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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야 위타(爲他)인가?

중국 ‘제로화’ 운동도 겸해 말하다

글/ 미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최근 중국 ‘제로화(清零)’ 운동에서 나는 깨달았다. 이것은 구세력이 그들 마음에 들지 않는 대법제자가 수련성취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사부님께서는 법에서 장계취계(將計就計)를 말씀하셨다. 대법제자가 정념정행하고 마음이 법에 있으면 넘지 못할 관이 없다.

나는 중국 수련생의 각종 마음가짐을 보았다. 두려워하고 피하며 서명하고 다시 엄정성명하고 남이 대신 서명하게 한다. 또 경찰과 지역 주민센터 직원이 오면 진상을 알리고 자발적으로 주민센터에 가며 파출소에 가서 진상을 알린다. 또 발정념을 해 박해를 해체하는 등이다. 나는 최근 한 가지 인식을 깨달았다. 구세력을 인정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제로화’ 운동을 경찰이나 지역사회 직원에게 진상을 알리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으며 그것을 부정하고 발정념을 했다. 또 하나의 인식은 위타(爲他: 타인을 위함)의 각도에 서서 해야 한다. 찾아오는 사람에게 진상을 알리거나 발정념을 해서 사람들이 오지 못하게 하거나 박해를 해체하는 등이다. 어떻게 해도 모두 맞다.

자신의 수련을 어떻게 해야 위타의 각도인지 생각했다. 20여 년을 수련했는데 최근 자신이 수련할 줄 모른다는 것을 발견했다. 습관적으로 법으로 남을 가늠한다. 그러므로 모순에 부딪히면 남이 옳지 않은 것이 보인다. 아니면 극단적으로 가고 자신에 대해 너무 엄격하다. 자신에게 어떤 속인 생각이 있는 것도 허용하지 않고 칠정육욕을 모두 제거해야 하며 시시각각 자신의 일사일념에 주의한다. 이는 자신을 아주 긴장하고 심지어 두렵게 만들었다. 사실 쟁투심, 질투심, 과시심을 아직 제거하지 못했다.

이것은 모두 법의 내포를 깨닫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완전히 신사신법(信師信法)의 표현이 없다. 이 두 가지 상반되는 생각과 관념은 동시에 내 몸에 존재하는 것 같다. 보기에 모순 같지만 사실 아니다. 우선 마땅히 법으로 자신을 가늠해야 하고 모순에 부딪히면 자신의 마음을 찾아야 한다. 사악도 교과서에서 학생에게 이타적으로 희생하게 하고 선타후아(先他後我)하라고 요구한다. 그러면 왜 일반인은 해내지 못하는가? 왜냐하면 사당(邪黨)은 남이 자신에게 이타적일 것을 요구하고 그것을 제1위에 놓기 때문이다. 그 자신에게 모두 절대 이타적으로 대하라고 한다. 그러나 사당의 인민에 대한 생각은 죽이고 싶으면 죽이고, 박해하고 싶으면 박해한다. 그러므로 사람은 사당 사회에서 교활하게 변하고 자신을 보호하며 어떻게 하면 이익을 최대한 얻을 수 있을지만 생각한다. 겉으로 자신을 가장 위대하고 이타적인 사람으로 포장하고 도덕적으로 최고 위치를 차지하려 한다. 하지만 수시로 몽둥이를 휘둘러 남을 타격한다. 그러므로 사당은 극단적이고 이기적이며 잔혹한 태도로 남이 자신에게 이타적으로 희생할 것을 교육한다. 그것은 천리를 위배하고 진리의 힘이 없다. 사람을 나쁘게 변하게 하므로 기타의 것은 모두 소용이 없다. 물론 하늘은 중공을 멸하려 한다. 그러므로 나는 과거에 대법이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감성적인 인식으로, 남이 자신에게 진선인(真·善·忍)하게 할 것을 바라고, 남이 자신에게 좋게 대하기를 바라며, 늘 남을 개변하려 한다. 물론 이러면 수련해 올라가지 못한다.

하지만 법은 관용하고 자비롭다. 내가 작은 잘못을 범하거나 사람 마음이 있으면 지옥에 내려보내고 수련 성취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런 자신에게 시시각각 일사일념을 엄격히 지켜야 하며, 해내지 못하면 끝장이라고 생각하며 어떻게 될 것이라는 관념도 편파적이다. 오래전 심지어 수련하기 싫어서 돌아가 속인이 되려는 생각도 있었다. 물론 지금은 없다. 법은 중생에게 자비롭고 수련 중의 대법제자를 포함한다. 자신에 대해 엄격하고 문제에 부딪히면 자신을 찾는 것으로, 좋은 것을 먹지 말아야 하고 나가서 놀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

오래전 중국에서 박해가 발생하기 전에 나는 20여 세였다. 여름에 몹시 덥고 에어컨도 없었다. 때로는 정오에 수영을 하러 갔다. 일부 아주머니 수련생은 나를 질책했다. 수련인은 더운 것을 두려워하면 안 되고 수영하러 가면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을 매일 중국 관영방송국의 뉴스 프로그램 ‘신원롄보(新聞聯播)’를 보았다. 나는 그들이 집착심이 있다고 생각했다. 수련인이 왜 ‘신원롄보’를 보는가? 나는 한 번도 보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어려서부터 사당의 정치와 선전을 싫어했는데 반인성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늙으면 움직이지 않으려 하고 수영을 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기에 젊은이에게 수영하는 것을 집착심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TV를 보는 것은 집착심이 아닌가? 밍후이왕에서 한 수련생이 자신이 먹는 것에 집착하지 않아 아이에게도 좋은 것을 먹이지 않고 다른 수련생이 그녀 아이에게 좋은 것을 사주는 것도 싫어했다는 것을 보았다. 아이는 커서 수련이 아주 고생스럽다고 생각하고 수련을 포기했다. 그 수련생이 먹는 데 집착심이 없었기에 아이에게도 그렇게 강요했다. 아마 기타 방면에서 자신의 관념을 아이에게 강요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이를 밀어낸 것이다.

내 신변에 한 친척 수련생이 있는데 자신의 남편에게 무좀약을 바르지 못하게 해 남편은 수련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강제로 무좀약을 바르지 못하게 했다. 결국 남편은 철저히 대법에서 벗어났다. 내 생각에 이것은 모두 법을 잘 이해하지 못한 것이고 진정으로 무사무아(無私無我)를 해내지 못한 것이며 남을 생각하지 못한 것이고 남을 배려하지 못한 것이다.

자신이 수영에 집착하지 않고 더위에 집착하지 않으며 자신이 간단히 먹고 시간을 절약한다고 아이에게 좋은 것을 먹이지 않거나, 자신이 가려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남편도 참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이것은 자신을 수련하는 것인가, 아니면 남을 수련시키는 것인가? 그런 명(名)을 구하는 마음, 재물을 구하는 마음, 원망, 환희심과 두려움은 모두 닦아버린 것인가? 개인적으로 너무 형식을 중시한 것이다.

내가 깨달은 것인데 사실 강렬한 사람 마음은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사례를 드신 과시심, 질투심, 쟁투심, 환희심, 두려움, 색욕심이다. 사실 과시심, 질투심, 환희심은 모두 전적으로 한 소제목이 있다. 쟁투심, 색욕심은 ‘연공초마’ 소제목 내에서 모두 말씀하셨다. 이런 것을 겨냥해 자신을 파헤치지 않고 심지어 피하면 잘 수련하기 어렵다. 안일심을 말하면, 내 생각에 진정으로 위에서 언급하신 그런 집착을 닦는 것을 중시하면 그런 사람 마음과 마성, 안일심은 자연히 적어지고 더욱 정진할 수 있다. 왜냐하면 당신이 사람의 것에 집착하지 않으면 법에서 정진하고 진정으로 이타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제로화’ 운동에 직면해 그것을 인정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진정으로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인가? 단지 발정념만 하는 것인가? 자신의 두려움을 닦아버리고 진정으로 중생을 위해 생각하고 진정으로 선해야 두려움과 교란을 타파할 수 있다. 어떻게 수련하는가? 어떻게 대면하는가? 내 생각에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어떻게 해야 진정한 무사무아이고 진정으로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한 것인가?

사실 나는 본래 이 글을 쓰려하지 않았다. 자신이 완전히 똑똑히 표현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제로화’는 미국에 있는 나와 관계가 없고 말을 잘하지 못하면 미움을 사게 되며 시간을 들여 글을 써야 하고 노심초사해야 한다. 또 글을 써도 밍후이왕에서 발표하지 않을 수도 있고 헛수고일 수도 있다. 그 시간에 션윈이 공개한 무용기교 공연을 보거나 션윈 오케스트라를 들으면 얼마나 좋은가? 혹은 법을 외워도 좋고 연공을 많이 해도 좋다.

하지만 최근 나는 많이 깨달았고 정말로 거대한 난에서 걸어 나왔다. 자신이 느낀 것을 쓰지 않고 고생과 힘든 것을 두려워하며 대가를 치르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혹시 어떤 말이 다른 수련생에게 감동을 주거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개인적인 관점이다.

[편집자 주: 본문은 글쓴이 개인의 현재 인식을 대표하므로 수련생들이 서로 교류하여 ‘비학비수(比學比修)’하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1년 6월 1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1/6/17/42702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