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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과 할머니가 연이어 사망하자 아이들이 모친의 석방 요구 (사진)

글 / 헤이룽장성 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11월 18일】 헤이룽장(黑龍江)성 솽청(雙城)시 쉬여우친(徐有芹)의 시어머니는 몇 년 이래, 아들이 박해로 사망하고 며느리(쉬여우친)가 15년 중형 판결을 받아서 정신적 압력을 받았으며, 두 손자를 데리고 힘들게 생활을 하다가 2008년 9월 중순에 억울하게 사망했다. 쉬여우친의 두 아들은 아무도 돌봐주는 사람이 없고, 아이들은 헤이룽장성 여자 감옥에 있는 어머니 쉬여우친을 풀어달라고 요구했다.

쉬여우친과 남편 장뎬룽(臧殿龍)과 두 아이

쉬여우친, 여, 40세 정도, 거주지는 솽청시 기차역 부근이다. 2002년에 납치당해 불법으로 15년 중형을 판결 받고 헤이룽장성 여자 감옥에서 온갖 괴롭힘을 당했으며 지금까지 감금 상태다. 그녀의 집안은 솽청시 중공 사악 당의 박해로 풍비박산 나고, 남편은 2002년 9월에 핍박받아 사망했다. 헤이룽장성 여자 감옥에서 박해당한 대법제자는 그녀가 이미 여자 감옥 악경에게 손톱 밑에 대나무 꼬챙이를 꽂는 고문, 전기가 통하는 호랑이 의자 고문, 햇볕이 쨍쨍한 삼복더위 날에 강제로 뛰게 하는 고문을 당했는데, 쓰러지자 악경이 찬물을 끼얹어 깨어나면 또 뛰게 하였다고 말했다. 악경들은 그녀와 대법제자 몇 명의 바지를 벗기고 나무판자와 신발 바닥으로 때리고 나서 소금물에 담갔다고 한다.

쉬여우친의 집안은 원래 남편과 두 아들, 시어머니가 행복하게 살던 완전한 가정이었다. 수련 전에 남편 장뎬룽은 백혈병 환자였고, 인민폐 십 몇 만 위안의 치료비와 계약금이 필요했으나 직장에 다니는 가정 형편상 돈이 없어서 치료를 할 수가 없었다. 그 당시에 시어머니는 이미 파룬궁을 수련하였는데, 수련 후에 병이 완쾌되는 신체 방면의 신기를 체험해서 아들에게 파룬궁을 한 번 수련해보라고 권유했다. 그 당시에 생명이 곧 끊어질 듯한 장뎬룽은 선택의 길이 없어 어머니와 함께 수련을 시작했다. 수련한지 두 달 후에 하얼빈 병원에 가서 검사한 결과, 아무런 병도 없었는데, 온 몸에 힘이 넘치고 피부에도 출혈이 없었다. 의사들도 모두 놀랐다.

장뎬룽이 파룬궁을 수련한 후에 백혈병이 고치지 않아도 완쾌된 소식이 그의 직장인 솽청 미곡처리장에 전해져서 장뎬룽의 친구들은 모두 놀랐으며, 가족들 중에 많은 이들도 수련의 길을 걸었다. 아내 쉬여우친과 두 아들도 수련을 시작하였다. 온 가족은 매우 행복한 생활을 했다.

99년 중공 사악 당 장씨 건달 집단들이 불법으로 파룬궁을 탄압한 후에 쉬여우친 부부는 대법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가 불법으로 납치당했고, 남편은 탈출하였다. 두 부부가 대법에 대해 의심하지 않고 확고하다는 이유로 파룬궁을 주요로 박해하는 현지의 우두머리인 공안국 부국장 장궈푸(張國富), 악경 진완즈(金婉智)가 파룬궁 보도원으로 중점적 박해, 감시, 괴롭히는 대상자로 여겼다.

2002년 4월 19일에 솽청시에서 대규모 체포가 시작됐다. 하얼빈시는 폭력 부대 악경 700여 명을 이동시켜 골목마다 대법제자를 체포하기 시작했다. 수배령 중 현상금은 쉬여우친 납치 3만 위안, 장뎬룽 납치 2만 위안, 톄쥔잉(鐵俊英) 납치 2만 위안이었다. 텔레비전에는 이 세 사람을 탈옥수며 살인자라고 공공연히 거짓 방송을 했다. 그 당시에 터미널, 기차역과 시내로 빠져나가는 길목을 지나가는 모든 차량은 경찰에게 수색 당했다. 악경, 악인들은 고액의 상금을 타기 위해 추악한 연극을 하기도 했다. 많은 악경들은 사진을 들고 길을 지나는 행인과 대조하였는데, 한 악경은 어느 사람이 쉬여우친과 닮아 집까지 미행했다(역전 철로 주변). 야밤에 민간인의 집에 쳐들어가 그 사람을 체포해서 이름을 물었는데, 잡으려던 사람이 아니었다.

쉬여우친과 남편, 대법을 실증한다는 이유로 솽청시 제4소학교에서 퇴학당한 두 아들은 경찰들의 추적을 피하려고 진흙탕인 좁은 길을 힘겹게 걸으면서 솽청에서 백리나 떨어진 헤이룽장성의 아청(阿城)시로 갔다. 아청시에 간지 몇 개월 되지 않아 쉬여우친은 밖에서 납치당했다. 솽청 악경 장궈푸와 아청시 악경, 하얼빈 폭력대와 단합하여 2002년 7월 8일에 오후에 쉬여우친이 거주하고 있는 집을 포위하고 악경들이 창문을 부수고 뛰어 들어가 장뎬룽을 핍박하여 6층에서 뛰어내리게 했는데, 즉사했다. 그 당시에 두 아들 장하오란(臧浩然) 14세, 장하오퉁(臧浩童) 12세에게 수갑을 채워 하얼빈시 4.25 안건 전문 처리반(이 안건을 처리하기 위해 설립한 것)에 보내 한 달이나 감금했다. 후에 또 솽청시 악경들이 완자(萬家) 강제노동수용소로 보내 한 달 이상 감금하였는데, 욕창이 생긴 뒤에 석방했다.

쉬여우친은 불법으로 15년을 판결 받고 헤이룽장성 제1여자감옥에 감금되었다. 두 아들과 70여 세의 시어머니가 힘겹게 생활했다. 감옥에서는 줄곧 가족과의 면회를 허락지 않았다. 2년 이후인 2004년 9월 13일에 처음으로 시어머니와 면회를 했다. 그 당시 쉬여우친은 박해로 매우 야위었다. 죄수복을 입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녀의 옷을 다 태워 셔츠 한 장 없었다. 2004년 3월에 쉬여우친과 많은 대법제자들은 악경들에게 온갖 혹형으로 박해를 당했다.

쉬여우친의 시어머니는 생활 중에 많고 많은 곤란을 극복하고 ‘진·선·인’ 표준에 따랐고, 세인을 자비롭고 선하게 대했는데, 자신의 아들을 죽인 악인도 포함되었다. 한 번은 그녀가 장궈푸를 찾아 공안국에 갔다. 장궈푸는 할머니가 자신에게 복수하러 온 줄 알고 창백해졌다. 그러나 할머니는 “나는 당신에게 사악 당을 도와서 저지른 악행을 멈추라고 말하러 왔다. 중공은 나쁜 일을 가리지 않는데, 하늘은 중공을 멸망시킬 것이다. 삼퇴를 해야 생명을 보존한다. 당신이 내 아들을 핍박해 사망했지만 그것은 당신이 사악 당에게 당한 것이다. 나는 파룬궁을 수련하여 중생을 선하게 대한다. 당신에게 사악 당에서 퇴당해야 생명을 보존할 수 있다고 권유하러 왔다.”고 말했다. 장뤄푸, 이 살인의 악마는 할머니가 말한 뜻을 알고 나서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사악 당의 장기간 박해 하에 쉬여우친의 시어머니는 2008년 9월 중순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쉬여우친의 두 아들은 아무도 돌볼 사람이 없고, 헤이룽장성 여자 감옥에 어머니 쉬여우친을 석방하라고 요구했다. 여기에서 국제 조사 조직에 호소한다. 이 사건을 조사하여 악인을 법정에 세우고 감금하고 있는 파룬궁 수련생들을 무조건 풀어주기를 호소한다.

문장완성 : 2008년 11월 17일
문장발표 : 2008년 11월 18일
문장갱신 : 2008년 11월 18일 06:52:48
문장분류 : 중국소식
원문위치 : http://minghui.ca/mh/articles/2008/11/18/18995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