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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을 잘해도 주의하지 않으면 기본적인 잘못을 범한다

글/ 중국 제자

[밍후이왕] 일부 관(關)은 보기에 크지 않아 수련 초에 마땅히 넘겼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아직 넘기지 못하는 이런 현상은 아주 보편적이다. 때로는 나는 묻게 된다. 왜 이럴까? 함께 제고하자는 뜻에서 약간의 현상과 인식을 글로 적으니 거울로 삼아 돌파하면 좋겠다.

한번은 친척인 수련생 집에 갔다. 그는 운전해서 나를 마중 나왔다. 차를 탔는데 그 차 앞에 걸어놓은 장식에 관심이 갔다. 강남지역 쌈지인데 수공예품이었다. 그때 머릿속에 하나의 화면이 보였다. 이 장식품은 단정하고 수려한 여자아이가 준 것이다. 여자아이의 얼굴이 눈앞에 떠올랐다. 나는 직언했다. “이 장식품, 어떤 여자아이가 줬죠?” 수련생은 놀라 말했다. “어떻게 알아요?” 그런 후 설명했다. “저는 그 여자아이와 아무 관계 없어요.” 나는 말했다. “이게 매일 당신 눈앞에서 흔들거리는데 당신 마음이 고요할 수 있어요? 그녀를 잊을 수 있어요? 당신이 색욕심이 없다고 말할 수 있어요? 더 나아가면 어떻게 될까요? 사악(邪惡)이 당신을 혼내주려 하겠죠. 그런데도 어리석지 않아요?”

수련생은 자기 이마를 치며 말했다. “아, 어쩜 이런 기본적인 잘못을 했지?” 즉시 차에 걸어놨던 장식품을 내렸다. 수련생은 깊이 자신을 파헤쳤다. 색욕심, 체면을 지키려는 마음, 정이 있다. 이성이 당신에게 좋은 감정이 있을 때가 바로 수련인의 큰 누락이다. 큰 누락의 뒤에는 반드시 화가 있다.

일부 관은 알 수 없다. 본래 마땅히 넘겨야 하는데 미끄러져 내려왔다.

욕망을 말해보자면 역시 돌파하기가 쉽지는 않다. 때로 부부 사이에 친밀한 말을 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특히 배우자가 속인일 경우, 만약 주의하지 않으면 후회를 남길 수 있다. 알 수 없는 매초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 그것은 제고의 결정적인 타이밍이자 고험(考驗)으로서 수련인에게 우연한 것이란 없다. 그 시각 사실 당신이 착실히 수련했는가를 보는 것이다.

어느 여름, 나와 한 수련생이 공원 나무 아래에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개미가 발밑에서 다니고 있었다. 나는 보고는 불편해 신을 벗어 수십 마리를 때려 죽였다. 갑자기 수련생이 말했다. “왜 일부러 살생하지요?” 돌연 깨달았다, “그렇지. 이것은 살생이 아닌가.” 재빨리 허스(合十)하고 사죄했다. “너희들이 ’진선인(真·善·忍)‘이 좋고 파룬따파(法輪大法)가 좋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내가 원만할 때 너희들을 나의 세계로 제도해 중생이 되게 해주겠다. 이렇게 오늘 살생한 빚을 갚겠다.” 비록 뉘우쳤지만 그대로 끝난 것은 아니었다. 내 몸에 빨간 두드러기가 났는데 아프고 가려웠다. 마치 개미가 무는 것 같다. 나는 알고 있었다. 구세력이 이치를 잡았구나. ‘일부러 살생했으니 정신 차리게 하겠다.’

일부 기본적인 잘못은 알면서도 범한다. 인터넷 재테크를 언급하자면, 하늘에서 떡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이익’의 유혹에 몇만 위안, 몇십만 위안을 투자한다. 얼마나 많은 수련생이 구세력이 마련해놓은 함정에 빠졌는가?

고리대금을 말하자면 수련인이 가까이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두세 푼 이익’에 유혹돼 은행 적금을 꺼내서 ‘주식’하는 친척과 친구에게 맡긴다. 처음에는 좀 이익을 보지만 나중에는 그림자조차 없고, 구세력의 웃음거리가 된다.

간혹 수련생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듣는다. “○○는 아주 정진하는데 어떻게 병업 상태가 나타나 사망하지?” 나중에 알게 됐는데 수련생은 말하지 말아야 할 말을 했다. 예를 들면 몸이 불편할 때 말했다. “사는 게 죽느니만 못하다.” 어떤 독신 수련생은 적막할 때 말한다. “사는 게 참 재미없어.” 무엇이 구하는 것인가? 구세력은 당신이 빨리 가기를 바란다. 그것들은 이런 것밖에 할 줄 모른다.

한 수련생이 말하길, 이웃이 자주 그를 찾아 일을 도와달라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손님 접대를 하면서 그는 부르지 않는다. 그는 속으로 씁쓸하다. 아내는 옆에서 불난 집에 부채질한다. “필요할 때만 찾고 손님을 대접할 때는 부르지 않네요. 다음부터 그런 사람은 상대하지 마세요.” 수련생은 며칠 동안 속으로 참았지만, 이 마음을 내려놓지 못했다. 신변의 수련생이 말했다. “만약 사(私)의 기점이라면 그를 위해 지급한 것이고, 위타(爲他)의 기점이라면 성과지요.” 수련생은 크게 깨달았다.

오랫동안 나는 한 친구가 돈을 빌리고 갚지 않아 고민했다. 친구는 짠돌이고 돈이 있어도 갚으려 하지 않는다. 나는 점차 어떤 방법으로 받을지 생각했다. 자주 가부좌를 할 때 마음이 고요하지 못했다. 어느 날 한 수련생이 물었다. “인간 세상에 온 것이 무엇 때문이지요? 그 보잘것없는 이익을 위해서인가요? 그런 일도 마음에 두나요? 어떻게 신이 될 수 있겠어요?” 나는 흠칫했다. 순간 마음이 가벼워졌다.

한 수련생은 수련하기 전에 음양사였는데 수련을 시작하고 그만뒀다. 어느 날 마을에 사는 한 친척이 죽었는데 그 아들이 이 수련생에게 와서 무릎 꿇고 그에게 망자를 보내달라고 급히 도움을 청했다. 수련생은 한 사람을 찾아주었는데 와서는 무슨 일이든 그에게 물었다. 나중에는 원칙이라며 또 그에게 돈을 주었다. 그 수련생은 말했다. “불이법문(不二法門)은 얼마나 관건이 되는 것입니까? 저는 가장 기본적인 잘못을 했어요. 며칠 동안 우리 집에 움직이는 소리가 나고 교란이 끊이지 않았어요. 사부님께 잘못을 뉘우쳤어요.”

또 한 수련생은 말했다. “며칠간 시력이 나빠져 물건을 보는데 막이 한 겹 가로막고 있는 것 같아서 안경을 써도 안 돼요.” 나는 말했다. “원인을 찾았어요?” 수련생은 말했다. “알면서도 범했네요. 핸드폰 동영상을 봤어요.” 최후로 갈수록 엄숙하다. 늘 한 층차에서 배회하지는 못한다.

사악이 ‘제로화’ 행동으로 교란할 때 한 수련생이 말했다. “저는 서명을 하지 않았어요. 다 애들이 했어요.” 나는 물었다. “당신 태도는요?” 수련생은 웃었다. 나는 그의 교활함을 보았다. 자기가 나서지 않고 자녀에게 대응하게 했다. 이것이 선한 것인가? 이런 사(私)가 그래도 작은가? 누가 서명을 해도 모두 대법에 죄를 범한 것이다. 구세력이 이런 사람을 놓아줄 수 있겠는가?

최근 중국에서 어떤 지역은 ‘예방접종을 하지 않으면 마트에 들어갈 수 없고 버스도 탈 수 없다’라는 규정이 있다. 어떤 젊은 수련생이 예방접종을 하지 않자 주민센터 직원이 이유를 물었다. 그녀는 거짓말을 했다. “둘째를 가지려고요.” 주민센터 직원은 “그래요, 이런 상황이면 맞으면 안 되죠.” 수련생은 그때 아주 기뻤다고 했다. 나는 일깨워주었다. “이것은 진실하지 않고 큰 누락이죠. 구세력은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정말로 둘째를 갖게 할 수 있어요. 당신 스스로 번거로움을 불러온 것이 아닌가요?”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하지만 아무리 수련을 잘했어도 그 역시 사람이 수련하고 있고, 오직 이 사람이 아직 원만하기 전이라면, 그에게는 모두 사람 몸의 것이 있다.”[1] 나는 깨달았다. 사부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제자를 자비롭게 대하시고 제자를 생각해 주신 것이며, 우리는 엄격하게 자신에게 요구해야 한다. 늘 사람의 상태에서 배회하면 안 된다. 최후일수록 용맹정진해야 하고 사람에서 벗어나고 신으로 수련 성취해야 한다. 이것이 사부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다.

일부 현상을 글로 적었는데 법에 있지 않은 점은 자비롭게 지적해 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각지설법11-2010년 뉴욕법회 설법‘

[편집자 주: 본문은 글쓴이 개인의 현재 인식을 대표하므로 수련생들이 서로 교류하여 ‘비학비수(比學比修) 하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1년 7월 2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7/27/42873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