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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 이야기가 나에게 준 계시

글/ 밍신(明心)

[밍후이왕]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역사상 얼마나 많은 신이 세상에 내려와 사람을 제도했던지 간에, 각개 민족 중에 얼마나 많은 영웅 인물이 있었든지 간에, 역사상 어떠한 문화가 나타났던지 간에, 모두 오늘날 이 한 부의 대법이 인류의 최후에서 펼쳐지기 위한 것이다. 그리하여 인류가 대법을 인식하는 문화를 다졌고, 같지 않은 문화적 특징을 만들었으며, 같지 않은 문화방식을 만들었다.”[1] 많은 전해진 이야기, 특히 수련과 관련된 이야기는 오늘 이미 수련을 알지 못하고 전통을 잃어버려 무신론 환경에서 수련인에게 얕은 층차의 일깨움과 도움의 작용을 한다고 나는 인식했다. 예를 들면 석가모니 부처 이야기, 밀레르빠 부처 이야기, 최근 내가 읽은 모세의 이야기다. 여기에서 나는 모세 이야기를 읽고 일부 계발을 얻은 것을 교류하려 한다.

1. 우리는 도대체 얼마나 큰 능력이 있어 중생을 구도하는가?

모세는 우연한 일이 잘못되어 이집트 왕자가 됐다. 40세 전 세속에서 가장 좋은 교육과 양육을 받았다. 하지만 이어진 40년 동안 그는 목숨을 건지기 위해 세속을 벗어난 생활을 했고 모든 세속의 추구를 끊었다. 80세 때 모세는 불타오르는 가시밭에서 신(神)을 만났다. 신은 자신의 중생이 이집트에서 고생하는 걸 보았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그는 모세를 파견해 이스라엘인을 이집트인의 노역에서 구출할 계획을 세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때 모세는 신이 그에게 준 이 임무는 그의 능력 범위를 넘어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므로 그는 많은 구실을 대며 거절했다.

모세는 자신의 의구심을 말했다. “저는 어떤 사람이기에 파라오를 만나 이스라엘인을 이집트에서 데려 나올 수 있습니까?” 신은 그에게 명시했다. “나는 모세와 함께 있다.”

하지만 모세는 여전히 신이 배치한 그 자신을 믿지 못했다. 그는 말했다. “신이 나를 파견해 그들을 이집트에서 구출하게 했다고 말하면 분명 믿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신은 그에게 3가지 신적(神跡)을 허용했고 이것으로 이스라엘인이 그를 믿고 따르게 했다.

이런 증거가 있어도 모세는 여전히 자신을 믿지 않았고 말주변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신은 모세에게 알려줬다. 그는 반드시 모세에게 해야 할 말을 지시해 준다고 말했다.

신이 어떻게 명시해도 모세는 여전히 신에게 다른 사람을 파견하라고 말했다. 신은 하는 수 없이 모세의 형 아론을 그의 대변인으로 명했다. 하지만 신은 그의 지시를 직접 모세에게 전달한다고 말했다.

여기에서 한 가지 문제를 설명하겠다. 만약 신이 한 사람을 선택해서 사명을 이행하라고 하면 반드시 이 사람에게 마땅히 갖춰야 할 능력을 준다. 이런 능력은 신에게서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이 선택한 사람은 의심할 필요가 없고 자신의 능력이 부족함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필요할 때 필요한 능력을 얻을 수 있다. 심지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우리 대법 수련인은 더욱더 그렇다. 사부님께서 이미 일찍 개시하셨다. “이처럼 큰 법이 있으며, 정념 중에서 대법과 당신들은 같이 있는바, 이는 거대한 보장이다.”[2]

나는 진정한 대법제자는 모두 이런 경험이 있다고 믿는다. 진정으로 필요할 때 정념이 강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데, 특히 사람을 구하는 항목에서다. 그러므로 자신의 능력이 부족함을 걱정하는 것은 사실 100%의 바른 믿음이 없는 것이고 진정으로 정법 수련의 의의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물론 어떤 수련인은 자신의 능력을 본 후 어떤 마음이 일어나고 자신이 대단하다고 느낀다. 이는 자심생마가 생긴 것이고 그것은 또 하나의 극단이다.

사명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이스라엘인의 구세주로서 모세는 여태 자신의 재능을 자랑한 적이 없다. 그는 겸손하게 신과 동행했고 신의 말을 듣고 신의 명을 따랐으며 여러 차례 진지하게 이스라엘인에게 재난을 내리지 말기를 빌었다. 그러므로 그는 마지막에 신이 준 사명을 기본적으로 완성했고 이스라엘인을 이끌고 이집트를 떠나 그들 후대를 가나안 지역에 진입하게 했다.

비록 그 자신은 진입하지 않았지만, 물론 그것은 수련 중에서 또 넘어야 할 관이다. 아래에 우리는 또 이 문제를 이야기해 보자.

2. 신적은 사람에게 계발을 주지만 사람을 구도할 수 없다.

모세가 사명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처음에 이집트 파라오는 이스라엘인을 떠나지 못하게 했다. 신은 모세에게 개구리 재앙, 파리 재앙, 우박 재앙, 메뚜기 재앙, 암흑 재앙 등을 내리게 했다. 매번 재해를 내릴 때 파라오는 잠시 모세의 요구를 승낙한다. 하지만 천재가 지난 후 그는 또 승낙을 저버린다. 줄곧 10개 재해가 나타난 후 파라오는 모세와 이스라엘인이 이집트를 떠나는 걸 허락했다. 하지만 빨리 후회했고 군대를 파견해 뒤쫓게 했다. 이로써 모세는 홍해를 갈라놓는 신적을 보여줬다.

이것은 하나의 현실을 보여줬다. 신적은 업력이 큰 사람들에 대해 말하면, 놀라게 하는 작용은 잠시이고 표면에만 그칠 뿐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신적 배후의 위대한 내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10개 재앙의 신적에서도 이집트 파라오는 신을 믿지 못했고 이스라엘인도 마찬가지였다. 신적을 직접 보아도 그들 마음속에서 신에 대해 확고한 믿음이 생기게 하지 못했다. 모세를 따라 이집트를 떠난 유대인은 위험과 절망 속에서 홍해가 갈라지는 걸 보고 나서야 그들은 신에게 감사하고 찬송했다. 하지만 황량한 사막에 진입한 후 어려움에 부닥치자 신에 대한 신심을 잃었고 심지어 신을 원망했다.

나는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법리 “공능은 본디 작은 재간이요 대법만이 근본이로다”[3]를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됐다. 사부님께서는 여태 공능 시범을 하시지 않음을 알게 됐다. 왜냐하면 사람 스스로 진심으로 우러나 잘하려 하고 변하려고 생각해야만 사람은 구원될 수 있다. 수련인 단체에서도 마찬가지다. 공능은 사람을 도와 신심을 북돋아 주지만 공능은 도리어 당신이 수련 성취할 수 있게 보장할 수 없다. 왜냐하면 씬씽(心性)이야말로 유일한 가늠 표준이기 때문이다.

3. 원망의 독소는 극히 심각하다.

모세는 이스라엘인을 위해 온갖 고생을 다 했고 여러 차례 자신의 생명으로 그들을 보호했다. 하지만 그들의 존중과 감사를 받지 못했고, 반대로 줄곧 원망과 언쟁을 받았다. 이스라엘인은 심지어 모세와 아론에게 돌을 던져 죽이겠다고 단언했다. 그 시각 신은 직접 나서서 이 일을 교섭했다. 그때 모세가 이스라엘인을 위해 사정하지 않았다면 신은 이런 사람을 모두 소멸했을 것이다.

신은 모세의 요구를 마지못해 허용했고 이스라엘인을 용서했다. 하지만 사람들 중 2세 외에 신을 원망한 사람은 약속의 땅에 진입할 수 없다고 덧붙여 말했다. 그들은 광야에서 40년을 표류해야 하고, 줄곧 그 세대 사람이 전부 죽을 때까지 가야 그들의 아들딸은 비로소 가나안 지역으로 진입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인이 본래 11일의 노정을 왜 40년 동안 걸어야 했던가 하는 원인이다.

속인 경지에서 원망의 현상은 어디서나 다 볼 수 있다. 하지만 수련인은 금물이다. 중국인은 사당(邪黨)의 독소가 틈만 나면 침투한다. 이 문제는 특히 두드러졌다. 왜냐하면, 사당의 요소는 미워하고 싸우고 질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법 수련인 중에서 많은 사람이 습관적으로 원망하고 질투하고 심지어 미워한다.

그해 원망의 마음으로 이스라엘인은 스스로 광야에서 40여 년간 떠도는 시련을 겪었다. 지금 일부 수련인은 질투를 제거하지 못해 원망과 불평이 생겼고, 또한 자신도 병업과 박해를 당하고 심지어 육신을 잃게 된다. 항목에서 원망 때문에 업무 환경과 수련 환경은 열악하게 변했고, 항목의 협조와 발전에 영향을 주며, 심지어 일부 항목은 진행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사례는 적지 않다. 정말로 마땅히 경계해야 한다!

4. 수련인은 용량을 끊임없이 확대해야 비로소 신이 부여한 사명을 마지막에 완성할 수 있다.

모세의 결말은 의외다. 모세는 마지막에 화를 내서 신의 지시에 따르는 걸 잊어 신의 징벌을 받아 가나안 지역에 진입하지 못했다.

이스라엘인이 막 이집트를 나온 뒤 광야에서 숙영했지만, 물이 없어 크게 원망의 말을 했다. 신은 모세에게 반석을 치라고 분부했고 흘러나오는 물로 그들에게 먹으라고 했다. 나중에 그들은 그곳을 ‘므리바’라고 했는데 그 뜻은 바로 ‘말다툼’이다. 40년 후 이스라엘인은 이미 가나안 변경에 도착했다. 그들은 또 물이 없어 원성이 많았다. 사실 두 번째 물이 부족한 것은 모세의 수행 길에서 또 한 번의 시련이었다. 그는 더욱 큰 용량이 필요했다. 첫 번째 말다툼할 때 모세는 화를 내지 않았다. 하지만 40년 후 120세 노인이 이스라엘인을 이끌고 보행으로 광야의 노정을 40여 년 동안 오래 걸었다. 지금 다시 가나안의 변경에 가까이 왔다. 여전히 이스라엘인의 저주와 원망을 들어야 했는데, 모세는 이런 상황에서 화를 냈다.

그가 화낸 이유를 보면 속인의 정상적인 생각으로 마땅하다. 이스라엘인은 심지어 모세를 원망했다. “우리를 협박해 이집트를 떠나게 하고 우리를 데리고 이런 나쁜 곳에 왔다……” 그들 이런 말은 얼마나 배은망덕하고 생억지를 쓰며 사실을 외면했는가!

하지만 수련인으로서 만약 이런 무리한 질책과 원망에 직면해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화를 내지 않으면 흉금과 용량은 확대되고 비로소 더욱 큰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

우리 대법 수련인은 모두 마땅히 이런 시련을 경험했다. 모순에서 만약 참기 어려운 것을, 선의로 남을 이해하면 아주 큰 모순과 시련도 단번에 풀어지는데, 유암화명우일촌(柳暗花明又一村)이다. 지나간 후 사부님께서 자신의 용량을 확대해주신 걸 분명히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만약 모순 그 자체에 빠져 사람의 이치를 따지면 어떻게 생각해도 자신이 옳고 남은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유사한 모순은 다음에 다시 나타난다. 왜냐하면 아직 그 관을 넘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화를 냈기에 모세는 신의 지시에 따라 돌에게 물이 나오라고 ‘명’하지 못했고, 지팡이를 들어 반석을 쳤다. 겉으로 보면 그는 징벌을 받아 부득이 가나안에 진입하지 못했다. 모세는 평생 이스라엘인을 이끌고 이집트에서 나와 가나안에 진입했다. 그는 40년 동안 항상 신의 말대로 행동했다. 무수한 간고한 시련을 거쳐 마지막에 성공을 앞에 두고 실패했다. 그의 교훈은 나에게 깊은 인식을 주었는데, 무조건 신의 말을 듣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모세는 왜 마지막에 이 점을 잊어버렸는가? 바로 화를 냈기 때문이다. 화를 내는 것은 수련인의 이지를 잃게 하고 심지어 신의 지도에 따르는 걸 잊어버린다. 우리는 수련의 엄숙성을 보았다. 보기에 작은 일을 잘하지 못해도 큰 결과를 빚어낸다. 사부님께서 ‘전법륜(轉法輪)’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수련이란 극히 간고(艱苦)하고 매우 엄숙한 것으로서, 당신이 조금이라도 주의하지 않으면 떨어질 수 있으며 하루아침에 망치게 되므로, 마음이 반드시 똑발라야 한다.”[4]

대법제자로서 우리는 더욱 정진해야 하루빨리 정법 수련인의 표준에 이르고 자신의 역사적 사명을 완성해야 비로소 사부님께서 우리를 이끄시는 천만년 억만년 다진 이 역사문화를 저버리지 않는다.

개인의 체득이니 적절하지 않은 점은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6-2004년 워싱턴DC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10-맨해튼설법’
[3] 리훙쯔 사부님 시사: ‘홍음-정법문을 구하다’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편집자 주: 본문은 글쓴이 개인의 관점만을 대표할 뿐, 옳고 그름은 글쓴이 개인의 책임이므로 독자 스스로 헤아리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1년 3월 2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1/3/24/42242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