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리리(李莉)
[명혜망](전편에 이어) 이런 수련의 침체기는 1995년 4월까지 지속됐습니다. 창춘 수련생이 ‘전법륜(轉法輪)’ 한 권을 보내왔습니다. 저는 더는 이렇게 지속하면 안 되고 빨리 침체기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직장에서 ‘전법륜’을 읽기 시작했는데 꼼꼼히 보았습니다. 1독 후 많은 질문을 적었습니다. 다시 2독을 하니 1독 때의 질문이 너무 유치하게 느껴졌습니다. ‘전법륜’ 2독 때 저는 체험담 한 권을 썼고, 이후 법공부 때도 이렇게 하는 걸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사부님께서 일깨워주셨습니다. 이런 학습 방법은 속인의 것이라고요. 인식한 후 더는 적지 않았습니다.
얼마 후 사부님의 ‘법을 배우다(學法)’라는 경문이 발표됐는데, 지식인의 법공부에 존재하는 문제를 언급하셨습니다.
‘전법륜’을 배우며 많은 것을 깨달았고 제 상태가 다 법공부 부족 탓임을 알았습니다. 몇 달간의 문제를 정리해보니 많은 집착심이 존재함을 발견했습니다. 큰 집착을 얼른 없애기로 결심하고 금방 상태를 회복했습니다. 노수련생의 도움으로 우리집 맞은편에 사는 노수련생을 찾았고, 그때부터 우리는 자주 함께 법공부하고 연공하고 교류하다가 나중에는 대법 업무를 했습니다.
루와 그 여자는 여전히 왕래했습니다. 루는 자주 이혼 얘기를 꺼냈는데, 제 수련 상태가 정상으로 돌아온 것을 보고는 이혼 얘기를 더 자주 했습니다. 이 문제는 몹시 까다로웠습니다. ‘이미 대법 노수련생인데 이렇게 오래 수련하고도 이혼하면 남들이 어떻게 볼까? 사람들이 파룬궁 수련해서 이혼했냐고 묻지 않을까? 수련생들도 파룬궁수련생은 수련할수록 좋아져야 하고 가정은 갈수록 화목해야 하는데 왜 이혼했냐고 생각지 않을까?’ 법을 파괴한다는 생각이 들면 견딜 수 없어 이 점 때문에 눈물을 적잖이 흘렸고, 그래서 그가 이혼하자고 해도 저는 끝까지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당신 마음대로 해봐,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난 버틸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수련인이니 반드시 잘해서 그가 제가 나쁘다고 말할 수 없게 해야 했습니다. 집안일을 도맡았습니다. 그의 친구들이 떼 지어 집에 오면 저는 식당 요리사처럼 십여 가지 요리를 만들었습니다. 그가 화내면 저는 대꾸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욕하면 저는 아주 평온하게, 원망도 미움도 없이 조급해하거나 들뜨지도 않았습니다. 한번은 그가 욕하는데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가 제가 웃는 걸 보고 더 화가 치밀어 “낯짝도 두껍지, 죽은 돼지가 뜨거운 물 무서워하겠어”라며 더 심하게 욕했습니다. ‘앞으로는 웃지 말아야지, 안 그러면 일부러 약 올린다고 오해하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그게 아니라 정말 조금도 화가 나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그가 돌아와 그 여자가 편지를 보냈는데 며칠 내로 우리집에 올 거라며 처신을 잘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오고 싶으면 오라고 해요”라고 했습니다.
며칠 뒤 우리는 지하철로 그 여자를 마중 나갔습니다. 그 여자는 아이 둘을 데려왔는데 하나는 자기 딸, 하나는 언니 딸이라며 베이징에 놀러 왔다고 했습니다. 루를 보러 온 기회라는 걸 알았습니다. 지하철에서 올라와 그들 둘은 앞서가며 다정하게 대화했고 저는 뒤따라갔습니다. 이 장면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들이 부부고 저는 가정부라고, 관계가 완전히 뒤바뀌었다고 했을 겁니다. 집에 와서 저는 그들을 따뜻하게 대접하고 맛있는 밥상을 차려줬습니다. 그녀가 감기에 걸려 제가 물과 약을 가져다주었는데, 마치 오랜 친구를 대하듯, 그들의 일이 저와 무관한 듯했습니다. 이런 고난 앞에서 제 머릿속에 떠오른 건 모두 법이었습니다. ‘나는 파룬따파 수련생이다. 내게는 넘어가지 못할 일이 없다. 사람들은 이런 일을 아주 중요하게 보지만 내 눈에는 이때 아주 작게 보인다.’ 그들을 보니 오히려 그들이 가엾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의 초월적인 행동과 선량한 마음가짐에 그 여자는 놀랐습니다. 그녀가 몰래 루에게 물었습니다. “리리는 우리 둘 사이를 알아?” 루는 “다 알고 있어”라고 하자, “그래? 그런데 어쩜 내색을 안 하지?”라며 그녀는 감동했고 양심의 가책을 느꼈습니다. 그녀는 더는 머물 수 없어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그녀를 배웅하고 혼자 방에 돌아와 소파에 앉았는데, 문득 제 몸이 커지는 걸 느꼈습니다. 비할 바 없이 거대해지고 전례 없던 신성함을 느꼈습니다. 당시 상태는 말로 형용할 수 없었습니다. 이 문제에서 법의 요구대로 해냈고, 결국 자신을 통제하던 또 하나의 큰 정마(情魔)를 완전히 이겨낸 것입니다.
이 고난 속에 얼마나 많은 수련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는지 모릅니다. 참을 수 있는지, 질투하지 않을 수 있는지, 정을 내려놓을 수 있는지, 선한 마음으로 남을 대할 수 있는지 등등, 방면마다 심성과 법리상의 제고가 있었습니다. 루는 제 이번 행동에 아주 만족했고 제가 꾸며낸 게 아님을 알았습니다. 그는 “당신의 진선인(眞·善·忍)은 아주 잘 수련됐어”라고 칭찬했습니다. 사부님께서 다른 사람의 입을 빌려 저를 격려하시고, 제가 이번 관을 잘 넘긴 것을 긍정해주시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 여자는 돌아간 후 얼마 뒤 편지를 보내 루에게 말했습니다. “리리와 이혼하지 마. 그녀는 좋은 사람이야. 이혼하면 후회할 거야.” 그리고 앞으로 다시는 우리 삶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루는 여전히 이혼을 요구했습니다. 너무 많이 들어서 귓등으로 흘렸고 이혼하든 말든 제 일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평소와 달리 아주 특별한 새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그는 아주 차분하게 자기 생각을 말했습니다. “내 생각이 있는데, 당신과 이혼한 후에도 당신과 너무 멀어지기 싫어. 이혼 후 난 분명 재혼해야 하는데, 누구랑 해도 안 맞을 거야. 누가 나랑 당신이 왕래하는 걸 원하겠어? 당신을 받아줄 사람을 찾아야 해. 누군지 맞혀봐.” 제가 “몰라요. 정말 이혼한다면 나도 당신이 굳이 나랑 왕래하길 바라지 않아요”라고 하자 그가 말했습니다. “그건 안 돼, 이게 내 첫째 조건이야. 안 받아주면 그만두고. 내가 찾을 사람은…… 당신 올케(죽은 남동생의 아내)야.” 저는 그의 생각이 너무 황당하고 상식에 어긋난다 싶어 말했습니다. “안 돼요, 안 돼요. 그렇게 하면 안 돼요.” 루는 한번 결정하면 그대로 하는 사람입니다. 제 생각은 상관없었습니다. 제가 동의하지 않아도 그는 그렇게 결정했습니다.
1995년 설 기간, 그는 제 올케에게 조카딸을 데리고 우리집에 와서 설을 쇠라고 했습니다. 설이 지나자 그는 계획대로 차근차근 진행했습니다. 이때 저는 이미 이혼하든 안 하든 똑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단련됐습니다. 이때야 발견했습니다. 이 일에 집착하는 마음이 없으니 이혼이라는 형식도 제게 별 의미가 없고, 어찌 되든 좋고, 어찌 되든 여전히 나이며, 다 좋고 불공평할 게 없다고요.
루는 학교에서 일하는 동안 너무 지루하다고 느꼈습니다. 수업이 적어 에너지는 넘치는데 쓸 곳이 없으니 말입니다. 그는 또 전근을 준비해 정법(政法)대학으로 옮기려 했습니다. 다 연락해놓고 저도 같이 옮기게 했습니다. 최고검찰원에서 처음엔 반대하다가 그가 반복해서 설득해 겨우 동의했습니다. 정법대학은 우리 둘 다 받아들이기로 했고 정법대학 발령장만 기다렸습니다. 이쪽에서도 최고검찰원의 전근 비준 공문이 정식으로 내려오길 기다렸고, 학교 전체가 우리가 떠나는 줄 알았습니다. 전근과 이혼은 별개라 이혼은 그대로 진행됐습니다. 그때 루는 늘 이런 말을 반복했습니다. “이혼하면 학교 전체 여론을 당신한테 집중시켜 다 당신을 비난하게 할 거야.”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습니다. 많이 들으니 그가 뭐라 하든 신경 안 썼는데, 사실 사부님이 제게 일깨워주신 겁니다. 또 고비를 넘어야 한다고요.
과연 1996년 4월 초, 루의 우한대학 여자 박사 동창이자 혼인법 변호사가 갑자기 일을 보러 베이징에 왔다고 했습니다. 남편은 그녀를 만나 우리 결혼 문제를 얘기하고 이혼 수속을 부탁했습니다. 동창은 흔쾌히 승낙하고 이튿날 우리집에 왔습니다. 그녀가 이혼 소장을 써주기로 했습니다. 루는 이미 이혼 사유를 제가 파룬궁을 수련해서라고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아침에 그녀가 집에 왔을 때 남편은 일을 보러 나갔습니다. 저는 기왕 ‘그가 다 배치했으니 이혼하자, 내가 왜 굳이 그를 붙잡고 있나’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심각한 문제를 인식했습니다. ‘이혼 서류에 파룬궁 수련 때문에 이혼한다고 써선 절대 안 된다, 그건 사실이 아니다, 그가 멋대로 날 끌고 가게 할 순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루가 없는 좋은 기회를 이용해 그녀와 하루 종일 대화했습니다. 우리 혼인 파탄 원인은 오래됐고 주로 쌍방의 장기적인 개인 취미, 기호, 성격, 성향 불일치 때문이지 파룬궁과는 관계없다고요. 관계가 있다면 제가 파룬궁을 수련해서 가정이 이만큼이라도 유지된 것이라고, 수련 후 저는 이혼을 요구한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제가 이혼을 요구한 건 1991년 대법을 얻기 전이었고 당시 이미 한번 이혼하려다 못 한 것이라고요. 그녀는 제 설명을 듣고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제 의견을 따라 제 요구대로 다시 썼습니다. 아들 루루는 제가 맡기로 했고 아이도 동의했습니다.
루가 돌아왔을 때 이미 다 쓴 상태라 그도 별말 없었습니다. 그녀는 다시 우한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일을 마치고 그녀도 이상해했습니다. ‘내가 이번에 베이징에 뭐 하러 왔지? 겨우 너희들 일 하나 처리하고 돌아가네?’
루와 저는 며칠 내로 협의 이혼 수속을 하러 가기로 했습니다. 이때 올케도 왔습니다. 루가 제게 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기회를 줄게. 파룬궁이야, 아니면 이 가정이야?” 제가 말했습니다. “둘 다 원해요.” 그가 말했습니다. “둘 다 원하면 가서 생선 잡아 요리하고 나랑 춤추러 가.” 제가 대답했습니다. “그런 건 못 하는 거 알잖아요. 그 외에 내가 어디 잘못한 게 있으면 말해요, 고칠게요.” 그는 아무 말 못 하다가 잠시 후 다시 말했습니다. “안 돼, 하나만 선택해!” 제가 말했습니다. “굳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난 파룬궁을 택할게요.” 이렇게 우리는 모든 걸 원래 계획대로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이혼하던 날 길을 가는데 가슴이 좀 뛰었습니다. 저는 ‘평생 법원 문턱도 안 밟아봤는데 인생이 참 무상하구나,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르는구나’ 싶었습니다.
올케도 같이 갔습니다. 법원에서 간단히 몇 가지 묻고 금방 끝났습니다. 우리 결혼생활은 이렇게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정문을 나서는데 그는 아직 우리가 이혼한 걸 인식 못 했는지 저더러 같이 집에 가자고 했습니다. 그때 ‘집? 집이 어딨어? 당신이 왜 아직 나한테 명령해?’ 마음이 좀 울컥해지려다가 즉시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이혼했으니 내 마음대로야.’ 저는 택시를 잡아타고 뒤도 안 돌아보고 바로 학교로 갔습니다.(계속)
원문발표: 2021년 5월 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big5.minghui.org/mh/articles/2021/5/3/42162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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