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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는 마음에 대한 최근 깨달음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비록 나는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수련해 왔지만, 과거와 비교하면 수확은 그래도 많았고 자신의 개변도 매우 많았는데, 예를 들어 인간세상의 명, 리, 정에 대해 이미 매우 많고 많은 것을 내려놓은 것이다. 그러나 최근 나는 자신의 구하는 마음이 자신의 사고방식 속에 관념 속에 숨어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찾기가 아주 쉽지 않음을 느꼈다.

며칠 전 수련생이 전동차를 운전하고 나를 태워서 함께 진상 알리러 나갔다. 멀리 길가에 중년 부부 한 쌍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넘어진 전동차를 지키고 있었고 우리가 걸어가서 보니 중년여성의 옷이 전동차 바퀴 속에 말려 들어가 있었다. 수련생은 곧 관심을 갖고 물었다. “우리가 수리기사를 불러드릴까요?” 중년여성은 괜찮다고 하면서 기사가 오면 돈이 많이 써야 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공구만 있으면 꺼낼 수 있다고 말했다.

수련생은 중년남성에게 물었다. “집이 여기서 멀어요? 아니면 제 차를 타고 집에 가서 공구를 가져와도 됩니다.” 그 중년남성은 미안해하면서 말했다. “여기서 안 멀어요.” 그리하여 수련생의 차를 타고 집에 가서 공구를 가져오려고 했다.

옆에 있던 아내는 아들한테 전화하여 도구를 가져오라고 했다. 그리고 남편한테는 남의 차를 타지 말고 기다리면 아이가 올 것이라고 했다.

이때 또 전동차를 탄 여성이 왔고 차에는 또 한 명의 여성이 앉아 있었다. 그녀들은 차를 멈추고 이 부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 아는 사이인 것 같았고 아울러 부부를 도와서 전화로 사람을 찾아주었다.

그들을 보면서 나는 마침 그들에게 어디서부터 진상을 알려야 하는지를 생각했다. 이때 수련생이 진상책자를 꺼내어 그들에게 주었고 그 남성은 받았다. 그러나 세 명의 여성은 모두 받지 않았고 그다지 받고 싶지 않아 했다. 수련생은 그녀들에게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 남성이 태도가 매우 우호적인 것을 보고 시간을 다그쳐 그에게 진상을 알렸고 삼퇴하여 평안을 보존하는 일을 알려주었다. 그 결과 그는 소선대에서 탈퇴했다. 그러나 세 명의 여성은 모두 진상을 받아들이지 않아서 매우 아쉬웠다.

떠난 후 우리는 또 일부 인연 있는 사람을 만났고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다. 그들이 가입했던 당, 단, 대 조직에서 탈퇴할 것을 설득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갑자기 이 구하는 마음을 의식하게 되었다. 나는 곧 수련생과 이런 교류를 했다. 왜 우리는 진상을 알릴 때 가끔 일부 사람들이, 당신들은 온종일 사람들에게 당단대에서 탈퇴하라고 말하고 또 당신들은 이렇게 힘들게 자료를 배포하는데 하루에 얼마를 버는가 등의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일부 말을 듣게 되는가. 사실 우리는 가끔 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의 마음은 모두 매 한마디 말을 통해 그 당시 자신의 수련상태를 표현해 준다. 사실 다른 공간에서 매 한마디 말이 입에서 나올 때 모두 우리의 수련이 잘 되지 못한 불순한 사람마음과 물질을 가지고 나오고 동시에 또 우리의 이미 수련이 잘 된 그 부분 순정한 심태가 가져다준 에너지를 가지고 나온다. 우리의 상태가 좋을 때 순정한 심태가 가지고 온 에너지는 강할 것이고 수련이 잘 되지 못한 불순한 사람마음과 물질은 적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반대로 된다. 이것 또한 사부님께서 법리 속에서 우리에게 경고하신 것이다. “오직 자신을 잘 수련해야만 비로소 대법제자의 사명을 잘 완성할 수 있다.”[1]

오늘 보기에는 우리가 그들을 도와주려고 하는 것 같았지만 사실 내심 깊은 곳에서는 그들을 도와주는 것을 통해 그들의 호감을 얻으려는 것이 있었고, 이로써 그들이 우리의 진상 알림을 듣고 삼퇴하고 평안을 보존하게 하려고 했다. 비록 우리는 그들이 좋아지기를 위한 것이었지만, 이 속에는 아주 강한 목적성을 지니고 있었고 그들은 감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불순한 마음을 그들은 모두 감지할 수 있었고 그들의 진상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영향을 주었다.

내가 이 구하는 마음을 의식하고 ‘전법륜(轉法輪)’을 보니, 사부님 설법 여러 부분에서 나는 수련 속에서 잘하지 못했거나 혹은 잘하지 못한 원인을 왜 찾지 못했는지 알게 되었다. 바로 우리가 일이 생길 때의 첫 번째 염두가 바르지 못하거나 혹은 구하는 마음을 의식하지 못해 조성된 것이었다.

‘전법륜’에서 이런 예가 많다. 예를 들어 제6강의 ‘연공초마’ 그 절에서 말씀하셨는데 그 30여 세 되는 젊은이는 입정 속에서 색의 고험을 만난다. 바로 그가 환화되어 나온 비천을 보았기 때문이고 사람의 관념이 바르지 않아 환희심이 나오면서 비로소 아래의 마음을 닦는 과정이 생긴 것이다. 또 사부님께서는 “천목이 열려도 수련하기가 힘들다.”[2]라고 말씀하셨는데 다른 공간의 교란을 받기 때문이다. 역시 첫 번째 염두가 바르지 않아 갈림길에 잘못 들어서게 되었다.

이 법리를 알게 된 후 나는 끝내 아이의 학습에서의 문제를 바로 잡게 되었다. 왜냐하면 자신은 어릴 때 집안 환경이 좋지 않았기에 어릴 때부터 공부하는 것으로 자신의 운명을 바꾸려고 했다. 비록 수련한 후에 사람의 운명은 이에 따라 개변되는 것이 아님을 알았고 사부님께서 설법에서도 이미 명시했지만, 이 뿌리 깊은 관념은 지금도 제거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것은 수시로 뛰쳐나왔고 더욱이 자신이 지금 중국의 이런 아이 교육방식에 이끌렸다. 항상 아이가 공부를 잘하는지를 아이 장래 운명의 좋고 나쁨으로 여겼다.

지금 나는 알게 되었다. 아이가 왜 각 방면에서 모두 사람마음에 못 미치게 표현했는지를. 바로 자신의 아이에 대한 각종 기대 때문이었다. 수련인을 놓고 말하면 이 자체가 바로 아주 큰 집착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큰 집착, 이렇게 큰 구하는 마음은 수련의 길에서 교란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구세력이 틈을 타고 교란하는 누락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자신이 아이의 학습 방면을 대하는 부분에 대해 계속 수련하는 것 같지만 자신이 어디에 잘못되었는지 몰랐다. 이런 상태는 날마다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한다고 말하지만, 오히려 또 구세력이 배치한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수련하는 상태와 같았다.

이를 알고 나는 이후에 어떠한 일을 대하든 모두 자신의 첫 번째 일념을 심사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이 일하고 일을 생각하는 출발점 문제를 심사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니 일을 하는 마음은 비로소 더욱 순정해졌고 비로소 일을 더욱 바르게 할 수 있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경문: ‘남미법회에 보내는 축사’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시드니법회 설법’

 

원문위치: 2020610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발표: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6/10/407340.html