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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와 ‘정(情)’을 가볍게 논함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최근 주변의 부정적인 물질로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았다. 생활 중에 모순이 끊임없이 밀려왔는데, 마치 고압의 수증기 관 속에서 생활하는 것처럼 자신을 지탱할 수 없었고, 전후(前後) 매 순간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나는 갈팡질팡하며, 수련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깨닫지 못했다.

법 공부할 때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자비(慈悲)’ 두 글자를 점화(點化)해 주셨다. 나는 깜짝 놀라 깨어났다. 맞다. 나는 많은 일에서 자비로 대하지 못했다. 나는 자신에게 물었다. 자비는 각자(覺者)가 갖춰야 할 상태인데 나는 자비가 있는가? 나는 ‘없다’고 답했다. 그러면 나는 신변에 발생하는 일을 자비로 대하지 않는데 그러면 수련하는 것인가?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신(神), 불(佛)은 불광이 널리 비친다. 하지만 나의 신변에는 모순이 끊이지 않고 더욱 심각해지는데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마음을 조용히 하고 안으로 찾았는데 깜짝 놀랐다. 자기가 수련을 괜찮게 했다고 생각했고, 주변의 모순과 사소한 일을 대할 때 근본적으로 수련인의 상태가 아니었으며, 이것은 우주의 특성 진선인(真·善·忍)과 너무 멀었다. 왜 주변에 모순과 좋지 않은 일이 발생했는지 이제야 알았다. 원래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 깨닫지 못한 제자를 보고 신변의 사람을 이용해 점화해 주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무조건 안으로 자신의 잘못이 어디에 있는지 찾지 않고 사람의 방식으로 악으로 악을 제약하며 작은 모순을 소홀히 해 그것이 쌓여 넘기 힘든 큰 장애물이 됐다. 사부님께서 계속해서 각종 방식으로 나를 점화해주셔서 관념으로 미혹된 본성을 일깨워 주셨다.

법 공부와 안으로 찾는 것을 통해 자비와 정은 신과 사람의 분수령임을 알았다. 자비는 타인을 위하고 모든 개인의 관념 없이 입장을 바꿔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정은 삼계내의 물질이고 사(私)를 위한 것이다. 자기를 위해서 타인을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동시에 정이란 물질은 분자로 구성된 것이다. 또, 정은 다른 공간의 좋지 않은 생명의 교란을 받기 쉽고, 자신에게 더 집착할수록 정의 끈은 더 팽팽해져 선량과 자비에서 더 멀어진다.

자신의 이런 마음을 찾은 뒤 마음이 텅 비었다. 몇 년 동안 시간을 많이 낭비했으며, 이제야 수련의 의의를 알게 된 것 같았다. 자기 공간장의 좋지 않은 물질을 청리하고 공간장의 쓰레기, 패물(敗物)을 청소했다. 이때 마치 한 페이지를 넘기는 것처럼 눈앞에 아름다운 장면이 나타났다. 나는 일체가 모두 다 법의 연화이고 사부님의 구도라는 것을 알았다.

 

원문발표: 2020년 6월 1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0/6/17/40779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