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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목으로 본 것’에 관한 교류

글/ 미국 보스턴 대법제자

[밍후이왕] 최근 어린 수련생이 천목(天目)으로 어떤 미래를 본 것에 관해 논의가 있었는데 저도 참여해 몇 마디 나누려 합니다. 저는 제가 천목으로 본 것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교류하겠습니다.

천목에 관해서 수련인은 쉽게 흥미를 느끼고 듣고 싶을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들 가운데서 수련하면서 깨달음에만 의존한다는 것은 확실히 일정한 경지에 도달하는 것을 필요로 하며, 도달하지 못한 상황에서 조금 ‘실증’해보려는 것은 이해가 갑니다. 그렇지만 너무 많거나 지나치게 보는 것은 제 생각에는 해를 끼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만약 자기가 천목으로 본 것이나 남이 본 것에 따라서 하면, 저는 그것은 잘못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대법을 배우기 전에 기공을 연마했었는데 가부좌를 틀면 곧잘 입정했습니다. 입정 후 때로 천목으로 볼 수 있었는데 줄곧 환각이라고 여겼습니다. 다만 그런 상태가 자유롭고 아주 편안하다고 느꼈습니다. 무엇을 보고 싶다고 추구하지도 않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으며 다른 사람에게 말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대법을 배운 후 정공(靜功)을 연마할 때 입정하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가끔 어떤 상태(주로 입정시)에서 천목으로 조금 보았는데 색상은 컬러였고 더욱 선명했습니다. 무엇이 보일 때면 거의 갑작스럽게 보였고(한 번은 예외) 전조 없이 갑자기 보았습니다. 저는 그것은 사부님께서 제게 보게 해주신 것으로 생각합니다. 매번 무엇을 보는 것은 모두 제게 뭔가 좀 알려주시거나 뭔가 조금 깨닫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어쨌든 천목이 열렸다고 해서 보고 싶은 것을 보는 것이 아니었고 어느 때 보고 싶다고 해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며 사부님께서 보게 해주셔야 볼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처음 대법에서 정공을 연마하면서 입정했을 때 두 손을 결인(結印)한 위쪽에 무엇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맨 처음 본 것은 아마 자신의 최초 본래 모습일 수 있으므로 무엇이었다고 말하지 않겠습니다만, 제 흉금을 넓혀줬습니다. 불(佛), 도(道), 신(神)이 아니었고 연꽃 위에 앉아있는 이미지가 생각나게 했는데 ‘나는 지금의 나’라는 관념을 깨뜨렸습니다.

천목으로 본 작은 범위는 그 물질이 더욱 섬세했기에 매우 또렷했습니다. 큰 범위를 본 것은 한 번뿐이며 마치 불투명한 유리를 사이에 둔 것처럼 또렷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션윈오케스트라 음악을 들을 때였는데, 바로 입정해 사부님을 보았고 상하좌우 무한대로 큰 공간에서 오직 사부님의 상반신만 보였습니다. 그 장면은 마치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거대한 부처 하늘에 우뚝 섰노라”[1] 같아서 전체 공간은 가로 방향으로 무한히 뻗어갔고 세로 방향으로는 사부님의 상반신 전체를 담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사부님 오른쪽 뒤편에 있었고 사부님께서는 일부 생명과 무언가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그때 저는 제가 수련생 중에 세 번째 부분이기 바랐던, 즉 사부님과 서약이 없었고 구세력이 가로막지 않아서 들어와 대법을 배운 것이라는 그런 사상(사람은 어떤 기괴한 마음도 다 있을 수 있음)이 완전히 깨졌습니다. 그리고 조금이나마 알게 됐는데,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원래 신이 ‘고향’을 떠나 삼계라는 곳으로 진입할 때 역시 ‘약간의 용기를 내는’ 것이 있어야 비로소 마음을 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집에서 아내와 아이에게만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들 모두 대법을 수련합니다. 저는 부모님에게조차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분들이 대법을 수련하지 않기 때문인데 앞으로 대법을 배울 기회가 있다면 아마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곳에서 말하지 않는 것은 말하고 싶지만 참은 것이 아니라 말하려는 생각 자체가 없었습니다.

제가 예전에 천목으로 무엇을 본 것과 관련해 수련생과 교류한 적은 한 번뿐입니다. 밍후이 교류문장 ‘법을 배우고 법을 외운 약간의 수련체험’이라는 글에는, 정(定) 중에서 보았는데 법을 외워서 기억한 법이 모두 각각 고대 열쇠 모양의 실체가 있는 글자였다고 했습니다. 이는 저에게 법공부의 의미 중 한 가지에 대해 조금이나마 명백해지게 했습니다.

여기까지 말한 김에 제가 다른 수련생이 천목으로 본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보려 합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고 누가 대통령이 되지 않는지 말하는 것에 관해, 사실 저는 제 나름의 이해가 있습니다. 어떤 일은 천목으로 볼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대법 법리로도 일부 사정에 대해 명백해지기 때문입니다. ‘전법륜’에 “우리 이 우주 중에는 이런 이치가 있다.”[2]라는 말씀을 몇 차례 말씀하셨던가요? 만사만물의 존재와 발전은 모두 이 이치 속에 있으며 모두 법칙이 있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누가 되고 안 되고는 하늘이 정하지만 우리가 몇 가지는 생각해봐야 한다고 이해합니다. 1. 정법시기 대법제자가 지금 하는 것은 앞으로 미래 사람들이 참조할 텐데, 그렇게 많은 수련생이 주룽지에게 기대한 적이 있고 후진타오·원자바오에게 기대한 적이 있으며 시진핑에게 기대한 적이 있고 지금은 트럼프에게 기대하고 있지만, 미래에 남길 역사에 ‘대법제자가 지지하는 누군가가 사악한 공산당을 무너뜨렸고 정법이 종결됐다’라고 기재되는 이런 역사를 남길 수 있을까요? 중생은 그들이 속한 세계와 관련 있는 대법제자가 수련해 올라가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그들이 비로소 자리가 있고 자신들의 생존환경 등이 있기 때문입니다. 중생은 대법제자에게 기대하고 있고 대법제자가 사부님의 지도하에 수련해 올라가 자기들이 구원받기를 기대하고 있는데(제가 마음속에서 이해한 중생이란 지구상의 이런 생명뿐이 아닌데 지구상의 생명은 우리 인체가 속한 층차의 하나에 불과합니다), 대법제자가 어떻게 사람에게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어떤 사람은 또 “사람이 다스리지 않으면 하늘이 다스린다.”[2]에 기대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이해한 것은 세 가지 일을 잘하는 과정에 자신을 잘 수련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우리가 사악한 공산당을 무너뜨리기 위해 온 것인가요? 공산당은 제련에 쓰이는 석탄부스러기가 아닙니까? 강철이 제련되면 더는 쓸모없는 이런 관계가 아닌가요?

일부는 말하자면 더욱 첨예해집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걸핏하면 어떠어떠한 천상(天象)을 ‘혜안통으로 봤다’고 합니다. 천목으로 보기 전에 어느 층차의 천목으로 볼 것인지 선택해서 보나요? 보았다면 곧 본 것인데 자기가 쓴 것이 어느 층차의 천목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나요?

또 무슨 ‘천국가서(天國家書)’가 있는데 수련생들이 토론할 때 어떤 사람들이 보고 눈물을 흘렸다기에 저는 두 마디 했습니다. “그 소위 ‘천국가서’에는 정(情)이 가득합니다.” 제 말은 그것이 진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삼계 밖에는 정이 없습니다. 자비심이 나올 때 눈물이 흐르면 동시에 한 사람의 의식이 그곳에 있고 그 의식은 그 자비의 상태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 전체가 감동받았다면 그것은 곧 사람이 감동해 눈물을 흘리는 것에 불과하다는 뜻입니다. 제가 이것을 꺼내서 말하는 이유는 제가 이해하기에 이 속에 너무 관건적인 요소가 있어서입니다. 당신은 그런 생명을 가족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는데 구세력도 그 속에 있습니다. 당신이 그런 ‘가족’을 인정할 때 그 가족이 가족을 상관하는 것은 이치가 있지 않나요? 이치에 맞지요? 그렇다면 구세력이 당신을 관여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므로 저는 사부님만 알고 전부 사부님께 맡깁니다.

또 무슨 푸왠선(副元神) 관련 글이 있습니다. 저는 몇 편 보다가 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글은 전혀 사부님을 언급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푸왠선의 일을 저도 겪은 적이 있습니다. 제가 겪은 푸왠선의 상황은 한 마디로 비교적 정확히 형용할 수 있습니다. 바로 어떤 푸왠선은 저와 같은 마음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부님께서는 관여해주실 것이며 처리해주실 것입니다. 사부님께서 그때 푸왠선을 처리해주실 때, 제 선택을 물어보셨습니다. 왜냐하면 푸왠선도 집착심이 있고 저의 이 대뇌 속에 반영되어 올 수 있기에 제가 책임져야 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제가 그 푸왠선을 갖지 않겠다고 선택하면 사부님께서 곧 처리해주십니다. 그 푸왠선 글을 보면, 걱정하는 수련생은 사부님에 대한 믿음이 부족합니다. 우리는 사부님께서 시시각각 제자를 보호해주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시시각각 보호해주시기에 진정으로 믿는 제자는 푸왠선 때문에 번거로울까 봐 걱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한번은 꿈에서 한 가지 염두가 있었는데 그 염두가 생겨나고 아직 하지는 않았을 때 사부님의 음성이 제게 알려주셨습니다. 저는 곧 그 ‘시시각각 보호해주고 계신다’의 ‘시시각각’이 얼마나 중요한지 조금이나마 알게 됐습니다!

개인적인 체득으로서 단편적이고 좁은 소견에 불과하며 심지어 그것에도 못 미칩니다. 모든 것은 법을 표준으로 삼아야 하고 수련인은 스스로 법에 대조해 가늠합니다. 제가 어떤 생각이 있고 스스로 참 맞다고 여길 때면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을 떠올립니다. “또는 개오한 사람이 당신 자신의 이런 인식 저런 인식이 옳다고 여기며, 심지어 당신 자신이 대단하여 대법(大法)을 능가한다고 여긴다면, 당신은 이미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고, 곧 위험하며, 갈수록 더 잘못된다고 나는 말한다.”[2] 개오한 사람마저 자신의 인식이 옳다고 여기면 안 되는데 하물며 수련 과정에 있는 사람은 더 여부가 있겠습니까.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사: ‘홍음-대각(大覺)’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편집자 주: 본문은 글쓴이 개인의 관점만을 대표할 뿐, 옳고 그름은 글쓴이 개인의 책임이므로 독자 스스로 헤아리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0년 3월 1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3/15/42205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