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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공산당의 고문 ‘변기통 걸기’, ‘물통 걸기’

글/ 페이푸(飛瀑)

[밍후이왕] 중국공산당의 악한 무리들은 늘 목과 같은 인체 주요 부위를 겨냥해 파룬궁수련생을 고문했다. 목에 무거운 물건을 걸어 신체에 손상을 가하는 것 역시 그 중 하나다.

벽돌 걸기 고문

中共酷刑示意图:吊铐、挂砖头

중국공산당 고문 설명도: 매달고 벽돌 걸기

전 인촨(銀川) 철도분국 안전감찰실 기사 마즈우(馬智武)는 올해 46세다. 2002년, 그는 억울한 6년형을 당해 닝샤(寧夏) 우중(吳忠) 마후(馬湖) 감옥으로 납치됐다. 그는 다음과 같이 자술했다.

“교도관 량하이왕(梁海旺)은 죄수에게 지시해 매일 작업하러 나갈 때 나를 공사장으로 끌고 갔다. 그런 다음 판자공장 톱질하는 방 대들보에 매달고 혁대와 몽둥이 등으로 끝없이 구타했다. 귀에다 대고 파룬궁을 모독하는 원고를 계속해 읽었고 동시에 전기봉으로 머리, 손 등 신체에 전기고문을 가했다. 또 나무상자를 만들어서는 내 이름과 파룬궁을 모독하는 말을 쓴 다음 끈을 이용해 나무 상자를 내 목에 걸고 상자 안에 벽돌을 가득 채워 넣었다. 다시 모래주머니를 머리와 목에다 눌러놓았다. 이렇게 나를 2개월 동안 박해했다.”

2004년 6월 29일, 우한(武漢) 파룬궁수련생 류칭수이(劉淸水)는 사양(沙洋) 판자타이(范家台) 감옥 4감구로 납치됐다. 이 감옥에는 ‘후베이 사양 신성(新生) 벽돌·기와 공장’이 있었는데 불법적으로 수감자들의 노동력을 착취했다. 많은 파룬궁수련생들이 이전에 이 벽돌·기와 공장에서 박해를 당한 적 있다. 2004년 8월 18일 오후, 벽돌·기와 공장에서 경찰은 류수이칭에게 강제노역을 시켰다. 류수이칭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자 경찰 샤오톈보(肖天波)는 죄수에게 지시해 류수이칭의 목에 검은 팻말을 걸고, 또 한 가닥 철사로 양끝에 벽돌을 매어 류수이칭의 목에 걸어놓았다. 철사가 류수이칭의 목을 깊숙하게 조였다. 그래도 류수이칭이 협력하지 않자 경찰 왕슝제(王雄傑)는 류수이칭을 마구 두들겨 팼고 죄수들까지 동원해 함께 구타했다. 류수이칭은 구타로 늑골이 부러졌다.

변기통 걸기 고문

원래 상하이시 궁안(公安)고등전문학교 교사이자 화둥(華東)사범대학을 졸업한 류펑(劉鵬)은 2000년 5월부터 2002년 2월까지 장쑤성 다펑(大豊) 상하이시 제1노동교양소에 불법 감금됐으며 교도관으로부터 변태적인 박해를 당했다. 그들은 그에게 손으로 물 한 대야를 받쳐 들고 마보(馬步) 자세를 취한 채 서있게 하고, 머리를 소변통을 향하게 해서 지린내를 맡게 고문했다. 그리고 성냥개비로 눈을 벌려놓고 빨래집게로 눈꺼풀을 집었다. 그리고는 변기를 그의 목에 걸어놓았는데 변기 높이가 0.5m이고 너비는 한 자가 넘었다.

물통 걸기 고문

中共酷刑示意图:吊水桶

중국공산당의 고문 설명도: 물통 매달기 고문

후베이성 궁안(公安)현 자주위안진(夾竹園鎭)의 파룬궁수련생 장궈량(張國亮)은 2001년 7월에 후베이 친돤커우(琴斷口) 감옥으로 납치돼 박해를 당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자술했다.

“입감대에 있었을 때, 죄수 왕웨이(王維)와 황치순(黃奇順)은 교도관의 조종 하에 나를 괴롭히며 고문했다. 그들은 물 25리터가 담긴 물통을 가져다가 끈으로 단단히 묶은 후 내 목에 걸어놓았다. 물을 조금이라도 쏟으면 한바탕 구타했다.”

“죄수 왕웨이는 수시로 와서 목이 조여진 모습을 지켜봤으며 때때로 모욕적인 말을 했다. ‘당신들 같은 파룬궁은 상부에서 말하길 때려죽여도 상관없고 맞아 죽으면 자살로 간주하라고 했지. 맞아 죽으면 감옥에서는 정상적인 사망으로 간주하지. 경동맥이 조여져 머리에 장시간 피가 부족해지면 무슨 결과가 나타나는지 알고 있지? 끈이 이미 살 속까지 매우 깊게 조여졌어. 더 조여진다면 쇼크 상태가 나타날 거야. ‘삼서(수련포기 각서)’를 쓸 거야 안 쓸 거야? 쓰면 풀어주겠다’라며 공갈·협박했다. 나는 ‘삼서’ 쓰기를 거부했다. 물통을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꼬박 2시간 동안 걸어놓았다. 이어서 또 ‘군대 자세로 쭈그려 앉히기’ 고문을 가했는데, 장시간 동안 군대자세로 쭈그려 앉게 하고 다리가 휘청거리는 것도 용인하지 않았다.”

“하루 동안 일을 하고 저녁이 되면 왕웨이는 또 그 물통을 매달았다. 물을 더 채워 넣으며 삼서를 쓰라고 강요했다. 이번 박해 후 나는 한 달 동안 머리를 들지 못했는데 목에 전혀 힘이 없는 것 같았다.”

2004년 3월, 어저우시 전력공급국 직원인 파룬궁수련생 장광샹(江光祥)이 친돤커우 감옥에서 박해를 당했다. 악독한 무리들은 그를 핍박해 마보로 서있기 고문, 보검(寶劍) 짊어지기 고문, 수면 박탈 고문을 가했다. 그리고 그의 목에 25리터짜리 큰 물통을 걸어놓았다. 이렇게 몇 시간 동안 서있어야 했다. 장광샹의 목은 지금까지도 깊숙이 파인 흔적이 남아있다.

나무판 걸기 고문

2004년 초, 다롄(大連)시 난관링(南關嶺) 감옥의 교도관은 단둥(丹東)시 파룬궁수련생 정즈창(鄭志強)에게 믿음을 포기하라고 핍박하며 각종 고문을 가했다. 저녁 6시부터 7시까지 그를 강요해 맨 발로 눈 위에 서있게 했다. 게다가 무게가 대략 15kg인 팻말을 가는 철사로 그의 목에 걸었는데 이렇게 17일 동안 박해했다. 같은 해 4월 4일, 정즈창은 박해로 사망했는데 당시 나이는 겨우 37세였다.

中共酷刑示意图:吊铐、挂重物

중국공산당의 고문 설명도: 수갑으로 매달고 무거운 물건 걸기 고문

후베이 징저우(荊州)시 사스구(沙市區) 파룬궁수련생 펑펑(馮峰)은 2008년 7월 5일에 집에서 납치됐다. 억울한 8년 형을 당했는데 후베이 사양(沙洋) 판자타이(范家台) 감옥에서 고문과 학대를 당했다. 펑펑은 다음과 같이 자술했다.

“가장 심각한 한 차례는 저녁에 내 두 팔을 벌리게 하고 8감구 복도 창문에 채운 다음 목에 잡목으로 만든 무거운 팻말을 씌워놓은 것이었다. 두 명의 바오자(包夾, 감시자)가 지켰는데, 꼬박 하룻밤을 채워놓았다. 두 어깨가 부러지는 것 같았는데 4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아프며 무거운 것을 들 수 없다.”

후난성 이양시 난현(南縣) 파룬궁수련생 장춘추(張春秋)는 2001년 4월에 납치돼 불법적으로 8년 형을 당했다. 2003년에 창사(長沙) 감옥에서 진스(津市) 감옥 2감구로 옮겨졌다. 같은 해 5월 17일, 교도관 저우(周) 모씨는 중대에 지시해 그의 두 손을 거꾸로 묶고는 발을 땅에서 떨어지게 한 다음 그의 목에 가는 철사로 물에 담근 나무판을 13시간 동안 매달았다. 판자에는 ‘간부 경찰에게 말대꾸를 하고 (당국의) 개조(세뇌)에 항거했다’고 쓰여 있었다.

병 매달기 고문

2014년부터 산둥성 감옥 11감구 감구장 리웨이(李偉)는 형사범죄자에게 지시해 파룬궁수련생을 고문했다. 먼저 끈으로 파룬궁수련생의 윗몸, 팔에서 다리, 발까지를 모두 의자에 묶어놓았다. 그런 다음 ‘병 매달기’ 고문을 가했다. 즉 의자를 경사지게 45도쯤 뒤로 젖혀 빈 침대의 가장자리 혹은 다른 물건에 고정해 놓고는 다시 끈으로 머리 윗부분을 묶었다. 그 후 머리 뒷면에 아래로 처진 끈의 한쪽 끝에 물을 가득 채운 콜라병을 매달았다. 그렇게 머리를 들 수도 지탱할 수도 없게 했다. 시간이 길어지자 호흡이 곤란해지고 경추가 극도로 고통스러웠다.

반시간쯤 되면 극한에 달하게 되는데 조금 숨을 돌리게 한 다음 다시 계속 박해를 가했다. 그 기간 악인들은 빈정거리며 “널 때리지는 않았지? 언제까지 버티는지 보자.” 허쉰밍(賀訓明), 탕페이우(唐配武), 궈즈창(郭志強), 장훙진(張洪金) 등 파룬궁수련생은 이런 고문으로 인해 상해를 입었다.

문장발표: 2016년 10월 5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례 종합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10/5/33582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