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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부녀자 징추이전, 3년의 노동교양처분, 9년의 억울한 옥살이 박해당해

[밍후이왕] (밍후이왕 통신원 랴오닝 보도) 진저우(錦州)시 타이허(太和)구 뉘얼허(女兒河)향 야오탕(腰湯)촌 파룬궁 수련생 징추이전(景翠珍)은 중공(중국공산당)이 파룬궁 수련생에 대한 박해로 이전에 불법 노동교양 판결 선고를 받았는데 합쳐 7년이며 선양(瀋陽) 마싼자(馬三家) 교양소에서 3년, 선양 여자감옥에서 4년 동안 박해를 당했다. 2016년 5월 10일에 징추이전은 거듭 납치돼 5년의 불법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징추이전의 가족은 또 늘 교란당해 집이 평안한 날이 없었다. 2009년 8월, 징추이전의 남편 성푸지(盛福吉)는 박해당해 억울하게 사망했다. 당시 징추이전은 여전히 선양 여자감옥에서 박해를 당하고 있었다.

징추이전은 가족과 촌민들에게 매우 평판이 좋았다. 그녀는 수련 전에 몸이 줄곧 그다지 좋지 않았고, 시력도 매우 나빴다. 심지어 어떤 때에는 울다가 웃으며 수시로 변했다.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기 시작한 후, 정신 면모가 몰라보게 달라져 언제나 싱글벙글하며 늘 남을 도와주는 일을 기쁘게 생각했다. 만약 그녀가 누구 집에 어려움이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스스로 가서 도왔다. 그녀의 남편 성푸지는 예전에 20여 년 동안 촌장을 맡았는데, 청렴하고 공정했다.

1. 청원했다가 박해당하다

1999년 4월 25일, 징추이전이 베이징으로 가서 평화롭게 청원하고 돌아온 후 진저우 뉘얼허 파출소 교도원 류천(劉臣)은 곧 징추이전의 집으로 찾아와서 그녀 집의 기본 상황을 기록했다. 말로는 자료를 만든다고 했는데, 징추이전과 그녀 남편에게 압력을 가했다.

1999년 7월 20일, 징추이전은 또 베이징으로 가서 대법을 위해 공정한 말을 했다가 납치당해 펑타이(豐台) 체육장에 감금당했다. 그날 저녁 무렵에 베이징 기차역으로 납치돼 한 대의 전용 열차에 태워졌다. (이 열차에는 모두 납치당한 파룬궁 수련생이었는데, 차 안에는 몇 걸음마다 한 명의 경찰이 완전 무장하고 창을 들고 있었음).

진저우로 가서 기차에서 내린 후, 또 직접 공안국으로 납치당했다. 게다가 그녀의 신분증을 몰수해 가고, 다시 뉘얼허 파출소로 납치했다. 징추이전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집은 이미 수색당해 방안의 안팎은 온통 난잡하게 어질러졌다. 대법 사부님 법신상, 대법책, 방석 등은 모두 강탈당했다. 그 후부터 날마다 구역 경찰 쉬칭(徐青) 등은 징추이전의 집으로 와서 교란했다. 경찰 류천은 더구나 징추이전의 남편을 협박해 술을 마시라고 했는데, 말로는 이것이 그의 업무라고 했다.

대략 7월 25일, 징추이전과 기타 파룬궁 수련생은 마치 예전과 마찬가지로 탕허쯔(湯河子) 큰 장으로 가서 단체 연공을 했는데, 뉘얼허 파출소 경찰이 와서 함부로 야단치며 강제로 녹음기를 가져갔다. 파출소에서 한 경찰은 악독하게 징추이전의 가슴 부위를 행해 주먹을 가하고 동시에 발길로 그녀의 복부를 걷어찼다. 징추이전은 구타로 당시 설 수 없게 되어 뒤로 비틀거리며 땅 위에 주저앉았다.

1999년 10월 중순, 징추이전은 또 베이징으로 가서 대법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하려 했다. 10월 25일, 톈안먼 광장에서 큰 정원 안으로 납치당했다. 저녁에 또 미윈(密雲)구치소로 납치됐다. 징추이전은 사인침대(死人床) 위에 묶여 사람은 대자형 상태로 사지가 나무판자 위에 고정됐는데,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고 이렇게 꼬박 하루 동안 묶여 있었다. 이튿날에 나무판자 벽에 의지해 일어났는데, 시간이 얼마나 지나갔는지는 모르지만, 징추이전은 혼절했다. 그 후 징추이전과 함께 박해당한 기타 파룬궁 수련생의 말에 의하면, 악독한 경찰은 또 징추이전을 머리를 아래로 향하게 거꾸로 나무판자에 세워놓았다. 5일 후인 10월 30일, 징추이전은 베이징 룽펑(龍鳳)호텔로 납치당했는데, 그곳에서 뉘얼허향 향장 류쭤(劉左)는 징추이전에게 1천 5백 위안(약 25만 원)을 갈취했다.

10월 31일, 징추이전은 진저우 타이허분국 경찰에 의해 진저우로 납치당했다가 돌아왔는데, 겨우 남은 2백 위안(한화 약 3만 원)의 돈마저 그들에게 강탈당했다. 징추이전은 그 후 계속 유치장에 불법 납치되어 보름 동안 박해당했다.

2. 3년의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받다

2000년 3월, 징추이전과 기타 파룬궁 수련생은 집에서 연공하는 중 뉘얼허 파출소의 악독한 경찰이 징추이전의 집으로 들이닥쳐 강도처럼 그녀 집의 텔레비전, 녹음기, 녹화 재생기를 강탈했다. 그리고 징추이전을 유치장으로 납치해 1개월 동안 불법 구류처분을 진행했다.

2000년 8월 18일, 진저우시 공안 ‘610 사무실’에서는 타이허 공안국 및 뉘얼허 파출소와 한패가 되어 공동으로 악행을 저질러, 징추이전을 선양 마싼자 노동교양소로 납치해 가서 3년의 불법 노동교양 박해를 진행했다.

3년 사이에 늘 징추이전에게 잠자고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가족과의 면회를 허락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대법을 모독하고, 대법 사부님을 모독하는 말을 주입했다. 악독한 경찰 다이위훙(代玉紅)은 아주 저질스러운 욕을 해서 차마 듣기 힘들었다. 한 번은 악독한 경찰 다이위훙은 다른 사람이 목욕할 때, 징추이전은 씻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그녀를 빈방으로 끌고 가서 징추이전의 머리칼을 쥐고 머리를 빙빙 돌렸다. 징추이전의 머리칼은 다이위훙에게 잡혀 한 줌씩 뽑혔다. 징추이전이 주우려 하자 다위훙은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주먹으로 징추이전의 가슴, 복부를 사납게 구타했다. 그리고 어느 한 번, 한 무리의 유다(배반자)와 함께 징추이전에 대해 폭력적인 구타를 진행했는데, 이로 인해 징추이전은 오랫동안 가슴이 아파 밥을 먹을 수 없었고 온몸에 기운이 없었다.

대략 2001년의 3월, 또 한 차례 강제 전화(轉化)가 시작됐다. 일주일 동안 잠자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치켜들기, 쭈그려 앉기, 세워 두기 고문, 그리고 머리를 땅에 조아리며 꿇어앉게 했는데, 동시에 끊임없이 강변 사설을 주입했다. 그리고 전문적으로 머리를 구타했는데, 구타해 손이 아프게 되자 곧 신발 바닥으로 구타했다. 두 손에 신발을 잡고 계속 머리를 집중적으로 구타했다.

어느 하루, 대략 5~6명의 유다가 악독한 경찰의 지시를 받고 징추이전의 두 팔을 거꾸로 등 뒤에 비틀어 놓고, 다시 팔 위로 잡아당겨 올리고는 머리를 땅 위에 엎어 놓았다. 그런 다음 이 사람들은 징추이전의 몸 위에 앉았다. 그녀들이 떠나간 후, 징추이전은 땅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전신의 살이 극렬하게 장시간 동안 뛰는 것을 느꼈다. 다른 사람들은 그녀가 땅 위에 누워 뛰어오르는 것을 봤다. 눈은 부어올라 뜰 수 없었고, 온 얼굴은 전부 부어올라 검을 자색을 띠었다.

장기간 정신적, 육체적인 박해로 징추이전은 피골이 상접했다. 늑골은 똑똑히 볼 수 있었는데 이미 사람 모습이 아니었다. 한 번은 가족이 징추이전을 보러 왔으나, 노동교양소에서는 폭로될까 두려워 면회를 허락하지 않았다.

3. 4년의 불법 징역형을 선고받다

2007년 8월 25일 저녁 10시가 넘어서 징추이전은 파룬궁 수련생과 진상 자료를 배포하다가 파출소의 불법 경찰과 연방 인원(‘미행’하는 사람임)에 의해 뉘얼허 파출소로 납치당했다. 저녁 11시 반부터 이른 아침 3시 반까지 악독한 경찰들은 징추이전의 집으로 가서 3차 불법 가택 수색을 진행해 컴퓨터, 프린터, 컬러 잉크젯 프린터, 시디 라이터, 녹음기, VCD, 종이, 시디 등 물품을 세 차(車)나 강탈했다. 게다가 징추이전의 남편 성푸지(盛福吉)를 납치했다.

징추이전과 성푸지는 진저우시 610, 타이허 분국, 뉘얼허 파출소의 악독한 경찰에 의해 고문에 의한 강제자백 당했다. 박해자는 주요하게 장주이(張久義), 다이융(戴勇) 등이다. 징추이전은 혹독한 구타로 두 눈이 충혈되고 시퍼렇게 멍들었으며, 입술이 부어올라 변형됐다. 그들이 징추이전에 대해 실시한 고문은, 두 손을 등 뒤에 채워 나무 막대기에 걸어 막대기 끝을 의자에 걸어 놓고, 머리를 아래로 향하게 하고 두 다리는 철사로 한데 묶어 매달아 놓는 고문을 했다. 징추이전의 코에서는 피가 뚝뚝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이런 형의 고문을 징추이전에게 하루에 세 차례 했다. 징추이전은 화장실에 가려고 했으나 경찰이 허락하지 않아 바지에 오줌을 누었다. 고문을 가할 때 한 사람은 고추를 사러 가겠다고 말했다. 잠깐 후 곧 징추이전에게 강제로 고추 물을 주입하면서 치아는 비틀려 흔들렸고, 팔, 손은 오랫동안 마비돼 있었다. 가족은 무엇 때문에 징추이전을 구타해 이 모습으로 만들었는지를 질문했을 때, 파출소의 악독한 경찰 왕딩커(王定科)는 “그녀 자신이 부딪힌 것이지 구타한 사람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분국의 형사 악독한 경찰 차이(柴)는 “어디든 신고하세요”라고 큰소리쳤다. 타이허구 구역장은 ‘징 씨 등에 대해 죽도록 괴롭히라’라고 큰소리쳤다.

이튿날, 징추이전과 남편을 진저우 제1구치소로 납치했다. 제1구치소에서 징추이전은 소금물을 주입 당했다. 소금물 위에는 하얀 가루가 떠 있었는데, 무엇인지 모른다.

2007년 12월 11일 오전 9시가 넘어서 진저우 타이허구 법원에서는 징추이전과 그녀 남편(그리고 다른 한 파룬궁 수련생이 있었음)에 대해 불법 재판을 진행했다. 징추이전은 진저우 타이허구 법원에 의해 4년의 불법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뒤이어 곧 징추이전을 선양(瀋陽) 여자감옥으로 보냈다. 징추이전의 가족이 악독한 경찰에 의해 2만 위안(한화 약 340만 원)을 갈취당한 후, 징추이전의 남편은 2년의 불법 징역형, 3년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선양 여자감옥에 막 도착해 악독한 경찰 선쉬양(沈旭陽), 장레이(張磊)는 징추이전에게 ‘전향’하도록 핍박하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무슨 ‘5서(五書)’를 쓰게 했다가 거부당하자 세 명의 죄수를 시켜 징추이전을 감시했다. 자오리몐(趙立綿, 경제범)를 우두머리로 한, 스수성(時素盛, 경제범), 판쉬(范旭, 마약 판매범) 세 명 죄수는 밤낮 윤번으로 징추이전을 고문하며 괴롭혔다. 낮에는 스수성이고 밤에는 판쉬였는데, 자오리몐은 수시로 징추이전에게 고문을 가했다.

징추이전은 강제로 작은 나무 걸상(길이는 약 15cm이고 너비는 7m이며, 높이는 2.5m)에 앉혀 잠자고 화장실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징추이전이 졸기만 하면 판쉬, 자오리몐은 곧 쇠사슬로 징추이전을 후려쳤다. 처음에 후려칠 때, 징추이전은 눈을 뜰 수 있었다. 그후 쇠사슬로 계속 후려쳤는데, 징추이전은 아픔만 느꼈을 뿐 눈은 뜰 수 없었다. 이때 판쉬는 곧 징추이전을 급수실로 끌고 가서 냉수로 징추이전의 머리에 물을 부었다. 선양의 겨울은 몹시 추웠는데, 살을 에는 냉수를 머리 위, 몸 위에 끼얹고 끊임없이 비인간적으로 징추이전을 학대했다. 3일 후, 징추이전은 이미 서 있을 수 없었고, 4~5일이 되어 이미 정신이 흐리멍덩해지고 전신에 맥이 풀렸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녀들은 조금도 박해를 줄이지 않았다. 판쉬, 자오리몐은 여전히 며칠 동안 변함없는 박해수단을 반복해, 잠을 자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화장실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눈이 감기기만 하면 곧 쇠사슬로 후려치고, 냉수를 끼얹고, 작은 나무 의자에 앉혔다. 말로는 작은 나무 의자에 앉혔다고 하지만, 사실 그는 작은 벤치에 누워 있었는데 왜냐하면, 징추이전은 이미 앉아 있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박해는 약 6일 동안 지속했다.

징추이전을 핍박해 작업실로 가서 노예 노동을 시켰다. 늘 아침 6시에 일하러 나가서 저녁 9시가 넘을 때까지 일했다. 매일 15시간 동안 일을 해야 했다. 어떤 때는 감옥 측이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연장했다. 4년 동안 매일 이러했다.

약 1개월 넘은 후, 악인은 또 징추이전에게 무슨 ‘양식’을 작성하라고 했다. 징추이전이 쓰지 않자 악인은 또 1개월 전의 박해방법을 반복해, 강제로 징추이전에게 작은 나무 의자에 앉도록 하여 그녀가 잠자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화장실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졸기만 하면 곧 쇠사슬로 후려쳤고, 그래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면 곧 급수실로 가서 냉수를 끼얹었다. 첫 번째 날에 자오리몐은 흉악하게 징추이전의 입을 구타했는데, 몇 차례나 구타했는지는 모르지만, 줄곧 구타하다가 그녀의 손이 구타로 지쳐 구타하지 못하게 될 때까지 구타했다. 이튿날 아침, 약 4시가 넘어서 판쉬, 자오리몐은 갑자기 손으로 징추이전의 허벅지 내측을 꼬집고 팔을 구타했는데, 꼬집혀 전부 모두 검은 자색으로 되었다(이처럼 검은 자색은 몇 달 동안이나 남아 있었음). 징추이전은 여전히 쓰지 않았다. 판쉬는 징추이전으로 하여금 옷을 벗으라고 했지만(그녀를 추위에 떨게 했음) 벗지 않았다. 그녀는 곧 징추이전을 땅에 넘어뜨리고, 두 발로 징추이전의 늑골, 앞가슴을 밟으며 강제로 징추이전의 옷을 벗겨 버려 징추이전을 추위에 떨게 했다. 이런 박해는 약 5~6일 동안 지속했다.

그 후부터 오랫동안 징추이전은 가슴이 아프고 가슴이 답답해 숨이 가빴다. 조금 힘든 일은 할 수 없었다. 약간 힘을 쓰기만 하면 곧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올라오지 않았으며, 즉시 전신이 나른해지며 약간의 기운마저 없었다.

4. 남편이 박해로 억울하게 사망하다

징추이전의 남편 성푸지가 불법 판결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집으로 돌아온 후, 뉘얼허 파출소에서는 성푸지가 정기적으로 파출소로 가서 도착 보고를 하도록 요구했고 또 늘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했다. 악독한 경찰들은 성푸지를 통제하기 위해 그에게 수련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고, 늘 그에게 치근덕거리며 마음을 어겨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고, 마작 등을 하도록 했다. 장기간의 정신적인 긴장, 괴로움으로 인해 성푸지는 결국 2009년에 억울하게 사망했다. 그때 징추이전은 여전히 여자감옥에 있었다.

2011년 8월 26일, 징추이전은 감옥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해 며칠이 되지 않아 향, 시에서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지만 차례로 두 차례나 징추이전의 집으로 와서 그녀의 사진을 요구했다.

2013년 11월 17일, 징추이전이 집에서 옥수수를 따고 있었는데, 갑자기 세 명의 악독한 경찰이 들이닥쳐 대법 사부님의 법신 상, 대법 책 2권을 강탈했다. 강제로 징추이전을 뉘얼허 파출소로 납치했는데, 징추이전이 지각이 없는 상황에 그녀를 공안 지정병원으로 끌고 가서 몸 검사를 진행하여 징추이전을 유치장으로 보내 박해하려고 했다. 몸 검사에서 불합격인 이유로 수감을 거부당해 10시간 후 징추이전은 집으로 돌아왔다.

2014년 약 10월에 현지의 한 구역 경찰 두(杜) 씨가 징추이전의 집으로 와서 교란했다.

5. 거듭 5년의 불법 징역형을 선고받다

2016년 5월 10일 저녁 9시가 넘어서 진저우시 타이허 공안 분국 국가보안대대의 류창제(劉長傑) 등 몇 명의 경찰은 뉘얼허 파출소 경찰과 결탁해 불법적으로 타이허구 야오탕(腰湯)촌 파룬궁 수련생 징추이전의 집에 들이닥쳐 징추이전을 납치했다. 동시에 그의 집의 허시(河西)촌 파룬궁 수련생 류징(劉靜)을 납치했다. 그들은 그날 저녁 징추이전의 집을 샅샅이 뒤져 집안의 많은 개인 재물을 강제로 강탈당했는데, 2천 7백여 위안(한화 약 46만 원)의 돈과 파룬따파 서적을 포함해서이다. 뒤이어 경찰은 담장을 뛰어넘어 류징의 집에 들어와 생활비 천 위안 등 개인 물품을 강탈했다. 과정 중에서 경찰은 경찰증, 수색 영장을 꺼내 보이지 않았다.

그날 저녁 징추이전과 류징은 뉘얼허 파출소로 납치당해 유치장에 갇혔다. 이튿날에 곧 진저우시 여자구치소에 불법 감금당했다. 5월 25일, 류징과 징추이전은 진저우시 타이허구 검찰원에 의해 불법 체포를 승인받았다. 7월에 두 사람은 타이허구 검찰원에 의해 모함당했다.

2016년 9월 9일 오전 9시 40분, 진저우시 타이허구 법원에서는 불법적으로 징추이전, 류징에게 불법 재판 심리를 진행했다. 변호사는 유력한 무죄 변호를 진행했다. 재판은 2시간 동안 지속했고, 법정에서 결과를 선포하지 않았다. 검찰관은 타이허구 검찰원의 검찰관 자오샤오쥔(趙曉軍)이고, 심판장은 타이허구 법원 형사청 청장 리제(李傑)이며, 판사는 파나 리리후이(李立輝)이다.

9월 말, 변호사는 가족에게, 징추이전과 류징은 따로따로 5년과 3년의 불법 징역형을 선고받았다고 통지했다. 같은 해 12월 말, 징추이전, 류징은 랴오닝성 여자감옥에 불법 감금돼 박해당했다.

 

원문위치: 2020년 9월 21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9/21/41207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