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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에 대한 인식을 가볍게 말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집착은 등에 지고 있는 과녁과 같고 모순은 외부에서 오는 공격과 같다. 모순은 화살이나 주먹일 수 있는데 직접 이 과녁을 공격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충격이 있게 되고 불편하거나 아프게 할 수 있다. 이때 흔히 속인의 방법은, 직접 반격하여 자신에게 불편함을 주는 사람 또는 물질을 타격하는 것이다. 조건이 허용되지 않으면 참고 말하지 않거나 조용히 자신의 상처를 핥을 것이다. 그러나 수련이라면, 타격받은 실체가 그 과녁이라는 것을 의식해, 과녁이 선호하는 바에 따라 자기 행위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등에서 과녁을 떼어내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다음은 내가 어떻게 가능한 한 방관자의 관점으로 자신의 이런 집착이 건드려진 장면을 살펴보았는지 말하겠다.

쟁투심은 종종 무의식적으로 다른 사람을 반격하는 데에서 나타났다. 처음에는 도로에서 벌어지는 운전자의 난폭 행동과 유사한 장면이다. 급하게 운전하고 출근할 때 갑자기 내 앞에 급작스레 끼어드는 차가 있는데, 거리가 너무 가까워 내 차가 하마터면 상대방 차를 부딪칠 뻔했다. 이때 급브레이크를 밟았고, 원래도 조급했던 나의 머릿속에는 이런 일념이 올라온다. 화나고 클랙슨을 울리고 심지어 그를 추월해서 한번 끼어들고 싶기까지 하다.

이 일련의 생각은 모두 이 쟁투심이라는 과녁의 피드백이다. 그것은 곧바로 반영되어 나왔고 심지어 강렬해서 자신이 행위를 통제할 권리까지 뺏는다. 이때 정념이 그것보다 빠르지 않으면 쉽게 그것에게 좌우되어 일부 충동적인 일을 할 수 있다. 이때 자신을 파악해, 이건 건드려진 그 과녁이라는 것을 의식하고, 그것이 자기가 아니라는 것을 분별해야 한다. 최후에 사상과 행위를 이성적인 기점으로 끌어와야 한다. 여러 차례 반복을 거친 후 이 쟁투심이 유사한 일 앞에서 점점 약해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위에서 언급한 강렬하고 뚜렷한 장면 이외에, 나는 점차 쟁투심이나 질투심이 내 일생의 일부 세세한 감정에 숨어있는 것을 알게 됐다. 뚜렷하게 표현된 충동과 분노, 모호한 하나의 표정과 말투에 모두 이런 집착이 숨어있었다.

예를 들면 직장에 새로운 동료가 왔는데 일을 할 때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느리면 아무 생각 없이 말한다. 예를 들면 “왜 이렇게 느려요?”, “좀 빨리 할 수 없어요?” 등 이런 질책하는 말투의 배후에는 모두 자기 기점에 서서 문제를 사고하는 쟁투심, 자기와 타인을 비교하는 질투심이 있다.

차츰 나는 ‘내가 어떻게 하겠다’, ‘당신은 왜 그렇게 일을 하는가’ 등의 기점에서 문제를 사고하지 않고,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의 기점에 서려고 노력했다. 그러자 나는 “무슨 문제가 생겼나요?”, “도움이 필요하세요?”라고 묻거나 문제를 봤을 때 불량한 말투로 지적하지 않게 되었다. 예를 들면 “보통 이 부분은 이렇게 하면 더 효율적이었어요”라고 할 때 소통 효과가 괜찮았다.

환희심은 종종 한 가지 일을 완수하거나 일부 방면에서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거나 수확이 있을 때 일종 ‘들뜬’ 느낌이다. 이런 들뜬 상태에서는 흔히 자신이 평소 그다지 하지 않는 행위를 하게 된다. 이때면 자신이 이미 환희심에 좌우되어 이미 자아를 잃기 시작한다.

과시심이 있으면 자신이 자랑스러운 일을 했을 때 다른 사람에게 알리려 하고 타인의 인정을 받으려 한다. 거품처럼 그것을 만족시킬수록 그것이 커지는 것과 같다. 이를 보통은 허영이라고 하는데, 허울 좋은 영광이다. 그러나 사실 이 일이 다른 사람에게 주는 가치나 기여도가 얼마나 될까? 작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생각한 것만큼 그렇게 크지 않을 수도 있다. 설사 작지 않더라도 이미 지나간 것이고, 사부님께서 주신 것이며, 그것은 대법이 이뤄낸 것이다.

[편집자 주: 본문은 글쓴이 개인의 현재 인식을 대표하므로 수련생들이 서로 교류하여 ‘비학비수(比學比修)’하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1년 5월 1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5/18/42524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