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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9년 판결 받은 뒤 시아버지, 시어머니 충격으로 세상 떠나

[명혜망 2006년 9월 17일] 나는 박해 당한 사람의 한 가족인데, 이 글은 나의 남편이 7년 동안 박해 당한 경험을 적은 것이다. 99년 7,20일부터 2000년까지 허베이 런(任)현 공안국의 악경은 늘 우리집으로 와 소란을 피우면서 녹음기 두 대, 대법서적, 사부님 법신상을 가져갔다. 나의 남편은 싱타이(邢台)시 챠오둥(桥东)구역 공안국에 의해 진상자료를 배포할 당시 납치 당한 후 9년 판결을 받고 지금까지 감옥에 있다.

나의 남편은 1996년 법을 얻은 행운아였다. 97년부터 현지 파출소에 200위안을 벌금을 물었고, 99년 7, 20까지 대법을 위해 공평한 말을 하려고 베이징으로 갔다가 런현 공안국 정보고(政保股) 고장 허하이둬(贺海鐸), 류징쉐(劉景雪), 류전궈(劉振國)에게 납치되어 런현 교육중심에서 감금되었다. 감금 당한 1개월 전후로 수속 절차도 없이 1200위안의 벌금을 냈다.

또 한 번은 1999년 음력 10월 20일 저녁에 발생했던 일이다. 허하이둬 류전궈는 사람 몇 명을 데리고 우리집으로 뛰어와 남편을 강제 납치하여 런현 교육중심에 1개월 동안 감금시켰다. 그 후 또 런현 구치소로 보내 장기간 감금 시켰다. 그는 6호 감방에 감금되어 있었는데 그곳에 감금되어 있던 사람들 거의 모두 사형범 혹은 살인범이였다. 남편은 늘 한밤중에 그들에게 폭행 및 폭언을 들었다.

음력 12월 9일 어느 날 저녁 매우 추운 날씨였는데, 6호 감방에 있던 범인들은 남편의 옷을 전부 벗도록 한 뒤 무릎을 꿇은채 꼬빡 하루 저녁을 얼게 하였다. 그날 저녁 죄수들은 변기를 남편의 머리에다 뒤집어 씌운채 변기통에 뜨거운 물과 밥 그릇을 올려놓았다. 그런 뒤 그들은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마구 차서 남편은 얻어맞아 코가 시퍼렇게 되었고, 얼굴이 부어올랐다. 이튿날 아침밥을 가지러 갔을 때 남편을 알던 사람 모두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 곳의 악경은 이런 사건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었다. 약 4,5개월 감금시킨 뒤 석방할 때 또 1000위안의 벌금을 내야했다.

그 몇 년 동안의 박해를 경험하면서 시아버지, 시어머니는 장기간 아들 생각으로 몹시 고통스럽고 슬펐다. 가정 경제가 어려운데다 아들마져 없어서 만성적으로 아팠지만 돈이 없어서 약을 지어 치료할 수 조차 없었다. 이런 생활을 견디지 못한 시아버지는 2004년 음력 12월 10일에 조상의 무덤 앞에서 약을 먹고 자살했다. 시어머니도 충격을 받아 들이지 못해 2005년 1월 20일에 세상을 떠났는데, 두 노인은 1달여 만에 모두 암담한 세상을 떠났다.

양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응당 어머님의 최후 얼굴을 아들이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나는 곧장 현지 대대와 진정부에 가서 런현 공안국 정보고 고장 류전궈를 찾아 정황을 설명하면서 탕산(唐山) 감옥에 연락을 해달라고 하였다. 악경 류전궈는 태도가 매우 나빠 더러운 말을 하면서도 자신이 왜 남편을 찾아야 하는가 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임종까지 남편을 만나지 못했다.

문장완성: 2006년 9월 16일

문장발표: 2006년 9월 17일
문장갱신: 2006년 9월 17일 09:51:20

문장분류: 【대륙소식】

원문위치: http://minghui.ca/mh/articles/2006/9/17/138008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