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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5의 빛: ‘진선인’이 세계에 희망을 가져오다

글/ 고망(顧望)

[명혜망] 중공(중국공산당)의 역사상 어떤 운동이든,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 년이 걸렸지만, 무너뜨릴 수 없는 ‘계급의 적’은 없었고, 투쟁으로 이길 수 없는 ‘반(反)혁명 분자’도 없었다. 중공의 성장 역사는 바로 사람들을 탄압한 역사다.

4·25 이후, 파룬궁수련생들에 대해 질투의 불길에 휩싸인 장쩌민(江澤民)은 “3개월 안에 파룬궁을 소멸시키겠다”고 선언했다. 1989년 6·4(천안문 사태) 시기 대학생 탄압으로 출세한 이 추악한 인물은 폭력과 거짓말이라는 국가 기계만 돌리면 모든 것을 짓밟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4·25 사건에서 파룬궁수련생들이 평화롭고 이성적인 모습을 보이자, 중공은 수련생들이 비이성적이라고 주장하기 위해 일련의 사건을 조작했다. 산둥성 신타이시 타이산기계공장 노동자 왕안서우(王安收)가 자신의 아버지를 삽으로 때려 죽인 사건에서, 중공은 왕안서우가 파룬궁 수련 후 정신분열로 아버지를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의 왕안서우 이혼 판결문에는 왕안서우가 “정신병 발작으로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했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파룬궁수련생들은 질병 치료와 건강 유지를 위해 수련했지만, 중공은 수련으로 인해 병사했다며 사건을 조작했다. 후난성 쯔싱시 추커우진 린취안촌 스차오터우주의 28세 여성 주민 팡메이칭(龐美淸)이 파룬궁 수련으로 인해 병원 치료를 거부하여 집에서 병사했다는 것이다. 이 뉴스가 발표된 후 사회에 극도로 나쁜 영향을 끼쳤다. 이 사건으로 연루된 추커우진 정부는 조사 과정에서 이 사건이 완전히 사실을 날조한 것임을 발견했다. 이 사건을 날조한 작가 펑웨이(彭衛)는 결국 ‘천저우일보’에 성명과 반성문을 발표할 수밖에 없었다.

파룬궁 수련에는 초자연적인 면이 있었는데, 중공은 이 부분을 공포스럽게 조작했다. 허베이성 런치우시 화베이유전의 마젠민(馬建民)에 대해 중공은 “배를 갈라 파룬을 찾다가 사망했다”며 날조했다. 그러나 마젠민의 아들은 중앙TV에 여러 차례 자신의 아버지의 죽음이 파룬궁과 무관하다고 성명을 발표했으며, 중공의 지시대로 TV에서 연기하기를 거부했다.

이것이 바로 소위 ‘1400가지 사례’로, 중공은 서툰 수법으로 거짓말을 만들어내고 흑백을 전도시켰다. 중공은 신문, TV, 라디오를 장악하고 있었고, 날마다 파룬궁 수련으로 초래됐다는 공포스러운 사건들을 선전했다. 그러나 약간의 분석만 해도 명백한 논리적 허점과 사실과 어긋난 증거들을 찾을 수 있었다.

프랑스 철학자 파스칼은 “신앙은 찬란한 빛이며, 주변을 비추고 사람 자신을 인도한다”고 말한 바 있다.

파룬궁수련생들은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하며, 그들은 단 하나의 소박하고 확고한 생각만 갖고 있었다. 그것은 진상을 대중에게 알리고 파룬궁의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었다.

원래 베이징 파룬궁수련생이었던 현재 호주에 거주 중인 자오위민(趙玉敏)은, 4·25 이후의 또 다른 장엄한 행동에 참여하고 목격했다. 그녀의 회상에 따르면, 중공의 파룬궁 탄압 이후 청원할 곳이 없고 억울함을 호소할 곳이 없어서, 1999년 10월 28일, 2000년 2월 4일, 2000년 6월 25일, 2000년 7월 19일, 2000년 10월 1일, 2000년 10월 6일 등 총 여섯 차례에 걸쳐 천안문 광장에 가서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파룬따파의 명예를 회복하라’ 등의 현수막을 내걸어 자신의 심정을 표현했다.

그녀는 수백, 수천 명의 파룬궁수련생들이 천안문 광장에서 보인 장엄한 행동을 직접 목격했다. 그녀는 “매번 천안문에 갈 때마다 생사를 초월해야만 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명혜망의 미완성 통계에 따르면, 청원할 곳이 없는 상황에서 2000년부터 2001년 사이에 약 10만에서 15만 명의 수련생들이 천안문 광장으로 나아갔고, 베이징 근교에 모여 소식을 알아보고 의논하던 수련생들은 백만 명이 넘었다.

미국 CNN의 당시 TV 보도는 “그들은 한 그룹씩 나타나 현수막, 표지판 또는 구호를 들고 있었다… 경찰은 신속하게 시위자들을 체포해 데려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구석에서 또 다른 그룹이 일어섰다”고 전했다.

2001년 1월 22일, 프랑스 AFP통신은 ‘중공, 파룬궁 탄압 실패로 당혹’이라는 제목으로, “중공 당국은 매일 수백 명의 파룬궁 회원들이 천안문 광장에서 평화로운 시위를 벌이는 것을 막을 수 없다고 인정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18개월간의 탄압 속에서도 파룬궁수련생들은 각종 공격을 받고 5만 명이 구금됐지만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오히려 더 확고해졌다. 또한 중공 지도부 내에서 장쩌민의 탄압에 대해 큰 의견 차이가 있으며, 많은 지도자들이 탄압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한다.

탄압은 지속하기 어려웠다. 중공이 조작한 ‘1400가지 사례’는 거의 파산 상태에 이르렀고, 더 이상 계속 지어낼 수 없었다. 파룬궁수련생들은 생사를 두려워하지 않고 앞이 쓰러지면 뒤에서 일어나며 천안문 광장에 가서 대법의 명예 회복을 호소했다. 이런 세계의 주목을 받는 장엄한 행동 아래, 이러한 거짓말들은 어리석을 뿐만 아니라 자기 모순을 해결할 수 없었고, 오히려 대중의 반감을 불러일으켜 중공이 의도적으로 가짜 사건을 조작해 파룬궁을 모함한다고 여기게 했다.

호랑이를 탄 후 내릴 수 없었는 장쩌민은 모든 것을 걸었다. 그는 중공의 ‘게슈타포’ 기관인 정법위(정치법률위원회)를 이용하여 더 큰 계략을 꾸몄다. 매일 파룬궁수련생들이 생사를 두려워하지 않고 천안문 광장에 가서 표어를 내걸고 있으니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중공의 사악한 사고방식은 정상 사회의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것으로, 어떤 도덕적 한계도 없고 어떤 부끄러움도 없으며, 그 비열함과 교활함은 인류 역사상 거의 비교할 수 없다. 서기 64년, 고대 로마의 군주 네로가 로마 도시 방화 사건을 기독교인들에게 뒤집어씌웠을 때도, 그것은 단지 건물을 불태우는 것이었지 사람의 몸을 불태우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중공이 사람들에게 뒤집어씌운 사악함의 정도는 역사가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2001년 1월 23일 오후, 천안문 광장에 갑자기 짙은 연기가 피어올랐고, 여러 명의 경찰이 소화기를 들고 분신자들에게 달려갔다. 불과 두 시간 후, 중공 신화사는 중국어와 영어로 전 세계에 5명의 파룬궁수련생이 천안문 광장에서 분신했다고 보도했다.

‘천안문 분신’ 날조극은 수많은 허점이 있었다.

1. 분신자 중 한 명인 류쓰잉(劉思影)은 기관지 절개 수술 4일 후에 말하고 노래를 부르며 기자 인터뷰도 받았는데, 이는 명백히 의학 상식에 위배된다.

2. 기자들이 분신자 중 한 명인 류춘링(劉春玲)이 생전에 살았던 허난성 카이펑에 가서 조사한 결과, 누구도 류춘링이 파룬궁을 수련한 것을 본 적이 없었다.

3. 중앙TV의 영상에서, 왕진둥(王進東)은 불이 꺼진 후 두 다리 사이에 플라스틱 병을 끼고 있었는데, 온몸은 새카맣게 탔지만 초록색 플라스틱 병은 완벽하게 손상되지 않았다.

4. 광장에는 카메라 가방을 멘 기자들이 현장을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그들은 어떻게 여기서 갑작스러운 사건이 일어날 것을 알았을까?

5. 중대한 돌발 사건에 대해, 신화사는 일반적으로 층층 심사를 거쳐 며칠 후에야 보도 기사를 발표하는데, 이번에는 단 두 시간 만에 두 가지 언어로 전 세계에 알렸다. 이는 명백히 미리 준비한 것이었다.

파룬궁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가지를 알고 있다. 바로 파룬궁은 살생과 자살을 명확히 금지한다는 점이다. 파룬궁은 ‘진선인(眞善忍-진실·선량·인내)’을 원칙으로 하는 불가의 상승(上乘, 최상) 수련 대법으로, 불가에서는 살생을 금지하는 오랜 역사가 있으며, 파룬궁수련생들도 예외가 아니다. 중공은 가짜 파룬궁수련생들을 이용해 휘발유를 뿌려 살아있는 생명을 불태웠는데, 고금중외의 역사를 모두 살펴봐도 이처럼 사악한 수법은 찾을 수 없다.

중공은 분신 영상을 TV와 신문을 통해 수개월간 반복적으로 방영했고, 중국인들은 편집된 영상을 깊이 믿었다. 파룬궁이 청원을 위해 자신을 불태웠다는 것이다. 중공은 심지어 ‘천안문 분신’ 거짓말을 초중등학교 교과서에 넣어 초등학생들에게 파룬궁에 대한 공포와 증오를 주입시켰다.

1999년 4·25부터 2001년 1월 23일의 ‘천안문 분신’ 날조극까지, 이 18개월 동안 중공은 온갖 수단을 다 동원했고, 장쩌민은 “3개월 안에 파룬궁을 소멸시키겠다”고 선언했지만, 18개월, 30개월이 지난 후에도 파룬궁은 여전히 굳건히 서 있었다.

왜 중공 역사상 오직 파룬궁만이 타도되지 않았을까? 바로 이러한 생각과 감동을 안고, 더 많은 사람들이 파룬궁 수련 대열에 들어서게 되었다. 지금까지 26년이 흘렀고, 파룬궁은 세계 100여 개국에 전파되었으며, 주요 저서 《전법륜(轉法輪)》은 50개 언어로 번역되어 각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수련 공법이 되었다.

중국에서는 지난 26년간, 파룬궁수련생들이 장기간 탄압받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4·25의 평화로운 청원 정신을 지켜왔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여름날, 차가운 바람이 몰아치는 엄동설한, 칠흑같이 외로운 밤에, 그들은 아껴 쓰고 절약해서 모은 비용으로 종이를 사고, 내용을 설계하고, 인쇄하여 제본하고, 정성스럽게 포장하여, ‘4·25’, ‘1400가지 사례’, ‘천안문 분신’의 진상을 한 부 한 부 배포했다.

26년의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고,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이미 불혹의 나이를 넘었으며, 얼마나 많은 장년들이 노년에 접어들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진선인’에 대한 신앙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고, 정치와 정권에 관계없는 그들의 요구도 변하지 않았다. 파룬궁수련생들의 26년간의 희생과 굳건함은 인간 마음의 거대한 변화를 가져왔고, 약 4억 5천만 명의 중국인들이 삼퇴(중공의 3대 조직인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탈퇴)를 했으며,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깨어나고 있다.

어둠의 세력이 아무리 강해 보이고, 세계에 정의를 저버리는 정치인들이 얼마나 많든, 우주의 진리는 사람 때문에 바뀌지 않는다. 선악에 대한 보응은 천리다. 모든 사람은 최후의 심판을 받는 날이 있으며, 모든 사람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

 

원문발표: 2025년 4월 18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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