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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과 대법에 대해 금강부동(金剛不動)한 바른 믿음을 수련해 내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며칠 전, 밍후이 라디오에서 ‘100가지 중국가정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오이시(高一喜)가 박해를 받아 사망했는데 장기마저 적출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당시 사악한 자들의 녹음을 들었을 때 사람이 아닌 이런 짐승들은 세상에 살아있지 말아야 한다며 머릿속에 ‘사부님께서는 왜 이런 사람들이 응징받게 하지 않으실까.’ 하는 일념이 스쳐 갔다. 이 일념이 나왔을 때 나는 얼른 부정했다. 이 원망은 내가 아니다. 사부님을 믿지 않고 법을 믿지 않는 이런 머릿속 생각은 내가 아니라고 부정했다.

1. 관념을 바꾸어 사람의 이치를 뛰어넘다

이 생각을 돌이켜보니 10여 년 전에도 나타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아버지가 불법 노동교양 판결을 받고 노교소에서 모진 박해를 받았다. 마침내 보석으로 치료받고 집으로 돌아오신 아버지는 얼마 되지 않아 스스로 일상생활을 하지 못해 침대에 누워 극히 고통스러워하셨다. 숨이 간들간들하셨을 때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 왜 그를 구해주지 않으시나요? 그도 사부님의 제자인데요.’라고 생각했다. 당시 이 일념이 나왔을 때 잘못된 것을 느꼈지만 그때는 법 공부가 깊지 않아 바르지 않은 이 일념에 사부님에 대한 원망이 있다는 것을 자세히 생각해보지 않았다. 이 일념이 생겨난 근원에 대해서도 깊이 파보지 않았다.

그 일념이 다시 나왔을 때 나는 이 생각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어떤 사람의 고정관념에서 비롯됐는지 깊이 파보았다. 나는 내가 수련생인 어머니께 했던 말이 생각났다. “수련을 잘 해보세요! 내려놓지 못할 것이 뭐가 있어요! 인간 세상에 사부님께서 전하신 대법보다 더 공평하고 공정한 것은 없어요. 인간 세상의 어떠한 일도 모두 뒷거래를 할 수 있지만, 대법 수련에는 뒷거래를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이 마음을 착실하고 착실하게 수련할 수밖에 없거든요.” 여기까지 떠오르자 “공평하고 공정하다”는 머릿속 생각이 바로 후천적으로 형성된 사람의 관념이라는 것을 바로 깨달았다. 이 관념에 의해 세상 시비를 가리고 옳고 그름을 가늠한 것이지, 진정으로 사람의 관념을 개변하고 법으로 가늠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나쁜 사람이나 일을 보면 원수처럼 미워하는 심리가 있었는데 어쩌면 역사상에서 무장(武將)으로 환생했는지 모르나 항상 내 안에 괴팍한 성질이 있고 세상의 불공정한 일을 보면 눈에 거슬렸다. 하지만 이런 눈에 거슬리는 것은 사람의 관념이다.

사부님께서 법에서 말씀하셨다. “죄는 세인(世人)들에게 있다. 부처가 사람에게 죄를 묻지 않는 까닭은, 사람이 모두 어리석은 견해 중에서, 이미 자신을 해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대단히 큰 업을 지어 오래지 않아 큰 겁난이 그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징벌할 필요가 있겠는가? 실제로 사람이 나쁜 짓을 하면 모두 나중 어느 한때에 보응(報應)을 받는다. 다만 사람이 깨닫지 못하고 믿지 않으며 일이 발생하면 우연한 것으로 여길 따름이다.”[1]

나는 자신에게, “나는 누구를 위해 수련하는가?”라고 물었다. 후천적으로 형성된 사람의 관념을 위해 수련하는가? 아니다. 나는 진아(眞我)를 위해 수련한다. 그렇다면 나는 또 왜 이 세상에 존재하는가? 나는 대법을 실증하고 사부님의 정법(正法)을 도와 중생을 구하기 위해 이 세상에 존재한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나는 사람의 일체가 이미 내게서 아득히 멀어진 것을 느꼈다. 내가 세 가지 일을 잘 하는 것은 사부님의 정법을 도와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서다. 이것 외에 인간 세상의 일체는 나에 대해 말하자면 이미 아무런 의미도 없다. 수련인이 관념을 제거하지 않아 오히려 진정으로 신사신법(信師信法)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은 어떻게 말해도 그는 전혀 믿지 않으며 아직도 속인 중의 것이 실익이라고 한다. 그가 고정된 관념을 품고 놓지 않기 때문에 그로 하여금 믿을 수 없게 했다.”[2] 이 고정된 사람의 “공정하고 공평하다”는 관념이 사부님에 대한, 대법에 대한 나의 올바른 믿음을 저애했는데, 이것이 바로 사람의 관념이 내가 법에 동화하는 것을 방해한 것이다.

사실 지난 여름, 사부님께서는 수련생의 입을 빌려 내게 점화(點化)해주셨다. 사정은 이러했다. 우리 집은 다들 수련하는데, 올케도 수련한다. 나는 올케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열심히 수련해도 사람의 관념을 버리지 않아서 이 방면의 수련이 너무 고생스러웠다. 그래서 나중에 우리는 왕래가 매우 뜸했고 올케와 접촉하는 수련생마저 되도록 적게 접촉했다. 내가 접촉해서 올케에게 좋을까 봐 그랬는데, 나는 어디가 올케의 ‘지뢰밭’인지 몰라서, 그 ‘지뢰밭’을 밟을까 봐 걱정돼 돌아서 갔다. 하지만 여전히 올케가 마음에 들지 않아 선(善)을 수련해 내지 못했다.

올케와 나는 자란 환경이 다르고, 나아가서는 형성된 것도 다르다. 우리 집은 대대로 이 지역에 살았고, 속인 식으로 말하면 터줏대감이다. 우리 집안은 전통적인 사람 됨됨이의 이치를 중시해서 어릴 때 할아버지가 가정교육을 엄격하게 하셨다. 나에게도 사람의 이치가 중하게 형성되어서, 나는 언제나 이 사람 이치로 옮고 그름을 가늠하고 시비를 가렸다. 그러나 내게서 형성된 이러한 전통적인 사람 됨됨이의 이치는 올케에게는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사상적으로 너무 맞지 않아서, 나는 늘 일을 마땅히 이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올케가 왜 이렇게 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가 한 것이 맞고 이치에 맞다고 느끼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자신의 관념으로 올케를 가늠했기 때문에 많은 원한심이 생겼고 마음에 들지 않았다. 때로는 올케와 가까운 수련생도 올케 같은 생각인지 궁금했다. 지난 여름 올케가 다른 일이 생겨서 내가 그 수련생과 협력해 진상자료를 나눠주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그 수련생에게 의문점을 털어놨다.

수련생은 “올케와 당신의 생활환경이 다르고 성장환경이 다르기에 그녀의 생활환경이 현재의 이러한 성격을 만든 거예요. 저는 그녀가 한 일이 옳다고 생각해서 그녀와 협력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저의 문제를 볼 수 있어서예요. 저는 진정으로 수련하려고 해요. 그래서 자연히 그녀의 부족함을 포용할 수 있어요. 여사님도 자신만을 수련해보세요. 1 더하기 1이 여사님 쪽에서는 2이지만 올케 쪽에서는 2가 아니고 다른 것인 그런 것이죠.” 그 수련생의 이 한마디로 나는 단번에 깨어났다.

사부님께서 법에서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어떤 수련생이 나에게 ‘1 더하기 1은 2’는 하늘에서 진리인가 아닌가, 하고 물었다. 하늘에서는 사람의 사유논리가 아니다.”[3] 그렇다. 나는 몇 년 동안 사람의 이치로 문제를 가늠하고 보고 있었지 법으로 자신을 바로잡지 않았다. 어떻게 수련해야 하는가? 사람의 이치가 사람 여기에서 아무리 옳다고 해도 사람의 이치이므로 단지 사람 속에 머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대법 수련자로서, 마땅히 쩐‧싼‧런(真‧善‧忍)으로 자신을 가늠해서 자신을 수련해야 하므로 자신의 일사일념(一思一念)과 일언일행(一言一行)이 쩐‧싼‧런(真‧善‧忍)에 동화하고 있는지, 아니면 사람의 이치로 다른 사람을 보고 있는지를 봐야 한다. 이는 내가 오랫동안 모순 속에서 뚜렷하게 제고하지 못한 관건적인 원인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자신의 용량이 확대되고 다른 사람의 언행에 끌려가지 않는 것을 느꼈다. 대법의 표준으로 나 자신을 가늠하겠다고 하고 이렇게 문제를 보자, 그 장기간 형성된 매우 무거운 물질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단번에 홀가분해진 느낌이었고 올케도 눈에 거슬리지 않았는데 사람의 그 관념이 내가 법에서 수련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당신들이 사람의 상태를 개변하고 이성(理性)적으로 대법(大法)에 대한 진정한 인식으로 승화하려 하지 않으면, 당신들은 곧 기회를 잃을 것이다. 당신들이 속인의 그 천백 년 이래 뼛속에 형성된 사람의 이치를 개변하지 않는다면, 당신들은 사람의 표면적인 이 한 층의 껍데기를 벗어버릴 수 없으며 원만할 수 없다. 당신들이 진정으로 법에서 제고하지 않고 사람의 인식, 사람의 관념에서 벗어나지 않는데, 내가 늘 당신들에게 업을 없애 줄 수는 없다. 당신들이 나와 대법(大法)을 대하는 사고, 인식, 감격 방식에서도 모두 속인의 사유로 표현되고 있다. 그러나 내가 당신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바로 속인에서 뛰쳐나오는 것이다! 이성(理性)적으로 대법(大法)을 진정하게 인식해야 한다.”[4]

만약 내가 속인의 그 고정관념을 바꾸어 문제를 보지 않는다면, 사람의 이치가 아무리 좋다 해도 그것은 모두 사람 속에 있는 것이기에 모두 사람인 것이다!

2. 관념을 바꾸어 사람의 정에서 뛰쳐나오다

아버지가 이미 십여 년 전에 박해를 받아 세상을 떠나셨고 남동생도 가정을 이뤄서 나는 줄곧 어머니(수련생)와 함께 생활했다. 이전에는 타지에서 직장을 다녀서 어머니에 대한 정(情)이 매우 담담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난 몇 년 동안 함께 생활하며 어느새 이 정을 키워 왔다.

얼마 전 어머니의 신체에 부정확한 상태가 나타나자 나는 어머니를 도와 발정념을 했다. 비록 어머니에게 발정념을 해주었지만, 내 마음이 심하게 끌려간 것을 느꼈다. 마음을 조용히 하고 자신을 살펴보니 어머니에 대한 그 걱정은 어머니에 대한 정(情) 때문이었다. 나는 어머니가 수련의 길에서 문제가 나타날까 봐 두려워했고, 심지어 어머니가 육신을 잃을까 봐 두려워했으며, 이 세상에 나 혼자 남아서 매우 고독할까 봐 두려워했다. 자신을 돌이켜보면 사람의 이런 마음들은 모두 이 정 때문에 작용한 것이 아닌가? 이 정을 어떻게 수련해서 제거해야 하는가?

자신의 수련을 생각해보면 오늘까지 걸어오면서 한 걸음 한 걸음마다 모두 사부님께서 가지해주셨고 걸어지나 오도록 보호해주셨다. 사부님의 보호가 없었다면, 나는 수련의 길에서 한 걸음도 내딛기 어려웠을 것이다. 어머니도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사부님의 대법제자이고 오늘까지 걸어올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로 사부님의 보호로 걸어지나 온 것인데, 나의 걱정, 두려움, 그것은 모두 사람의 마음이 걱정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사부님을 믿었는가? 내가 사람의 생각으로 신의 안배를 생각하는 것은 그야말로 너무나 협애하다.

관념을 바꾼 후 나는 ‘일체를 사부님께서 모두 관리하고 계시고 사부님께서 배치한 것은 가장 좋은 것이므로 나는 사부님과 대법만 믿겠다.’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생각하니 정에 이끌린 내 마음이 단번에 개운해졌다. 그 속에서 나는 오직 사람의 관념을 개변해야만 형성된 그 가짜 나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비로소 사람 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3. 관념을 바꾸어 수련을 처음과 같이 하는 상태를 되찾다

몇 년 전 일찍이 이러한 꿈을 꾼 적이 있다. 나는 마치 하늘을 찌르는 듯 우뚝 솟은 공중사다리를 타고 있었는데 옆에 아무런 난간도 없지만, 열심히 위로 오르고 있었다. 꿈속에서 나는 이미 기진맥진하여 다리는 천근만근 같았고 멈춰서 좀 쉬고 싶은 마음이 많았는데 마음속에는 ‘언제야 끝에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라는 이런 생각이 있었다. 이런 생각이 들자 뒤를 한번 돌아보았는데, 보자마자 놀라서 온몸에 식은땀이 났다. 내가 걸어온 길은 이미 망망한 휜 구름안개에 가려졌고 내가 유일하게 볼 수 있는 곳은 방금 올라지나 온 짧은 구간의 사다리였다. 정말로 사부님께서 쓴 시처럼 그러했다. “하늘은 창창(蒼蒼)하고 땅은 망망(茫茫)한데 올 때의 길 보이지 않누나”[5]

내 머릿속에서는 ‘수련에는 퇴로가 없다’는 일념이 스쳐 갔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재빨리 고개를 돌렸는데 내 곁에 누군가가 홀가분하게 위로 오르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때 나는 ‘저 사람은 나보다 어린데도 이렇게 가볍게 위로 올라가는데 내가 쉬어서는 안 되겠구나. 나도 서둘러 위로 올라가자.’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생각하자 단번에 온몸이 힘으로 충만한 것을 느꼈으며 그 곤란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완전히 사라지고 홀가분하게 위로 올라갔으며 얼마 되지 않아 바로 정상에 이르렀다. 그 순간, 내가 곤란을 두려워했던 것은 종점을 볼 수 없기 때문이었고, 사실은 앞길이 멀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2년 전쯤 어떤 정황이 나타났는데 꿈속의 상태와 너무 비슷했다. 나는 의지가 박약해 조금 소침하고 수련이 정체됐는데, 좀 마비된 것 같았다. 비록 세 가지 일을 모두 하고 있었지만, 수련을 처음과 같이 하는 상태는 되찾지 못했다. 머릿속에서는 언제나 일종 사상이 있었는데 인간 세상의 일체가 모두 재미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 신의 일면에 닿을 수 있는 그런 상태에 이를 수 없음을 느꼈다. 때로는 자신이 매우 고독하다고 느끼기까지 했지만 이를 돌파할 방법을 몰라 매우 고민스러웠다.

한번은 법 공부할 때 사부님의 이 말씀을 보았다. “언젠가 한번 나는 나의 사상을 층차가 극히 높은 네댓 명 대각자(大覺者), 대도(大道)와 한데로 연결했다. 그 높음을 말하자면 속인이 볼 때는 그야말로 높아서 놀랄 정도다.”[2] 이 한 단락의 법을 배우고 난 후 나는 “사부님께서 왜 이 한 단락의 법을 제자들에게 말씀해 주셨지? 사부님께서는 제자에게 어떠한 법리를 깨달으라고 하신 것일까? 사부님께서 이 한 단락의 법을 말씀하시기 전에 앞에서 어떠한 법리를 말씀하셨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불가에서는 공(空)을 말하고 도가에서는 무(無)를 말한다.”[2] 나는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수련인이 고층차에 이른 수련상태는 무위인 것이며 비어있고 고요한 것이고 사람마음이 없으며 더욱이 사람의 생각을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해 주셨다고 깨달았다. 사람 속에서 사람 속의 그런 북적거림과 소위 아름다운 것을 더욱이 느끼지 않는다. 사람은 적막을 두려워하는데 사람은 정(情) 속에 있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신들은 아는가? 단순히 이 하나의 수련 문제만 하더라도 우주의 낮은 층에서는 대단히 복잡하지만 고층차에 이르면 간단한 것으로 수련이라는 개념이 없으며 오로지 업력을 없애는 개념만 있을 뿐이다. 더욱 높은 층에서 말한다면 모든 번거로움은 단지 하늘로 올라가는 길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며, 더욱 높은 층에서는 무슨 소업이요, 무슨 고생이요, 무슨 수련이요 하는 이러한 개념이 없으며 바로 선택이다! 우주의 고층차는 바로 이런 하나의 이치이며, 보아서 누가 되면 바로 그를 선택하는 것으로 이것이 바로 이치이다.”[6]

그렇다. 나로서는 사부님의 선택을 받은 생명이고 사부님께서 나를 대법제자가 될 수 있도록 선택하셨기 때문에 나는 반드시 된다. 나는 사부님께서 선택하신 제자인데, 삼계에 와서 사부님의 정법을 도와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서 온 것이며 이것이 내가 세상에 온 목적이다. 아울러 나의 법 공부, 연공, 발정념은 모두 이 목적을 위한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구(舊)우주 중의 생명은 위사(爲私)한 것이라는 법리를 말씀해 주셨다. 그러나 나 이 구(舊)우주의 생명이 신(新)우주로 동화되어 가려고 한다면, 나는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경지로 수련해야 하고, 오직 무사무아로 수련 성취해야만 비로소 신우주로 동화해 갈 수 있으며 구우주의 이치가 나를 제약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때 나는 이미 신우주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나는 후천 관념으로 형성된 그 가아(假我)를 닦아버려야 하며 진아(眞我)가 나 자신을 주재하게 해야 한다.

관념을 바꾼 후, 나에게는 일종의 상태가 나타났다. 머릿속이 늘 텅 비어있었고 머릿속에 어떠한 생각이 움직이는 것도 매우 적었으며 법 공부를 하면 쉽게 조용해지는 상태가 나타났다. 관념이 바뀐 후, 나는 수련을 처음과 같이 하는 상태를 되찾아 수련이 행복하고 즐겁다고 느꼈으며 그러한 고독한 감각도 없어졌고 더욱이 사람 속의 일체 재미없다는 생각도 사라졌다. 수련은 그야말로 너무나 아름다웠고 마음속은 즐거움으로 가득했다.

안으로 찾아 자신을 보면 내가 무엇 때문에 그런 소극적인 상태가 나타날 수 있었을까? 이렇게 여러 해 수련의 길을 걸어왔고, 사람 속의 일체를 이미 매우 담담히 보았어도, 사람의 관념을 개변하지 않고 여전히 사람 중에서 형성된 사유방식으로 문제를 보고 문제를 생각하니, 수련된 그 일면의 진실과 아름다움을 절실히 실감하지 못해, 그런 소극적이고 정체된 수련상태가 나타났고 자신의 수련이 매우 고생스럽다고 느끼기까지 한 것이다.

나는 현 층차에서 깨달았다. 대법제자로서 사람 속에서 수련해 나오려면 반드시 사람의 관념을 바꿔야 하고, 후천적으로 형성된 관념을 닦아버려 불성(佛性)을 닦아내, 진아(眞我)가 자신을 주재하게 해야 한다. 오직 사람의 관념을 닦아버리고, 사람 중에서 형성된 고정관념으로 문제를 보고 문제를 사고하지 말아야, 비로소 사부님과 대법에 대해 금강부동(金剛不動)한 바른 믿음과 정념(正念)을 수련해 낼 수 있고, 비로소 자기를 법 속에 녹아들게 할 수 있다.

현 단계에서 개인의 얕은 인식이니 부족한 점이 있으면 자비로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누구를 위해 수련하는가(爲誰而修)’
[2]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3]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3-대뉴욕지역법회 설법’
[4]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精進要旨)-경고하는 말’
[5]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홍음5(洪吟五)-하늘로 돌아가다’
[6]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

 

원문발표: 2021년 4월 2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4/29/42388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