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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념으로 경찰서, 구치소, 그리고 강제노교소에서 법을 실증하다 (제 2 부)

글 / 지린省, 지린市 파룬궁 수련생

[명혜망] {제 1부에 이어 계속됩니다}

“나는 앞장설 수 없다”

2001년 1월 5일 오후, 내게 떠날 준비를 하라는 지시가 왔다. 지역 경찰서에서 나온 경찰 두 명이 내게 메모 한 장을 건네주며 말했다, “당신이 잘못을 뉘우친다면 아직 기회는 있소.” 내가 말했다,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는데 무얼 뉘우친단 말이오? 경찰이 말했다, “후회 없지요? 좋아요. 당신은 노교소에서 2년을 보내야 합니다.”

지린市 환쓰링 노교소는 파룬궁 수련생들을 박해하기 위해 특별 팀을 만들었다. 나는 3반에 넣어졌다. 내가 그곳으로 온 지 닷새째 되는 날, 팀장 리우가 교육부장 자오쉰을 데리고 나를 보러왔다. 자오쉰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당신이 고위층 당 간부들의 경호원으로 일했다고 들었소. 모든 젊은 사람들이 당신을 존경하고 있는데, 그들을 이끌 수 있겠소? 당신이 수련을 포기하겠다고 말만하면 나는 당신을 집에 보내 행복한 가족 생활을 하도록 하겠소.”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이 나에게 보여준 친절은 고맙지만, 나는 이끌 수 없소. 나는 1999년 7월 22일 이래로 파룬따파와 이홍지 스승님을 비판하는 TV 프로그램을 모두 보았고 또 많은 기사들을 읽었지만, 모두가 거짓말과 개인적인 공격뿐, 나를 확신시킬만한 것이 하나도 없었소.”

자오는 참을성 없이 내게 말했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준비가 되면 나를 찾아오시오.”

“3월 14일”의 비극

2001년 3월 7일, 노교소 임원들은 여러 팀으로부터 또 전에 전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할 목적으로 새 대대를 형성하려고 모집했던 특별 팀으로부터 모두 198명의 파룬궁 수련생들을 모이게 했다. 이 특별 대대는 세 개의 팀으로 구성되었다: “가장-제한된” 팀은 2층에, “일반적으로-제한된” 팀은 3층에 그리고 “느슨히-관리되는” 팀은 1층에 있도록 했다. 모든 힘은 가장 격렬한 박해 대상 수련생들을 표적으로 집중되었다.

새 대대가 형성된 다음날, “가장-제한된” 팀인 2반에서 수련생 판징원이 “나무 널빤지 위에 앉는” (일종의 고문으로서,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고 조그만 낮은 벤치에 앉아 있는 것) 명령을 받았을 때 다리를 펴지 않았다는 이유로 매를 맞고 독방으로 보내졌다. 2반 수련생들은 이런 분노할 남용을 항의하기 위해 단식을 시작하기로 결정했고, 나는 1반에 있었지만 우리도 판의 정행을 지지하기 위해 같이 단식하기로 결정했다.

단식 셋째 날, 대대장 량과 사법국 사무실 주임이 모습을 나타냈다. 그들은 각 반 리더들에게 세 명의 대표자들을 대대 사무실로 보내 단식항의에 관해 이야기하도록 요청했다. 량은 우선 그들이 사람들을 때린 것이 잘못이었다고 인정했다. 우리는 세 가지 조건을 내세웠다. 첫째, 판징원을 독방에서 풀어주고; 둘째, 그렇게 때리는 것을 그칠 것이며; 셋째, 두 다리를 곧게 펴야하는 “널빤지 위에 앉는” 방법을 바꿀 것. 내가 세 번째 조건을 설명하자, 량은 기본적으로 우리의 조건에 동의했다. 이렇게 해서 첫 번째 단식은 단 3일 만에 성공적으로 끝났다.

3, 4일 후, 3층에 있는 “일반적으로-제한된” 팀의 수련생들이 단식항의 소식을 나중에 알았고, 우리들의 행동을 지지하기 위해, 그들도 단식항의를 시작했다. 이것은 대대 리더들을 놀라게 했다. 그들은 “일반적으로-제한된” 팀은 대체로 조용하고 다루기가 쉽다고 생각했었다. 사람들을 더 이상 때리지 않겠다던 대대장 량은 더 이상 그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수련생들을 잔인하게 때리기 위해 경찰들을 조직했다. 열 명 이상의 경찰관들이 야만스럽게 그들을 때리기 시작했고, 위층에서 때리는 소리와 아픔으로 울부짖는 동수들의 요란한 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괴로웠다. 우리는 “때리는 것을 중지하라! 때리는 것은 불법이다!”라고 크게 소리 지르면서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아래층에 있는 수련생들에게 경고해 주기 위해서 마루를 쿵쾅거려서 울리게 했다. 우리는 량을 보자고 요청했지만,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다음 2, 3일 동안 우리는 당직 사무관들만 보았지 그 외의 사람은 보지 못했다. 우리는 다 함께 다시 단식항의를 하기로 결정했다.

3월 13일, 전 대대에 있는 수련생들이 단식항의를 시작했다. 빌딩 전체는 죽은 듯이 조용했다. 어떤 수련생이 말했다, “이건 좋은 징조가 아닌데!” 사실, 당국은 그 시간에 사태에 대한 긴급 조치를 하기 위해 비상 회의를 열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9시에, 우리는 3층으로부터 다시 때리는 소리를 들었고, 전보다도 더욱 크고, 더욱 비참한 수련생들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창문으로부터 우리는 머리에 피가 묻은 몇 명의 수련생들을 들고 여러 사람들이 앞마당으로 가는 것을 보았는데, 추측하건대 아마도 그들을 지프에 태우고 병원으로 가는 듯했다. 우리는 더 이상 잠자코 있을 수가 없어, 불법행위를 그치라고 큰소리로 불러댔고, 문을 두드리고, 마루를 구르고 난방 라디에이터를 두드렸다.

위층에서 나는 소리가 조용해지자, “가장-제한된” 팀의 금속 문이 갑자기 열렸다. 관리과장 정과 교육과의 자오커좐, 그리고 두 부에서 나온 간부들과 한 12명쯤 되는 경찰들이 마치 이리와 호랑이들처럼 사악하게 재빠르게 들어왔다. 모든 사람들이 전기 방망이 또는 “이리의 이빨” 방망이(돌기를 가진 이 고무 방망이는 납으로 채워져 있어서 사람 몸 표면에 아무런 상처를 보이지 않지만 내장까지도 손상시킬 수 있다. 이것은 가장 사악한 고문 형구로서, 법적으로 허용되어 있지 않지만 노교소에서는 아직도 사용되고 있다)를 들고 있었다. 그들은 20명의 감시원들을 데리고 온 대대장 량을 따랐는데, 그 역시 전기 방망이와 “이리의 이빨” 방망이를 들고 있었다. 그들은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을 때리기 시작했고, 서른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약 한 시간 동안 수련생들을 때렸다. 수련생들은 맞받아 싸우지 않았다. 그런 다음 “가장-제한된” 팀장 차오가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이름이 불린 사람들은 사무실로 끌려가서 벗겨졌다. 그곳에서 두 사람이 단식항의를 중지하는데 동의하지 않으면, 계속 때렸다. 7명의 수련생들은 너무 심하게 맞아서 그 자리에서 무의식 상태로 떨어졌다. 많은 사람들의 해골이 골절되거나, 뼈가 부러지거나 힘줄이 찢어졌고, 두 명은 응급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으로 실려갔다. 우리는 이 대대에서 90명이 이렇게 야만적으로 얻어맞았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50명 이상이 심한 상처로 고통을 받았고, 15명이 혼수상태에 빠졌으며, 다섯 명이 응급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으로 실려갔다.

이 사건이 있은 후, 당국자들은 이것을 감추느라고 고심했고 통행금지령을 내렸다. 다른 범죄자들에게도 방문을 허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며칠 후 전 지린 시에 소란이 일어났다. 노교소가 언덕 밑에 세워져 있었기 때문에, 노교소 언덕에 서 있으면 노교소에서 일어나는 일을 누구든지 내려다 볼 수 있었다. 매일, 수백 명의 사람들이 노교소 벽을 둘러싸고 관리들에게 왜 방문객들을 들여보내지 않는가 그들이 무슨 부끄러운 일을 한 것이 아닌가라고 물었다. 어떤 이들은 노교소 마당으로 돌을 던졌고 어떤 이들은 더욱 높은 고위층 관리들에게 질문을 하러 갔다. 노교소 내에 있는 모든 지도자들이 몸을 숨겼고 걸어나와 대중을 만나기를 두려워했다.

지린市 노교소 집행자들이 수련생들을 포악하게 고문을 한 것은 이 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2000년에는 수련생 한 명이 그곳에서 죽었고, 이 뉴스가 명혜망에 폭로되었고 국제적으로 충격의 여파를 불러일으켰었다. 노교소 박해자들은 범죄 증거를 감추기 위해, 얻어맞은 수련생들을 다른 장소로 흩어지게 했다. 그들 중 가장 심하게 상처받아 고통받고 있던 첫 번째 그룹 50명의 수련생들을 랴오위안, 쓰핑과 퉁화로 보냈다; 두 번째 그룹 50명은 헤이룽장省으로 보냈다. 그들은 이러한 이동을 극비에 부쳤고 수련생들은 출발 바로 10분 전에야 통보를 받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또 어디로 보내지는지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어떤 수련생들은 차로 운반되었고 어떤 수련생들은 차에 오를 때 도움을 받아야했다.

수련생 허우는 “이리의 이빨” 방망이로 심하게 맞은 상처 때문에 고통을 받았으며, 랴오유안으로 이동된 후도 매일 심하게 열이 났고 기침을 했다. 폐 X-레이는 그가 잠재적으로 폐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그의 폐 돌출부는 모래 크기의 구멍으로 꽉 차있었고 그가 어느 때라도 죽을 수 있는 상태였다. 의사는, “당신이 그런 심한 상처로 고통을 받고 있으면서 아직도 살아있다니!” 하면서 놀랬다. 책임을 지는 것이 두려워, 랴오유안 노교소 관리들은 즉시 그의 가족들에게 그를 집으로 데려가도록 지시했다.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번역자주: 제1부는 2004년 2월 27일자 한국명혜망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문장발표: 2004년 2월 18일

문장완성: 2004년 2월 17일

문장위치: [진상알림]

중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4/1/8/64330.html
영문위치: http://www.clearwisdom.net/emh/articles/2004/2/18/4521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