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나는 1995년에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을 시작했고, 올해 70여 세다. 수련 후 나는 사부님의 말씀을 따라 매일 꾸준히 법공부를 했다. 그러나 여러 해 동안 나의 법공부는 늘 표면에만 머물러 있었고 더 깊은 돌파가 없었다. 수련 또한 오랫동안 같은 상태에 머물러 있어 매우 조급했다. 그러다 사부님께서 설법 중에 창춘(長春) 지역 수련생들이 법을 외우는 것을 긍정하신 말씀이 떠올랐고, 나는 큰 깨우침을 얻었다.
2002년부터 2008년 사이에 나는 두 차례 ‘전법륜(轉法輪)’을 외웠다. 첫 번째는 약 두 달 동안 앞의 제4강까지 외웠는데 성취감이 컸다. ‘아, 나도 법을 외울 수 있구나.’ 두 번째는 거의 반년이 걸려 ‘전법륜’ 전권을 외웠는데, 이렇게 두꺼운 책을 전부 외웠다는 것이 매우 영광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당시에는 법을 외우는 것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고 끈기도 결심도 크지 않았으며, 여기에 업무의 압박까지 더해져 끝까지 지속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을 외우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법리의 비범함(超常)과 아름다움, 심성의 제고와 경지의 승화는 늘 나에게 기쁨과 여운을 남겼고, ‘시간이 나면 다시 꼭 법을 외워야지’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어느덧 2018년이 됐고, 수련이 깊어질수록 대법에 대한 인식도 더욱 깊어졌다. 나는 다시 ‘전법륜’을 외우기로 결심했고, 이번에는 끝까지 외워 이 대법을 마음속에 담아 사부님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다짐했으며 신심으로 가득했다.
법 암기 초기에는 교란이 매우 컸다. 법을 외우기만 하면 머리가 아프고 마음이 고요해지지 않았으며, 뇌세포가 비정상적으로 활발해져 머릿속이 요동쳤다. 생각이 더 요란할수록 머리도 더 아팠다. 생각하지 않으려 애썼지만 말을 듣지 않았다. 나는 이것이 ‘나’가 아니라 사상업력(思想業力)이며, 법 암기를 방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발정념(發正念)으로 그것을 제거했다. 단시간 내에 발정념을 해도 효과가 없으면, 생각이 고요해지고 머리가 아프지 않을 때까지 오래도록 정념을 발했다. 그러자 법이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나는 법을 외울 때 반드시 주의식(主意識)을 강화하고 정념을 유지해야 함을 깨달았다. 특히 매우 익숙해진 부분일수록 더욱 주의식을 강화해 문장 하나하나가 마음에 들어가 진정으로 주원선(主元神)이 법을 얻게 해야 한다.
나는 보통 한 단락씩 법을 외우고, 익숙해지면 한 번 통독한 뒤 다음 단락으로 넘어간다. 이렇게 한 소제목을 다 외우고 나면 자연스럽게 이어서 전체를 외울 수 있고, 사부님의 설법을 체계적이고 온전하게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며 기억도 깊어진다.
나는 법을 외우는 과정이 단순히 심성을 닦는 과정일 뿐만 아니라 끈기와 의지력을 단련하는 과정이기도 하다고 느낀다. 그 안에는 게으름, 안일함을 구하는 마음, 조급함, 과시심, 환희심 등 수많은 사람 마음이 드러난다. 게다가 시간이 길어지면 끈기와 의지력이 흔들리는 문제도 생기는데, 나는 심성을 지키며 굳게 법 암기를 지속했다.
나는 스스로에게 매일 최소한 한 자연 단락은 외우자고 요구했다. 어떤 날은 해낼 수 있었고, 어떤 날은 짧은 부분조차 외우지 못했지만 조급해하지 않고 마음을 안정시키며 계속했다. 차츰 나는 외워지지 않는 그 법 속에는 반드시 사부님께서 나에게 제거하라고 하신 사람 마음과 집착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처음에는 깨닫지 못했지만, 반복해서 읽고 외우는 과정에서 깨달음이 오면 즉시 외워졌고 몸은 말할 수 없이 가벼워졌다. 수련은 정말로 신묘했다.
법을 외우는 과정에서 점점 사상이 많이 청정(淸淨)해졌고 마음도 훨씬 비워졌다. 심지어 연공이나 발정념을 할 때도 쉽게 입정(入靜, 고요한 상태)할 수 있었다. 머릿속에 담긴 법이 많아지자 어느 시기에는 걷거나 차를 타거나 집안일을 할 때도 자연스럽게 한 단락의 법이 떠올랐다. 때로는 글자 형태로, 때로는 의념으로 나타났고, 나는 그대로 이어서 외웠다. 한 단락을 다 외우고 나면 또 다른 단락이 나타나기도 했는데, 그 속에는 사부님께서 내가 제거해야 할 사람 마음과 집착을 일깨워 주시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어떤 때는 자리에 앉아 법을 외우려 준비만 했을 뿐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외울 부분의 글자들이 하나하나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것 같았다. 또 어떤 때는 법을 외우는 중에 심성이 제고되면 사부님께서 그 층차의 법리를 펼쳐 보여주셔서 몸과 마음이 기쁘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오묘했다. 어떤 일들은 내가 오랫동안 깨닫지 못하면 사부님께서 여러 차례 일깨워주셔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게 하시고, 내가 완전히 이해해 잘 해낼 때까지 이끌어 주셨다. 때로는 법을 외우는 중에 내가 매우 크고 높아진 것처럼 느껴지고 주변의 모든 것이 사라진 가운데 우주 깊은 곳에서 낭랑한 나의 암기 소리만 들리는 듯했다.
법을 외우면서 나는 사부님께서 정말로 제자 곁에 계시며 끊임없이 대법의 비범함과 아름다움을 보여주신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이를 통해 사부님의 위대함과 대법의 무한한 법력을 직접 체험했다. 머릿속에 대법이 담겨 있으니 일에 부딪히면 자연스럽게 법이 떠오르고 법으로 판단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바로잡게 된다. 법 속에서 제고되고 승화되는 이 점이 나에게 깊은 감동을 줬다. 나는 매일 심성의 제고와 법리의 승화를 느꼈고,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수련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한번은 한 수련생이 내가 그해 납치됐을 때 어떤 사람과 다투었다고 말했다(그 사람은 나를 납치한 악인이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나는 대법제자로서 사람을 구해야 할 입장인데 어떻게 그와 다툴 수 있단 말인가?’ 수련생으로서 당신이 듣고 전하는 말들이 전부 헛소리라는 걸 알고 있느냐고 그 수련생과 몇 마디 따져보려던 순간, 사부님께서 설하신 법의 말씀이 한 단락 한 단락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나는 곧바로 내가 잘못했음을 깨달았고 사부님의 말씀을 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나는 아주 평온한 마음으로 수련생에게 나는 그와 다투지 않았다고 말했다.
나중에 안으로 찾아보니 내 안에는 여전히 쟁투심, 원망심, 지적받기 싫어하는 마음이 있었고, 특히 ‘지적받기 싫어하는 마음’이 강했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수련생을 통해 날 제고시키려 안배하신 아주 좋은 일이었는데, 나는 사람 마음이 움직여 수련생을 오해했고 하마터면 이 제고의 기회를 잃을 뻔했다. 나는 진심으로 사부님께 감사드렸고 수련생에게도 감사했다. ‘다시 이런 일을 만나면 반드시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사부님의 말씀을 따르겠다’고 다짐했다.
사부님께서 내 이런 마음을 보시고 실제로 이런 한 가지 일을 안배해 주셨다. 어느 날 오후, 시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와 나에게 집으로 오라고 하셨다. 시어머니는 90세가 넘으셨지만 몸은 늘 건강했고 집에서도 비교적 기세가 강한 분이었다. 단지 가끔 정신이 흐려지실 때가 있었다. 내가 시어머니 댁에 들어서자마자 시어머니는 다짜고짜 나를 호되게 꾸짖기 시작했다. 집안의 과거 이야기부터 현재 이야기까지, 집안의 윗대에서 젊은 세대에 이르기까지, 오래된 자잘한 일들까지 들추어내며 끝도 없이 꾸짖었다. 꾸짖는 와중에 울기까지 했고 너무 화가 나서 어쩔 줄을 몰라 했으며 나중에는 거의 통곡에 가까운 질책이 됐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시어머니가 왜 이렇게까지 크게 화를 내며 나에게 분노를 쏟는지 알 수 없었고 내가 무엇을 잘못한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나는 대법제자로서 심성을 지키고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해야 했다. 나는 한편으로는 매우 조심스럽게 대답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시어머니의 말에 맞춰 타이르며 설득했다. 그 과정에서 시어머니의 돈이 없어졌다는 것을 알게 됐는데 대략 몇천 위안 정도인 것 같았다. 이런 일은 시댁에서는 종종 있는 일이었다.
시어머니는 연세가 많아 돈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자신의 돈은 스스로 관리하지만, 자주 돈을 어디에 두었는지 잊어버려 결국 찾지 못하시곤 한다. 이번에는 잃어버린 돈의 액수가 좀 많았고 게다가 이틀이 지나도록 찾지 못해서 더욱 화가 난 상태셨다. 시어머니는 나에게 이틀 동안 잠도 못 잤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이 일로 시어머니가 나를 찾으신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며 사부님께서 내 심성을 시험하시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절대 놓쳐서는 안 되며 대법제자의 선(善)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다짐했다.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시어머니의 화를 먼저 가라앉히는 것이었고 돈 때문에 생긴 일이니 결국 돈으로 풀어야 했다. 나는 시어머니를 위로하며 말씀드렸다. “얼마를 잃어버리셨어요? 제가 드릴게요. 화내지 마시고 오늘 밤은 푹 주무세요. 연세가 이렇게 많으신데 잠을 잘 못 주무시면 안 돼요. 잠을 제대로 못 자면 건강에도 영향을 줘요. 오래 더 사셔야 하지 않겠어요?” 그러자 시어머니는 울지도 욕도 하지 않으며 2천 위안을 잃어버렸다고 하셨다. 나는 “기다리세요, 집에 가서 가져올게요”라고 말했다. 집에서 2천 위안을 가져와 시어머니께 드리자 시어머니는 “2천이 아니라 누구누구가 4천이라고 했어”라고 말했다(시어머니가 가리킨 사람은 시동생으로 평소 시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나는 급히 “그럼 내일 2천을 더 가져다드릴게요. 지금 집에 그만한 돈이 없고 은행도 문을 닫았어요. 내일 찾아서 가져다드릴게요”라고 말했다.
훈계를 듣는 데서 통렬한 질책을 받기까지, 2천을 주는 것에서 4천을 주는 것으로 바뀌는 그 과정 내내 나는 시종일관 순수하고 평온하며 시어머니를 위하는 마음가짐을 유지했고 마음은 고요한 물과 같아 조금의 물결도 일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 몸은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듯 가벼웠고 이전에는 느껴본 적 없는 상쾌함과 편안함, 가벼운 기쁨으로 가득했다. 대법에 동화되는 것이 이처럼 아름답고도 오묘한 경지를 가져다준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그것은 오직 마음으로만 느낄 수 있고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었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마친 뒤 시어머니가 다시 전화를 걸어와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돈을 찾았어. 더는 돈 가져올 필요 없어. 네 돈은 다시 돌려줄게.” 그 순간 나는 선(善)의 힘을 깊이 느꼈고 마음속으로 대법의 신비로움에 감탄했다. 대법에 동화되는 것은 정말로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최근에 일어난 한 가지 일이 있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들기 전 평소처럼 세수를 하고 있는데 어렴풋이 거실 쪽에서 무엇인가 그림자가 스쳐 지나간 것처럼 느껴졌는데 좋지 않은 존재인 것 같았다. 나는 혼자 살고 있어서 두려운 마음이 일어났고 그 그림자가 무서웠지만 곧바로 그것을 부정했다. ‘나는 대법제자이고 사부님은 늘 내 곁에 계시며 매 순간 나를 돌보고 계신데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겠는가. 두려움이란 곧 사부님을 믿지 않고 법을 믿지 않는 것이니 나는 두렵지 않다.’ 그렇게 두렵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마음속은 완전히 평안하지는 않았다.
구세력은 내가 여전히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다음 날 아침 연공을 마친 뒤 다시 이 일을 떠올리게 했다. 나는 정념으로 또다시 그것을 부정했지만 완전히 내려놓지는 못했다. 오전에 법공부를 하며 ‘전법륜’ 제7강을 외우다가 첫 번째 자연 단락을 외운 뒤 잠시 멈췄는데, 그때 사부님의 한 단락 법 말씀이 생각 속에 나타났고 특히 또렷하고 마음 깊이 와닿았다.
이로 인해 곁에 있는 한 수련생이 떠올랐는데 바로 자심생마(自心生魔)로 세상을 떠난 분이었다. ‘아, 자심생마는 사람을 망칠 수 있구나!’ 나는 깜짝 놀라 깨달았다. 어젯밤 나는 외부에서 온 정보에 이끌려 두려운 마음을 낸 것이었다. 그 바르지 않은 한 생각이 바로 ‘자심생마’였던 것이다! 정말로 무서운 일이었다. 나는 마침내 그 이치를 깨달았다.
이어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나는 제7강의 두 번째 단락을 계속 외웠고 끝까지 모두 외웠다. 다시 생각해보니 이런 ‘자심생마’의 일은 나에게서 참으로 적지 않게 나타났다. 평소 몸이 불편해지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생기면 나는 흔히 부정적인 생각으로 그것을 바라보았고 생각하는 순간 두려워했다. 나는 그저 내가 담이 너무 작은 탓이라고만 여겼지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이 두려움이 바로 ‘추구함(求)’이 아니었던가? 그것을 나쁜 것이라 여기고 그것을 마(魔)라고 여기는 것도 추구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자심생마가 아니겠는가? 나는 문득 크게 깨달았다. 이렇게 여러 해 동안 나는 그것을 단지 하나의 두려운 마음으로만 여겨왔는데 알고 보니 자심생마였던 것이다! 지금까지 전혀 중시하지 않았던 이 자심생마를 나는 반드시 정면으로 마주하고 닦아 없애야 한다.
지금 나는 법을 외운 지 이미 7년이 넘었고 처음과 같은 성취감은 이미 없어졌으며 더더욱 어떤 영광스러움도 없다. 몇 번이나 외웠는지도 세어 본 적이 없다. 다만 나는 대법 속에서 끊임없이 제고되고 승화되는 그 초연함과 사부님에 대한 끝없는 감사와 굳은 믿음만을 지니고 있을 뿐이다.
지금 나는 매일 법을 외우고 있는데 그것은 내 생명이 법에 동화되는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법을 외우는 것은 귀로의 길에서 나를 큰 걸음으로 나아가게 해준다.
원문발표: 2026년 1월 2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1/25/50392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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