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호주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존께서 발표하신 ‘다시 방할(棒喝)하노라’를 몇 번 배우면서 나에게도 싱가포르 그 사람과 같은 사유와 행동은 없는지 또 자신이 이와 같은 사람에게 공간과 사상에 영향을 받는지 자신을 되돌아보며 대조해 봤다.
수련이란 엄숙한 것이며, 법리(法理)를 분명하게 알지 못하면 비뚤게 나가기 쉽고 심지어 큰 문제가 나타난다. 사부님께서는 ‘다시 방할(棒喝)하노라’ 중에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부득불 또 하나의 천기를 말했다. 그러나 당신들은 후과를 알고 있는가?”[1]라고 하셨다. 이 구절의 함의를 이해하지 못했고, 이것이 천체의 어느 요소에 변화를 일으킬지는 모르지만 마음이 아주 괴로웠다. 사부님의 법은 끝이 없고 전능한데 제자로서 사부님의 자비고도(慈悲苦度)와 정법(正法) 중의 고난에 대해 도대체 얼마나 이해할 수 있는가?
내가 깨달을 수 있는 사람마음과 각종 집착을 되도록 빨리 내려놓고, 무위의 자세로 착실히 수련하며, 대자대비(大慈大悲)를 수련해 내어, 중생을 많이 구하고 사부님의 은혜와 자비를 저버리면 안 된다고 자신을 타일렀다.
상황은 급변했고 재앙은 인류에게 닥쳤다. 생명이 한계에 이르자 사부님께서는 거대한 자비로 일체를 구하고 계신다. 겉보기에는 단지 천재인화(天災人禍)이고 정사대전(正邪大戰)이며 신(神)과 마(魔)의 대전인 것 같지만 보이지 않는 위험이 보이는 것보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크다. 현재 천체는 마를 제거하고 공산당을 뿌리 뽑고 있으며 우주는 전면적으로 새롭게 바뀌는 단계로 진입했다. 이 비장한 역사 시기에 대법제자는 사람을 구하는 사자(使者)이다. 우리가 어떻게 진정으로 ‘혼란을 똑똑히 보고’, ‘근본을 지키는’ 것이 지극히 중요하다.
‘다시 방할(棒喝)하노라’를 반복해서 공부하자 사부님의 자비와 커다란 은혜를 더욱 실감할 수 있었고 수련의 엄밀함과 수승(殊勝)함을 더욱 똑똑히 알게 됐다.
1. 편안한 마음으로 수련생의 의견을 대하다
사부님께서는 “사람마다 자신의 집착을 스스로 깨닫고, 걸어 지나오는 그것이 진정한 제고다.”[1] “수련 자체는 신의 길을 걷는 것으로서, 사람마음은 곳곳마다 모두 장애이다.”[1]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나에게 큰 자극을 주었다. 어디에 사람마음이 있으면 그곳에 곧 장애가 있게 된다. 평소 나는 사람들의 의식주에 대해 비교적 담담하게 봤으며 자신은 사람마음이 비교적 적다고 생각했다. 이번에 내가 어떤 일의 한 부분에 쉽게 집착한다는 것을 찾았는데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얽매이며 쉽게 놓지 못하고 자신에게 집착했다. 사실 이것은 이미 사람마음인 것이다.
사람마음으로 문제를 보는데 사람의 사유는 단지 하나의 점을 볼 뿐이나, 신이 문제를 보는 것은 입체적이며, 더욱 높은 신은 어떤 일에 관련된 우주 중의 각층 요소까지도 볼 것이다. 무엇 때문에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건드려지기만 하면 악한 일면이 즉시 올라오며 그것도 아주 빨리 오는가? 악으로 자신이 알고 있는 이치를 보호하는데 이건 정말 두려운 일이다.
어느 날, 얼마 전에 시드니에서 온 수련생이 나에게 말했다. “샤오위, 당신은 매우 평화롭고 이성적으로 말하지만 그 속에는 악이 들어 있어요.” 나는 웃으며 직언에 감사드리며 꼭 수련을 잘하겠으며 더 많은 교류 기회가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실 이 수련생과 나는 겨우 두 번 봤을 뿐이며 인사만 했지 어떤 교류도 없었는데, 이것은 분명 사부님께서 수련생의 입을 빌려 재차 나를 점화해 주시는 것이었다.
사실 악이란 무엇인가, 악은 마성의 표현이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이 도덕적 규범과 단속이 없는 가운데서 한 일은 곧바로 마성이다. 부처수련이란 바로 당신의 마성을 제거하고 당신의 불성을 충실히 하는 것이다.”[2] 나는 선(善) 안에 있지 않으면 곧 악이며 다른 요소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부님께서는 여러 차례 내게 기회를 주시며 선을 닦도록 하셨지만 나는 어떤 때는 의식했고 어떤 때는 의식하지 못했다.
2. 사존의 자비로운 제도를 소중히 여기며 수련의 길을 바르게 걷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법 중에서 석가모니교의 경서와 말법의 출현을 여러 차례 말한 적이 있다. 주로 어떤 사람이 자신의 말, 자신의 인식을 불법(佛法) 중에 섞어 넣음으로써 조성된 것으로, 이는 역사상 가장 큰 교훈이다. 그러나 어떤 제자는 속인의 마음이 제거되지 않아 말재주, 글재주를 과시하려는 마음에 집착하여 마성에 이용당하고 있으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불법(佛法)을 파괴하고 있다.”[3]
수련 중에 법에서 빗나간 곳은 없는지, 자신에게 대조해 봤다. 대법 수련에 들어올 수 있었고 창세주로부터 직접 제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성스러운 인연인가! 만약 자신을 잘 장악할 수 없다면 아주 위험한 일이다. 모든 일의 발생은 우연이 아니며 수련할 수 있는지 없는지, 될 수 있는지 없는지는 전적으로 자신의 수련에 달렸다.
이때 나는 ‘서유기(西遊記)’가 생각났다. 서유기 속의 몇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 누구도 당승(삼장법사)보다 능력이 출중했다. 손오공이 공중제비를 한 번 돌면 10만 8천 리를 갈 수 있었고 사오정, 저팔계, 용마 모두 신통을 부릴 수 있었다. 그러나 진경(真經)을 되찾을 때는 당승의 과위가 최고였는데 무엇 때문인가? 생각해보니, 당승의 방향감각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어떤 일을 만나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으며 방향을 잃지 않고, 곧바로 경을 구할 수 있는 서천(西天) 방향으로 나아갔다.
대법을 수련하니 법리가 분명하고 방향이 명료하며 미혹되지 않기에, 어느 한 층차에서 오래 지체하진 않을 것이다. 대법은 끝이 없기에 얼마나 높이 수련하고 싶으면 오로지 마음만 먹으면 된다. 사부님께서는 상한선을 정하지 않으셨다.
사부님의 경문 ‘다시 방할(棒喝)하노라’ 중에서 나는 법을 따르지 않으면 결국엔 빗나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흐리멍덩하게 수련하면 반대 방향으로 나갈 수도 있다.
수련의 길에서는 작은 거짓도 있어서는 안 되며 진경(真經)을 깨달아 바른길을 걷는 것이 급선무다.
개인의 깨달음이니 맞지 않은 곳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경문: ‘다시 방할(棒喝)하노라’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서: ‘정진요지–불성과 마성’
[3] 리훙쯔 사부님의 저서: ‘정진요지-불성무루’
원문발표: 2020년 8월 1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8/14/41035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