떤 리허설도 없었다. 파룬궁수련자들은 암암리에 총구가 자신들을 겨누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으며 그 누구도 파룬궁수련자들에게 미리 ‘어떻게 잘 표현해야 하며 그러지 않으면 총살당할 것’이라고 말해준 적이 없다. 그들은 중공이 어떤 활동을 할 때 리허설을 하거나 당이 신뢰하고 당이 보기에 표현이 좋은 사람을 찾아 협력하게 하는 것과도 달랐다. 파룬궁수련자들은 완전히 자발적이고 자연스러웠으며 어떤 포장도 없었다. 그들은 모두 평범하고 진실한 자기 자신이었다. 베이징 및 주변 지역에서 온 이들은 서로 모르는 사이가 많았지만 모두 스스로 자율적이고 진선인(眞善忍-진실·선량·인내)에 따라서 좋은 사람이 되려 했기에 그토록 순진하고 선량하며 평화로웠고 공격성이 전혀 없었으며, 경찰들까지 감화돼 조금의 긴장감도 없었다.

이런 본 적 없는 청원 형식에 중앙 지도자들조차 의아해하며 파룬궁은 어떻게 이토록 높은 조직 규율을 가졌느냐고 물었다. 사실 조직 규율이 아니라 내심의 자율이다. 사람이 도덕적으로 높은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할 때 이런 일은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다. 합의가 이뤄진 후 평화롭게 떠날 때 어떤 수련자는 자신이 버린 쓰레기를 다른 사람이 줍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매우 부끄러워하며 자신이 잘하지 못했다고 느꼈다. 다음에 그는 버리지 않게 되고 심지어 타인이 무심코 버린 쓰레기까지 주도적으로 줍게 된다. 이렇게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감동시키며 모두가 어떻게 잘해야 하는지 알게 된 것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자각적 자율’ 문제를 살펴보자. 파룬궁수련자들이 국무원 청원국에 청원하러 간 직접적인 원인은 톈진에서 불법적으로 납치된 40여 명의 파룬궁수련자의 석방을 쟁취하고 동시에 자신들의 연공 자유와 파룬궁 서적의 출판 자유를 회복하기 위해서였다. 바로 이 세 가지 이유였다.

베이징 현지의 파룬궁수련자들이 가장 먼저 도착해 인도 위에 섰다. 큰길 위에는 파룬궁수련자가 한 명도 없었고 모두 정상 주행하는 자동차와 자전거뿐이었다. 뒤이어 잇달아 도착한 외지 파룬궁수련자는 이런 상황을 보고 베이징에 청원하러 와서 시내 교통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됐고 자연스럽게 인도 위로 따라 서게 됐다. 여기에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파룬궁수련자의 선량함과 스스로의 높은 소양에 대한 요구, 그리고 소양이 높은 사람을 본받으려는 염원이 담겨 있다.

또 농촌에서 온 수련자의 경우 그들은 ‘점자 블록’이 무엇인지 전혀 몰랐지만 다른 수련자가 “점자 블록을 비워주세요, 시각 장애인의 통행에 영향을 주지 맙시다”라고 일깨워주는 것을 듣자마자 바로 비켜줬다. 비록 지나가는 시각 장애인이 없었음에도 그들은 여전히 거침없이 통할 수 있는 통로를 비워두었다. 이렇게 한 명이 열 명에게, 열 명이 백 명에게 전하며 순식간에 점자 블록을 비웠다. 타인을 배려하는 사람은 이렇게 하는 것을 매우 즐거워한다.

‘4·25’ 청원에서 파룬궁수련자들은 단지 법에 따라서 자신의 인권을 수호하고 신앙을 수호했을 뿐이기에 협상에서 언급된 것은 모두 파룬궁과 관련된 문제들(톈진에서 납치된 파룬궁수련자 석방, 대법서적 ‘전법륜’ 출판 회복, 파룬궁에 합법적 수련 환경 제공)이었다. 중앙 지도자가 현장에서 임시 추대된 파룬궁 대표와 담판해 합의에 도달하자 청원 수련자들은 자연스럽게 평화적으로 철수했다.

만여 명의 사람이 왔다가 떠났지만 현장은 마치 아무도 오지 않았던 것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소란도 어지러움도 없었다. 누가 이를 해낼 수 있겠는가? 오직 파룬궁수련자뿐이다. 이것이 현장을 본 모든 이가 그 바른 에너지장에 감동한 이유이다. 당시 국제 언론은 이 청원 사건의 평화적 해결로 인해 중국을 극찬했으며 ‘4·25’는 서구 세계에 중국의 개명함과 법치, 희망을 보여줬다.

그러나 3개월 후인 7월, 집단 학살을 목적으로 한 전국적인 박해가 마침내 등장하고 말았다. 오직 장쩌민 개인의 야욕을 채우기 위함이었으며 중공만이 이런 사람과 이런 일에 가장 적합했으니 그야말로 유유상종이라 할 수 있다.

친구여, 더 알고 싶다면 ‘4·25’를 검색해보라. 이 말을 하자니 다른 옛일이 생각난다.

전에 미국에서 수학을 공부하던 유학생 친구가 석사부터 박사를 마칠 때까지 파룬궁을 긍정적으로 설명하는 이메일이나 전단을 주는 사람을 한 명도 만나지를 못했다. 그는 ‘왜 아무도 나에게 파룬궁을 알려주지 않지?’라며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세 명의 동창이 함께 차이나타운에 중식을 먹으러 갔는데 그중 한 명이 갑자기 “파룬궁은 대체 어떻게 된 거야?”라고 물었다. 말이 나오자마자 세 명의 학구파는 모두 멍해졌다. 이어 이 수학 박사가 엉겁결에 내뱉었다. “진선인은 분명 좋은 거야! 진선인이 나쁠 게 뭐가 있겠어?!” 그러고는 할 말이 없었다. 학교로 돌아온 그는 오기가 생겨 인터넷에서 파룬궁을 광범위하게 검색했고 명혜망의 기사, 특집, 영상을 거의 다 보았다. 그리고 7개월 넘는 시간을 들여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사이트의 모든 파룬궁 원저를 읽었다. 그는 당시 파룬궁 서적을 읽는 것이 ‘그야말로 우주의 역사를 읽는 것 같았다’며 정말 너무 좋았다고 했다. 만났을 때 내가 궁금해서 “인터넷 검색할 때 명혜망만 보고 CCTV는 안 봤나요?”라고 물었다. 그는 “국내에서는 그런 것(반면 선전)만 볼 수 있어서 이미 충분히 들었어요. 미국에 왔으니 당연히 긍정적인 쪽에서 뭐라고 하는지 보고 싶었죠”라고 대답했다.

친구여, ‘4·25’나 ‘천안문 분신자살’ 조작 같은 문제에서 당시 중국인은 거의 전멸하다시피 했고 많은 이가 20년 넘게 지금까지 속고 있다. 이런 상황으로 볼 때 파룬궁은 확실히 모든 사람과 관련이 있다. 만약 관련이 없다면 중공도 그토록 막대한 재력과 인력을 들여 압박하고 먹칠하며 강제 전향과 강제 표명을 하도록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만약 당신이 국내에서도 ‘과학적 인터넷 이용’을 할 수 있거나 이미 해외에 있다면 직접 ‘파룬궁’, ‘4·25’, ‘천안문 분신자살’을 검색해 보기 바란다. 이런 중대한 문제에서 정보가 심각하게 결핍돼 자신의 인생과 관련된 대사를 놓치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

모두 즐거운 말띠 해 되시기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6년 2월 19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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