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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수련생이 정념을 확고히 한 체득

글/ 오스트리아 서양인 대법제자

[밍후이왕] 올해 내 수련을 돌이켜 보며 확고하게 사부님이 배치하신 길을 걷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결심하고 견지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하는 것인지 깨달았다.

1. 목표에 도달하는 것보다 과정이 더 중요하다

수년간 나는 줄곧 결가부좌를 시도했으나 보통은 얼마 견지하지 못하고 포기했다. 올해 초 나는 해야 할 때가 됐다고 결심했다.

나는 끊임없이 시도했지만, 단 1분이라도 다른 한쪽 다리를 들어 올릴 수 없었다. 나는 줄곧 이 문제를 생각하고 있었다. 어느 날 나는, 내가 도대체 무엇을 하는지, 내가 수련의 길을 잘못 걷고 있는 것이 아닌지, 도대체 왜 결가부좌를 하려 하는지 자신에게 물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마지막에는 결가부좌에 도달해야 한다고 요구하셨다. ‘나는 단지 임무를 완성하기 위해서인가?’ 나는 여기에 누락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그저 잘하고 싶었고, 사심을 갖고 다른 사람이 내가 잘하고 있다고 느끼도록 하고 싶었다. 그러나 5장 공법의 관건은 무엇일까? 결가부좌인가 아니면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 것인가? 왜 나는 지금까지 결가부좌를 하지 못하는가? 나는 마침내 내가 줄곧 고통을 견디기 싫어해 강인함과 참음이 부족한 것을 발견했다. 나는 자신에게 고통을 겪는 것과 신통가지의 관계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이에 나는 무엇이 부처인지 떠올렸고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이 생각났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각 여래와 큰부처는 자신의 세계가 있다. 대각자마다 모두 그 자신이 조직한 천국이 있으며 그의 많은 제자가 그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1]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무엇을 부처의 은혜가 가없이 넓다(佛恩浩蕩)라고 하는가? 여러분 생각해 보라. 한 사람을 제도할 적에 사람을 제도하는 부처인 그는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하겠는가? 그 한없이 미시적인 당신의 모든 일체와 대응하는 중생을 위해, 그들을 마치 당신들의 수련 과정 중과 마찬가지로 먼저 신체를 조절해 주기 시작하며 당신에게 법을 얻게 하며 당신들에게 될 수 있도록 하고, 또한 그의 업력을 해결해 주어야 한다.”[2]

나는 부처는 생명의 수호자이고 그의 세계의 법왕(法王)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에게 하나의 세계가 있기에 그는 중생을 제도할 수 있다. 왜 그가 그의 중생을 제도할 수 있는가? 그가 고통을 감당할 수 있고 그의 중생을 위해 모든 대가를 치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가 생명을 지키는 방법이다.

이에 나는 고통을 겪는 것과 신통가지의 관계를 이해하게 됐다. 나는 마땅히 마음을 내려놓아야 함을 깨달았다. 제5장 공법을 연마할 때마다 모두 1시간을 견지하기에 노력하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결가부좌를 자연스럽게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한번은 일요일에 공원에서 제5장 공법을 연마하는데, 40분쯤 지났을 때 나는 아파서 참을 수 없었다. 나는 참으려고 노력했으나 통증이 멈추지 않고 계속되어 더는 참을 수 없었다. 나는 다리를 내리려고 하기 전에 눈을 떴는데, 그 순간 매우 신기하게도 바람이 나뭇잎을 감돌고 나뭇잎이 잔디밭에서 떠올라 춤추는 것을 보니 아이들이 즐겁게 노는 것 같았다. 이 모든 것은 마치 내가 여기에서 가부좌하고 고통을 겪을 때 나의 중생이 내가 감당하려고 애쓰는 것을 보고 매우 기뻐하는 것 같았다. 이것은 나를 격려하는 것으로 생각됐다. 나는 다리가 매우 아팠으나 내 중생을 위해 고통을 감당할 수 있어 행복했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고 사부님께서 바로 내 옆에 계시는 것을 느꼈다. 그날 나는 1시간 가부좌를 마쳤고 고통은 행복으로 바뀌었다. 나는 더할 나위 없이 가볍고 편안했다.

2. 관념은 우리를 법과 갈라놓는 물질임을 체득하다

올해 7.20 이전에 나는 한 수련생과 여러 번 갈등을 겪었다. 그녀는 내가 늘 혼자 단독 행동을 해서 제때 피드백을 듣지 못하기 때문에 중생구도를 교란하고 대법의 이미지를 파괴할 수 있는 불필요한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고 질책했다.

그녀의 말과 질책은 예리한 칼날처럼 내 마음을 찔러 아팠다. 나는 내가 불공정한 대우를 받았다고 느껴 매우 화가 났다. 처음 말다툼이 일어났을 때 나는 반격했지만 두 번째는 나를 억제하고 도대체 어찌 된 일인지 생각했다. 나는 그녀가 옳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다른 사람과 잘 협력해야 하지만 당시 그런 정도밖에 할 수 없었다고 했는데, 사실 구실일 뿐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당시 상황을 말하고 내 부족한 점을 인정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상황을 이야기하고 솔직하게 그녀의 말이 나에게 상처를 주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이후에 다른 사람과 협력할 때 더 잘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나에게 상처를 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면서 사과했다. 나는 우리 사이에 있는 한 층의 물질이 제거된 것을 느꼈고, 더는 논쟁 없이 마음으로 교류할 수 있었다.

우리가 소통한 초점은 외재적으로 누가 더 이치가 있는가가 아니라 내면의 소통이었다. 나는 과거 그녀에 대한 완고한 견해가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 이 견해는 내 마음을 가로막는 여과망과 같아서 내가 보는 모든 것은 바뀌지만 이것은 진실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녀가 이 일에서 수련할 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부족한 점을 보여준 것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련인이여
스스로 자신의 과오를 찾으라
갖가지 사람마음 많이 제거하고
큰 고비 작은 고비 빠뜨릴 생각 말라
옳은 것은 그이고
잘못된 건 나이니
다툴 게 뭐 있느냐[3]

갑자기 나는 이 법리에 대해 더욱더 깊은 인식을 갖게 됐다. 누가 옳고 그르든 나는 자신의 문제를 찾아야 한다. 핵심 문제는 외부와 문제 자체, 또는 다른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핵심은 언제나 나에게 있기에 나를 극복하고 개선해야 한다.

3. 인스브루크에 가다

전염병 기간 나는 중생구도가 시급하다는 것을 새롭게 느꼈다. 봉쇄 기간이 지난 후 나는 대면해 진상을 알릴 기회를 매우 소중히 여겼다. 올해 빈에서 열린 7.20 정보의 날 행사에서 나는 수련생의 확고함과 대법에 대한 확신에 깊이 감동했다. 처음에 큰비가 내렸는데 나중에 비가 그쳤다. 한 수련생이 끝나기 2시간 전에 생체 장기적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나는 수련생이 모든 힘을 다해 중생을 일깨워주려는 결심을 보았다.

8월에 우리는 오스트리아 서부에 있는 한 도시에서 정보의 날 행사를 할 예정이었는데, 그곳에는 수련생이 없기에 우리는 오랫동안 그곳에 진상을 알리러 가지 않았다. 나는 이 일을 대체로 알고 있었지만, 관여하지 않았고 단지 이 활동에 참가할 예정이었다. 갑자기 이 행사를 맡은 수련생이 행사를 조직할 시간이 없었고, 아무도 그곳에 갈 시간이 없어서 계획이 무산될 수도 있었다.

이 상황에서 나와 남편은 어쨌든 그곳에 가기로 결심했다. 우리 손으로 정보의 날 행사를 치르진 못해도 전단지는 배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활동을 조직하는 것도 진상을 알리는 일부분이다. 그곳에 가는 마지막 순간에 우리는 정보의 날 행사에 필요한 모든 것이 있게 됐다. 정보의 날 행사를 하기 이틀 전에 두 명의 잘츠부르크 수련생이 참석하기로 했고 전날에는 포어아를베르크주에 있는 두 명의 수련생과 빈의 한 명의 수련생도 참가 의사를 밝혔다. 그날 아침 이미 도로에 차를 몰고 가다가 새로 인쇄한 대법 진상 전단지를 가져가도 된다는 인쇄공장의 연락을 받았다. 그래서 우리는 충분한 전단지가 있게 됐다. 처음에 일기예보에서는 온종일 비가 올 것이라고 예보했다. 우리는 전날 저녁에 도착했는데 그때 큰비가 오기 시작했다.

나는 큰비가 우리 정보의 날에 영향 주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끊임없이 발정념으로 교란을 배제했다. ‘우리는 오랫동안 그곳에 가지 않았다. 그곳 중생은 구원을 기다리고 있다.’ 나는 인연 있는 중생이 대법을 접할 수 있도록 사부님께 가지(加持)를 청했다.

우리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활동했는데, 결국 비는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다. 정보의 날 행사가 끝난 후 우리가 모든 물건을 차에 실었을 때 비가 얼굴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날 햇빛이 맑았고 행인도 많았다. 많은 사람이 테이블에 와 생체 장기적출을 반대하는 서명 용지에 서명해 그들의 미래를 위해 자기 위치를 바로 놓았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았다.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功)은 사부에게 달렸다.”[1]

나는 무슨 일이 발생하든 모두 가장 좋은 배치라는 것을 깨달았다. 발생한 모든 일에 우리는 올바른 마음가짐만 있으면 된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서: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서: ‘각 지역 설법 3-대뉴욕지역법회 설법’
[3] 리훙쯔 사부님의 저서: ‘홍음3-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2020년 오스트리아 법회 발표문)

 

원문발표: 2020년 10월 4일
문장분류: 해외법회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10/4/41334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