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5’ 내막 폭로: 장쩌민 시기의 학살 계획과 불법적 성격 규정

글/ 필도(筆道)

[명혜망] 1999년 4월 25일, 1만 명이 넘는 파룬궁수련자가 베이징 중심에 있는 국가신방국(國家信訪局, 청원국)으로 가서 평화적으로 청원했다. 이 사건은 국제사회로부터 “중국 역사상 규모가 가장 크고, 가장 이성적인 권리 수호 활동”이라고 칭송받았다. 최근 한 독자가 명혜망에 제보해 중공(중국공산당) 고위 관리가 폭로한 일부 정보를 전했다. 이 내부 세부 사항은 그날 중난하이(中南海) 붉은 담장 뒤에 숨겨진 잘 알려지지 않은 놀라운 내막을 드러냈다. 바로 고의로 기획된 무장 학살이 하마터면 벌어질 뻔했으며, 그 이전의 ‘성격 규정’ 과정은 전형적인 위헌이자 불법적인 조작극이었다는 것이다.

군대 이동 및 복장 변경 대기: 실탄 장전하고 ‘6·4’ 재연하려 해

이 독자의 제보에 따르면, 한 중공 고위 관리는 ‘4·25’ 청원 당일 외부에서 보기에는 수련자들이 조용하고 질서 있게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지만, 푸유가(府右街) 주변의 분위기에는 극히 살벌한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고 밝혔다. 당시 중공 최고지도자 장쩌민은 비밀리에 부대에 명령해 대기 상태에 들어가게 했다. 사람들의 이목을 속이기 위해 이 군인들은 전부 경찰 제복으로 갈아입었고, 실탄을 장전했으며, 명령만 떨어지면 청원 현장의 소위 ‘중난하이 포위자’를 전부 사살하려 했다.

소식에 따르면 당시 여러 중앙 지도자가 극력 만류하며 먼저 수련자 대표와 협상할 것을 청했고, 만약 청원자가 철수에 동의하면 발포하지 말라고 요청했다. 이후 고위 관리 몇 명이 청원 수련자와 면담했고, 합의가 이루어지자 파룬궁수련자들은 신속하고 평화롭게 철수했으며, 심지어 바닥의 쓰레기까지 주워가며 매우 높은 소양을 보여주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그날 밤 푸유가는 1989년 ‘6·4’(천안문 사태)의 피비린내 나는 참사를 재연했을 가능성이 매우 컸다.

황당한 성격 규정 과정: 각 부위원회 ‘사교’설 책임지기 거부

중공 고위 관리는 또 법률적 차원에서 거대한 모순점을 드러냈다. 파룬궁에 대한 성격 규정은 어떠한 사실 조사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장쩌민 개인의 질투와 독단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국무원의 정상적인 업무 논리에 따르면 중대한 성격 규정은 반드시 다음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하급 기관에서 문제 발견 -> 부위원회 조사 연구 -> 예비 결론 도출 -> 국무원 보고 -> 지시 획득 후 집행’.

하지만 파룬궁 문제에서는 절차가 완전히 거꾸로 됐다. 장쩌민이 먼저 멋대로 성격을 규정하고, 뒤이어 각 부위원회 책임자들에게 강제로 이 정치적 책임을 ‘인정’하도록 명령했다. 베이징시, 공안부 등 지도자가 참가한 내부 회의에서 조사 사실과 상반되는 이 성격 규정에 대해 그 어떤 부위원회 지도자도 ‘책임을 뒤집어쓰려’ 하지 않았다. 결국 장쩌민의 압력 하에 참석자들은 끝내 사정이 있어 회의에 참석하지 못한 당시 국가체육총국 국장 우사오쭈(武紹祖)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데 일치단결했다.

이 장면은 평론가들에게 ‘문혁(문화대혁명)’의 재연으로 비유됐다. 당시 ‘우파 선발’ 회의를 할 때 화장실에 한번 다녀왔더니, 돌아와 보니 자신이 부재중인 상태에서 ‘우파’로 추대돼 있었다는 일화와 흡사하다.

명혜망: 집단학살

명혜망이 수년간 수집한 증언과 데이터에 따르면, ‘4·25’ 청원 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된 후에도 장쩌민은 파룬궁수련자의 이성적인 태도 때문에 손을 떼기는커녕, 오히려 같은 해 7월부터 전면적이고 공개적인 탄압을 시작했다. 이 탄압은 그 어떤 후임 당 수괴 손에서도 끝나지 않았고, 오히려 26년 넘게 지속됐다. 박해는 여전히 피비린내 나지만 더욱 은밀하고 제도화됐다.

1999년 ‘4·25’에는 공개적인 집단학살이 발생하지 않았지만, 이후 탄압을 위해 전문적으로 설립된 ‘610사무실’(중공이 불법적으로 설립한 파룬궁 박해기구)은 조직적인 납치, 전향(수련 포기 강요), 감금, 고문을 자행했다. 여기에는 장쩌민이 직접 명령해 수많은 청원 파룬궁수련자를 장기 공급용으로 비밀리에 감금하고 실시한 생체 장기적출도 포함된다. 첫날부터 거짓말과 위헌의 기초 위에 세워진 이 집단학살에 대해 캐나다 인권변호사는 “이 지구상에서 전례 없는 죄악”이라고 칭했다.

맺음말

이번 독자의 제보는 장쩌민이 일으킨 이 파룬궁 탄압이 어떠한 법적 기초도 결여돼 있을 뿐만 아니라, 중공 내부에서조차 합의를 얻지 못했으며 누구도 장쩌민을 대신해 책임을 지려 하지 않았음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이토록 27년째 지속되는 정치적 박해가 비단 원래 중국 인구의 10분의 1을 차지하던 파룬궁 신앙 단체를 겨냥한 것일 뿐만 아니라, 문혁 이후 전체 중국인의 도덕과 양심에 대한 파멸적인 유린임을 당신은 이미 인식했는가? 만약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면 지금 검색해 보라. 중국 사회의 잇따른 도덕성 타락, 대규모 해악 사건이 2000년대 초반부터 갑자기 출현해 그때부터 사람들의 가치관을 빠르게 전복시키지 않았는가?

 

원문발표: 2026년 2월 7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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