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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뽑다’의 깨달음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내가 갓 법을 얻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수련생들이 권해서 보도원 일을 하게 되었다. 하루는 내가 수련생들을 조직해 사부님의 설법 비디오를 보았는데, 사부님께서 ‘이를 뽑다’에 관한 한 단락 법을 말씀하실 때 일부 수련생은 하하하고 웃으며 아울러 왈가왈부하기까지 했다. 이런 정황을 보고 나는 조금 화가 나서 말했다. “사부님께서 설법하시는데 이야깃거리로 듣고 있고 엄숙하지 않군요!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법리를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우리에게 수련은 바로 근본에서 집착심을 제거하면 무슨 관도 모두 넘을 수 있다고 알려주셨어요. 만약 사람의 방법으로 표면의 말만 보고 근본에서 자신의 사람마음을 해결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진정하게 개변될 수 없어요.” 내가 이렇게 말하자 수련생들은 모두 말을 멈추고 조용하게 사부님의 설법 비디오를 보았다. 바로 그날 한 수련생의 어린 딸이 대법 수련에 들어왔다.

오늘 법 공부하면서 나는 또 사부님의 ‘이를 뽑다’ 에 관한 한 단락 법을 배우면서 갑자기 이 단락 법의 또 한 층 내포를 깨닫게 되었다. 나는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대법제자의 정법(正法)수련과 구세력이 대법제자에게 강제로 가해준 이른바 수련의 구별이 어디에 있는지를 개시해 주셨다는 것을 인식했다.

개인적인 이해로는 사부님께서 대법제자에게 배치해주신 정법수련은 마치 그 이를 뽑는 사람이 이를 뽑는 것과 같은데, 내재적인 근본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내재적인 근본 문제가 해결되면 표면의 일체 문제 가상은 사실 이미 해결했다. 이때 우리가 오로지 세간의 이치에 부합하여 손을 움직이기만 하면 되고 전혀 무슨 힘을 들일 필요가 없다. 안에서 밖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문제의 근본에서 철저히 해결하는 것이다. 아울러 그 사람이 사람의 ‘이를 뽑는’ 것은 그의 목적이 아니고 그의 목적은 사람들에게 그의 ‘약물’ 위력을 보게 하는 것이고 목적은 사람으로 하여금 그의 ‘약물’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대법제자의 정법수련 역시 이러하다. 수련과정 중에 부딪힌 문제에서 안을 향해 문제의 근본 원인을 찾고 근본 원인을 찾은 후 법에서 씻어내면 표면의 일체 문제 가상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그때 우리가 오로지 정념정행(正念正行)하면 문제는 해결된다. 세 가지 일은 아주 쉽게 잘 할 수 있다. 그러나 대법제자가 행한 일체 목적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대법의 위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것이며 과정 중에는 사(私)와 ‘나(我)’가 없다.

그러나 구(舊)우주의 생명과 구세력이 대법제자에게 강제로 가한 이른바 수련은 바로 그 양의가 ‘이를 뽑는’ 것과 같다. 외재적이고 강제적 수단을 써서 대법제자의 육신을 박해하고 대법제자에게 이른바 수련에서의 마난을 배치한다. 마난을 통해 외부에서 안을 향해 대법제자의 내재적 집착을 개변하는데, 목적은 대법제자로 하여금 이른바 수련제고를 제1위로 하고, 대법실증을 제1위로 하지 않는다. 사실 이런 작법은 대법제자의 내재적 근본 원인을 전혀 해결하지 못하며, 아울러 이런 작법은 사(私)와 ‘나(我)’가 그 속에 관통되어 있다.

나는 한 수련생이 나에게 자기가 박해 초기에 사악의 마귀굴에서 경험한 일을 말한 것이 기억난다. 나는 듣고 느낀 바가 많았다.

어느 날 그녀가 감방 안에서 연공했다. 이때 재소자 반장이 그녀에게 말했다. 연공하지 마. 연공하면 신고할 거야! 수련생은 생각해 본 후 연공을 견지하지 않고 앉아서 자신을 찾았다. 내가 무슨 마음이 있어서 이 반장이 나를 연공하지 못하게 만들고 그녀가 대법에 죄를 짓게 만들었는가? 수련생은 자신의 문제점을 찾았다. 그녀는 항상 이 반장이 눈에 거슬렸다. 수련생은 즉시 바로잡았다. 이때 그 반장이 갑자기 태도를 바꿔 180도로 바뀌더니 말했다. 여기서 연공해요, 누구도 신고하지 못해요! 수련생은 연공을 시작했고 그 반장은 수련생의 연공을 아주 집중해서 진지하게 보면서 또 내심에서 감탄했다. “나는 당신이 이렇게 보기 좋은 모습을 전에 전혀 본 적이 없었다! 이 공법은 진짜로 좋다!”

여기서 수련생은 안을 향해 찾았다. 자신의 제고를 위한 것이 아니고 무슨 마난을 돌파하려는 것이 아니고 중생을 구도하기 위한 것이었고 대법을 실증하기 위한 것이었다.

만약 우리가 한 길에서 모두 이렇게 걸어왔다면 무슨 박해가 있겠는가? 우리는 한 길에서 모두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대법제자를 성취하는 것이고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중에서 대법제자를 성취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 일부 수련생들이 문제에 부딪혀 안을 향해 찾을 때 모두 ‘자아’의 제고를 에워싸거나 혹은 무슨 마난에서 벗어나거나 혹은 무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이지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것을 제1위에 놓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사(私)’와 ‘나(我)’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낡은 법리 속에서 배회하게 되고 구세력이 배치한 일체 속에서 빙빙 돌면서 위로 올라가지 못한다.

물론 수련은 양파 껍질을 벗기는 것과 같이 한층 한층 사람마음과 집착을 제거한다. 그렇다면 이전에 자신의 제고를 위해 안을 향해 찾은 것을 잘못된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 시기 우리에 대한 법의 표준은 바로 그러했다. 그러나 나는 오늘날 정법 노정은 이미 구우주의 최후, 가장 근본으로 추진되었고 대법제자의 수련 역시 최후 한 층의 껍질을 벗길 때가 되었으며 그 한 층의 껍질이 바로 ‘사(私)’와 ‘나(我)’로 구성된 것임을 인식했다.

여기까지 쓰고 나는 자신의 이전의 한차례 경험이 생각났다. 대략 10년 전에 나는 타지에서 집으로 돌아갈 때 장거리 버스를 탔다. 차창 밖을 향해 바라보았는데 들판, 대지, 하늘 모두 그렇게 조용했고 사유도 천천히 청정해졌다. 이때 머릿속에 사부님의 설법이 들어왔다. “천지는 법이 만들었나니”[1] 그 순간 나는 한 층의 법리를 단번에 알게 되었다.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천지 만물 일체가 모두 대법이 만든 것이고 이루어진 것이면 내가 또 나의 생각, 나의 인식,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에 집착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나는 나의 일체를 모두 내려놓을 것이며, 대법이 나의 일체를 용련(熔煉)하게 할 것이다!

그 일각에 단전 가장 깊은 곳에서 쓰나미처럼 한 가닥 강대한 에너지 흐름이 용솟음치는 것을 느꼈다! 나는 자신의 심정을 표현할 방법이 없었고 오로지 목놓아 울고 싶었다. 이때 나는 단전 부위에 진정한 자신이 마치 7, 8세 남자아이처럼 힘껏 밖으로 달리는 것을 보았다. 몸에는 얇디얇은 검정 투명막 같은 것이 한 겹 둘려 있었다. 나는 자신이 이미 속세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다 곧 해탈되어 나올 것임을 느꼈다! 차에서 내린 후 나의 전반 세계가 모두 변한 것을 발견했다. 나는 일체 물질 속의 쩐·싼·런(真·善·忍)을 느끼게 되었고 그 한 층 얇은 막이 바로 ‘사(私)’와 ‘나(我)’였음을 알게 되었다.

만약 지금도 자아 제고를 위한다는 이러한 인식을 안고 자신을 찾고 자신을 닦는다면 전혀 제고해 올라갈 수 없다. 왜냐하면 이런 염두를 내보내는 것은 바로 진정한 나를 감싸고 있는 최후 그 한 층의 막, 바로 그 ‘사(私)’와 ‘나(我)’가 내보낸 것이지 우리의 본성이 내보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의 진아(眞我)는 대법의 한 개 입자이고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생명이며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원용하는 생명이지 이러한 위사위아(爲私爲我)의 인식이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그 ‘사(私)’와 ‘나(我)’ 그 한 층 껍질이 이른바 수련을 하는 것인데, 즉 우리 진아(眞我)의 수련을 가로막는 것이고, 진아(眞我)는 오히려 수련하지 않은 것이다. 마침 최후 그 한 층 껍질은 우리가 이 시각 대법의 우리에 대한 요구와 표준에 도달하지 못하게 하고 있고, 우리로 하여금 구우주 최후의 일체에 의해 억제되게 하고 걸어 올라가지 못하게 하고, 구우주 속에서 진정으로 벗어나지 못하게 하며, 대법제자의 진정한 표준에 도달하지 못하게 한다.

나는 ‘사(私)’와 ‘나(我)’ 이 한 층 껍질이 오늘날 대법제자가 수련하고 사람을 구하는 데 주된 장애라고 생각한다. 반드시 그것을 제거해야 비로소 사부님과 신(新)우주가 원하는 원만으로 걸어갈 수 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사: ‘홍음3-기연은 한순간’

[편집자 주: 본문은 글쓴이 개인의 현재 인식을 대표하므로 수련생들이 서로 교류하여 ‘비학비수(比學比修)’하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1년 4월 2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4/27/42382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